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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59화 (59/245)

59화

<<광마일기>>

(상략)

금 형이 누군지 알고 싶었다.

그녀의 이름만이라도 미치도록 알고 싶었다.

그래서 무당파를 찾아가, 무당의 제자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장문인의 뺨을 내공까지 가득 실어 아홉 대나 후려갈겼다.

이가 우수수 뽑혀 나갔고, 턱뼈가 부스러졌다.

거기에 더해 혼절한 장문인을 강제로 깨우고,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무당파 어린 제자 수십 명의 무공을 전폐시켰다.

하지만 끝내 금 형에 관해서는 한마디 정보도 얻지 못했다.

이름마저도.

무당산을 내려올 때, 다시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쨌거나 금 형의 죽음에 관해선 무당파도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난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다시 무당산을 올랐다.

신법까지 발휘해 홀로 미친 듯 무당의 본산에 올랐다.

장문인의 목을 베고, 무당산에 수백 년 동안 자리 잡은 전각들을 모두 불살라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무당산의 먼 곳, 산을 두세 개 더 넘어갈 법한 위치에서 엄청난 힘의 파동이 느껴졌다.

마치, 하늘로 승천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이무기의 마지막 발악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 기괴한 기감 때문에 나는 조금 전의 분노를 까맣게 잊고, 발걸음을 돌렸다.

정확히 두 개의 산을 넘어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백 세가 넘는 초라한 외양의 노인이 그곳에 있었다.

거지도 살지 않을 것 같은 움막 같지도 않은 움막 하나만 지어 놓고, 정말 오랜 시간 그곳에서 홀로 수련을 이어 온 모습이었다.

정확히 그의 경지가 초절정의 끝자락.

백지장 하나도 남기지 않은, 이미 한 발을 화경의 경지에 담갔지만, 더 진전하지 못한 상태의 노도사였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리 괴로워하시오?"

노도사가 뿌옇게 흐리멍덩한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역풍역수(逆風逆水, 바람을 안고 물결을 거슬러 감)의 힘을 얻었는데, 그다음이 무엇인지 몰라 괴롭다네."

"그런지는 얼마나 되셨소?"

"오십 년이 넘었다네."

미친 노인네고 미친 도사였다.

오십 년 동안 역풍역수의 상태로 있다니!

내 판단은 정확했다.

노인네는 이미 한 발을 화경의 경지에 담고 있다.

다만, 다른 한 발을 옮기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오십 년 동안 홀로 수련에 매진해 왔던 것이다.

어찌 미쳤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순간 금 형과 무당파에 관한 일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노인이 불쌍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다.

아무튼 뭔가 하지 않고 그냥 가버리면 똥을 싸고 뒤를 닦지 않은 찝찝함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무당파 도사요?"

"그렇네."

"이곳에 자리를 튼 지는 얼마나 됐소?"

"오십 년이라고 말했네."

"항렬이 어떻게 되시오?"

"송 자 배고 명은 암 자를 쓰네."

"송암 도사셨군요."

"……."

"올해 연세가 어찌 되시오?"

"일백 세까지 센 후에는 세지 않았네. 그게 삼십 년도 넘었을 테니, 내가 참 오래도 살았군."

"한 가지 약조를 해 주시면 내 역풍역수의 다음이 무엇인지 알려 주겠소."

순간 흐리멍덩했던 노인의 눈에서 무지막지한 힘을 담은 정광이 터져 나왔다.

내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서라도 답을 듣겠다는 의지와 발악처럼 보였다.

"진정하시오. 주제도 모르고 덤볐다간, 개처럼 맞아 죽을 테니."

은은한 힘을 보여 줬다.

그러자 곧바로 차분해지는 노도사였다.

"약속하겠소?"

"약속! 약속하겠네. 어서 답을 알려 주시게."

노인네가 미친 걸까?

정상일까?

"당장 무당 본산으로 가 현 장문인의 목을 베어 내 앞에 가져오시오. 그러면 그대가 원하는 답을 주겠소."

노인네는 즉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현 장문인의 도명이 뭔지 아시는가?"

"운인이라는 도명을 쓰더군. 내게 밉보인 게 좀 있어, 살짝 손 좀 봐주고 오는 길이오."

"흐음, 제자뻘도 아니고 사손뻘이군, 허허."

"그래서 하겠다는 거요? 말겠다는 거요?"

미친 노인네가 웃었다.

미쳤는데 멀쩡해 보였다.

"못 하겠네. 내 욕심을 채우고자 그 어리디어린 것의 목을 어찌 베겠나?"

"괴롭지 않소?"

"괴롭네."

"힘들지 않소?"

"힘드네."

"곧 죽을 것도 알고 있소?"

"내 명이 다한 것도 진즉 알고 있다네."

"죽어서 눈도 감지 못할 텐데, 억울해서."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허허."

"이제 정신이 좀 돌아오셨나 보오."

