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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47화 (47/245)

47화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데, 나를 배신해?"

"배신?"

"배신 아냐?"

난 놈에게 씁쓸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놈은 감정이 격해진 모양이다.

순간 당보의 얼굴이 바뀌었다.

닭, 계효보도 아닌 순수한 닭대가리로 변해 버린 것이다.

사람의 몸에 닭의 머리.

조금 섬뜩했다.

놈은 그렇게 닭대가리로 변신하여 더욱 격앙된 목소리로 나에게 따지듯 말을 이었다.

"회귀 초, 네가 현화문에 머물 때. 네가 수련에 전념할 수 있게, 또 구산사괴에게 복수할 수 있게. 내가 얼마나 도왔는지 잊었어? 청소도 내가 하고, 밥도 내가 짓고, 빨래도…… 버선! 씨팔! 그 뒤집어 놓은 버선까지 내가 죄다 다시 뒤집어서 빨았어. 왜? 너는 그냥 수련에 집중하고 무공을 되찾는 일에만 집중하라고! 응!"

"……."

"내가 지금 여기 이 모습으로 있는 건 뭔데? 내가 왜 우각당 쓰레기들한테 두들겨 맞고 심부름까지하며 이곳에 머무는데? 다 널 암중에서 도우려고 그랬던 거라고, 이 빌어먹을 광마 새끼야!"

놈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닭 눈이 시뻘겋게 변했다.

"추고객잔에서 네가 아죽 구하긴가 뭔가 작전할 때! 새꺄! 너 얼마나 어설펐는지 알아? 그때 너 이상하게 보는 놈들 한둘이 아니었어. 그때마다 내가 환각 요술로 그거 다 가려 준 거라고, 돌대가리 광마 새꺄!"

음, 이건 몰랐네.

내 연기와 잠입 실력이 상당한 줄 알았는데.

"그리고 또! 또 있어! 아향 애비의 지병, 중독. 일 년 동안 축적돼 온 독이 그렇게 쉽게 해독될 줄 알았어? 추고도 그렇고, 이 동네 의원이 무슨 화타의 재림이야? 씨팔, 내가 밤마다 요술로 치료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그런데 네가 나를 배신해? 이 찢어 죽일 광마 새끼야!"

음, 이것도 몰랐던 부분이군.

그런데 이 닭대가리 새끼 요술로 사람도 치료할 수 있는 거야?

캬, 첩첩산중이군.

치료 요술은 어느 정도까지 치료 가능한 거지?

돌겠다.

놈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아니, 그렇게 변해 버린 거다.

내 무공을 흡수해, 그 무공을 바탕으로 자신의 능력마저 키워 버린 거야.

진짜 돌겠다.

앞으로 놈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이 안 온다.

"내가 이 개고생을 다 해 가며 널 믿고 도왔는데, 나를 죽여? 나를 죽인다고? 개새꺄!"

"야. 닭."

"뭐?"

"닭."

"너 이 새끼 지금…….

"네가 날 위해서 그런 거야?"

"그…… 그게…… 뭐라는 거야?"

"네가 그 고생을 하며 내 곁에 머문 게, 나를 위해 그런 거냐고?"

"그럼 뭐? 뭔데?"

"네 욕심."

"뭐?"

"네 욕심, 욕망. 네가 얻고자 하는 것을 빠르게 얻기 위해 그런 거 아니야?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다 너를 위해서 그랬던 거잖아."

"너…… 이 새끼, 지금 말이면 단 줄 알아? 결론적으론 다 네게 도움이 됐던 거잖아!"

닭이 억지를 부린다.

어린아이같이 생떼를 쓰는 것이다.

목소리가 더욱 커진 것이 놈이 지금 크게 당황하고 있다는 증거다.

난 더더욱 차분한 목소리로 놈에게 말했다.

"인간과 닭은 어차피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야."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인간은 닭에게 먹이와 울타리를 만들어 주지. 그리고 닭은 인간에게 달걀과 고기를 주고."

"무슨 개소리야?"

"딱 지금 너와 나의 관계를 말하는 거야."

놈도 뭔가를 깨달은 듯하다.

동공이 다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간은 제 새끼인 양 닭들을 보살피지만, 결국 닭의 새끼를 빼앗고 닭의 목을 쳐 버리거든. 닭들도 제 죽을 걸 알면서도 인간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거고. 한마디로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인 게 인간과 닭의 관계고, 지금 너와 나의 관계기도 해."

"설, 설마…….

"진짜 모르고 있었어? 너만 날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던 거야?"

놈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 댄다.

혹시나 했는데, 놈은 진짜 닭대가리다.

인간과 닭의 차이.

닭대가리와 내 지능의 차이다.

서로를 속이고 있었음에도,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놈은 모르고 있었다.

오로지 자기 간계에 나만이 속고 있었고, 그래서 자기만이 나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닭대가리 새끼.

난 놈을 향해 비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차피 죽을 거,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내 비웃음을 본 후, 놈의 부들거림이 멈추었다.

평정심을 되찾은 것 같다.

아니면 그 분노가 극에 달했거나.

