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챙!
채채채채챙!
챙챙챙!
오십 합까지는 나와 수룡검 둘 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일종의 탐색전이다.
물론, 이미 내 실력은 검증이 되었다.
확실히 수룡검이 나보다 한 수 위이긴 했다.
작은 사부를 통해 엄청난 양과 깊이의 무학과 무리를 습득했다고 하지만, 확실히 경지의 벽이 더 우위일 수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대해와 같이 넓고 하늘과 같이 높은 무학을 머리에 담고 있어도, 결국 고수급의 대해와 고수급의 하늘에 한정한 지식일 뿐이다.
절정의 고수가 담고 있는 대해와 하늘은, 그 자체가 내 것과 크기가 달랐다.
그 차이였다.
그래도 오십 합의 공방을 주고받으며 수룡검은 몇 번이고 놀라고, 또 수차례나 뒷걸음질을 쳐야 했다.
내 검법에 크게 놀라고 감동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녀석, 역시나 타고난 무인이 맞다.
나보다 더 월등한 천재 무인이 녀석이다.
오십여 합의 공방이 오가는 사이, 수룡검은 이미 증명이고 뭐고를 다 잊은 듯했다.
그저 나와 검을 겨루는 것에 완전히 몰두해 다른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점점 자신의 힘을 끌어내고 있었다.
결국, 나와 그 사이 이백여 합의 공방이 오갔을 때, 그는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신검합일.
그가 검과 하나가 되어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보았다.
채채채채챙!
또 느껴진다.
채채채채챙!
신검합일과 절정의 경지가, 고스란히 내 눈에 보이고 내 가슴에 각인되었다.
챙챙챙!
"으악!"
철퍼덕.
"괜찮으십니까!"
내가 왼쪽 어깨를 베여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곧바로 놀란 얼굴의 수룡검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나를 부축했다.
"도사님,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도사님과의 대결에 너무 심취해 과하게 검을 휘둘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씨팔.
이게 아닌데.
왜지?
분명 녀석의 신검합일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느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몸에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좆됐다.
정말 오래 생각하고 추론한 끝에 얻은 결론인데.
잃어버린 내 무공을 찾는 방법.
이것이 아닌가 보다.
젠장할.
오답이었군.
"하하, 괜찮습니다. 이 정도 상처는 금창약 바르면 금방 낫지 않겠습니까? 그나저나 수룡검 천 대협에 대한 소문이 확실히 잘못되었군요."
"네?"
"절대 과소평가 되었습니다. 천 대협의 검을 통해, 완벽한 신검합일이 무엇인지 보았습니다."
"아! 도사님…….
그의 얼굴에 화사한 햇살이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 경지를 인정하고, 나와 무의(武意)가 통함을 마음 깊이 실감한 것이다.
무공에 대한 뜻과 생각.
이건 광천마제 시절의 내가 광마일기에 기록한 내용이기도 하다.
수룡검에게서 신검합일을 보았고, 그의 신검합일을 통해 나와 같은 무도를 걷고 있음을 느꼈다고.
그래서 나는 그의 죽음을 더더욱 안타까워했던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때의 수룡검도 내 칼에 죽으며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가시죠, 도사님. 일단 치료부터 하셔야 합니다."
난 수룡검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나를 부축하며 걷는 그의 얼굴에서는 한시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 * *
"어서."
수룡검의 엄한 명령에 천예휘가 잔뜩 인상을 구기며 불편해했다.
"어서 도사님께 깊게 허리 숙여 사죄하지 못하겠느냐?"
"오빠!"
결국 천예휘가 꽥 하고 소리까지 질렀다.
하지만 이는 수룡검의 성만 더 건드린 결과를 초래했다.
"어허! 내가 정말 너를 잘못 가르쳤구나! 간악한 자들이 네게 몹쓸 짓 할 것을 마 도사님께서 막아 주셨는데, 어찌하여 감사 인사를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고…….
"그래도! 그냥 이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겠느냐?"
"오빠!"
"그럼 어서 진심을 다해 도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라."
결국 천예휘는 울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내 도끼눈을 살짝 뜨는가 싶더니,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내게 허리를 숙였다.
"더 깊이 숙여 인사드려라."
정확히 허리의 반이 딱 꺾여 인사하는 천예휘.
화산검후의 이런 꼴을 보니 진짜 목청이 터져라 비웃어 주고 싶었지만, 정말 간신히 억누를 수 있었다.
"입으로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감사……합니다."
