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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61화 (61/245)

61화

쉬이이이이이이이익!

얼굴이 퉁퉁 부은 무당파 장문인이 빛의 속도로 몸을 날렸다.

"사, 사형. 장문인 사형!"

"네 이노오오오오오오오오옴!"

퍽!

쿠당탕탕탕탕.

따귀를 때렸는데 ‘퍽’ 소리가 났다.

삼장로 운면은 그 즉시 뒤로 열댓 바퀴나 굴러야 했다.

"사, 사형…… 제 말을 좀 들어 보시…….

찰싹!

찰싹!

찰싹!

뭘까?

운면의 배신에 대한 분노였을까?

아니면, 이곳으로 오기 전 송암에게 맞은 따귀의 분풀이를 운면에게 하는 것일까?

"으악! 사, 사형! 장문인 사형! 제발!"

퍽퍽퍽!

퍼퍼퍼퍼퍼퍽!

순식간에 쓰러져 피떡이 되어 버린 운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분노한 눈으로 이를 내려다보는 장문인 운인.

스르릉.

그가 결국 자신의 허리에 매달린 검을 뽑았다.

"장문인! 우선 해명이라도 좀 들으시고…… 허걱."

제갈세진이 다급히 말려 보려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곧바로 장문인 운인의 매서운 눈빛과 무지막지한 기세를 받고는 놀라 입을 닫고 말았다.

제갈세진이 제갈세가의 제일검이며 우리에게는 여전히 강한 고수였지만, 무당 장문인에게는 그 눈빛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그렇고 그런 놈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제갈이 입을 닫자 운인 장문인이 다시 시선을 운면에게로 향했다.

"사…… 사형…….

"변명이란 거. 있다면 해 봐라, 운면 사제."

"전…… 흑흑, 흑흑흑."

어느새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의 운면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전…… 전 다 우리 무당이 잘되자고…… 그래서 그랬어요. 그래서 그랬다고요, 사형!"

그의 눈이 충혈되었다.

그의 흐느낌은 서러움이 가득 담긴 울음이 되었고, 어느새 터울 많은 큰형에게 장난감을 사 달라고 떼쓰는 막냇동생처럼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제가요! 제가 말이에요! 우리 무당을 배부르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세요! 우리 제자들, 우리처럼 굶으면서 수련 안 해요. 우리 제자와 사질들, 사손들! 다들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검으로 수련한다고요! 알잖아요! 무당산을 내려가도, 싸구려 객잔에서 자지 않아도 되고, 사람 없는 관제묘를 찾아가 잘 필요도 없다고요!"

운면의 이제 악을 쓰기 시작했다.

"돈! 돈이 있어야 사람은 사는 거예요. 밥을 먹어야 수련을 하고, 도경을 기록하고, 무공도 익힐 수 있다고요. 제가…… 제가 무슨 잘못을 했어요? 제 덕에 우리 무당파가 얼마나 부자가 된 줄 아세…….

찰싹!

따귀.

얼마나 분노했는지, 장문인 운인의 수염까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미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운면을 노려보는 운인은, 이제 그 분노를 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곧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마치 지금까지 내가 본 모든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운인이 그 폭발했던 화를 모두 잠재우고 평온해진 것이다.

떨리던 수염도, 붉게 충혈됐던 눈까지, 모두 원래의 그 상태로 돌아왔다.

목소리마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사제, 변명이 더 남았나?"

"사…… 사형…….

운면도 상황을 파악한 것 같다.

더 이상의 변명을 포기했다.

그저 다시 흐느껴 울뿐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운인이 은은한 목소리로 마치 철부지 어린 동생을 달래기라도 하듯 말했다.

"부자는…… 도사가 될 수 없다네, 사제."

쉬이이이익.

푹.

샤아아아악.

"커억!"

장문인 운인의 검이 번쩍였다.

또 어느새 그의 검은 검집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운면은 다른 모습이었다.

단전에 작은 혈점이 생겼다.

단전이 파괴된 것이다.

또, 그의 사지 근맥에서 피가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사지 근맥마저 끊어 버린 운인이었다.

아! 솔직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운면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나, 적당히 두들겨 팬 후 무당파로 데려가 심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즉결심판이라니.

그것도 자기 사제인데.

장문인 운인의 손속에 좀 많이 놀랐다.

그런데 그때 송암 도장에게서 전음이 왔다.

-자네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무림의 문파, 그것도 우리 무당이나 화산, 곤륜, 공동, 점창 같은 곳에서 가장 큰 죄명이 무엇인지 아는가?

-반역 아닙니까? 역모나, 항명? 아니면 무공 유출? 순양자의 비급을 제갈세가에 넘겨서 저런 형벌을 받는 건가요?

송암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기사멸조(欺師滅祖)라네. 개파한 지 얼마 안 된 신생 문파라면 모를까, 우리네같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곳이라면 가장 중요시하는 게 바로 그것이라네.

-……?

