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60화 (60/245)

60화

마른 나뭇가지를 어설프게 쌓아 만든 움막 같지도 않은 움막.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몸을 구기고 들어가 잠만 잘 수 있을 듯하다.

공터?

풀이 무성하게 자라 이게 공터인지 뭔지 확신하기도 힘들다.

그곳에 역시나 사람 한 명만이 간신히 앉을 수 있는 평평하고 자그만 바위가 있다.

그 작은 바위 위에 낡고 삭고 해어져 구멍이 숭숭 뚫린 거적때기라 생각되는 옷을 입은 그가 있었다.

머리며 몸이며 먼지가 잔뜩 쌓여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사람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몰골이었다.

송암 도장이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자,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던 그가 깊게 감았던 눈을 떴다.

탁기가 가득하고 흐리멍덩하기 짝이 없는 눈동자였다.

십사 년 후에도 저 모습이더니, 십사 년 전인 지금도 저 모습이다.

정말 보는 순간 갑갑함이 치밀어 오르는 인간이다.

그는 우리를 발견했음에도 누군지 묻지 않았다.

천무휘 등은 내가 미리 당부했던 대로 공터에 오른 후 걸음을 멈추었다.

크게 놀란 얼굴을 한 이들이었다.

나 홀로 송암 도장에게 다가갔다.

칼을 찬 내가 성큼성큼 걸어 다가갔음에도 그는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나는 대뜸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리 괴로워하십니까?"

그가 또 대뜸 대답했다.

"역풍역수의 힘을 얻었는데, 그다음이 무엇인지 몰라 괴롭다네."

"몇 가지 약조를 해 주시면 내 역풍역수의 다음이 무엇인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순간!

흐리멍덩했던 노인의 눈에서 무지막지한 힘을 담은 정광이 터져 나왔다.

광마일기에 적힌 그대로다.

내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서라도 답을 듣겠다는 의지와 발악이 엄청난 기운과 함께 그의 몸에서 폭발하였다.

원래의 나라면 이런 대사를 쳐야 했다.

‘진정하시오. 주제도 모르고 덤볐다간, 개처럼 맞아 죽을 테니.’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섣불리 송암을 자극했다간, 개처럼 맞아 죽는 건 우리가 될 테다.

"현화문의 마악치라고 합니다. 함께 산을 오른 이들은 제 친우로 화산 속가 가문의 천무휘와 아미파의 속가제자 금예지, 또 강서와 절강에서 협의를 떨치던 제 의제 곽우적과 친우 한해북이라 합니다."

"알려…… 주시게. 역풍역수의 다음이 무엇인지."

아!

이 노인네 말이다.

무지막지 빠르게 평정심을 찾았다.

광천마제 시절의 협박도, 또 지금 배경을 들먹였던 방어적 경고도, 애초에 그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약조……해 주시겠습니까?"

"약속하겠네. 어서 답을 알려 주시게."

평정심을 찾았지만, 온전히 다 찾은 건 아닌가 보다.

다급해 보였다.

그의 지독한 갈망이 눈에 보였다.

난 그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이젠 깊은 샘물과도 같이 맑아진 눈으로 나를 보던 그가 잠시간 침묵을 이었다.

"휴우, 미안하네. 그래, 그 조건이라는 게 무엇인가?"

이젠 완전히 마음을 안정시킨 것 같다.

"지금 노도사님께서 머무는 이 산에 이름이 있습니까?"

"달리 이름 같은 건 없다네."

"이 산의 이름을 제가 지어도 되겠습니까?"

"나밖에 살지 않는 산이니, 이름을 지어도 불러 줄 사람이 없을 걸세."

"그래도 이름을 붙이고 싶습니다."

"내 기억하겠네."

"광천산(光天山)이라 하겠습니다."

"좋은 이름이구먼, 허허."

"썩은 살을 도려내고, 무당의 정의를 바로 세워 주십시오."

"그게…… 조건인가?"

"그렇습니다."

"음…….

광마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이 부분에서 고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송암은 깊은 눈동자로 나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것처럼 보기만 할 뿐,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입을 연 건 정말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현화문의 마악치라 했나?"

"네."

"그분의 제자인가?"

"제 사부님께서 유 현 자를 쓰십니다. 혹 아십니까?"

송암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린 시절 내가 먼발치에서 뵙고, 몇 달 동안 잠도 못 이룰 정도로 충격과 감동을 받고 또 무한히 존경했던 그분은 현화검존이라 불리셨네? 동명의 다른 문파인가?"

이 양반 정말 오래 살긴 살았네.

"제 태사조이십니다."

"아! 허허. 무량수불. 무량수불."

나를 보는 그의 눈이 또 바뀌었다.

감개무량하다는 말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눈빛이었다.

"썩은 살을 도려내고 무당의 정의를 바로 세워 달라? 허허. 이건 조건이 아니라 나에게 빚을 하나 더 씌우는 일이구나, 허허허."

"약조……하시겠습니까?"

