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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50화 (50/245)

50화

"다 끝났어요. 이제 나오셔도 돼요."

일차 심쿵이다.

우릴 죽음의 위기에서 구했음에도, 조금도 이를 과시하려거나 내세우려는 표정이 아니다.

오히려 얼굴 가득 우릴 걱정하는 표정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녀, 남장여인(男裝女人)이다.

웃긴 건.

그녀의 남장(男裝), 그러니까 남자로 변용한 모습이 너무 심각하게 어설프다는 것이다.

좌로 봐도 여자요, 우로 봐도 여자고, 위에서 봐도, 또 아래에서 봐도 여자다.

심지어 무지하게 예쁘기까지 하다.

그렇게 예쁜 얼굴로 어설픈 변용을 한 그녀가 너무 귀엽다.

광천마제 시절의 나였다면 모를까, 지금은 그녀의 그런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절로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는 중이다.

슬쩍 고개를 돌려 의제를 봤다.

역시나다!

큭큭큭큭.

아주 그냥 혼이 나갔다.

의제가 첫사랑에 눈을 뜨는 순간이다.

그, 그런데…… 허걱!

뭐야?

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인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의제 옆에 있는 천무휘.

한해북 너는 왜!

이런 미친놈들.

그녀는 나와 의제의 첫사랑이라고!

천무휘와 한해북이 의제와 똑같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아! 이게 아닌데.

그녀는 우리 둘만의 첫사랑이어야 하는데.

바뀌게 된 건가?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우리 둘만의 첫사랑이 아닌, 우리들의 첫사랑이 되었다.

경쟁자가 늘었군.

"움직일 수 있으세요?"

세 녀석, 영혼이 정말 가출이라도 했는지, 첫사랑님께서 물으시는 데 대답할 생각도 못 하고 있다.

이럴 땐 내가 의젓하게 나서야지.

"내상은 입지 않았습니다. 내공을 운용하기 힘들고, 근력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정도입니다. 움직일 수는 있습니다."

멋진 대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이에 정신을 차린 세 녀석이 뒤질세라 내 뒤를 바싹 따라붙었다.

우리 다섯은 그렇게 공터로 나왔다.

"곧 적들이 다시 몰려올 것입니다. 자세한 상황을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선 안전한 곳까지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 저를 따르시지요."

"성함이라도…….

의제다.

이 녀석, 무슨 백만대군을 홀로 상대하려는 장수의 얼굴까지 하며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순간 고민하는 그녀.

하지만 상황이 급박한지라, 그녀도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금씨 성을 씁니다. 저에 대해 자세히 아는 만큼, 여러분께서 더 위험해질 수 있어요. 제 신분과 자세한 건 안전한 곳에 도착한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심 때문에 성함을 여쭌 게 아닙니다."

의제가 또 한 번 비장하면서도 결연한 얼굴까지 하며 별 내용 없는 말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런 후, 다시 엄청나게 심각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눈빛으로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큭큭큭.

속으로만 웃었다.

나 역시 심각한 얼굴로 의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한 것이다.

다시 의제가 그녀를 향했고, 이내 정말 힘겹게 입을 뗐다.

"따르겠습니다. 가시죠…… 금 형."

의제가 방금 나에게 눈빛으로 물은 내용은 이렇다.

‘형님, 옆으로 봐도 여자고 뒤로 봐도 여자고, 그냥 어떻게 봐도 여잔데, 어쩌죠? 그냥 미친 척 속아 줘요?’

이렇게 나에게 물었고, 내가 이를 허락한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호칭이 ‘금 소저’가 아니라, ‘금 형’이 된 것이다.

그리고 곧, 놀라운 변화가 일었다.

의제가 그녀를 향해 금 형이라 호칭하자, 미세하지만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자신의 변용이 우리에게 먹혔다고 생각해 만족하여 드러낸 미소 같았다.

뭐, 사실이야 어쨌거나, 그 미소는 정말 아찔할 정도로 예뻤다.

그리고 그 미소는, 나만 본 게 아니다.

"가시죠, 금 형."

"따르겠습니다, 금 형."

천무휘와 한해북이 서로 뒤질세라, 서둘러 그녀를 향해 금 형이라 호칭했다.

아,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뭐, 덕분에 그녀의 더더욱 환해진 미소, 예쁜 미소를 좀 더 볼 수 있었다.

"네, 제가 앞장설게요."

자신의 변용이 통했다는 생각에, 아주 그냥 활기가 철철 넘치고 기분까지 최고조인 그녀였다.

귀엽다.

그리고 그때.

"커억. 으으윽."

내가 갑자기 고통스런 표정과 신음을 흘리며 배를 잡고 괴로워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독…… 아무래도 무리하게 내공을 끌어올리려다가 내상을 입은 것 같다. 이런!"

내 말에 그녀가 서둘러 다가와 내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안 되겠어요. 소협께서 제 뒤에 바싹 따라붙으시고, 나머지 분들께서 그 뒤를 따라오세요."

성공이다!

큭큭큭큭큭큭.

푸하하하하하하!

