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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67화 (67/245)

67화

화기(火氣)?

여기서 화기가 왜 나오지?

잠깐!

잠깐만!

너무 혼란스럽다.

나, 나 말이다.

나는 극강의 광기(狂氣)를 갖고 태어났다.

그런데 예지가 극강의 화기를 갖고 태어났다고?

극화지체(極火之體)?

"조금 생소한 말일 수도 있을 걸세. 하지만 무림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리 낯선 것도 아니라네."

"……."

내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건, 극화지체라는 말이 생소해서가 아니다.

예지가 극강의 화기를 품고 태어났다고 해서다.

하지만 윤화 사니는 그리 생각했던 모양이다.

"자네 혹시 구음지체, 구양지체 이런 말을 들어 본 적 있나?"

"네. 천황성의 기운을 타고난 천무지체, 이런 것같이 전설에나 나오는 신체라 들었어요. 설마 예지의 극화지체도 그런 건가요?"

"그렇네."

"아……."

"태양이 강하면 그늘도 짙어지는 법이지."

"구음지체와 구양지체가 치료하기 힘들어, 보통 열 살을 넘기기 전에 죽는다는 걸 말씀하시는 거군요? 설마 예지도 그런 병을 앓았나요?"

"극화지체는 병을 앓지 않는다네. 다만…….

"…….?"

"한번 화가 폭주하면, 그것을 억제하기 힘들다네."

"얼마나 억제하기 힘들기에……?"

"예지가 아홉 살 때, 나는 예지를 데리고 복마전으로 갔다네. 장문인 사저와 장로 사자매들에게 예지를 보여 주고, 내 제자로 삼겠다고 했지. 그때 마침 현역에서 은퇴하여 은거하시던 전대의 사고께서 십오 년 만에 은거를 깨고, 자신의 심득을 전해 주러 본산에 내려오셨었다네."

"……."

"그분께서 그러시더군. 예지의 눈에 극강의 화기가 보인다고. 예지가 폭주하면 아미는 멸문하고, 천하는 지옥의 불과 같이 활활 타 수많은 이들이 죽게 될 것이라 하셨네."

"그…… 그 정도예요?"

"처음엔 나도 반신반의했네. 그러다 결국 예지가 극화지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아……."

"장문인 사저와 장로 사자매들, 그리고 당시 이장로였던 나까지. 예지를 두고 정말 오랜 시간 토론을 했다네. 반대도 심했지만, 결론은 마 도사도 알다시피 우리 아미에서 품기로 했지. 만약 예지를 우리 아미가 아닌 다른 곳에서 품고, 그 화기를 제어하지 못했을 경우 더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네."

"아불입지옥 수입지옥(我不入地獄 誰入地獄).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가리요.’라는 큰 헌신의 뜻을 아미파에서 실행하셨네요. 어쩌면 큰 화(禍)가 될지 모를 예지를 품으신 게요."

그녀가 긍정의 의미를 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그리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네. 물론 예지가 잘 따라 준 게 가장 크겠지만, 본 파의 무공 서고와 경전 서고에 이미 극화지체에 관한 기록이 상당히 많이 있었거든. 장문인과 우리 장로들 그리고 나는 매일 그 경전과 비급을 뒤지며 극화지체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이를 예지에게 전수해 줬다네."

"아…… 그랬군요."

"풉. 자네 혹시 십오병(十五病)이라고 아나?"

그녀가 갑자기 장난기 가득한 웃음과 함께 내게 물었다.

"열다섯 살, 한참 사춘기 소년 소녀들에게 찾아오는 괴이한 정신 상태를 말씀하시는 거 아닌가요?"

"오호, 자네도 아는군."

"네. 지들이 무슨 무적의 고수라도 되는 줄 알잖아요."

"아, 맞아. 호호. 맞다네. 그리고 또 굉장히 예민한 시기기도 하지."

