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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54화 (54/245)

54화

"아홉 살 때 어머니가 역병으로 돌아가셨어요. 전 고아가 됐고, 홀로 아미산을 올라갔어요. 굶어 죽지 않으려면 어머니가 하던 일을 제가 계속해야 했거든요."

우리 넷은 동시에 눈물을 폭포수처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억지로, 간신히 참아 왔던 눈물이, 둑이 무너진 것처럼 일시에 쏟아져 나왔다.

"괜, 괜찮으세요?"

이에 당황한 건 금예지였다.

놀란 얼굴로 우리를 향해 물었다.

우리는 폭포수 눈물을 미친 듯 쏟아내고 또 입술을 꽉 깨물며 역시나 동시에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의 동료가 되고 싶어, 친구가 되고 싶어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을 생각인 것이다.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었어요. 아홉 살밖에 되지 않았던 제가, 수레를 끌고 아미산을 오르고, 또 인분을 한 통 가득 담아 다시 산을 내려오는…… 정말 괜찮으신 거죠? 이야기 그만할까요?"

우리는 폭포수 눈물을 마구 흘리며, 고개를 마구 가로저었다.

"제일 힘들었던 건 역시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었어요. 어머니께서는 매일 그 인분을 다섯 통이나 가득 채워 산을 내려오셨거든요.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에, 매일 펑펑 울며 수레를 끌고 아미산을 오르고 내려왔죠."

그녀가 회상에 잠긴 듯,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을 저희 사부님께서 보셨나 봐요. 사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를 제자로 받아 주셨죠. 본산 제자는 아니어도, 평생 인분을 퍼 나를 팔자였던 제가 아미파의 제자가 된 게 어디에요? 정말 하늘을 날 것처럼 기뻤어요. 사부님께 너무 감사하고요."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민간에 비한다면 무림은 그나마 매우 공평한 세상이다.

나와 의제가 의형제를 맺을 때 그랬듯, 힘센 놈이 형이 되는 게 아니겠는가?

뭐, 일단 타고난 무재나 배경 같은 것은 둘째치자.

그런 것을 떠난다면, 노력한 만큼 인정받는 곳이 무림이란 세상이다.

이는 남녀의 차별이 매우 심한 민간과도 그 속성을 달리한다.

백 년이 지나고, 천 년이 지났을 때의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작금의 세상은 남존여비가 뚜렷하고, 이것이 당연한 일로 치부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무림은 다르다.

민간에 비한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남녀의 평등이 강조되고, 균등한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민간에 비한다면 말이다.

분명 무림에서도 남녀의 차별은 존재한다.

시작부터 다르다.

이차성징을 통해 남녀의 근력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여자들에게는 시작부터 불리한 셈이다.

또, 이를 극복해 고수가 됐다고 생각해 보자.

비슷한 경지의 남자와 여자가 목숨을 건 싸움을 할 경우.

정말 한 끗 차이로 목숨이 오락가락할 때.

이 남자 고수가 옷을 훌러덩 다 벗어버리고, 그것을 마구 흔들며 여고수에 달려든다고 생각해 보자.

아!

이건 남자인 내가 생각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여고수는 어떻겠는가?

평정심을 유지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어찌 불리한 싸움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민간에 비해 나은 것이지, 무림이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남녀가 평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극복하고 정상에 우뚝 선 문파가 바로 아미파다.

구바일방과 오대세가의 수장들이 모두 남자들이라지만, 아미파는 수장부터 문도까지 모두 여자다.

중소방파는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문파에서 아미파의 ‘아’ 자만 들어도 허리를 부러질 듯 숙인다.

같은 구바일방과 오대세가라 해도, 아미파는 그 격을 달리한다.

오대세가에서도 사천 당가의 악명이 높고, 다른 세가에서 이들을 두려워하듯, 아미파가 그렇다.

무림의 태산북두는 소림이라 하고, 제일검을 논할 때면 무당과 화산을 빼먹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매서운 검을 말할 때면 언제나 아미파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 무림의 당당한 한자리를 차지한 곳이 바로 그녀들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토록 대단한 아미파에서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한단 말인가!

출신을 따져 제자를 가리고, 또 제자로 받은 후에도 따돌림을 시켰다니!

