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55화 (55/245)

55화

"금 소저께서는 무당파로 가던 중이었군요?"

"네, 맞아요. 마 도사님만큼 상세히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순양검이 무당파 순양자의 검이란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 검을 무당파에 전하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는데, 오라버니들을 발견하게 되었죠."

금예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답한 천무휘가 시선을 내게로 향했다.

"일전에 제갈취무에 관한 조사를 하신 것이…… 모두 이 일을 염두에 두셨던 거군요, 마 형."

나를 보는 천무휘의 눈에 무한한 존경과 감동이 들어차 있다.

천무휘만 그런 게 아니다.

의제와 한해북까지 같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무슨……?"

금예지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자 곧바로 천무휘가 설명을 해주었다.

"마 형의 신통력이 범인이 상상하는 수준을 한참 전에 넘어섰습니다. 무공도 이루 말할 수 없이 고강하고요. 마 형께서 신통력으로 이미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순양자 도사님의 비동, 그곳을 지키던 자가 혹시 제갈취무란 자 아닙니까? 한 손에는 검을 한 손에는 조를 쓰는 초절정 고수요."

"아…… 그것까지는…… 검을 들고 있는 모습만 봤어요."

"훗, 그렇겠죠. 마 형께서 이미 그것까지 예견하셨습니다. 검을 주로 쓰되, 급작스럽게 조를 꺼내어 엄습한다고요. 혹시 모르니 그자를 만나 상대하게 된다면 금 소저도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아, 네. 네. 꼭 그럴게요."

천무휘 이 녀석.

예쁘다 예쁘다 하니, 이제 내 얼굴에 금칠도 할 줄 아는군.

큭큭큭.

나를 보는 금예지의 눈에 더더욱 짙은 이채가 감돌았다.

"마 형, 그럼 우리는 금 소저를 호위하며 무당파로 가면 되는 것일까요?"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무한한 절대적 신뢰가 그들의 눈에 담겨 있다.

"등하불명(燈下不明), 무주공산(無主空山)."

물 들어온 김에 노 저으라고, 이때다 싶어서 평소 쓰지 않던 사자성어까지 꺼내어 들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 뜻을 모른다.

천무휘 이 녀석이 내 말뜻을 알아들을 줄 알았더니, 멍한 얼굴로 눈동자만 굴리고 있다.

의제는 당연히 모르고.

금예지는 그저 순진무구한 얼굴만 하고 있다.

아!

뜻풀이도 해 줘야겠…… 어?

한해북은 의외인데?

"적들이 모두 금 소저를 쫓으러 나섰으니 순양자의 비동은 무주공산, 그러니까 지키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아! 맞소, 한 형."

"또 등하불명은, 우리가 차마 그들의 본진에 잠입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뜻이고요."

"오! 한 형, 정확하오. 금 소저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좀 더 많은 눈으로 이를 확인하고 무당파에 전한다면 더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지금은 어디를 가도 적들이 사방에 깔렸을 테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순양자의 비동으로 이동했다.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내 예측은 정확했다.

순양자의 비동으로 가는 길, 우리를 막는 그 어떤 적도 만나지 않고 순탄히 움직일 수 있었다.

모두가 다시금 나에게 감탄과 존경의 시선을 보내는 순간이었다.

* * *

-모두 은형술을 극대로 펼치세요. 바로 저 앞이에요.

도착하였다.

금예지의 말에 우리는 은형술을 극대로 펼쳐 움직였다.

순양자의 비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짙은 수풀 속에 몸을 숨겼다.

-정말 적들이 몇 명 없네요. 대단해요, 마 도사님.

-하하, 별거 아닙니다, 금 소저. 엇, 저기 마차가 오는데요? 금 소저가 말했던 마차가 맞나요?

-네, 맞아요. 저 마차에요.

우리는 시선을 마차에 집중했다.

곧 마차가 도착했고, 그 문이 열렸다.

금예지가 묘사했던 딱 그 인물이다.

한 손에 백우선을 들고 허리에는 검을 찬 사내.

삼국지의 제갈량이 환생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그 묘사와 닮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군요.

천무휘였다.

의제나 한해북에게는 아직 무리지만, 절정의 반열에 오른 나나 천무휘, 금예지는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동시 전음이 가능하다.

천무휘가 우리 네 사람에게 동시에 전음을 보내 마차에서 내린 인물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현검공명(玄劍孔明) 제갈세진. 제갈세가의 삼장로입니다. 제갈세가는 현 제갈세가의 가주를 포함 총 두 명의 초절정 고수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마 형 덕분에 제갈취무의 존재를 확인했으니, 이젠 셋이겠군요.

천무휘가 시선을 제갈세진에게 고정한 상태로 전음을 이었다.