"맞아요. 혹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아! 맞다. 윤화 사니께서도 오 년 전 병을 얻어 이장로직에서 물러나시고, 예지가 아미파 측간 청소를 자원했다는 시기도 딱 그때잖아요?"

"맞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때 이곳 아미산에 한 마리 주작(朱雀)이 날개를 펼치고 불을 뿜었다네."

다시 시선을 먼 산에 두고 회상에 잠긴 그녀였다.

미소를 짓기도 하고, 서글픈 눈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흘러 그녀가 말을 이었다.

"예지에겐 또래의 이대 제자들가 아주 적지만 몇 명이 있네. 임화령이라고 마 도사도 알지?"

"네. 유명하잖아요. 칠룡사봉 중 한 명으로요. 예지가 호북에서 길을 잃은 것도 다 임화령 때문이고요."

"나도 들었네. 아무튼 그때 임화령과 몇몇 이대 제자들이 예지를 놀렸던 모양이야. 오래전부터 그렇게 괴롭혔는데, 예지가 전혀 내색하지 않아 몰랐었어. 사부라는 게 그리 세심하지 못했으니, 다 내 잘못이라네."

"……."

"나중에 임화령 등을 혼내고 추궁해 알았는데. 임화령을 포함한 또래의 이대 제자 몇 명이, 예지가 아홉 살에 본 파에 입문한 후부터 계속 괴롭혔다고 하더군. 욕을 해도 웃고, 때려도 되레 자기가 미안하다고 했다네."

참, 예지답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쓰렸다.

그나저나 이 부분은 우리가 오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미파 전체가 예지를 따돌리는 줄 알았더니, 소수의 몇 명이 그랬던 거였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 분명 그랬다.

그러니까 열일곱 번째 회귀, 예지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때 한해북이 따돌림이냐 물었고, 예지는 분명 아니라고 답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격분한 나머지 그냥 믿고 싶었던 것만 믿어 버리고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런데 그날, 임화령 등이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 버린 거야. 그것도 예지가 한참 십오병에 걸려 예민했던 시기에 그랬지. 예지 어머니가 아미파의 인분을 퍼 거름으로 팔던 걸 놀리고 모욕했다고 하더군."

"씨ㅍ…… 앗, 죄송합니다."

"아닐세. 그땐 나도 너무 화가 나 그 계집들에게 쌍욕을 마구 퍼부었으니 말야, 호호호."

"아……."

"그때까지 잘 견뎌 오던 예지가 결국 폭주했다네. 아미산 전체에 엄청난 화기가 폭발하자, 나와 장문인, 장로들은 곧바로 신법을 극대로 펼쳐 현장으로 달려갔다네. 예지의 검에서는 물론, 온몸에서 다가가기조차 힘든 엄청난 열기와 불을 뿜으며 임화령 패거리를 막 죽이기 일보 직전이었지. 장문인과 나 그리고 다른 장로들까지 일시에 몸을 날려 예지를 막았네."

"휴우, 그나마 다행이었네요."

"아닐세. 아미파의 장문인과 본 파에서 가장 강하다는 여섯 장로가 동시에 몸을 날렸지만, 곧바로 큰 상처와 내상을 입고 뒤로 물러서야 했다네. 내가 제일 심했지만, 그때 피부와 내장에까지 입은 화상이 장문인 사저와 장로들 몸에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다네."

난 순간 너무 놀라 뭐라 대꾸해야 할지도 몰랐다.

설마 그 정도일 거라고는 진짜 몰랐다.

정말.

구파일방에서도 손에 꼽히는 아미파의 최고수들이 합공으로 달려들었는데도 감당을 못 했다니.

예지의 화기가 내 광기마저 넘어 버린다는 소린가?

그런데 설마……?

설마 아니겠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과거.

아니, 전생.

광마일기의 그 부분이 갑자기 떠올랐다.

열여덟 번째 회귀.