"고맙네."

"이 산 이름이 뭐요?"

"달리 이름 같은 건 없다네."

"그럼 산 이름을 내가 지어도 괜찮겠소?"

"나밖에 살지 않는 산이니, 이름을 지어도 불러 줄 사람이 없을 걸세."

"그래도 이름을 붙이고 싶소."

"내 기억하겠네."

"광천산(光天山)이라 하겠소."

"좋은 이름이구먼, 허허."

"이 산을 절대 벗어나지 마시오. 무슨 일이 생겨도 말이오."

"그게…… 조건인가?"

"그렇소."

"약속……하겠네."

"여실지견(如實知見,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함)이오. 물은 처음부터 위에서 아래로 흘렀고, 바람은 품는 것이 아니라 스치는 것이라오."

역풍역수에 대한 답이었다.

이건 내 자랑이 아니라, 정말 나 정도 되니까 이리 쉽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같은 화경의 고수라 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다.

나는 급이 다르기에 가능한 것이다.

내 답을 들은 송암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얼굴을 했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온몸을 떨어댔다.

꽤 오랜 시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송암이었다.

그렇게 한참이란 시간이 지나 그가 눈을 감았다.

아마 며칠 걸릴 것이다.

환골탈태를 모두 마치고 무아지경에서 벗어나려면 말이다.

그때는 진짜 화경의 고수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살아 있다면.

이럴 땐 누군가 옆에서 호법을 서 줘야 한다.

작은 산짐승들이라면 몰라도 멧돼지나 늑대 같은 것이 덤비면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내가 미쳤다고 무당파 노인네의 호법을 며칠이나 서 주겠는가?

이미 쓸데없는 짓거리까지 충분히 했는데 말이다.

사실, 이 노인네를 돕고 곧바로 후회했다.

그래서 무아지경에 빠진 노인네를 보며, 죽일까 말까 잠깐 망설이기도 했다.

그냥 갔다.

무아지경에 빠진 것만 보고, 즉시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났지만, 무당파의 송암이란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때 죽었나?

아니면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인가?

애들 좀 시켜서 무당파 감시 좀 하라 했었는데, 무당파 놈들도 송암이란 전전대의 도사는 아예 알지를 못한다고 했다.

(하략)

* * *

불산이 있는 광동을 벗어나 막 호남의 경계에 진입할 때였다.

"죄송합니다."

딱 이 말만 했다.

수룡검 천무휘, 이 자식!

이 녀석이 이 말만 하더니, 갑자기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까지 감았다.

곧이어 녀석의 몸 주위로 신비로운 기운이 휘감기듯 흐르기 시작했다.

어디서?

도대체 어디서 무슨 깨달음을 얻었기에?

우리는 급히 가던 길을 멈추어야 했다.

제갈세가의 눈을 피해 움직이느라, 다행히 인적이 전혀 없는 산길이었다.

그곳에서 무려 사흘 동안 녀석의 호법을 서 줘야 했다.

부러워 미치는 줄 알았다.

다 마음에 들지만, 녀석의 괴물 같은 천재성만큼은 미치도록 부러웠다.

아! 무아지경에 빠져 있을 때 슬쩍 발로 한 대 차 버릴까?

수백 번 고민했지만, 그래도 참았다.

그거 하나 빼면 다 마음에 드는 녀석 아니겠는가?

아! 잘생긴 얼굴도 좀, 어험, 뭐, 왜?

우리는 이미 불산에 있는 안가에서 삼 개월간의 지옥 수련을 마쳤다.

금예지는 절정 초입에서 이제 나름 완연하다 할 수 있는 절정 고수가 됐다.

고수 초입이었던 의제는 고수의 끝자락까지 단숨에 올라섰다.

한해북도 괄목상대할 성장을 보였다.

그가 드디어 일류의 한계를 벗어 버리고, 고수의 벽을 깬 것이다.

나?

나는…… 똑같다.

그래서 천무휘 녀석이 더 부러웠다.

우리는 천무휘가 깨자마자 강서 남창 만리현으로 움직였다.

의제의 우각당이 있는 그곳이다.

오늘부로 천무휘는 초절정 고수다.

* * *

"노 총관, 뒷정리 잘하고."

"네, 루주님. 그럼 편히 주무십시오."

해가 뜨기 직전에서야 만향루의 시끌벅적했던 영업이 종료됐다.

지친 얼굴의 루주는 총관에게 뒷정리를 맡긴 후 자신의 처소로 들어섰다.

중년의 그녀는 침상에 몸을 뉘었지만, 쉬이 잠들지 못했다.

생각이 많은 모양이었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기루도 운영해야 하고, 하오문의 일도 처리해야 할 테니 말이다.

월향, 그녀가 바로 남창 만리현 하오문 지부의 지부장이다.

"쉬잇, 소리 내지 마시오. 나요, 곽우적."