-오늘 자네 말에 따라 본산에 갔었네. 오십 년 전 내가 알던 무당파의 도사들이 그곳에는 없더군. 모두 여유로웠고, 배에는 기름이 차 있었네. 저 아이의 말마따나 비단으로 만든 도복을 입고, 고급스러운 검을 차고 있었다네.

-그게…… 무슨 문제인가요? 배불리 먹고 좋은 검을 쓰면 더 좋지 않나요?

-일천 년 가까운 세월, 우리 무당의 선조들께서 수많은 희생, 그리고 깊은 수양과 명상을 통해 어렵게 찾아 세운 것이 바로 전통이며 율법이고 규율이라네. 그런데 오늘 내가 본 무당은, 그 일천 년의 역사와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져 있었어.

-음……

-단순히 장문인과 사문을 속이고 제갈세가와 내통한 것도 기사멸조의 죄에 해당하나, 운면은 그 이상의 죄를 지었어. 기사멸조에서도 가장 심오한 영역까지 침범해 이를 어긴 것이라네. 순양자 선조께서 남긴 비급이야 당연히 중요하지. 하나, 이는 기사멸조의 죄에 비한다면 새 발의 피도 되지 않는 일이라네.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무당이라면 순양자의 비급 정도 되는 무공 서적은 쌓이고 넘칠 테니 말이다.

우리 현화문처럼.

-운면은 무당으로 끌려가 다시 심판을 받게 될 걸세. 아마…… 죽음을 면키 힘들 것이야.

송암이 잠시 침묵을 이은 후 다시 전음을 보냈다.

-오늘부로 무당은 새롭게 탄생할 것일세. 과거의 무당. 정의와 협의를 외치는 무당. 진짜 도사들이 우글거리는 무당. 계산 같은 건 하지 않고, 오로지 민초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무당. 천하제일검도 무당에서 나올 것이네. 고맙네.

-네? 제가……

-모두 자네 덕분일세. 우리 무당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계기를 자네가 만들어 주었다네. 진심으로 고맙워, 마 도사.

-아, 네. 뭐, 네.

사건의 흐름이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와 버렸다.

광천마제 시절의 나와는 완전히 뒤바뀐 흐름이기도 하다.

이 시절의 나는, 마두라 불리며 화산과 제갈 그리고 무당에 쫓기고 있어야 하는데.

마두는커녕 무당의 은인이 되어 버렸다.

그냥 저 찢어 죽일 제갈세진과 운면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여기까지 달려왔을 뿐인데 말이다.

-이제 나서도 되지 않겠나?

-아, 네. 그러시죠.

내 허락이 떨어지고서야 수풀에 몸을 숨겼던 송암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무당의 다른 장로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이어 나와 우리 녀석들까지 수풀을 헤치고 등장했다.

운면은 이미 혼절했다.

덕강과 덕률은 얼굴이 백지장이 된 상태로 무릎을 꿇고 덜덜 떨고 있다.

천하의 제갈세진이라 하여도 어찌 이 상황까지 예측했겠는가?

그 똑똑하던 놈이, 놀라움에 입을 쩍 벌리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하고만 있었다.

"운인 장……. 장문인. 장로님들."

혼절해 쓰러진 운면을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운인이 고개를 뒤로 돌려 다른 장로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오장로와 육장로가 즉시 운면에게 다가가 응급조치를 했다.

무당파로 살려 데려가기 위함으로 보였다.

이를 잠시 지켜본 운인이 다시 몇 걸음 걸어 우리와 합류했다.

제갈세진과 열 걸음의 거리를 둔 상태다.

"장, 장문인. 뭔가 오해가…….

"입, 닫으시게."

"그, 그게 아니라…… 저희는 정말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

"입 닫으라고 했네."

"……."

오!

송암 도장한테 따귀를 아홉 대 맞고 얼굴이 퉁퉁 부어 왔을 때만 해도 좀 우스웠는데, 지금은 아니다.

확실히 무당파의 장문인은 무당파의 장문인이다.

그 위엄이, 그냥 진짜 무지막지하다.

지금껏 우리를 거의 농락하다시피 했던 그 괴물 같던 제갈세진이, 식은땀마저 비 오듯 쏟아 내며 한마디 대꾸조차 하지 못한다.

명령과 같은 말에는 아예 입을 꿰매기라도 한 듯 닫아 버렸다.

이내 제갈세진의 굳게 닫힌 입을 확인한 운인이 이번엔 시선을 나에게로 향했다.

"그대가 현화문의 마악치 도사님이시오?"

"무당의 장문인 앞에서 도사란 호칭은 감당키 어렵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갈세진을 향해 서릿발과 같은 기운을 뿜어 대던 그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를 향해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기운을 풍긴다.

"송암 사조님께 들었소. 하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소. 이미 마 도사께 큰 은혜를 입은 바, 마 도사가 허락만 해 준다면 빈도가 친히 여러분들의 복수를 대신해 드리겠소."

운인이 보기에도 우리 다섯 명이 제갈세진 한 명을 상대하는 게 역부족으로 보였나 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복수는, 내 손으로 해야 제맛 아니겠는가?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 일은 우리가 해결하겠습니다."