그녀가 절정의 고수가 됐음에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가 그것에 있었으리라.

만약, 광천마제 시절 오두막에서 그녀가 죽지 않았다면, 낭중지추라 하여 언젠간 그녀의 명성이 천하에 진동했을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광천마제 시절 내가 천하제일인이 된 후 그녀를 그렇게 간절히 찾았음에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아미파에서 숨겼거나, 아니면 애초에 그녀의 죽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그녀의 가슴 아픈 사연이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듯했다.

"사저가 시킨 대정화를 찾기 위해 위산의 이곳저곳을 떠돌다 너무 지쳐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을 내려갔어요. 그러다 우연히 그것을 보았어요. 위산의 사람 잡아먹는 귀신들이 내려오지 못하게 막는 제사요."

나도 보았다.

광천마제 시절, 나와 의제 모두 그 제사를 보았다고 광마일기에 기록되었다.

그 당시 우리가 화산파의 추격을 피해 위산에 은거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삼 년 전 이곳 위산에서 약초꾼과 사냥꾼 스무 명가량이 죽었다고 해요. 흉수를 찾기 위해 무림과 관에서 모두 사람을 보내 조사를 했는데, 그 사람들까지 일부 죽었어요. 결국 도사님과 술사들까지 불렀고, 그 혈겁의 이유가 사람 잡아먹는 귀신의 소행인 것이 밝혀졌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로 위산 일대의 마을 사람들은 위산을 오르지 않았겠군요."

"맞아요. 매달 고절한 도사와 술사들을 모셔와 제사를 지낼 뿐, 감히 그 누구도 위산에 오를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제갈세가에서 그 도사와 술사들을 고용하는 비용을 댔나요?"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그래서 위산 인근에 사는 마을 사람들이 제갈세가를 엄청나게 칭찬하더라고요."

제갈세가 이 새끼들.

도대체 무슨 꿍꿍인 거야?

"전 의심이 들었어요.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다고? 그래서 사저의 명령을 잠시 잊고, 사람이 죽어났다던 산을 위주로 탐색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그들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흉수다.

이 모든 일의 원흉.

누굴까?

제갈세가가 맞을까?

금예지의 말이 이어졌다.

여전히 어설픈 남장 여인의 모습으로 심각한 표정까지 지으며 말을 잇는 그녀가 너무 예쁘고 귀여워 깨물어 주고 싶지만, 집중해야 했다.

"수십 명에 달하는 흑의인들과 예닐곱 명의 진법가와 술사들이 동굴 하나를 두고 몰려 있었어요. 그 생활한 흔적을 보니 꽤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물며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죠."

"삼 년이겠군요. 위산 아랫마을에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에 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할 무렵부터요."

"그럴 수도 있지만, 그들이 정확히 그곳에 언제부터 머물렀는지는 모르겠어요. 꽤 오랜 시간인 것은 분명하지만요."

"그다음은요? 어떻게 했습니까?"

"며칠 그곳에 은신하며 그들을 관찰했어요. 흑의 무인들은 주변을 경계하고, 예닐곱의 진법가와 술사들이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아마 제 짐작이 맞다면, 어떤 강력한 진법을 해진 하려는 것처럼 보였어요."

"진법에 관해 천하제일이라는 제갈세가에서 삼 년이란 시간 동안 해진 하지 못한 진법이라면, 그 진법을 설치한 사람 역시 무지막지한 사람이었겠네요."

"마 도사님…….

그녀의 눈이 나에게 고정되었다.

매우 놀란 눈을 한 그녀였다.

"마 도사님은 확신하고 계시는군요. 그들이 제갈세가 사람이라는 것을요."

난 대꾸 대신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휴우, 아직 다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 마 도사님께서는 벌써 일을 꿰뚫고 계시네요. 조금 많이 놀랐습니다. 제 머리가 나쁜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헤헤."

그녀가 민망하면서도 수줍다는 듯 웃는다.

예쁘다.

내 머리가 좋아서 추론한 게 아니라는 것을, 광마일기와 목숨을 한 번 잃어 얻은 단서로 추론한 사실이라는 것을.

그녀에게는 비밀로 하겠다.

그녀 앞에선 좀 똑똑해 보이고 싶다.

