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78화 (78/245)

78화

"아버지께서 그러셨습니다. 천수신권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고, 무림의 정의와 대의를 위해 암중에서 활약하고 계시다고…… 있다고요."

제갈가단이 우리의 눈치를 사정없이 살핀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분위기가 달랐다.

뭔가 큰 용기라도 내는 얼굴이었다.

"무당의 송암 도장이라고 하셨습니까? 또 아미의 아미삼검 여협들이십니까? 선배님들께서도 구파일방이 아니십니까? 진공 스님! 스님도 원래 소림사 출신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천수신권 원욱 대사의 사형제시잖아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제갈가단은 개의치 않고 목소리를 더 높였다.

"언제부터 족보도 없는 것들이 무림에서 활개를 치고 다녔습니까? 극양신장(極陽神掌)이 있는 귀주의 화양문(火陽門). 유령신검(幽靈神劍)이 있는 산서의 황룡회(黃龍會). 또 사문도 없이 홀로 무림을 누비며 온갖 거드름을 다 태우는 수라섬전도(修羅閃電刀)까지. 어찌하여 이들이 무림의 기둥이 됐고, 또 언제부터 이들이 오대세가와 구파일방 위에 존재하게 됐습니까!"

극양신장과 유령신검, 그리고 수라섬전도는 천수신권, 창궁검제와 더불어 당대 무림의 오대고수라 불리는 이들이다.

아니, 이제는 송암 도장이 있어 무림육대고수라 불린다.

무림의 지각 역시 이들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제갈가단의 말마따나, 소림사와 남궁세가 그리고 무당파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무림에서의 위치와 지위가 이들 아래라 할 수 있었다.

"일천 년이 넘는 무림의 전통을 지키고, 그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 제갈세가 또한 그러한 이유로 힘을 보탠 것입니다. 다시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이 무림의 정점에 설 수 있게, 헌신하고 있는 게 바로 저희 제갈세가입니다."

궤변이다.

대꾸할 가치조차 없어 우리는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얼굴만 해 댔다.

하지만 제갈가단은 뭔가 자신의 의도가 통했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더 자신감을 얻은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무림의 전통과 적통! 그리고 정의를 되살리려는 일입니다. 저분…… 그러니까 녹주마적단과 적사마적단이 저지른 일은 저와 저희 세가는 정말 몰랐습니다. 방법이 틀렸습니다. 이 또한 바로잡아야지요! 하지만 무림의 전통을 되찾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목적임은 분명합니다. 믿어주십시오!"

놈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고 놈이 하는 말을 또 다 믿을 수도 없었다.

소림사와 남궁세가 그리고 무림맹이 관여된 일이다.

그걸 저따위 놈이 다 알 수는 없다.

"휴우."

송암 도장이 한없이 한심하다는 한숨을 내뱉은 후 입을 열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이 일에 얼마나 관여가 됐지?"

"그…… 그건……."

"분골착근은 나도 할 줄 안다. 속일 생각 말고, 솔직히 말해라."

"전부 다……라고 들었습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전부? 우리 무당과 아미파까지 말이냐?"

"네. 저는 분명 그리 들었습니다."

"누구에게서? 제갈세가주? 아니면 일장로인 네 아비에게서?"

"아버지께서 그리 말해 주었습니다. 이 대업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분명 기회가 있고, 그 기회를 살려 큰 공을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본 파에서는 누가 대표로 천수신권이나 창궁검제와 협력하는 것인가?"

아미삼검의 첫째 곡저가 물었다.

"그건, 그건 모릅니다. 다만 아미파도 분명 이 일에 협력하고 있다고만 들었습니다. 무당파도요."

"우리 무당의 누가 그러는지도 모르고?"

"네. 정말 모릅니다, 도장님."

"일단 알겠다."

송암 도장이 말을 한 후 몸을 돌렸다.

제갈가단을 홀로 두고, 우리끼리 다시 대화를 이을 생각인 것이다.

그렇게 몇 걸음 움직이려는데, 제갈가단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는요? 저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정말 무림의 정의를 되찾기 위해 한 일입니다. 살려 주십시오! 본 세가로 돌아가도 절대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살려 주…… 컥."

아미삼검의 둘째 곡연이 지풍을 날려 그를 잠재운 후 우리는 회의를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충격이었다.

정말로 무림을 상대로 한 거대한 음모, 그것도 무림의 최고자라 할 수 있는 천수신권과 창궁검제가 주도하는 음모 아니겠는가.

그래서 정말 많이 놀라고 그랬는데.

제갈가단의 말이 많아질수록, 한숨만 계속 새어 나왔다.

공통된 의견이었다.

"저 녀석 말은 전부 신뢰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도 송암 도장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결국 원곡, 저자의 입을 통해야만 제대로 된 진실을 들을 수 있겠군요."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원곡에 대한 고문이 결정되었다.