"정말…… 이대로 물러나란 말이오?"

"네. 편히 무당산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운인이 주저한다.

그때 송암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가세, 장문인 사손."

"네, 사조님."

고개 숙여 송암에게 답을 한 운인.

그가 다시 제갈세진을 향했다.

뜬금없는 장문인의 사조라는 인물의 등장에, 눈알을 마구 굴리며 상황 파악을 하고 있던 그였다.

그러다 운인의 시선이 닿자 다시금 화들짝 놀라는 그였다.

운인이 아까의 그 위엄 가득한 얼굴로 경고하듯 제갈세진에게 말했다.

"오늘부로! 본 무당과 제갈가와의 교류는 전면 중단함을 무당 장문인의 이름으로 선포한다."

그 말만을 남기고 몸을 휙 하니 돌려 떠나 버렸다.

무당이 모두 장내를 떠나 버린 것이다.

제갈세진은 그들이 자리를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현 상황을 파악하려고, 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열나게 굴리는 모습이었다.

우리?

우리를 안중에 두지 않고 있으니 그리했으리라.

미친놈이다.

내가 놈을 너무 높게 평가했었나 보다.

놈, 곧 죽는다.

내 손에.

쉬이이이이익.

파파파파파팟!

제갈세진이 깊은 고민에 빠진 그때, 천무휘와 금예지가 동시에 몸을 날렸다.

마차의 마부석에 탔던 제갈세가의 흑의인 두 명이다.

제갈세진이 곧바로 반응했다.

검을 뽑아 둘을 제지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있다.

"제천행도!"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제갈세진이 천무휘와 금예지를 막으려 할 때.

내가 순간적으로 이 갑자가 넘는 내공을 모조리 끌어내 검강을 쏘아 버렸다.

기겁을 한 제갈세진은 다급히 검을 회수하여 내 검강을 막기에 급급했다.

그는 서 있는 자세 그대로, 방어세를 취하며 뒤로 열 장이나 밀려났다.

그가 밀려난 자리, 마치 깊게 파인 밭고랑 같은 흔적이 새겨졌다.

그사이, 제갈세가의 흑의인 두 명이 쓰러졌다.

나와 천무휘, 금예지가 품(品) 자의 형세를 취하며 제갈세진을 포위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의제와 한해북은 곧바로 물러섰다.

제갈세진의 검역 밖이다.

우리 셋이 전면에서 싸우고, 의제와 한해북이 지원한다.

-자네…… 자네 방금 그 내공 뭔가?

송암이다.

운인 장문인과 장로들 모두 떠난 듯했지만, 숨어서 우리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당연하지 않은가?

복수하러 왔다가 되레 죽으면 또 얼마나 억울하고 쪽팔리겠나?

사실 그저께 오늘의 계책을 논의할 때, 직접적으로 부탁하려 했다.

그런데 그게 또 슬쩍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때 송암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는데, 송암이 눈치 빠르게 내 말을 알아듣고 이를 이행하는 중이다.

아무튼 송암이 숨어 나를 지켜보다가 기겁한 목소리로 나에게 그런 전음을 보낸 것이다.

-뭐요?

-내공! 자네…… 자네 어떻게 그런 내공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나?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네.

-아직 수양이 부족하신가 보죠.

-이봐, 마 도사. 이게 다 자네 덕분이라지만, 나 이제 화경의 고수야. 그런 내 눈을 속였다고, 자네가.

-에이, 말 좀 곱게 합시다. 속이다니요? 어르신께서 못 보신 걸 왜 제 탓을 하세요.

-휴우, 내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겠군. 아니야. 허허허. 자네는 정말 나를 매번 놀라게 하네. 자네의 진짜 정체가 뭔가?

광천마제 마악치입니다.

-현화문의 작은 도사 마악치입니다. 싸움에 집중해야 하니, 전음 그만 보내세요. 내공만 강하고 아직 수련이 많이 부족해서, 자칫하면 제 목이 날아간다고요.

-알았네. 알았어. 이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고, 힘내시게!

내 현재의 무공 경지는 절정의 끝자락이다.

하지만 내공은 이 갑자다.

초절정 고수들도 보유하지 못한 무지막지한 내공의 양이다.

또 있다.

내 무학의 너비와 무리의 깊이는 이미 웬만한 화경급 고수보다 더 지대하다.

또 있다.

내 신체.

내 몸은 이미 현경의 반열에 올라와 있다.

이게 화경의 고수인 송암이 내 내공을 감지하지 못했고, 또 내 정확한 무공 경지를 파악하지 못한 이유다.

그런 나와 초절정에 오른 천무휘, 그리고 완연한 절정의 경지에 이른 금예지.

거기에 믿을 수 있는 의제와 한해북까지.

광천마제 시절과 지난 회귀, 우리들의 첫사랑을 죽인 복수다.

또 지난 회귀, 나와 내 친우들의 목을 자른 복수다.

제갈세진.

너 오늘 진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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