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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71화 (71/245)

71화

-이곳 상황을 들을 수 있습니까?

‘마적단의 전력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간단한 눈인사를 서둘러 마치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광마일기의 기록과 큰 틀로 보아 거의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

당시 나와 의제는 마적단이 종마상단을 공격해 오자마자 검을 수레에 숨기고 쟁자수처럼 행동해 산공환을 복용하지 않고 쟁자수들과 함께 잡힐 수 있었다.

또 이곳으로 끌려와 상황을 보다가 이들, 제갈가단 무리를 발견하고 접근하였다.

그리고 이제부터 진짜다.

난 전음으로, 그리고 제갈가단이 저들의 대표 격으로 땅에 글을 써 대화를 이었다.

‘우리 일곱 명과 모용 소저들의 호위로 오신 모용세가의 어르신 두 분이 계셨습니다. 두 분 다 절정의 고수셨습니다만, 안타깝게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내가 글을 읽었음을 확인한 제갈가단이 땅에 쓴 글을 손으로 지우고 새 글을 이었다.

‘백리세가의 삼대무력대 중 하나인 백공검단 오십 명은 거의 전멸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입니다. 서른여덟 명이 죽고, 열두 명이 생존했지만, 무공을 쓸 수 있을 정도의 무인은 없습니다. 모두 중상으로 숨이 붙어 있는 것조차 기적이라 할 만큼 위독한 상태입니다.’

-혹시 적사마적단을 소탕하려고 그런 전력으로 움직이신 겁니까?

제갈가단이 움찔했다.

그러더니 이내 다른 이들과 눈짓을 몇 번 교환한 후 다시 바닥에 글을 적었다.

‘부끄럽습니다. 좋은 일을 해 보고자 한 건데, 결과가 이렇게 처참하게 됐습니다.’

좋은 일?

지랄이다.

광마일기에 적혀 있다.

이 새끼가 지금 왜 이곳에 있는지.

광천마제가 된 나는 천하의 정보마저 휘어잡았었다.

그래서 그냥 물었더니, 개방과 하오문에서 줄줄이 당시의 사건에 대한 내막을 읊어 줬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갈가단은 제갈세가의 가주가 되고 싶었다.

자신은 일장로, 그러니까 차남의 아들이다.

당연히 소가주는 세가주의 아들이고.

하지만 제갈가단은 그 허망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제갈세가의 종자답게 대가리를 굴렸다.

큰 명성을 얻으려 한 것이다.

그러면 소가주도 되고 세가주도 될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 여기까진 좋다.

하지만 방법이 글러 먹었다.

제갈가단은 가장 먼저 황보세가의 혈육에게 손을 뻗었다.

뇌는 청렴하고 근육은 갑부고.

좋지.

그래, 좋다.

그다음, 중원으로 유람을 온 모용세가주의 딸들에게까지 손을 뻗었다.

오대세가에 포함이 되지 않고 또 요녕이라는 멀고 먼 땅에 위치한 세가지만, 모용세가의 영향력과 명성은 중원의 오대세가에 밀리지 않는다.

거기에 둘 다 제법 예쁘기까지 하다.

그렇게 힘센 두 놈과 예쁜 두 계집을 이끌고 간 것이 바로 섬서 백리세가다.

오대세가도 아니고, 섬서에서조차 화산과 종남에 밀려 눈치만 보던 백리세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오대세가 중 두 가문, 제갈세가와 황보세가의 혈육, 거기에 모용세가주의 예쁜 두 딸까지 방문했으니, 백리세가로서는 한껏 들떴을 것이다.

소가주 백리한고와 그 여동생 백리한옥은 또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렇게 들떠 기뻐하던 백리한고와 백리한옥을 꼬시고, 그들을 통해 백리세가의 힘을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성공했다.

백리세가의 삼대무력대 중 하나인 백공검대를 얻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모용 자매를 호위하기 위해 함께 중원으로 온 절정의 두 노고수는 생각지도 못했던 덤이고 행운이었을 테다.

한낱 마적단 따위를 상대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전력이라 생각했을 테다.

머리는 좋을지 몰라도 세상 물정을 몰랐던 제갈가단의 계산으론 말이다.