의제가 손으로 월향의 입을 막고, 아혈까지 짚었기 때문에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녀는 놀란 눈을 뜨는가 싶더니, 이내 곽우적과 우리를 발견하고는 빠르게 평정심을 찾는 듯했다.

"손을 떼겠소."

곽우적이 입에서 손을 떼고 점혈을 풀자 그녀가 곧바로 물었다.

"여긴…… 여긴 어떻게? 제갈세가에 쫓기고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이미 알고 있구려."

"알다마다요. 지금 우리 하오문은 물론 개방에서까지 여러분들을 찾느라 난리에요. 제갈세가에서 엄청난 현상금까지 걸었어요."

"월향 루주, 보여 줄 것이 있소."

루주의 방에 있는 탁자로 자리를 옮겼다.

금예지가 탁자 위로 순양자의 비급을 꺼내어 올려놓았다.

월향은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빠르게 비급을 읽기 시작했다.

정확히 마지막 부분, 순양자가 제갈세가의 진법에 갇혔을 때부터의 기록이다.

그녀가 기록의 마지막 부분을 모두 읽었을 때는, 이미 바깥이 환하게 밝아진 아침이었다.

"이…… 이거, 진본이군요."

"맞소, 월향 루주, 아니. 월향 지부장."

"이 중요한 걸 어찌 저에게…….

의제가 눈에 힘을 주어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그대밖에 없소. 도와주시오."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떨려왔다.

하지만 그리 길지 않았다.

"하오문의 힘이 필요한 것이군요."

"그렇소."

"하지만 저는 말단에 불과한지라,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도와주시겠다는 말이군요, 월향 지부장."

"곽 당주님이 이곳에 우각당을 세운 후부터 이곳 거리가 얼마나 변했는지 아세요? 기녀들은 물론, 민초들 모두가 곽 당주님께 은혜를 입었다 생각하고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도와주겠다는 말이군요?"

"항시 곽 당주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꼭 은혜를 갚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와주시겠다는……?"

툭툭.

내가 의제의 팔을 살짝 쳤다.

그리고 시선을 월향의 손 쪽으로 향했다.

의제를 향해 눈빛만큼은 ‘결초보은’을 강렬하게 표하면서도, 오른손으로는 엄지와 검지, 중지를 사정없이 비벼 대고 있었다.

이를 본 의제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얼…… 얼마요?"

"죄송해요, 곽 당주님. 저도 말단에 불과한지라, 공짜로 해 드릴 순 없어요.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최대 폭으로 깎아 드릴게요."

"휴우, 고맙소, 월향 지부장. 그래서 얼마면 되겠소?"

"어떤 일을 처리해 드리길 원하시는데요?"

"정보를…… 흘려 주시오."

"오십 냥."

"은자……?"

"에이, 우리 당주님 안 보던 사이 농이 많이 느셨네요. 상대는 제갈세가예요."

"금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반값에 해 드린다고 했죠? 스물다섯 냥입니다. 그 정보가 진짜건 가짜건, 그것이 제갈세가의 문턱을 넘을 때는 진짜 정보가 되어 있을 겁니다."

"스물다섯 냥…… 휴우. 하루만 시간을 주시오."

우각당 재산의 절반 이상을 하루 만에 엄청난 헐값에 팔았다.

우리가 상대할 적이 제갈세가여서 같은 정파 소속인 개방을 제쳐 두고 하오문을 찾았는데, 역시 비싸다.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 * *

강서 남창을 떠난 후 우리는 곧장 호북으로 넘어갔다.

무당산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당 본산으로 가지 않았다.

사흘이나 길을 우회해, 무당산의 뒤쪽으로 향했다.

수많은 산이 있지만, 우리가 찾는 산은 훗날 광천산이라 이름 불릴 곳이었다.

물론 훗날 세인들도 모를 이름이지만 말이다.

광마일기에 그 위치가 정확히 기록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섯 개의 산을 수색했지만, 내가 원하는 곳을 찾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열흘.

여섯 번째 산을 수색하기 위해 오를 때였다.

"무언가 기감에 잡힙니다, 마 형."

아!

우리 천무휘 말이다.

초절정에 오르더니, 기감도 나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상승해 버렸다.

부럽다.

내공은 여전히 내가 몇 배나 압도적인데, 그래도 녀석의 기감을 따라잡지 못한다.

진짜 진짜 부러워 죽겠다.

물론, 부러우면 지는 것이기에 내색하지 않았다.

"앞장서시지요, 천 형."

"네, 마 형."

아무렇지도 않은 척, 녀석의 뒤를 따라야 했다.

그렇게 반 시진을 조금 넘게 산을 올랐고, 드디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무당파에서조차 잊혀진 무당파의 도사.

송암 도장이 광마일기에 묘사된 그 모습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

이제 용을 승천시킬 시간이다.

물론, 이번엔 다른 조건을 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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