* * *

원곡에 대한 고문은 사흘 동안 이어졌다.

첫 번째는 아미삼검이 나섰다.

분골착근이다.

씨알도 안 먹혔다.

두 번째는 송암 도장이 나섰다.

생각지도 못했던 섭혼술(攝魂術)과 제혼술(制魂術, 영혼을 제압하는 술법)이 등장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송암 도장이 오히려 원곡의 마혼(魔魂)에 잠식될 뻔한 걸 작은 사부가 얼른 깨워 구했다.

작은 사부가 엉거주춤 나섰다.

한 대 툭 때리더니.

"아…… 못 하겠습니다. 제가 광기를 다스리는 중이라. 고문법 같은 건 따로 배운 적이 없고, 허허허. 죄송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첫날의 그 무지막지한 광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작은 사부도 첫날 원곡을 그리 두들겨 팬 후 슬쩍 스스로 놀란 모양이다.

자신이 이성을 잃었던 게 아닌지 하고 말이다.

그 후부터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광기를 다스리기 위해 말이다.

이튿날부터 의제가 나섰다.

천무휘는 이런 분야에 조금도 기대를 걸 수 없고.

칼같이 생긴 외모는 물론 다방면에 재능을 보였던 한해북은, 의외로 또 이런 분야는 문외한이었다.

나에게 미안한 얼굴로 슬쩍 귓속말을 하는데, ‘제가 곱게 자라서…… 죄송합니다, 마 형.’이라고 말했다.

생긴 건 무슨 황궁의 금의위에서 첩보 활동 같은 거 하게 생겼는데, 정말 의외였다.

곱게 자랐다니.

아무튼 그래서 의제가 나섰다.

"마혈, 제압 부탁드립니다."

의제의 부탁에 작은 사부가 꼼꼼히 원곡의 마혈을 점혈했다.

의제는 원곡을 질질 끌고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갔다.

먼 곳이지만, 자리에 있는 사람이 죄다 엄청난 고수들 아니겠는가.

그 소리가 다 들렸다.

아미삼검의 분골착근 때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던 원곡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간간이라지만, 분명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한 신음성이 얕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원곡의 입을 여는 데에는, 의제도 확연히 역부족이었다.

결국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누가 뭐라고 하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의견이 오갔다.

"작은 사부님, 송암 도장님, 아미삼검 여협님, 당분간 이 일은 밖으로 누설되면 안 됩니다. 아직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습니다. 제갈가단의 말만으로는 증명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섣불리 나섰다간, 오히려 엄청난 역풍을 맞게 될 것입니다."

"맞네. 나도 그리 생각하고 있네."

"장기전으로 가야 할 모양입니다."

"전문가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가는 고문 전문가다.

"마 도사의 부탁으로 우리 무당 몰래, 장문인한테도 말하지 않고 빠져나왔습니다. 서둘러 돌아가야 합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아미산을 내려온 줄 아무도 모르고 있어요."

"당분간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제자가 됐건, 사손이 됐건 그 누구도요."

"저희 삼검은 심득을 전해 주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아미 본산으로 내려가겠습니다. 누구를 믿을 수 있을지, 또 누가 저들과 내통하고 있는지 철저히 살펴 가리겠습니다."

"아미삼검께서 현역으로 복귀한다는 말이 나오면 무림이 들썩이겠군요."

"어디 송암 도장님만 하겠습니까."

"저도 냉철한 마음과 눈으로 무당을 살피겠습니다. 아미삼검 여협처럼 믿을 수 있는 제자와 그렇지 못한 제자를 가르겠습니다."

"원곡과 제갈가단은 어쩌죠?"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제가 오십 년 넘게 홀로 마음의 수양을 쌓던 동굴이 있습니다. 저희 사찰에 호진(護陣)의 결계를 칠 수 있는 귀물도 있고, 두 사람은 철저히 단속할 테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본 아미의 사정을 속속 서신이나 인편을 통해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제자들을 확보한 후, 전심으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적들과 내통한 자를 내치고, 무당을 되살려, 그 전력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일단의 과정 또한 속속들이 보고해 드리겠습니다."

"고문 전문가를 찾는 대로, 귀정사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비밀리에 연락을 할 수 있는 연락망도 구축해야겠군요."

"연락망은 제가 구축해 보겠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방도 믿을 수 없고. 제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다시 또 많은 말들이 오갔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려 있었다.

"마 도사, 자네는 어쩔 생각인가?"

송암 도장이 물었다.

"저는 따로 할 일이 있습니다. 곳곳을 돌고 적들 사이로 침투해 정보를 캐내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가장 위험한 일을 마 도사에게 맡기는군요."

"아닙니다. 은거까지 깨고 나오시는 아미삼검 여협의 헌신에 감동과 감사할 뿐입니다."