"그만하시죠, 천 대협."
이제 누릴 거 다 누렸으니, 착한 척할 때다.
"아닙니다, 도사님. 백 번 천 번 감사의 절을 해도 부족합니다. 제 동생이 여자의 몸으로 그 수치를 당했을 것을 생각하니…… 휴우. 정말 끔찍합니다. 모두 도사님 덕에 화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 도사님."
수룡검까지 나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어느새 허리를 꼿꼿이 편 천예휘는 이 상황이 싫음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지만, 됐다.
앞으로 계속 갚아 줄 것이다.
"어서 앉으십시오, 천 대협. 저와 제 의제가 천 대협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칠검문 쪽에서 알아채기 전에 움직여야 합니다."
"도사님은 계획이 다 있었군요."
"이미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상대는 최소 일 년 전부터 이번 음모를 꾸며…….
"오늘 밤 칠검문에서 연회를 벌인다고 저와 동생을 초대…….
"다른 곳은 그냥 동네 무관 수준의 문파이고, 크게 관여한 정황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칠검문, 풍진방, 쌍창호문 세 곳은 멸문을 시켜야…….
난 빠르게 수룡검에게 계책을 설명하고 그와 함께 추가 논의를 했다.
* * *
쾅!
"와아아아아아아!"
"한 놈도 도망치지 못하게 길목을 모두 차단하여 포위하라!"
"와아아아아아아!"
흥겨운 풍악과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흘러나오던 칠검문.
그곳의 대문이 부서지고, 나와 수룡검, 의제, 한해북 등과 우각당 왈패들 전원이 함성을 지르며 쳐들어갔다.
막 연회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악사와 무희 등은 비명을 지르며 현장을 빠져나갔지만, 칠검문 등 만리현 정파 놈들은 한 놈도 도망가지 못하고 포위되었다.
크게 당황한 만리현 정도 문파의 수장들.
특히 칠검문주의 얼굴이 가관이었다.
수룡검이 우리 곁에 있는 것을 보고는 말문이 막혀 입도 뻥끗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나름 무림의 칼밥을 오래도 처 드셨는지,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고는 우리를 향해 호통을 쳤다.
"네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우각당의 흑도 패거리 따위가 몰려온 것이냐!"
수룡검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칠검문주는 의제 곽우적을 향해 그리 말했다.
하지만 의제는 나서지 않았다.
선두에 선 것은 수룡검이었다.
"칠검문주."
"……?"
"이미 그대들의 음모를 모두 확인하였소. 순순히 오라를 받겠소? 아니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겠소?"
"천…… 천 대협, 그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요? 좀 알아듣게 말하시오."
뻔뻔한 늙은이.
아주 교활하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저리 말하고 있다.
"추하객잔. 그 객잔의 주인과 별채를 담당하는 시비 아향, 그리고 점소이 아죽을 돈으로 회유하고 힘으로 협박하여 매수하지 않았소? 정확히 칠 일 후, 내 동생에게 몹쓸 짓 할 음모까지 모두 확인하였소. 그만 순순히 오라를 받으시오."
차분한 수룡검의 말.
노강호인 칠검문주의 눈동자에 지진이 나 버렸다.
크게 당황한 것이다.
칠검문주 뒤에 있는 풍진방주와 쌍창호문의 문주는 그 반응이 더 격렬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리고, 온몸을 덜덜 떨기까지 하고 있었다.
어찌 아니겠는가?
음모가 밝혀졌는데.
무엇보다 의제의 말마따나 이곳 만리현의 최고수는 의제였다.
고수 초입의 경지로 만리현에서는 적수를 찾을 수 없었다.
칠검문주니 풍진방주니 쌍창호문의 문주니 해도, 결국 일류의 끝자락 정도가 그들의 수준이라는 뜻이다.
절정 고수인 수룡검이 작심하고 검을 뽑으면, 홀로 이 연회장 안에 있는 그들을 포함한 그 수하들까지 죄다 목을 베어 버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포기할 충분한 상황이…… 어?
"하하하하! 크하하하하! 수룡검 네 이놈!"
죽을 때가 돼서 미친 건가?
칠검문주가 대뜸 광소를 터뜨리더니, 수룡검을 향해 호통까지 친다.
수룡검은 담담한 얼굴이었다.
"어린놈의 새끼가, 명성이 좀 있다고 해서 치켜세워 줬더니. 눈에 뵈는 것이 없구나! 내 오늘 화산파를 봐서 한 번은 봐주겠으니, 이만 물러나도록 하여라."