우리가 와룡산에 있는 제갈취무의 묘로 끌려가 죽임을 당할 때.

내가 아미파를 거론하며 금예지만은 살려 달라고 했었다.

그때 제갈세진이 이렇게 말했다.

"지금 본가에 누가 와 있는지 아나? 저 계집의 사저들. 소포검화 임하령이 와 있다고. 내 조카, 본 세가의 소가주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 금예지에 관해 조심스레 말을 꺼냈더니, 몸까지 덜덜 떨며 제발 없애 달라고 사정을 하더군. 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

분명 ‘몸까지 덜덜 떨며 제발 없애 달라고 사정을 하더군’이라는 말을 했다.

덜덜 떨며?

열다섯 살 때 이미 금예지의 폭주를 겪었던 임하령은 예지를 두려워했던 거였어.

따돌림이 아니었어.

예지가 무서워서, 그녀를 속이고 제갈세가로 도망갔던 거였어.

차마 사문의 비사를 말할 수는 없고, 그냥 두려움에 떨며 죽여 달라고 했던 것이고.

아!

설마?

또 생각났다.

당시 임하령이 제갈세진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예지는 슬피 울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광마일기에 기록이 없다.

난 지금껏 당연히 우리가 모두 제갈세진의 칼에 죽었을 것이 생각했다.

다른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마……?

어쩌면 그때 죽은 게 우리와 금예지가 아니라, 금예지를 뺀 우리와 제갈세진 그리고 제갈세가 무인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조금 전 윤화 사니의 말을 들어 보니, 그랬을 공산이 크다.

우리의 죽음을 목격하고 예지가 폭주했다면 그랬을 터다.

허걱!

또 생각났다!

광마일기 말이다.

생각해 보니 광마일기의 내 광천마제 시절 일기.

그곳에 제갈취무에 대한 기록이 없다.

없어.

내가 광천마제가 된 후 사패천은 천하에 산재하는 고수들을 샅샅이 파악했다.

광마일기에 그들을 모두 적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초절정 고수에 대해서는 한 줄 정도라도 거의 기록을 해 놨다.

특히 나의 첫사랑이었던 금 형에 관하였기 때문에, 제갈세가와 무당파에 대해서는 그 고수들의 기록을 상세히 기록해 놨다.

하지만 제갈취무라는 이름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건!

와아!

우리가 위산에서 탈출하다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오두막.

나와 의제가 금 형을 뒤로하고 눈물을 뿌리며 지하 비밀 통로로 도주했을 때.

어쩌면 그때 죽은 게 우리들의 첫사랑 금 형이 아닌 제갈취무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랬기에 초절정 고수였던 제갈취무에 대한 행적이 단 한 줄도 광마일기에 기록되지 않았으리라.

닭살 돋네.

그러고 보니 또 하나의 추측도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순양자 비동을 처음으로 염탐 갔을 때.

어떻게 죽었는지 그 기록이 없다.

제갈세진에게 발각되어 반항조차 제대로 못 하고 죽었을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때도 죽은 게 우리와 금예지가 아니라, 우리와 제갈세진이었을 수도 있겠다.

만약 그때도 예지가 우리의 죽음을 목격하고 폭주했다면, 제갈세진 혼자 감당할 수 없었을 테다.

와아아아아아!

갑자기 머리가 띵하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말이다.

나의 열일곱 번째 죽음, 열여덟 번째 죽음, 그리고 열아홉 번째 죽음까지.

어쩌면 제갈취무와 제갈세진이 우릴 계속 죽여 왔던 게 아니라, 금예지가 그들을 계속 죽여 왔을지도 모르겠다.

"마 도사, 자네 괜찮나?"

"아, 네? 아, 네. 괜찮습니다."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이군."

"조금요, 휴우. 이젠 괜찮습니다."

"이야기…… 그만할까?"

"아니에요. 더 듣고 싶습니다. 모두요."