-별호에서 드러나듯, 그는 어려서부터 문과 무에 천재적 자질을 타고났다고 합니다. 현 가주인 대천검(大天劍) 제갈세무 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가졌기에 후계를 두고 당시 제갈세가의 원로들 사이 다툼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갈세진이 후계 싸움에서 스스로 물러났고, 현 세가주를 추대하였으며, 이후에도 줄곧 세가에 충성한다 알려졌습니다.

-초절정 고수가 확실하오?

내가 물었다.

-네. 제갈세무 세가주보다 한 수 위의 고수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좆 됐다.

초절정 고수는 제갈취무 한 명인 줄 알았다.

그래서 여기에 오자고 한 거다.

근데, 제갈취무보다 더 강한 초절정 고수가 이곳에 있다.

걸리면 뒈진다는 소리다.

얼른 자리를 떠야겠다.

난 급히 이 상황을 모두 광마일기에 기록했다.

이런 나의 특이 행동에 금예지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머지 세 녀석은 이미 적응이 된 것이다.

어쨌거나 난 빠르게 광마일기를 적고, 순양자의 비동까지 눈에 재차 담은 후 동시 전음을 보냈다.

-서둘러 자리를 피해야겠습니다.

넷이 동시에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내가 선두다.

그렇게 은형술을 극대로 펼쳐 왔던 길을 되돌아 가려…… 아!

걸렸다.

제갈세진이다.

* * *

난 누구?

여긴 또 어디?

광마일기를 읽었다.

아!

뭐야?

왜?

어떻게 죽었는데?

설마, 제갈세진한테 걸린 건가?

그 가능성 외에는 없다.

결국 제갈세진한테 죽었다는 소린데.

나는 빠르게 몸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없다.

문신이 없다.

깨끗하게 당했다는 소리다.

휴우.

녀석들, 그렇게 무한한 절대적 신뢰를 나에게 보냈었는데.

아마 죽으면서 내 욕 좀 했겠다.

많이 미안하군.

* * *

구산사괴는 이번에도 오지 않았다.

내가 간사한 건가?

아니면 열아홉 번의 회귀를 거듭하며 착해졌나?

아니다.

난 원래 순진하고 착한 도사다.

큭큭큭.

아무튼 구산사괴가 오지 않아 마음이 뿌듯했다.

기뻤다.

나도 모르게 녀석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무얼 하고 사는지는 모르지만, 부디 착하게 살고 있으라 기도까지 했다.

* * *

절강 항주에 갔고, 다시 귀정사를 갔고, 또 남창 만리현의 정도 문파들을 쓸어버렸다.

위산으로 오며, 삼 년이란 시간 동안 정말 많이 고심했다.

제갈세가의 초절정 고수 셋.

그중 둘이 위산에 와 있다.

제갈취무는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삼장로 제갈세진은 어렵나 보다.

문신을 새길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당했다.

우리가 모두 합심해서 덤벼도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삼 년이나 고민했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원래 계획대로 가면 된다.

괜히 순양자 비동에 갔다가 제갈세진에게 걸려 죽은 것이다.

제갈세진만 만나지 않으면 된다.

우리는 빠르게 위산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전생보다 더 지독한 수련에 돌입했다.

한 달이 지나 우리 넷은 첫사랑에 빠졌다.

그녀와 함께 도주했다.

사흘째 새벽, 위산의 끝자락에 위치한 주인 없는 오두막에서 한 시진 동안 수면을 취했다.

이곳만 벗어나면 이제 위산을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그렇게 막 오두막을 떠나려 할 때.

그들이 찾아왔다.

제갈취무와 흑의를 입어 신분을 위장한 일백 명의 제갈세가 고수들.

말을 주고받을 필요는 없었다.

"제갈세가의 개들아! 나 마악치의 검을 받아라!"

순양검이자 광천검을 들고 몸을 날렸다.

제갈취무를 향해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그때!

파파파파파파파팟!

제갈취무의 여덟 그림자가 갑작스레 튀어나왔다.

"천 형!"

"넵!"

내 인영이 두 개가 되었다.

내 바로 뒤를 따르던 천무휘가 곧바로 자신의 검을 휘둘러 여덟 그림자 중 넷을 일거에 제거했다.

당황한 제갈취무.

더 당황한 그림자와 제갈세가 고수들.

"죽어라! 제갈세가의 개잡종들아!"

아! 이럴 땐 역시 의제의 거침없는 입담이 사기 충전에 큰 도움이 된다.

의제가 자신의 대도를 휘두르며 거침없이 적들의 중심으로 몸을 날렸다.

곧바로 한해북과 금예지가 뒤를 따랐다.