그리고 결과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대로다.

광마일기에도 그리 적혀 있고, 지금도 똑같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세가의 귀한 혈육들께선 모두 무사하니 말입니다.

‘부끄럽습니다. 그게 실은…….’

제갈가단이 쓰던 글을 잠시 멈추어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결심한 듯 다시 글을 써 내려갔다.

‘신분을 밝혔습니다. 또 저들에게 우리의 몸값으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저들이 순순히 따르던가요?

‘반신반의하는 눈치였습니다. 돈은 욕심나고, 또 위험을 감수하기는 싫고.’

-그래도 결국 제갈 소협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저희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도 대비를 할 텐데요.

‘백리세가 소속의 소수만 오라 했고, 만약 다른 세가 소속의 인물이 확인되거나 약속한 숫자 이상의 인원이 발견되면, 그 즉시 우리를 죽이겠다고 했다는군요.’

-백리세가에서도 제대로 된 전력을 꾸려 이곳으로 오긴 힘들겠네요. 다른 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어려울 것이고요.

‘맞습니다. 백리세가의 도움으로 이곳을 빠져나가는 일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더군다나 이들은 최악의 상황도 이겨 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마적단 내에 상당한 고수가 있다는 뜻인가요?

‘네. 이곳 적사마적단의 두목 혈수만기(血水滿器) 서석은 이십 년 전 이미 중원 무림에서 숱한 피바람을 불러일으켰던 마두입니다. 지금은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서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 부두목은 반월쌍도(半月雙刀) 타미르라는 자인데, 그자 역시 절정의 고수입니다.’

-백리세가의 구원은 크게 기대할 수 없고, 우리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휴우.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군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제갈가단이 글로 나에게 물으며 절박한 눈빛을 보냈다.

그 한 명만이 아니다.

나와 제갈가단의 대화를 듣고 보는 나머지 여섯 명 또한 간절하면서도 떨리는 눈빛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나야 뭐, 담담하고.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저들은 속이 바짝 타들어 가겠지만, 그건 저들 사정이고.

난 저들의 대답도 듣지 않고 천무휘와 함께 저들에게서 살짝 떨어진 장소로 움직였다.

* * *

나와 천무휘가 움직이자, 곧 의제와 한해북까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제갈세가의 혈육이 있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천무휘의 전음에 의제와 한해북이 놀란 얼굴이 되었다.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계셨어요? 그런데 왜?

-숨겼냐고요?

-…….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말입니까?

-제갈가단은 지금 제갈세가와 우리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다. 소가주가 되고 싶은 욕망에 눈이 멀어 그것에만 집중해 움직이다가 이곳에 잡혔거든요.

-제갈세진의 죽음도 모르나요?

-네.

나와 천무휘의 대화에 의제가 끼어들었다.

-형님, 그건 어떻게 아셨나요?

-신, 통, 력.

-아…… 역시……

통한다.

의제도, 천무휘도, 가끔씩 똑똑해지는 한해북에게도 통한다.

묻고 따지지 않는다.

좋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입니다. 그래서 다들 모이라고 한 거예요. 어떻게 할까요?

-무얼 말입니까? 제갈가단을 구해야 할지를 말입니까?

천무휘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가로저은 후 답했다.

-아니요. 아무리 우리와 원수를 진 가문의 혈육이라고 사람이 죽을 걸 뻔히 말면서도 어찌 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녀석들.

내 말에 감동한 얼굴이다.

눈빛에 ‘역시 우리 마 형은 참 도사님이십니다.’, ‘우리 형님 최고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내가 무슨 잔혹한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우리와 제갈세가 사이의 일을 제갈가단에게 말할지 결정하자는 것입니다.

-마 형은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모든 게…… 솔직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전음에 천무휘와 의제, 그리고 한해북이 거의 동시에 눈에 힘까지 준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결정되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으십시오. 솔직함 속에 거짓을 섞을 것입니다. 이것이 저들에 대한 시험이고 저들에게 주는 기회입니다.

내 설명은 한참을 더 이어져야 했다.

