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퍽퍽퍽!
"새꺄!"
퍼퍼퍽!
"이 새꺄!"
퍼퍼퍼퍽!
"착하게!"
퍽퍽!
"살라고!"
아! 우리 작은 사부 말이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직 광기를 완전히 제어하는 경지까지는 아닌가 보다.
저러다 원곡 죽겠다.
저 입으로 들어야 할 말이 많은데 말이다.
"작은 사부님! 그만! 그만 하세요."
내가 몸을 훌쩍 날려 작은 사부의 팔까지 잡아 가며 말렸다.
내가 말리자 눈을 멀뚱멀뚱, 슬쩍 머쓱한 얼굴까지 하며 구타를 멈추는 작은 사부였다.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간신히 정신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던 원곡은, 사부의 주먹질과 발길질이 멈추자 곧바로 혼절해 버렸다.
"작은 사부, 괜찮으세요?"
"아…… 그게…… 허허. 나무아미타불. 괜찮다. 놀랐느냐, 악치야?"
"좀 놀라긴 했어요."
"그게…… 허허. 내가 아주 살짝 흥분했구나. 괜찮다, 괜찮아. 다 갈무리했다."
"휴우, 됐어요. 정신 줄 놓지 마세요."
"녀석, 사부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허허."
나와 작은 사부가 농담과 같은 짤막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송암 도장과 아미삼검 그리고 우리 녀석들이 다가왔다.
여전히 귀신이라도 본 것과 같은 얼굴을 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송암 도장이 입을 열었다.
"마 도사, 자네…… 사부님이셨나?"
"아, 정식으로 소개해 드릴게요. 제 작은 사부님 진공 스님이세요. 귀정사란 사찰의 주지 스님이시기도 합니다."
"진공 스님, 저는 무당의 송암이라고 합니다."
"아미의 곡저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곡연입니다."
"곡희입니다."
이어 우리 세 녀석까지 작은 사부에게 인사를 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제 제자 녀석이 신세를 많이 지고 있습니다."
사부만 아주 입이 귀에 걸렸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포권을 하며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송암 도장이나 아미삼검은 여전히 뭔가 놀라고 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차마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하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추가 설명을 이었다.
"제가 고아 출신이에요. 그걸 우리 작은 사부께서 구해 주시고 키워 주셨고, 그러다 현화문의 지금 사부님과 인연이 닿아 현화문의 제자가 됐고, 그래서 작은 사부를 작은 사부라고 부르는 거예요."
"아……."
"아……."
동시에 뭔가 이해가 될 것도 같고, 아직 뭔가 부족하다는 그런 탄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할게요. 일단 자리부터 옮기시죠. 여기에 난리 난 소리를 들었으니, 분명 누군가 와서 확인하려 할 거예요."
그렇게 우린 움직였다.
이미 낙타나 말은 우리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먼 곳으로 도망을 쳤다.
잡아 오려면야 금세라도 잡아 오겠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낙타나 말을 잡아 오는 시간 말고, 그것을 타고 움직이는 시간보다 우리가 신법을 발휘하는 게 더 빠르다는 소리다.
"가시죠."
작은 사부가 피투성이째로 혼절해 있는 원곡의 뒷덜미를 잡고 움직였다.
그러자 송암 도장이 저 멀찍이 모래 위에 철퍼덕 주저앉아 오줌을 지린 상태로 여전히 혼백이 나가 있는 제갈가단을 낚아채 작은 사부의 뒤를 따랐다.
곧 아미삼검이 움직였고, 우리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작은 사부는 속도를 조절했다.
우리, 특히 한해북과 의제의 속도에 맞춰 움직여 주었다.
그래도 엄청난 속도였다.
한해북과 의제는 정말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노고수들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한계란 게 분명 있었다.
반 시진 정도 모래 위를 달리니, 결국 그들도 지쳤고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착!
착!
아미삼검 중 곡연과 곡희가 한해북과 의제의 손목을 잡아채는가 싶더니, 쉬이이이이이이이잉!