우리가 어떻게 탈주하게 될지, 나는 다 알고 있다.

좁은 산길, 때로는 수풀을 헤치며 일렬로 움직인다.

정확히 한 줄, 일렬이다.

광천마제 시절에는 금 형이 선두, 중간이 의제, 그리고 내가 끝자리였다.

그때 의제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하하하하!

광마일기에 그 일에 대한 푸념만 열 줄이 넘는다.

이번엔 내가 그녀의 바로 뒷자리다, 푸하하하!

의제와 수룡검, 한해북이 순간 똥 씹은 얼굴로 날 노려봤지만, 상관없다.

그녀의 뒷자리만 내가 차지할 수 있다면, 마음껏 속으로 나를 욕해라, 녀석들아!

"고맙습니다, 금 형. 출발하시죠."

"네."

그녀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하고만 눈 마주쳤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내 뒤통수가 무지막지하게 따가웠으나, 뭐 역시나 조금도 상관없다.

그녀는 뒤태마저 아름답다.

그리고 우리는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우리는 허리를 잔뜩 숙이고, 숨까지 최대한 죽인 상태로 길도 없는 산을 빠르게 이동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뚫어지게 보고, 또 보고, 계속 보고, 아!

만지고 싶다.

갖고 싶다.

정말 미칠 듯 격렬하게 손에 쥐어 휘두르고 싶다.

엉뚱한 상상하지 말자!

그녀의 등에 매달린 검.

난 그것을 보고 있는 중이다.

순양검(純陽劍)이다.

일백오십 년 전, 무당파의 순양자(純陽子)라는 도사가 사용했던 검이라 했다.

그는 이립(而立, 30세)이 되던 해에 무당산을 내려와 세상을 떠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순(耳順, 60세)이 될 때까지 수많은 악인을 처단하고, 당시 무림팔대고수의 반열에 오른다.

무당파에서는 이 공로를 치하하고자 그에게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보검을 그에게 하사한다.

그게 바로 순양검되시겠다.

이는 무당파의 삼대보검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만큼 무당파에서 온갖 정성을 쏟고 현철과 같은 귀한 철을 써 가며 만든 보검이다.

어쨌거나, 순양자는 말년에 무당파로 돌아가려 했다.

당시의 무림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사이가 매우 나빴다.

이곳 호북에서도 무당파와 제갈세가 사이 치열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순양자는, 자신이 평생 얻은 깨달음을 정리한 심득을 사문에 전하고, 더불어 제갈세가와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사문으로 떠났다고 했다.

당시 그가 지니고 있던 것은 심득이 적힌 비급, 순양검, 그리고 철전 몇 닢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무당파로 간다며 떠난 후 실종되었다.

무려 화경의 경지에 오른 무림팔대고수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아마 이곳 어딘가에서 사고를 당하지 않았나 싶다.

그의 유품 중 하나인 순양검을 일백오십 년이 지난 금 형이 얻었고, 내일 중으로 금 형은 순양검을 내게 주게 될 것이다.

광마일기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아무튼 광천마제 시절의 나는 일종의 이유로 그 순양검을 내 것으로 만들게 된다.

내가 빼앗은 게 아닌, 그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난 순양검의 낡은 검집을 버리고 새 검집까지 만들었다.

새 검집에는 순양검이라는 이름 대신, ‘광천검(光天劍)’이란 새 이름을 붙인다.

내가 광천동에서 광마일기를 기록하며 죽는 순간까지 광천검은 나와 함께하였다.

내일부터 마지막 날까지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하였고, 수많은 적들의 피를 뿌렸으며, 종국에는 나와 함께 천하를 굴복시킨 검이 바로 순양검이며 광천검인 것이다.

내 검이다.

나와 한 몸인 광천검이 지금 금 형의 등에 매달려 있다.

내가 지금 그녀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가며 뚫어질 듯 쳐다보는 게, 그녀의 탐스럽고 아름다운 엉덩이…… 꿀꺽.

뭐, 조금 보기는 했다.

그래도, 어쨌거나, 뭐!

내가 지금 뚫어지게 보고 있고, 열렬히 만지고 싶은 건 바로 내 검이다.

광천검!

내 검을 되찾고 싶다.

"잠시만요."

은형술을 펼쳐 잰걸음으로 선두에서 이동하던 그녀가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 앞에 빼곡한 죽림(竹林)이 나타났다.

대나무들이 얼마나 빼곡히 자라고 있는지, 한두 척 앞의 시야도 확보되지 않는다.

"이런 곳이라면 매복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말에 그녀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기다리고 계세요."

그녀는 이 말만을 남겨 둔 후 빼곡한 죽림 속으로 혼자 사라졌다.

나와 의제, 천무휘, 한해북은 숨소리까지 죽이고, 초긴장 상태로 그녀를 기다렸다.

샤샤샤샤샥.

쉬이이이익.

휘이이익.

타탁.

피유욱.

쉬이익.

샤아악.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일까?

아니면 그녀의 움직임일까?

우리 네 사람 중, 유일하게 내공을 운용할 수 있는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하지만 의제와 천무휘, 한해북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또 극도의 긴장과 초조한 얼굴로 대나무숲을 보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반 각이 지났다.