와! 저 늙은이, 진짜 미친 건가?
뭘 믿고 저렇게 까뿔…… 아! 젠장.
변수다.
돌발 변수가 생기고 말았다.
수룡검은 진즉 놈의 정체를 감지한 모양이다.
이미 수룡검의 시선은 칠검문주가 아닌, 조금 전 칠검문주 옆으로 다가선 노인에게 향해 있었다.
"어, 오셨군요. 동 대협."
칠검문주가 허리를 깊이 숙여 예를 갖추는 노인.
범상치 않다.
수룡검 천무휘의 존재를 파악했음에도,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최소한 그 또한 절정의 고수라는 뜻이다.
빌어먹을 새끼들.
최악의 상황까지 겹겹으로 철저하게도 대비하고 있었던 거였어.
아!
진짜 돌겠네.
그래!
수룡검을 믿어 보자.
난 시선을 급하게 수룡검에게로 향했다.
다행이다.
그의 얼굴에서도 역시 초조함이나 두려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누구십니까?"
"자네가 수룡검 천무휘라는 아이인가 보군. 근래에 자네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들었네, 하하하."
"뉘시냐 물었습니다. 저들이 간악한 음모를 꾸며 제 여동생을 해하려 하기에 왔습니다. 칠검문 등과 한패가 아니라면 물러서시지요."
"큭큭큭, 지금 나에게 명령하는 건가?"
"권해 드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살길을요."
"살길? 내 살길을 자네가 권해? 풉, 풉풉, 푸하하하하하하하하!"
노인이 광소를 터뜨리다 이내 뚝 하고 멈추어 수룡검을 노려보았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몰라 뉘시냐 물어봤습니다."
"알려 주지."
"……."
"세인들은 나를 적수노사(赤手老師)라 부른다네. 이제 상황 파악이 좀 되나? 큭큭큭."
뒤에 있던 한해북에게서 급하게 전음이 왔다.
-적수노사 동탁방이란 자입니다. 정사지간의 인물로, 수년 전까지 무림에서 활동하다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가 갑자기 왜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한창 무림에서 활동할 시기에 이미 완연한 절정의 고수라 알려졌습니다. 또, 사파나 마도와 연관은 없지만, 그 손속이 악랄하고 음흉한 것으로도 유명했던 자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없던 자다.
광마일기에 적수노사고 동탁방이고, 그런 건 없다.
그런데 왜?
왜 갑자기 저런 인간이 등장한 거냐고!
당시는 수룡검이 자신들 편이었으니 그랬을까?
수룡검이 있기에, 적수노사를 드러내지 않아도 확실히 우리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끝까지 숨겼던 것이었으리라.
휴우.
아무래도 길(吉)보다는 흉(凶)이 더 많을 것 같은 느낌이다.
어째 너무 잘 풀린다 싶기도 했다.
그런데.
"저들과 한패라는 소리로 들리는군."
수룡검이다.
심지어 자연스레 반말까지 한다.
그냥 허세를 부리고 그런 게 아니다.
그가 집중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그러려는 게 아닌데, 수룡검에게서 감히 근접하기 힘들 정도의 위엄이 마구 뿜어져 나온다.
이미 기세만으로 적수노사인지 뭔지 하는 노인네를 압도하고 남았다.
적수노사 옆에 있는 칠검문주 등의 얼굴이 다시 하얗게 질린 것만 보아도 확실했다.
어쩌면, 내 예감이 틀렸는지 모르겠다.
이 싸움, 수룡검이 이긴다.
"화산파를 봐서 한 번은 용서해 주겠다. 그만 왈패들 데리고 물러나라."
"나 천무휘. 단 한 번도 화산파를 등에 업고 무림에서 활동한 적 없다. 저 악인들의 치죄를 막을 생각이라면,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덤벼라. 죽여 주마."
"너…… 너 건방진 애송이…… 감히 나에게…….
"와랏! 늙은이!"
오! 우리 수룡검 멋있다.
그 기세 그대로, 늙은이의 목을 베어 버리고, 칠검문 등을 모조리 쓸어버리자!
힘내라고!
"죽어랏, 애송이!"
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쾅쾅쾅쾅!
"모두 피해!"
"아아아악!"
"피해라!"
별호 그대로 적수노사는 수법(手法)을 익힌 고수였다.
수룡검을 향해 몸을 날리는 순간, 그의 양손이 붉게 물들었다.
수강(手剛)이다.