바람과 같은 속도로 저 멀리 앞서가는 작은 사부 곁까지 단숨에 달려 나갔다.
참!
아까 작은 사부와 원곡의 싸움도 그렇고, 아미삼검의 저 신법도 그렇고.
내가 천무휘를 통해 절정의 힘을 되찾아 좋아할 때가 엊그제인데, 이젠 저들의 무공이 부럽다.
미치도록 광천마제 시절의 내 힘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아! 아직 갈 길이 먼데.
그 사람들을 다 만나야, 천무휘 때처럼 내 힘을 찾을 수 있을 텐데.
하루빨리 녀석들을 만나고 싶었다.
이번엔 안 죽일 테니, 얼른 만나자고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내가 맨 꼴찌로 입으로 단내를 뿜어 대며, 또 열라게 달리고 달려 그들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 * *
한 시진을 달렸다.
모래 위를 달렸음에도, 탄탄한 중원의 평지에서 말을 한나절 달린 것보다 먼 거리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여전히 사막이었고, 사방을 둘러봐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훈훈했다.
"아! 마 도사에게 그런 사연이 있어서 사부가 두 분이었던 것이군."
"네, 송암 도장님."
사연을 설명해 주었다.
그제야 송암 도장이고 아미삼검이고 이해가 된다는 얼굴이었다.
원곡은 여전히 피투성이로 혼절한 상태였다.
제갈가단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인 양, 또 개밥에 도토리처럼 그렇게 한 구석에서 홀로 여전히 귀신 본 얼굴만 해 대고 있었다.
"부족한 제자 녀석 잘 좀 부탁드립니다."
"부족하다니요? 저와 무당이 마 도사에게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저희 아미파 역시 마 도사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맞네요. 그분이 바로 마 도사의 큰 사부님이시군요. 나무아미타불."
상황이 좀 웃겼다.
송암 도장의 나이는 일백이십 세를 넘겼다.
무당파 최고 항렬인 장문인에게조차 사조뻘이다.
아미삼검도 전대의 고수다.
아미파 장문인의 한 배분 위 항렬이며, 나이로도 이미 팔구십 세가 됐다.
반면 우리 작은 사부는 무당파와 아미파 장문인과 같은 항렬이라 볼 수 있다.
나이는 올해로 칠십일 세가 됐다.
무림에서 나이와 항렬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주먹 센 놈이 형인 게 또 무림이다.
아까 극마의 고수인 원곡을 치열한 접전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개 패듯 두들겨 팬 건 모두가 똑똑히 보았다.
그래서 사실 이 관계가 굉장히 애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송암 도장이야 나한테 진 빚이 얼마겠는가?
아미삼검 역시 그랬다.
우리의 첫사랑 예지의 화기를 처음 발견한 것이 아미삼검 중 막내인 곡희고, 그녀는 은거지로 돌아가 두 사저에게 예지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십수 년간, 그녀들은 간혹 예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가 어떻게 될지 많은 걱정을 했었다고 한다.
그 예지의 화기를 내가 해결했고, 또 큰 사부가 해결했으니 그녀들 또한 나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내는 중이었다.
송암 도장과 아미삼검이 우리 작은 사부가 한두 배분 아래임에도 극진한 예를 갖추어 대하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어디 우리 작은 사부가 그들에게 함부로 대하겠는가?
원곡을 때릴 때 살짝 눈이 돌아가긴 했지만, 거의 평생을 산속에 틀어박혀 수양만 쌓은 참 스님 아니겠는가?
거기에 연신 허리를 숙이고 미소를 지으며 나를 잘 부탁한다 말하고 있고 말이다.
언제나 서로를 존중하기 시작하면, 그 분위기는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하하! 그때 이 녀석 젖동냥 다니느라 고생 좀 하긴 했지요."
"어머, 그러셨어요? 추운 겨울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덕분에 우리 마 도사가 이렇게 훌륭한 인재가 됐고요."
"다 이 녀석이 잘 커 준 덕이지요. 또 유현 그 친구가 훌륭하게 잘 가르친 것이고요. 하하하."