뭐, 말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사흘에 한 번꼴로 고급 마차가 그곳을 찾아왔어요. 그 마차에서 내리는 인물. 꼭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처럼, 한 손에는 언제나 백우선(白羽扇, 새의 흰 깃으로 만든 부채)을 들고 있었어요. 허리에 검을 찬 것만 빼면 글로 읽었던 삼국지의 제갈공명과 비슷했고요. 무엇보다…….

"……."

"마차에 붙여 놨던 검은색 천이 한번 떨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하나의 표식을 보았어요. 정확히 제갈세가의 표식이었죠."

나를 제외한 세 녀석의 얼굴에 놀라움이 일었다.

근심과 걱정이 섞인 놀라움이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이 누군지 머리로 혹은 직감으로 깨친 것이다.

"어떻게 우리를 찾게 된 것이죠?"

"그제였어요. 그들이 드디어 진법을 해진했고, 동굴에서 두 개의 물건을 꺼냈어요. 아니, 세 가지 물건이요."

"……."

"녹슨 철전 몇 닢. 검 한 자루. 그리고 낡아 삭은 비급이었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선을 일제히 그녀의 등에 매달린 천에 감싼 길쭉한 물건으로 향했다.

"금 소저의 등에 매달린 검이 그것이군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맞아요. 전 그들의 행동이 수상쩍어 밤에 몰래 잠입했어요. 경계를 서던 무인들의 마혈과 아혈을 제압한 후, 물건을 확인했죠. 그러다…….

그녀의 말을 내가 끊었다.

"검, 검을 보여 주시겠소?"

그녀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등에 매어 있던 검을 풀어 우리에게 건넸다.

순양검이다.

"일백오십 년 전 이곳에서 실종됐던 순양자의 순양검이군요. 무당파 것이고요."

뒷말이 중요하다.

순양검의 소유주는 일백오십 년이 지났다 해도 여전히 무당파다.

그것을 제갈세가에서 비밀리에 갈취하려던 것이다.

물론, 검보다는 비급이 더 탐났겠지.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난, 사실 광천마제 시절 열라게 조사해서 기억하던 걸 광마일기에 기록해놓은 것인데, 그냥 원래 내가 알고 있던 것처럼 이야기해 주었다.

"무당파의 순양자는 일백오십 년 전 무림팔대고수 중 일인으로 화경의 반열에 오른 후…… 어쩌고…… 무당파와 제갈세가의 분쟁이 극심했던 시기…… 저쩌고…… 그렇게 자신의 심득을 사문에 전하고 사문에 힘을 실어 주고자 떠났다가 실종되었다 알고 있습니다."

긴 이야기였다.

광마일기에 적힌 순양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해 주었다.

"형, 형님……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유식하시네요."

의제만 놀란 눈이 아니었다.

다들 순양자와 그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나를 놀란 눈까지 떠서 보았다.

"어험, 의제가 지금까지 뭔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허허, 내가 원래 좀 아는 게 많은 편이지. 어려선 글을 많이 읽었다고, 하하하."

그녀가 나를 쳐다보는 눈이 점점 묘하게 변하고 있다.

아니, 지금은 일단 사건에 집중하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한 형."

"만약 제갈세가의 소행이라면, 그들은 왜 일백오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것을 찾으려 한 것일까요?"

한해북에 대한 답은 내가 아닌 천무휘가 했다.

이 녀석도 어지간히 금예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모양이다.

"화경급 고수의 심득입니다. 누구라도 탐을 내겠지요. 하지만 이를 어떻게 탐하느냐의 차이입니다."

"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하시는군요."

"만약 상승무공이라든지 그런 심득이 간절히 필요한 작은 문파였다면, 일백오십 년이 아니라 열닷새도 기다리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갈세가는 아니지요. 이미 제갈세가에는 그들의 선조들 중 화경의 반열에 오른 고수가 여럿 있고, 그 심득을 보관하고 있을 것입니다."

맞는 말이다.

제갈세가가 문(文)으로도 유명하지만 역시나 그들이 일천 년 무림의 역사 동안 오대세가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무(武)가 있었기 때문이다.