그 후에도 많은 이야기가 다시 오갔다.

그렇게 새벽이 다 되어서야 이 일에 대한 논의를 마칠 수 있었다.

날이 뜨자마자 아미삼검은 아미파로, 송암 도장은 무당파로 서둘러 떠났다.

사실, 그들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조금 불안했다.

이것도 병인가?

왜 이리 불안하고 못 미덥지?

그런데 그때, 작은 사부가 내 어깨를 살포시 두드리며 말했다.

마치 내 마음이라도 읽은 것처럼.

"믿어라, 악치야. 저분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많은 음모를 파헤쳤으며, 또 많은 악인을 상대로 싸워 이겼느니라. 그래서 지금의 경지에 오르실 수 있었던 것이니라."

작은 사부의 말에, 불안하게 뛰던 내 마음이 어느새 평온해질 수 있었다.

* * *

중원으로 돌아왔다.

천무휘와 의제, 한해북은 한껏 상기한 상태를 꽤 오랜 시간 유지했다.

어찌 아니겠는가?

말로만 듣던 극마의 고수도 보았겠다.

이젠 전설이 되어 버린 아미삼검도 실제로 만났겠다.

거기에 극마의 고수인 원곡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우리 작은 사부도 만났다.

우리 녀석들에겐 이것 자체가 기연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림을 상대로 한 거대한 음모.

그것을 파헤치고 막아야 하는 중심에 자신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뭐, 맞는 말이다.

그런 생각에 우리 녀석들, 어느 때보다 더 들뜬 모습이고 더 적극적인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살짝 들뜬 상태, 또 상기한 얼굴이 되어 호남으로 이동 중이다.

역시나, 녀석들은 왜 우리가 호남으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그냥 내가 가자면 가는, 절대적이며 맹목적인 믿음을 보이는 나의 세 녀석이다.

예뻐 죽겠다.

오늘은 평소보다 좀 더 맛난 거 사줘야겠다.

물론 돈은 의제가 내겠지만 말이다.

갈림길 중간에 있는 저기객잔이 맛있어 보인다.

오늘 점심은 저기객잔에서 때우자.

* * *

저기객잔(邸岐客棧).

"아미삼검이 복귀했다는 얘기 들었어?"

"하! 왕삼 이 친구야! 그게 언제 적 얘긴데 이제 하는가? 참, 느려요, 느려."

"아…… 나 어렸을 적 말이야. 매일 잠자며 그분들 만나는 꿈 꿨는데."

"너 왕삼 이 새끼! 설마 우리 고결하고 아름다운 아미삼검 여협들 생각하며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지!"

"예끼, 이 사람. 거,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라고. 그분들은 나의 우상이었어."

"둘 다 그만해. 우리도 할아버지가 됐지만, 그분들도 이젠 다 할머니 됐다고."

"아! 우리 아미삼검 여협께서는 안 늙으실 거 같은데 말이야."

"하하, 됐고. 음식이나 얼른 시켜. 장사하러 가야지. 아미삼검이고 검후고, 우린 늙어 죽을 때까지 장사를 해야 먹고 사는 인생들 아닌가?"

"하하하, 그렇지. 이봐, 점소이!"

"예이."

머리가 백발인 세 명의 할아버지 상인들이다.

우리보다 한발 먼저 와 자리를 잡았기에, 먼저 음식을 주문했다.

"대인들, 오늘 닭요리 전부 반값입니다."

"반값?"

"네. 반값입죠."

"에라이, 사기꾼아! 우리가 상인인 거 몰라? 앞선 마을에선 반의반 값에 팔던데, 뭐야! 우리가 호구로 보이냐?"

"아이쿠, 제정신 좀 봐, 헤헤헤. 반의반 값 맞습니다, 헤헤. 말이 잘못 나왔습니다. 사죄의 의미로 삶을 달걀 열 알씩, 가실 때 싸 드리겠습니다. 물론 공짜입니다."

"어허, 계두교인지 뭔지 덕분에 아주 좋구먼, 하하하."

"그러게 말일세. 이 맛있는 닭고기를 왜 안 먹고 지랄들이야? 덕분에 닭값과 달걀값이 거의 공짜다시피 떨어졌지 뭔가."

"우리야 뭐 닭고기와 달걀 싸게 먹고 좋지 않나? 계두교인지 뭔지, 아주 흥하길 바라야지, 하하하. 화주도 한잔하자고."

"거, 좋지. 이봐 점소이! 여기 화주도 한 병 추가."

"예이!"

그렇게 세 사람이 주문을 마치고 우리가 주문을…… 어?

계두교?

계두교가 뭐야?

광마일기엔 분명 그런 거 없었는데?

설마…… 설마…… 이 새끼.

이 닭대가리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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