"저…… 작은 사부님, 아미삼검 여협 그리고 송암 도장님."
저들의 대화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서 내가 그냥 끊었다.
"이제 일할 시간입니다."
"아! 그렇지. 맞다. 그래, 악치야. 뭐부터 하면 되겠느냐?"
"저 녀석 입부터 열어야겠지요."
"그렇지. 무슨 거대한 음모가 있다고 했지?"
"네, 작은 사부님."
모랫바닥에 주저앉아 눈알을 마구 굴리며 노인네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제갈가단이 화들짝 놀란 얼굴을 했다.
놀란 정신은 진즉 노인네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이 돌아와 있었다.
상황도 파악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 잔대가리를 마구 굴리다가 갑자기 우리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자 놀란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제가 한번 입을 열어 보면 어떨까요?"
아미삼검 중 둘째, 곡연이 조심스레 나섰다.
"어험, 곡연 스님. 험한 일은 제가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송암 도장이 곡연을 배려하여 말했다.
고문을 해서 제갈가단의 입을 열어야 하니, 아마도 험한 꼴을 봐야 할 것을 생각해 그런 것이다.
하지만 곡연은 살포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송암 도장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곡연 스님."
"나무아미타불."
곡연이 송암 도장과 작은 사부에게 살포시 합장을 한 후 제갈가단에게로 다가갔다.
제갈가단은 이미 눈에 지진이 난 상태가 되어 버렸다.
곡연이 한 발자국씩 다가올 때마다, 그 지진은 강도를 한 단계씩 끌어올리고 있었다.
결국, 곡연이 제갈가단 바로 앞에까지 섰다.
"나무아미타불. 제갈가단이라 했느냐?"
"……."
어떻게 해서든 비밀은 지키겠다는 의지.
제갈가단이 입을 꽉 다물었다.
자신의 입을 통해 음모가 밝혀지는 순간, 자신은 물론 제갈세가에 어떤 재앙이 닥칠지 그 역시 정확히 알고 있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 테다.
하지만 곡연은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너에게 분골착근(分骨錯筋)을 시전하겠다. 들어 보았을 것이다. 초고도의 상승 근골개조법으로, 분골착근의 시전이 모두 끝나면 너의 근골은 흡사 환골탈태한 것처럼 훌륭하게 변모되어 있을 것이다."
땅이 두 쪽으로 갈라질 것처럼 지진이 일던 제갈가단의 동공이 딱하니 멈추었다.
뭔가 자신이 알고 있던 분골착근과 다르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제갈가단이 어떤 반응을 보이건, 곡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단, 약간의 부작용이 있다. 물론 이 부작용 따위는 네가 견뎌만 준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 분골착근을 시전하는 동안, 너는 꿈에서조차 생각해 보지 못한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될 거다. 하지만 절대, 절대로! 그 어떤 소리도 내뱉어서는 안 된다. 그럼 부작용으로 근골이 뒤틀려, 무공은커녕 평생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제갈가단의 눈에 다시 지진이 일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수십 배나 커져 버린 대지진이었다.
"자, 그럼 시전하겠다."
곡연의 손이 천천히 제갈가단의 어깨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곧!
"잠깐! 잠깐! 잠깐!"
공간이 울릴 정도로 엄청난 외침이 순간 제갈가단의 입에서 정확히 세 번 터져 나왔다.
원래 못 된 놈일수록, 제 몸 귀한 줄 아는 법이다.
그것이 자신의 가족이라 할지라도, 팔아버려 제 몸을 지키려 한다.
제갈가단이 딱 그 짝이었다.
"천수…… 천수신권. 창궁검제. 무림맹. 소림사. 오대세가. 구파일방. 무림의 대의……."
무엇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제갈가단의 입은 쉼이 없었다.
무슨 놈의 음모를 이렇게 쉽게 알아낼 수 있나 싶어 우리가 다 당황할 정도였다.
내가 제갈가단을 살려 둔 이유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계속 입을 놀려 댈수록, 우리의 충격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무림을 향한 거대한 음모란 게, 진짜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