윤화 사니가 내 상태를 살피며 고개를 몇 번 끄덕인 후에 말을 이었다.

"당시 우리만으로는 예지를 막을 수 없었다네. 예지의 잠재된 화기의 힘이 그렇게까지 강할 줄은 사실 우리도 예측하지 못했었거든. 결국 장문인과 여섯 장로, 그리고 각 전의 전주들과 각주들, 거기에 세 개의 무력대가 합심해 진법까지 써 가며 예지와 싸워야 했네."

"막을 수…… 있었나요?"

윤화 사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죽일 각오였다면 막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예지의 잘못이 아니지 않겠는가?"

"그렇죠."

"그래서 힘들었어. 이미 폭주해 이성을 잃은 예지는 매 순간 자신의 화기를 극대로 펼치며 거의 동귀어진과 다름없는 수법으로 우릴 공격했고, 우린 반대로 예지가 죽지 않게 조심하며 싸워야 했다네."

"그렇다 해도, 예지의 화기가 정말 상식을 초월하는 힘이었네요."

"그렇지. 본 파 전력의 칠 할이 움직였는데, 열다섯 살 여아 한 명을 제압하지 못했으니 말이야."

아미파의 전력 칠 할.

정면으로 승부한다면 화경의 고수도 감당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힘이었으리라.

진법까지 동원했다고 하지 않겠는가?

감당은커녕, 제아무리 화경의 고수라 해도 순식간에 피떡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치고 빠지는 전략이 아닌 정면 승부라면 분명 그러할 테다.

정녕 예지가 품고 있는 화기가, 거의 화경급 고수의 무력에 버금갈 정도라는 말인가?

또 충격이었다.

"장문인과 장로들 또 노고수들 덕분에 다행히 그때까지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그 피해는 계속 쌓여 가고 있었다네. 내상과 외상, 무엇보다 그 뜨거운 열기로 거의 모든 제자들이 크고 작은 화상을 입고 싸웠지. 장문인은 결국 결단을 내려야 했다네."

"예지를 죽이려 했던 것이군요?"

"맞네. 더 버텼다간 다른 제자들이 죽게 생겼으니, 장문인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지."

"어떻게 됐나요?"

내가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윤화 사니가 그런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결과는 알지 않는가? 우리 예지는 멀쩡하게 잘살고 있는 걸 매일 보면서도 그러나? 호호호."

"아, 그렇죠. 어떻게 살았는지 그걸 여쭌 겁니다, 사니님."

"호호, 자네가 너무 심각해 보여 농을 좀 했다네."

"네."

"그때 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네. 장문인 사저의 결정을 말이야. 내 제자 아니겠는가? 내 딸이라네. 그래서 내가 나섰지. 장문인이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내공을 모두 갈무리하고 그냥 무방비로 터벅터벅 예지를 향해 걸어갔네."

웃으며 말하지만 난 당시의 위급한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어야 했다.

"여러 경전에 이런 글귀가 많이 기록되어 있네. 혼(魂)이 마(魔)에 잠식당해도 한 가닥 이성이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마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이야. 난 그걸 믿었네."

"예지가…… 폭주를 끝낸 건가요?"

"그랬네. 내가 예지의 화기에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예지가 한줄기 눈물을 흘리더니 이내 폭주를 멈추고 혼절해 쓰러졌다네. 내 몸이 이렇게 되어 버리긴 했지만, 한 번도 당시의 내 결정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네. 오히려 폭주를 멈춰 준 예지가 고맙고 기특할 뿐이지."

극강의 화기.

뜨거운 불길.

이를 맨몸으로 받아 가며 예지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을 윤화 사니.

고귀한 희생과 진정한 사랑이 예지를 살린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윤화 사니의 이런 희생 덕분에, 아미파는 수백 년 만에 다시 검후를 배출시키게 될지 모르겠다.

아니, 그리될 테다.

그것도 무림사에 전무후무한 극강의 검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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