"죽을 시간이다, 광마야."

놈이 차갑게 말을 뱉었다.

난 여전히 한껏 놈을 비웃으며 답했다.

"죽여라, 닭대가리야."

놈은 주먹을 불끈 쥐면서도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답했다.

"이제 더 이상 너를 돕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다. 그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넌 네 삶을 살아라. 난 네가 죽은 후 무공만 흡수할 것이다."

"그러시든가. 그리고 그 약속 지켜라.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마. 그때는 진짜 죽여 버릴 테니까."

"상황 파악 못 하는군. 됐다. 이젠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적어라."

"뭘?"

"지금 이 상황. 네가 적고 싶은 내용. 모두 광마일기에 적으라고."

"……?"

"그냥 죽여 줘?"

놈, 진짜인 것 같다.

앞으로 내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

이게 다행이면서도 머리 아픈 일이다.

내 무공은 계속 놈이 흡수할 것이다.

지금 신검합일과 절정의 경지마저 놈이 흡수한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거기에 더해, 놈은 내가 회귀할 때마다 심토만력근을 복용해 내공을 무한대로 늘려 버린다.

하! 진짜 답 없네.

난 조금 전 놈과 나누었던 대화부터 이런 생각들까지 모두 광마일기에 적었다.

그것을 모두 지켜보면서도 계효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놈이 진짜 제대로 결심한 모양이다.

"끝났나?"

"그래."

"잘 가라, 광마."

"두 번 다신 보지 말자, 닭대가리야."

쉬이이익.

툭.

목이 잘리고, 잘린 내 머리가 땅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는 것으로 내 기억은 끝났다.

아니, 그렇게 죽는 짧은 순간.

마치 먼 산에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또 무언가에 탁 막힌 먹먹한 것처럼 닭의 울림이 들렸다.

"……내가 절정의 고수가 됐다……신검합일이라고, 신검합일! 꼬끼오!"

열여섯 번째 죽음이다.

* * *

난 누구?

여긴 또 어디?

광마일기를 읽었다.

내용이 많다.

머리도 복잡해졌다.

계효보 문제도 계효보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와! 씨팔.

무공.

어렵게 되찾은 무공.

신검합일과 절정의 경지, 그리고 이 갑자의 내공.

하나도 없다.

모두 다 잃어버렸다.

아! 미치고 팔짝 뛸 일이지만, 너무나 큰 충격에 그러지도 못했다.

광마일기의 다른 부분은 새까맣게 잊고 말았다.

무공, 무공을 다시 잃어버렸다는 충격에 난 몇 시진이고 꼼짝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그냥 있어야 했다.

몇 시진이나 알몸으로 멍하게 있은 후에야 다시 광마일기를 읽을 수 있었다.

내 무공 문제가 다른 문제로도 이어진다.

적수노사는 어떻게 죽이지?

수룡검이 그때 같이 또 극대로 분노할 보장은 없다.

수룡검이 극대로 분노하기 전에 적수노사가 죽어 버리면 그 일말의 가능성마저 사라져 버리고.

머리가 복잡하다.

계효보를 앞으로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에 생각이 이르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계효보에 관련한 나의 미래는, 그저 깜깜한 암흑뿐이다.

복잡한 머리에 더해 이제는 마음까지 우울해져 버리고 말았다.

작은 사부!

작은 사부에게 도움 요청하지 않은 게 다시금 크게 후회된다.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수룡검이라면 충분히 계효보를 이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완전한 내 패착이다.

사실 그보다, 내 업보를 작은 사부와 나누는 게 싫었다.

내 업보는 내가 씻어야 한다.

그래야 추혼책과 각혼필의 힘에서 벗어나고, 이 무한 회귀도 멈출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었는데.

패망했다!

계효보 만큼은 작은 사부의 도움을 받았어도 됐었데.

아니, 꼭 그랬어야 했는데.

휴우.

이미 늦었다.

어쩌면, 그게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높다.

다른 건 다 되돌릴 수 있어도, 이건 되돌릴 수 없다.

계효보가 앞으로 진짜 나타나지 않으면 방법이 없지 않겠는가?

작은 사부고 무적 할매고, 우리 사부까지 다 부르면 뭐 하나?

놈이 나타나지 않는데.

아! 진짜 암울하네.

어쩌겠는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고, 마교 십팔 뇌옥에 갇혀도 바늘만 있으면 파옥할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무슨 수가 있겠지.

미리 좌절하지 말자.

희망을 갖고, 일단 광천동부터 벗어나야겠다.

우리 사부, 걱정하시겠다.

* * *

사부에게 삼재검법을 가르치고 한 달가량이 지났다.

그들이 찾아왔다.

구산사괴.

흉악한 기운을 마구 풍기며, 사부와 나를 죽이고 비급을 갈취하러 온 것이다.

지금이 열일곱 번째 회귀다.

내가 놈들을 처음으로 죽인 게 아홉 번째 회귀 때였다.

그리고 그때의 결심을 광마일기에 적었다.

딱 나와 사부가 죽은 만큼만 놈들을 죽이겠다고.