이에 맞서 수룡검도 출검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그의 검에 적수노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짙은 검강이 휘감겼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수강과 검강의 충돌.
그 폭발은 엄청났다.
적아를 가리지 않고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몸을 피해야 할 정도였다.
두 절정 고수의 싸움은 잠시의 여유도 없이 처절하고 또 무지막지하게 이어졌다.
콰콰콰콰쾅!
일백 합.
수룡검의 몸 몇 군데에 상처가 생겼다.
콰콰콰콰콰콰쾅!
이백 합.
이미 연회장은 초토화가 되었다.
수룡검의 입과 코에서 검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내상까지 당한 것이다.
콰콰콰콰콰콰쾅!
쾅쾅쾅!
콰당.
수룡검의 몸이 열 장을 날아가 벽까지 부수며 바닥을 굴렀다.
몸에 성한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운 상태다.
반면, 적수노사는 땀을 비 오듯 쏟고 호흡이 거칠지만 작은 상처 하나 없다.
수룡검은 그때까지 아무 미동도 없었다.
숨을 쉬고 그 기운이 느껴지는 게, 죽거나 혼절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새끼. 내 몇 년간 화산파의 추격을 피해 숨어 살더라도 오늘 네놈의 숨통은 반드시 끊어 버리고 말겠다. 대신…… 그 수고의 대가로 네 여동생은 내가 데리고 가야겠다, 큭큭. 남자 혼자 숨어 살면 궁상맞지 않겠느냐? 큭큭큭큭."
적수노사는 수룡검을 조롱했다.
천예휘를 언급하며 음흉한 웃음까지 대놓고 흘렸다.
그런데 그때!
미동도 하지 않던 수룡검의 어깨가 들썩였다.
이내 팔이 움직이고 다리가 움직이더니, 천천히 그가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섰다.
천무휘가 적수노사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엄청난 분노가 그 두 눈을 통해 뿜어져 나왔다.
아니, 곧 수룡검의 분노가 그의 온몸을 지배하고 터져 나왔다.
수룡검이 극대로 분노한 것이다.
"용서하지 않겠다. 죽여…… 버린다."
그는 검을 불끈 쥐고 무지막지한 살기까지 마구 뿌려 대며 적수노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잠깐, 잠깐만.
아! 그런데 말이다.
이 장면, 어디에서 보지 않았는가?
내가 두 번째 회귀했을 때였다.
구산사괴가 쳐들어왔고, 사부는 나를 장서실에 숨겼다.
나는 장서실에 숨어 사부가 구산사괴에게 끔찍하게 고문당하는 현장을 목격하며 숨죽여 울었다.
그러다 극도로 분노하였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장서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정말 얼마나 분노했는지, 온 천하를 모두 파괴해 버릴 것 같은 힘이 생긴 느낌이었다.
난 그때 그 분노로 인해, 잃어버린 내 힘을 모두 되찾은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뭐, 결과는 다들 알 테고.
뒈지게 맞고 결국 뒈졌다.
무림 영웅전 같은 거 보면, 주인공이 극도로 분노해서 각성하고, 초인의 힘을 얻어 악당을 물리치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현실은 아니다.
아니, 그 반대다.
사실 광천마제 시절 수룡검이 나와 싸울 때, 마지막 순간 그렇게 극도로 분노하지 않았으면 그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그 덕분에 내가 신검합일을 깨치고 절정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지만 말이다.
무인에게 분노는, 오히려 치명적인 약점이 될 뿐이다.
"죽인다. 죽여 버린다! 으아아아아아악!"
수룡검이 괴성을 지르며 적수노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게 끝인 것 같다.
이번 회귀는 글렀다.
빨리 죽고 다시 시작해야겠…… 어?
뭐지?
내 몸.
내 몸이 이상하다.
힘이…… 갑자기, 갑자기 엄청난 힘이 내 몸속에서 마구 솟구친다.
심지어 철벽과 같던 절정의 벽, 깜깜해 도저히 그곳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절정의 경지가 보이고 만져진다.
뭐야?
끊임없이 대지의 기운이 내게 쏠리고 있다.
당장 검을 휘둘러 신검합일의 묘리를 마구 쏟아 내고 싶다.
나…… 각성한 거야?
각성했다.
힘을 되찾았다.
잃어버린 무공, 그걸 되찾는 방법.
이거였어?
와! 미친.
내가 아니라, 수룡검이었다.
그가 극도로 분노해 모든 힘을 표출해야만 내가 각성을 할 수 있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