* * *

나와 천무휘가 돌아오자, 사남삼녀의 바싹 타들어 가던 얼굴에 그나마 생기가 도는 듯했다.

하지만 잔뜩 긴장한 얼굴들이다.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누었고, 또 무슨 결정을 내렸는지 초조한 얼굴로 내 입만을 주시할 뿐이었다.

-제갈 소협.

아까와는 다르게 사뭇 무거운 표정의 전음에 제갈가단도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릴 말이 있소.

전음으로 그간 위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모두 말해 주었다.

하지만 이번 생의 일만을 말한 게 아니다.

광천마제 시절 나와 의제가 겪었던 실제와 이번 생의 실제를 교묘히 섞어 말해 주었다.

-그렇게 위산을 벗어나 도주하여 호북 북부 무당의 영역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다…… 제갈 소협의 숙부, 현검공명 제갈세진 대협과 맞닥뜨리게 됐습니다. 우리의 억울함과 누명을 아무리 설명하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단 제갈가단 뿐만 아니라,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거의 경악한 얼굴을 했다.

물론 가장 심한 건 역시 제갈가단이었다.

-제갈세진 대협은 그때 돌아가셨습니다. 이후 우리 네 사람은 제갈세가와 무당파에 쫓기게 됐고, 먼 곳으로 도주하기 위해 이곳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내 전음이 끝나자마자 천무휘가 끼어들었다.

-전 이제 수룡검이 아닙니다. 중원 무림은 이제 저를 마룡검(魔龍劍)이라 부릅니다.

세 여인이 유독 크게 놀란 얼굴을 했다.

다시 내가 전음을 보냈다.

-사도신마 마악치입니다. 저기 경계를 서는 제 의제는 우각도마라는 악명을 얻었고, 저 친구는 복건에서 홀로 협의를 펼치던 친구인데, 이젠 잔혹마(殘酷魔) 불립니다.

아무도 입을 뻥끗하지 않았다.

아니, 원래 말은 안 했고.

아무튼 사남삼녀는 경악에 경악, 그냥 눈알만 튀어나올 것 같은 얼굴을 하고 한참이나 미동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제갈가단이 몸을 돌려 다른 이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전음을 주고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 일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눈빛만으로도 충분했던 모양이다.

물론, 결정권은 제갈가단에게 있다.

백리나 황보, 모용은 우리 사건과 직접적 연관이 없다.

하지만 제갈가단은 자신의 숙부가 우리 손에 죽었다고 듣지 않았는가?

역시나 나머지는 제갈가단이 결단 내려 줄 것만을 바라는 눈치였다.

결국 제갈가단이 몸을 돌려 나를 향했다.

-결정……하셨소?

끄덕.

‘본가에 그런 일이 있었는 줄 몰랐습니다. 시간상으로 보아 우리가 사막으로 떠난 후 일이 벌어진 듯합니다.’

-맞소. 시간이 절묘하게 그리 겹쳤소.

내가 아미파로 가지 않고 빨리 사막으로 오려고 했던 이유다.

뭐, 아미파에서 며칠 묵었지만, 결과적으론 제대로 시간에 맞출 수 있긴 했다.

-어찌하겠습니까? 중원으로 돌아가면, 저희와 서로 칼을 겨누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함께 움직이겠습니까?

‘억울한 누명을 쓰셨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제갈 소협은 제 말을 믿을 수 있나요?

제갈가단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난 다른 이들과도 눈을 마주쳤다.

다들 제갈가단과 똑같은 행동으로 내게 답을 주었다.

광천마제 시절의 이때, 나는 여전히 순수함과 선함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들에게 이러한 답을 받고 크게 감동까지 받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제갈가단이 다시 나뭇가지를 집어 바닥에 글을 써 내려갔다.

‘여러분의 누명, 분명하게 약속드립니다. 저희가 모든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 드리겠습니다. 저는 물론, 제 친구들이 여러분과 끝까지 함께할 것입니다. 제 목숨과 명예를 걸고 약속드립니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감동했던 광천마제 시절과 달리, 내 얼굴에서는 나도 모르게 냉소가 흘러나왔다.

이번엔 약속 지켜라.

안 그러면, 다 죽는다.

여기 잡혀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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