"현화검존을 경외하고 현화문을 동경하였으니, 그 전인(傳人)을 내 어찌 의심하겠는가? 내 욕심 또한 버릴 수 없으니……. 휴우, 자네에게 두 개의 빚을 지게 되었네. 약조……하겠네."

난 그에게 은은한 미소와 함께 물었다.

"준비되셨습니까?"

송암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후 가부좌를 바로잡았다.

"여실지견입니다. 물은 처음부터 위에서 아래로 흘렀고, 바람은 품는 것이 아니라 스치는 것이랍니다."

가부좌를 튼 송암이 깊게 눈을 감았다.

* * *

정확히 칠 일이 걸렸다.

나와 천무휘, 금예지, 의제, 한해북은 칠 일간 호법을 섰다.

우리는 송암이 환골탈태하여 화경의 반열에 오르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나야 그렇다 쳐도, 우리 녀석들에게는 아마 큰 충격이었을 것이고, 또 그것이 훗날 이들의 성장에 많은 도움일 될 터였다.

그렇게 송암은 완전한 화경의 고수가 되어 깊게 감았던 눈을 떴다.

광천산을 오르기 전, 미리 준비해갔던 무당파의 도복(道服)을 내가 건넸다.

거지도 상대 안 할 정도의 끔찍한 몰골이었던 송암 도장이 선풍도골의 멋진 도사로 완벽하게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순양자의 비급 역시 바로 그에게 건넸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비급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그가 비급을 모두 읽은 후에는 내 계획까지 모두 설명해 주었다.

이제 실행에 옮길 시간이었다.

그전에.

"송암 도장님, 혹시 무당면장도 익히셨습니까?"

"물론이네."

"그거 때리면 솜방망이로 맞는 것처럼 부드럽고 그렇지 않습니까?"

"허허, 유(柔)중 강(强)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나? 무당면장이 보기에는 부드러워 보여도, 한 대 맞으면 십팔대 조상까지 찾아 살려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매섭다네, 허허허."

"그거…… 아주 매서운 맛으로 부탁을 좀…….

* * *

호북성 이창 염산.

양자강을 품고 있는 지세가 높고 가파른 산이다.

산길마저 워낙 험하고 교통의 요지도 아니기에, 약초꾼이나 사냥꾼이 아닌 이상은 거의 다니는 사람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렇게 야심한 밤에 이곳을 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곳에 우리 다섯 사람이 깊은 수풀에 몸을 숨기고, 은형술까지 극대로 펼치고 있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송암 도장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군요.

천무휘가 내게 전음을 보냈다.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공동 전음이었다.

-약속을 어길 사람이 아닙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무당에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아 늦는 것이 아닌지 염려할 뿐입니다.

-음, 그럴 수도 있겠지요. 송암 도장이 워낙 옛날 사람이라, 무당파에서 그의 얼굴을 아는 이가 한 명도 없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전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아요. 일백이십 세를 넘게 사시는 분이 계실 줄이라곤 상상도 해 보지 못했거든요.

이때 우리의 대화를 듣던 의제가 끼어들었다.

-우리 만리현에서는 오십 세만 넘어도 장수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육십 세가 되는 환갑잔치는 현청에서 은자까지 주며 축하해 주지 않겠습니까.

-엇! 누군가 옵니다. 여럿…… 송암 도장이시군요.

역시 나보다 천무휘가 먼저 기감을 감지했다.

그리고 곧.

쉬이이이이이이익.

타타타타타탓.

그런데 송암 도장 한 명이 아니다.

같은 모양의 도복.

그러니까 무당파 도사들의 복장을 한 노인네가 여섯이나 더 있다.

그리고 그중 한 명.

양쪽 뺨이 퉁퉁 부어올랐다.

-늦었는가?

-아닙니다, 송암 도장님.

-이 아이들일세. 삼장로 운면을 제외한 우리 무당의 장문인과 나머지 장로 아이들이라네.

우리는 빠르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거창한 예법이나 제대로 된 인사는 나눌 수 없었다.

그리고 장문인 운인 도장.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그였다.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인물이 바로 당대 무당파의 장문인인 운인이었던 것이다.

-제갈세진은……

-말해 두었네. 우리 아이들이 제갈세가 사람들을 건드리진 않을 것이네. 그래도 혹 나나 우리 아이들 도움이 필요하면 주저 없이 말하시게. 제갈제일검이려면 아무리 자네들이 뛰어나다고 해도 결코 쉽지 않을 테니 말이야.

-네, 혹시 위급하게 되면 그때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난 슬쩍 시선을 조금 전 눈인사를 나누었던 장문인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송암이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내게 전음을 보냈다.

-자네 말대로 무당면장에서 매서운 맛만 골라 정확히 아홉 대를 때려 줬네. 사문을 이 꼴로 만든 책임을 물어 혼을 냈더니, 무릎을 꿇고 엉엉 울며 사죄하더군. 이제 우리 무당에 대한 화가 조금은 풀리는가?

-넵. 그간 개고생하며 쌓였던 울분이 조금은 풀리네요, 큭큭. 아이쿠, 죄송합니다, 큭큭큭.