나는 제갈취무를 상대했고, 천무휘가 몇 번의 공방도 오가지 않고 남은 그림자 넷을 제거한 후 합류하였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쾅쾅쾅!

싸움이 길어져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순양자의 비동으로부터 이틀거리나 떨어진 곳이라 하지만 이들이 이곳까지 추격했다는 것은 이미 제갈세진에게 보고가 됐다는 뜻이다.

난 이 갑자가 넘는 내공을 마구잡이로 뿌려 댔다.

제갈취무가 초절정의 고수라 하나, 그의 내공은 일 갑자에도 미치지 못했다.

내가 내공으로 압도하고, 천무휘의 천재성이 그의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잡졸들을 반 이상 제거한 후 금예지까지 합류하였다.

싸움에 임한 그녀는 전사였다.

그냥 한마디로 멋진 여전사가 바로 그녀다.

쑥스러워하고 어설펐으며 귀여웠던 그녀는 없다.

절정 초입이지만, 그 기세만큼은 나와 천무휘를 압도할 정도였다.

그렇게 나와 천무휘, 금예지는 제갈취무를 상대로……

"조심하시오!"

제갈취무가 갑작스레 독수리 발톱 모양의 조를 꺼내 들어 금예지의 가슴을 향했다.

비장의 수며, 마지막 발악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미 들었기에 금예지는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간발의 차이기는 했지만 피할 수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금예지가 제갈취무의 조를 피함과 동시.

나와 천무휘가 마지막 힘을 모두 끌어내 제갈취무를 향해 검강을 쏟아부었다.

그것이 제갈취무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우리가……. 해냈다!

이겼다.

"헉헉헉! 헉헉! 다들 힘들겠지만,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진짜 마지막 내공까지 쥐어짜 싸웠기에 나는 걸을 힘도 없었다.

다들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움직여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위산을 벗어날 수 있었다.

* * *

광마일기에 적힌 거리와 기간은 정확했다.

위산에서 무당파까지 정확히 열흘이 걸린다.

위산을 벗어난 후 우리는 단 한 차례도 적들을 만나지 않았다.

그 어떤 위험도 없었다.

그래도 방심하지 않았다.

깜깜한 밤에만 움직였고, 관도가 아닌 야산을 타고 움직였다.

그렇게 칠 일.

이미 우리는 무당파의 영역 깊숙한 곳으로 도착했다.

이곳이라면, 아무리 천하의 제갈세가라 해도 함부로 소란을 일으킬 수 없으리라.

더군다나 우리에겐 화산파에서 본산의 제자보다 더 팍팍 밀어주는 수룡검 천무휘가 있다.

금예지가 아무리 따돌림을 당한다고 하여도 엄연한 아미파의 제자다.

무당파의 영역 한가운데, 이곳에서 이 둘을 어쩔 수는 없을 것이다.

"객잔…… 이젠 객잔에서 머물러도 될 것 같습니다."

기력이 모두 빠진 내 목소리.

목소리만 그런 게 아니다.

몰골도 말이 아니다.

한창 예뻐야 할 나이의 금예지도 상거지 꼴이었다.

뭐, 그래도 예쁘지만.

아무튼 힘없는 내 목소리에 다들 대꾸할 기력도 없었는지, 연거푸 고개만 마구 끄덕여 댔다.

위산에서 사흘, 그리고 다시 칠 일의 도주.

열흘 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따뜻한 물로 씻고, 지붕 아래의 포근한 침상에서 잘 수 있게 된 것이다.

* * *

다음 날 아침.

쾅쾅쾅.

여기저기서 객잔 객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아악!"

"놀라지 마십시오. 무당파에서 왔습니다. 천천히 객잔을 빠져나가십시오."

"어머, 밖에 난리 났나 봐요. 우리도 어서 나가요."

"무당파 도사님들이라고 하는군. 얼른 도사님 말에 따르자고."

난 내 방 침상에 앉아 두 눈을 감고 밖의 상황을 주시했다.

소란은 곧 잠잠해졌다.

우리를 제외한 객잔의 손님들이 모두 밖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곧, 금예지와 우리 녀석들이 내 방으로 찾아왔다.

어제 목간도 했겠다, 모두 말끔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첫사랑.

아!

예쁘다.

어설픈 남장을 모두 벗어 버리고, 단출한 무복 차림이다.

근데 예쁘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정도로 예쁘다.

이들을 이끌어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말이 안 나오네.

하하하하.

그냥 웃음만 계속 나온다.

간신히 웃음을 삼키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입을 열었다.

"나가시죠."

우리는 그렇게 당당하게 걸어 객잔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아!

뭐야?

무당파 사람들만 있어야 하는데?

왜?

도대체 왜?

그들 사이에 제갈세가 사람들이 끼어 있냐고!

아무래도 뭔가 크게 엿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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