샤샤샥.

투투툭.

빼곡한 대나무를 꺾으며 한 사람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다.

의제와 천무휘, 한해북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녀를 향해 물었다.

"죽림에 매복 같은 거 없었습니까?"

그러자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이젠 없어요. 가시죠."

그 말만을 남기고 그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슬쩍 세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이 녀석들, 이차 심쿵했다.

그것도 단체로.

* * *

우리의 은거지를 벗어나 탈주하기 이틀째 아침이 되었다.

아직 위산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곧 벗어날 수 있다.

우린 늦은 새벽까지 쉬지 않고 이동하다가 어느 통나무로 지은 주인 없는 오두막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대략 한 시진가량 수면을 취했다.

"형님, 이것 보세요. 비밀 통로가 있는데요?"

잠자리에서 일어나 막 오두막을 벗어나려 할 때, 의제가 그곳을 발견했다.

광마일기 그대로다.

나와 의제는 서둘러 그 안을 확인했다.

지하로 길게 뻗은 비밀 통로다.

그곳을 따라 나가면 위산을 벗어날 수 있다.

이곳은 아마 오래전 누군가 만든 안가가 아닐까 싶다.

비밀 통로를 확인한 나와 의제가 서둘러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오두막 위로 다시 나왔다.

그런데,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금 형과 천무휘, 한해북 모두 바싹 긴장한 상태로 굳게 닫힌 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소리가 들린다.

한두 명도 아니고 최소 수십, 어쩌면 일백 명 이상이 오두막을 포위하고 있는 것이다.

"비밀 통로를 발견했습니다. 어서 가시죠."

의제가 초조한 얼굴로 금 형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금 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굳게 닫힌 문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밖의 상황을 기감을 통해 파악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려 우리를 향했다.

아니, 나를 향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어깨에 매어져 있는 검을 풀어 나에게 건넸다.

그녀는 이 상황 속에서도 미소까지 지었다.

우리가 갖게 될 마음의 짐을 덜게 하기 위함이리라.

어찌 이리도 마음씨까지 곱단 말인가.

"무당의 검입니다. 무당파에 이 검을 꼭 전달해 주십시오. 이곳에 일백오십 년 전 순양자의 무덤이 발견됐고, 이를…….

"이름. 그대의 이름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눈을 부릅뜨고 그녀의 말까지 끊으며 물었다.

순간, 나를 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려 왔다.

"제 이름은 금…….

"공격하라!"

쾅!

콰콰쾅!

그녀가 막 자신의 이름을 말해 주려고 할 때, 문과 창문 그리고 지붕의 일부가 터져 나갔다.

곧바로 흑의를 입은 여덟 명이 칼을 휘두르며 오두막 안으로 진입했다.

샤아아악!

파파파파팟!

"크어어억!"

그녀가 곧바로 여덟을 모두 제거해 버렸다.

그리곤 이내 다급한 얼굴로 우리를 향해 말했다.

"어서요! 지금! 지금 당장 비밀 통로로 빠져나가세요!"

"하지만…….

의제와 천무휘, 한해북 그 누구도 그녀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제발! 제발 가세요! 지금요!"

간절한 그녀의 눈빛과 외침.

동시에 그녀는 힘으로 우리를 비밀 통로에 밀쳤다.

아니, 나는 그녀의 손을 비켰다.

의제와 천무휘, 한해북만 지하 비밀 통로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녀가 금나수의 수법까지 써 가며 뻗은 손길을 내가 너무나 쉽게 피해 버리자, 급박한 와중에도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난 그런 그녀에게 씨익 하고 웃어주었다.

그런 후.

쾅!

세 녀석이 빠져 버린 지하 통로의 문을 굳게 닫은 후, 그 위에 통나무로 만든 침상으로 덮어 버렸다.

광천마제 시절의 의제와 내가 그랬듯, 세 녀석은 그 통로의 문을 마구 두드리며 울부짖었다.

"의제, 천 형, 한 형! 어서 가시오. 제발 가란 말이오! 무당파로 가 이 사실을 꼭 전해 주시오. 부탁이오."

광천마제 시절 그녀가 나와 의제에게 했던 말.

그 말을 내가 세 녀석에게 해 주었다.

잠시 후 통로의 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멈추었고, 그들의 울부짖음은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또 곧, 그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기감에 잡혔다.

눈물을 머금고, 아니 눈물을 흩뿌리며 지하 통로를 열나게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와 의제가 그랬듯 말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금 형은 얼음이 되어 나를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과 같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알려 주겠소? 그대의 이름?"

"금…… 금…… 예지라고 해요."

"반갑소, 금 소저."

"알고…… 계셨군요?"

"물론이오, 하하."

멋지게 웃어 보였다.

아주 멋지게.

"밖의 상황이 심상치 않은…….

"맡기시오. 이제부터 내가 상대하겠소."

그녀.

이름이 금예지였다.

이름마저 예쁘다.

그리고 이제 곧.

나는 그녀를 위험에서 구하는 영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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