-아닐세. 자네에겐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 오는군.

나와 단둘이 나눈 전음이었다.

마지막 ‘오는군’만 공동 전음으로 전환하여 보낸 송암 도장이었다.

하지만 송암의 전음 후에도 꽤 오랜 시간 적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마 아주 먼 거리의 그들을 미리 감지한 것 같았다.

그렇게 상당한 시간이 흘러, 거의 동시에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당파의 복장을 한 삼장로 운면과 그의 두 제자 덕강, 덕률이었다.

그리고 이 험준한 산을 어떻게 올랐을까 하지만 거침없는 속도로 달려 도착한 한 대의 마차.

마부석에는 흑의를 입은 두 명의 고수가 있었다.

곧 마차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갈세진이다.

제갈취무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숨소리마저 죽이며 그들의 만남을 지켜보았다.

운면은 다급해 보였고, 제갈세진은 여유로운 모습을 가장하고 있었다.

"세진! 어떻게 된 일인가? 우리 무당 영역에서 이렇게 급히 보자고 하면 어쩌자는 말인가?"

"덕강이 숙부님을 뵙습니다."

"덕률이 숙부님을 뵙습니다."

"그래, 자주 보는구나, 하하."

덕강과 덕률.

지난 회귀 때, 제갈세진과 마치 서로를 모르는 듯한 연기를 했었나 보다.

제갈 대협도 아닌 숙부라 호칭한다.

이미 저들의 관계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산삼을 팔아 개방에서 얻은 정보 그대로다.

"제갈세진!"

"어허, 목소리 좀 낮추시게, 운면."

"일을 도대체 어떻게 처리하는 것인가? 순양검과 비급을 모두 도둑맞은 것도 모자라, 아직 놈들을 잡지도 못하고 있다니. 내가 알던 철두철미한 제갈세진이 자네가 맞는가?"

"하하, 그 부분에 대해선 정말 면목이 없네. 그래서 오늘 보자고 한 것 아닌가?"

"이것도 문제야! 자네와 나는 그저 호북 무림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식적으로 몇 번 만나는 것이 전부여야 해.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레 만나자고 하면 어떻게 하는가? 누가 보면 어쩌려고?"

"하하, 참, 내가 언제 자네를 쓸데없이 부른 적이 있나? 나와 이렇게 은밀한 만남을 통해 자네와 무당파에 얼마나 많은 이익을 가져다줬는데? 당대의 무당파 도사들을 보라고. 입은 도복은 비단으로 만들었고, 허리에 찬 검은 죄다 보검이요. 전낭은 언제나 두둑하지 않은가? 이게 다 내 덕분인데, 왜 그리 성을 내시는가?"

"그 때문에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잊었는가? 양화부두의 분쟁에 눈감았네. 한남가의 전쟁도 모른 채 해야 했네. 또! 부림산 혈겁 때는 예순 명이 넘게 죽었음에도 제자 한 명 파견하지 않았어. 어디 그뿐인가? 우리가…….

"그만. 알겠으니 그만하시게. 지금은 그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네."

"무언가? 도대체 왜 날 부른 건가?"

"그들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네."

"그들? 누구를 말하는 건가?"

"이 상황, 내가 자네를 이토록 급박하게 불러낸 이유가 그놈들 말고 또 누가 있겠나?"

"설마…… 천무휘 일당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건가?"

"그렇네.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변용을 하고 도주하던 중이라 하더군."

"……."

"정확히 세 시진 뒤. 이곳에서 다시 뭉쳐 무당파로 갈 계획이라네."

"이곳? 여기서 뭉친다고? 우리 무당파로 가려고?"

"그렇다네."

"만약…… 만약 그들이 비급과 검을 들고 우리 무당파로 가게 되면…… 나와 자네 모두 끝이네."

"그래서 자넬 부른 것 아니겠는가? 하하, 이제 좀 화가 풀리나?"

"미안하군. 잘 불렀네. 그래서 계획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고. 원래 처음 계획대로 비급은 우리가, 검은 자네가."

"우리 무당파에서 내 입지가 더 강화되겠군, 큭큭."

"이건 시작에 불과해. 나와 자네가 이렇게 계속 힘을 합치면, 호남과 강서 귀주, 절강의 이권까지 모두 우리 손아귀에 놓이게 될 걸세. 우리 제갈세가는 오대세가의 수장으로 우뚝 서고, 무당파는 구파의 선두가 될 테야, 하하하!"

"많이들 죽어 나가겠군."

"자네더러 죽이라 하지 않았네. 그저 못 본 척, 눈만 감고 있으면 되네. 자네 사형제들, 장문인과 장로들 눈과 귀까지 가려 주시고 말이야, 하하하."

"휴우, 어쩔 수 없지. 이게 다 우리 무당파를 위한 길인…….

"네 이노오오오오오오오옴!"

무당면장에 맞아 얼굴이 퉁퉁 부은 장문인이 허공으로 신형을 날리며 사자후를 터뜨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