"순양자께서 자신의 심득까지 들고 무당파로 간다는 것이 알려진 와중, 이 일대에서 실종되었습니다. 당연히 무당파는 물론 사람들은 제갈세가를 의심했겠죠. 만약 정말 제갈세가가 그러한 짓을 했다면, 일백오십 년이란 세월은 말끔히 그들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중소방파처럼 화경급 고수의 심득을 급하게 얻어야 할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요."

천무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 말, 내가 했어야 했는데.

아쉽다.

내가 속으로 아쉬워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한해북이 나섰다.

"마 형의 말씀처럼 일백오십 년 전의 호북 무림에서 무당파와 제갈세가의 사이가 좋지 않아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이에 순양자께서 무당파에 힘을 실어주고 자신의 심득까지 전해 주려 한다는 사실이 제갈세가에 알려졌다면, 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겠군요."

우리는 모두 한해북의 말에 고개를 절로 끄덕여야 했다.

"화경의 고수를 소리 소문 없이 제거하려면, 무력보다는 그들이 잘하는 것으로 덫을 놓고 기습했을 것이고요."

"아! 진법이군요."

의제가 무언가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대꾸했다.

이미 다들 생각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 진법이 어떤 진법이었는지는 몰라도, 순양자께서도 가만 당하지 않았을 터. 진법 안에 또 다른 진법을 설치해 스스로 지키려다 결국 그 안에서 죽게 된 것이고요."

"그렇군요! 무당파의 고절한 도사님이라면 진법에도 일가견이 있으셨겠죠. 제갈세가에서 삼 년이나 해진하지 못할 엄청난 진법으로 제갈세가의 진법에서 스스로를 지키셨던 거예요."

한해북의 말에 또 의제가 맞장구를 쳤다.

"결국 일백오십 년이 지나 그 일이 완전히 잊혀진 지금, 제갈세가에서 위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약초꾼과 사냥꾼들을 죽인 후 사람 잡아먹는 귀신 소문까지 내며 산을 통제. 그다음 본격적으로 순양자의 진법을 해진 하기 위해 나섰던 것이고요. 모든 의문이 풀어지네요."

모두가 한해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금예지는 감격까지 한 얼굴이었다.

아! 저 대사도 내가 쳤어야 했는데.

아쉽다.

그때 금예지가 무언가 떠올린 얼굴로 급히 우리를 향해 말했다.

"아까 하려다 못한 말. 잠입했다가 발각되었어요. 너무 다급한 상황이라 비급은 챙기지 못했고, 검만 들고 그곳을 빠져나왔어요. 밤새도록 그들이 저를 쫓았고, 전 도주를 하던 중 오라버니들을 보게 된 거예요."

오라버니라 불렀다.

내 입꼬리가, 아니 우리들의 입꼬리가 모두 귀에 걸리는 순간이었다.

"전 오라버니들이 걱정되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그들이 샘물에 독을 타는 것을 보았고…… 휴우. 오라버니들이 그렇게 멋지게 적들을 물리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진심에서 우러나와 감격한 얼굴의 금예지였다.

우리 넷의 입꼬리는 귀에 걸리다 못해 머리를 한 바퀴 돌아 버렸다.

"그리고 오라버니들!"

"……."

"그들, 수백 명으로 불어난 그들이 지금 눈에 불을 켜고 저를 쫓고 있어요. 제갈세가에서요."

현실로 돌아왔다.

입꼬리도 제자리를 찾았다.

화산파에 쫓기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제갈세가다.

빌어먹을.

그것도 제갈세가 앞마당에서 그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참! 내 인생도 정말 기구하기 짝이 없다.

회귀를 몇 번이나 해도 똑같은 인생이다.

"근데 금 소저, 남장은 왜 하게 되신 거예요?"

의제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뜬금없는 질문이긴 했지만, 순간 우리 넷은 초집중 상태로 그녀의 입에 집중했다.

너무나 궁금했다.

그녀가 왜 이토록 귀엽고 깜찍하면서도 예쁜 변용을 했는지 말이다.

그녀는 살짝 쑥스럽고 미안하다는 얼굴로 잠시 주저하다가, 이내 부끄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까 제가 여자라고 해서…… 많이들 놀라셨어요?"

아!

뭐, 이럴 땐 그냥 그렇다고 해 주자.

우리 넷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억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덕분에 그녀의 예쁜 미소를 더 오래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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