뭐, 나는 사부보다 한 번 덜 죽긴 했지만.

아무튼 사부는 놈들에게 총 아홉 번의 죽임을 당했다.

광천마제 시절 한 번.

그리고 회귀 후 여덟 번.

광천마제 때 내가 죽어 회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홉 번째 회귀지만 사부가 놈들에게 죽은 횟수는 회귀 후 여덟 번이다.

그렇게 총 아홉 번.

뭐, 그렇다.

복잡한 계산은 나도 딱 질색이고.

아무튼 이번이 열일곱 번째 회귀기 때문에 놈들을 죽이면 총 아홉 번째가 된다.

광천마제 마악치와 현화문의 어린 도사 마악치의 타협점이 끝나는 시점이다.

그런데 만약 놈들이 다음 회귀에도 계속 찾아온다면?

사부 말대로 용서해 줘야 할까?

그건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날 향해, 또 사부를 향해 칼을 들이대는 놈을 용서할 만큼 나는 좋은 놈이 아니다.

물론, 좋은 놈이 되려고 지금 엄청나게 노력 중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현재의 내 생각과 신념으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놈들이 오기 한 달 전부터 고심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선택권을 놈들에게 주기로 한 것이다.

"살려주십시오, 도사님. 엉엉엉."

"아까 큰 도사님께서 살려 주신다고…… 살려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작은 도사님, 살려 주십시오. 엉엉엉."

단전이 모두 파괴되었다.

넷 중 가장 고수인 한노는 사지의 근맥마저 잘렸다.

나머지 셋도 정상의 몸이 아니다.

막 갑돌산을 내려간 그들 앞에 내가 나타나자, 그들은 곧바로 무릎을 꿇고 엉엉 울며 살려 달라 애원했다.

"만약에……."

"네, 도사님. 엉엉."

"만약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너희들은 다시 이곳을 찾아오겠지?"

"아닙니다, 도사님! 도사님, 살려 주십시오. 엉엉엉."

피를 철철 흘리고, 그보다 더 많은 눈물을 마구 흘리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하지만 진심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살고 싶은 것이다.

"반성하고 있어?"

"반성하고 있습니다. 후회하고 있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진심을 묻는 거야. 진짜 반성하고 있는지."

내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단 걸 놈들도 깨달은 모양이다.

놈들을 조롱하기 위함도 아니고, 죽이려는 것도 아니고, 또 용서하려는 것도 아님을 안 것이다.

지금 나는 놈들을 시험 중이다.

놈들이 그것을 깨닫고 엉엉 울던 울음을 그쳤다.

신중해진 것이다.

"도사님, 저희가 바보도 아니고 어찌 같은 실수를 반복하겠습니까?"

"그래서 말했잖아.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어쩌겠냐고?"

"그, 그야……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죽을 게 뻔한데, 어찌 다시 이곳을 찾아오겠습니까?"

"음, 기억을 잃었다면. 지금의 기억이 모두 사라졌다면?"

"그…… 그러면…….

대답하지 못한다.

거짓을 말하면 죽는 걸 안다.

또 진실을 말해도 죽으리란 걸 알기에 답을 못 하는 것이다.

"살려 주십시오, 도사님."

"살려 주려고 이러는 거야."

눈물이 멈추었지만, 이미 놈들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 그리고 피로 범벅이 되었다.

그 얼굴로 서로 눈을 마주치며 멀뚱멀뚱 모르겠다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조차 잡기 힘들다는 얼굴만 해댔다.

사실 이런 대화는 의미가 없다.

어차피 다 잊어버릴 테니.

"벗어."

"네?"

"너희들 옷, 다 벗으라고."

"……."

당황한 놈들.

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어린 도사 놈이 남자의 몸을 탐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벗어."

하지만 재차 내가 말하자, 놈들은 아픈 몸에도 꾸역꾸역 옷을 홀라당 벗었다.

"뒤돌아 엎드려 누워."

결국 놈들이 목숨도 목숨이지만, 똥 씹은 표정을 짓고 말았다.

내가 이상한 짓거리를 할 거란 생각에 모멸과 수치스러움이 가득한 것이었다.

그래도 죽기는 싫었는지, 슬금슬금 뒤를 돌아 엎드려 누웠다.

"아니다. 뒤에다 새기면 못 보겠다. 다시 앞으로 누워."

이젠 짜증까지 슬쩍 섞인 표정들이다.

어린 도사 놈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역시나 그러려니 해도 다시 꾸역꾸역 앞으로 돌아눕는 놈들이었다.

난 그런 놈들의 가슴에 모두 여덟 글자의 문신을 새겨 주었다.

문신을 모두 완성한 후에는, 놈들이 아픔을 느낄 사이도 없이 죽여 버렸다.

발가벗은 상태로 시체가 된 구산사괴의 가슴.

그곳에 총 여덟 글자의 문신이 또렷하게 보였다.

행악필사 귀정득생(行惡必死 歸正得生).

악을 행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고, 바른길로 돌아서면 목숨을 부지할 것이다.

놈들이 또 내 손에 죽고 말고는, 이제 놈들의 결정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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