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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43화 (43/245)

43화

"방금 추하객잔의 점소이 셋이 죽은 것까지 모두 확인했다! 죄인들은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칠검문주였다.

그는 당당했고 거침이 없었다.

일이 틀어진 걸 알고, 급히 점소이 셋을 죽였나 보다.

아니, 어쩌면 이런 상황까지 이미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놈들을 너무 만만히 봤다.

놈들도 목숨 걸고 이 음모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때, 억울한 누명에 울컥한 의제가 앞으로 나서려 했다.

그런 그를 내가 제지했다.

"나서 봐야 소용없어. 저들은 이미 우리를 강도와 살인범으로 만들어 놓았으니까."

"휴우, 결국 우리 목을 노리겠다는 거군요."

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의제에게, 또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의제는 인상을 한 번 크게 구기더니 고개를 뒤로 돌렸다.

"한 형."

한해북이 그런 의제의 뒤로 바짝 다가왔다.

"이건 우리 우각당 일이오. 싸움이 시작되면 혼란한 틈을 타 떠나시오."

"미친. 일 년 전에도 제멋대로더니, 그 성격은 아직도 여전하군."

"한 형! 목숨이…… 우리 우각당 일 때문에 한 형까지 목숨을 잃을 필요는 없지 않소."

"내 목숨 내 마음대로 할 것이오. 그러니 곽 형은 어떻게 싸워 이길지나 생각하시오."

한해북, 괜찮은 놈이라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괜찮네.

남자는 뭐니 뭐니 해도 의리지.

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걸 의제가 깨우쳐 주었다.

"이길 가능성 따위는 없소. 저들에게 수룡검이 있는 이상."

"……."

더 이상 아무런 대화도 이어지지 않았다.

의제도 침묵했고, 한해북 역시 입을 꾹 닫았다.

"순순히 오라를 받겠다는 뜻이냐? 왜 대꾸가 없는 것이냐? 투항할 것이면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칠검문주의 외침이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그 누구도 꿈쩍하지 않았다.

아향과 그 아비의 숨죽인 흐느낌 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어차피 죽는 거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하고 죽는 게 낫지 않겠는가?

"의제."

"네, 형님."

"우리가 싸워 이길 가능성, 정말 아예 없어?"

"네."

"투항하면 어떻게 되지?"

"죽습니다. 뇌옥에 갇혀 갖은 고문과 수치를 다 당한 후 고통스럽게 죽을 것입니다."

"싸우면?"

"깨끗이 목이 잘려 죽겠죠."

"결국 죽는다는 소리네?"

"네."

"다른 가능성은?"

"없습니다."

"음, 알았어. 미안하군."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형님. 형님 아니었으면, 이렇게 싸워 보지도 못하고 색마로 몰려 죽었을 텐데요."

"내 얼토당토아니한 말을 아직도 믿고 있군."

"네, 형님의 말이니까요."

"의제."

"네, 형님."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또 자네와 의형제를 맺을걸세."

"저도 마찬가집니다."

"한 무사님."

"네, 마 도사님."

"함께하겠습니까?"

"풉, 다음 생에요?"

"네."

"그때는 위장이 아닌 진짜 마 도사님의 호위 무사가 되겠습니다."

"고맙소."

두 사람과 말을 마친 나는 빠르고 간략하게 광마일기에 상황과 내가 할 일에 대해 기록했다.

그런 후 긴 한숨을 내쉰 후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의제가 그런 나를 말리려 손을 살짝 뻗었다가, 이내 내려놓았다.

난 우리와 적들의 중간 지점까지 간 후에야 걸음을 멈추었다.

"음모가 있었습니다."

"음모? 지금 강도에 살인까지 저지른 놈이 음모를 운운해? 누가 사파 아니랄까 봐, 이 상황에서도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냐!"

칠검문주가 나를 향해 호통쳤다.

하지만 나는 무덤덤한 얼굴로 수룡검을 바라보았다.

그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난 다시 천예휘를 보았다.

간사하고 사악한 계집.

하지만 지금은 연기를 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것을 하기 위함이다.

"천 소저, 그대와 연관된 음모가 있었습니다."

"나?"

살짝 놀라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되묻는 계집.

난 또 한 번 사부 흉내를 살짝 내보았다.

뭔가 좀 있어 보이게, 현오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려 계집을 본 것이다.

일단 칼을 휘둘러 검기나 검강을 뿌려 대면 사악해 보이는 게 맞지만, 그러기 전에는 사부처럼 진짜 도사 분위기를 낼 수 있다.

뭐, 내공이 없어서 그것도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사부의 제자 아니겠는가.

아무튼 약간은 통한 것 같다.

"나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이죠?"

"휴우, 모두가 알아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입니다. 천 소저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더러 그쪽으로 오라는 말이에요?"

난 또 한껏 분위기를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나에게 다가오려 했는데, 수룡검이 그런 천예휘를 제지했다.

날 한가득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수룡검이었다.

난 깊은숨을 내쉬며 그런 수룡검과 천예휘를 향해 말했다.

"무공 같은 것은 익히지 않은 도사입니다. 무기도 없습니다."

이내 수룡검이 나를 자세히 관찰하는가 싶더니, 천예휘의 손목을 놓아 주었다.

그렇게 천예휘가 내게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내게 내공 같은 것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일말의 경계심도 없는 얼굴이었다.

또한 수룡검이 허락한 일이기에, 칠검문주 등은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막지 못했다.

결국 천예휘가 내 한 발자국 앞까지 다가왔다.

"천 소저, 무공을 익혀 귀가 밝은 사람이 많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천 소저의 귀에 진실을 밝혀도 되겠습니까?"

"어? 아, 네. 그래요."

그녀가 반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또 그녀에게 반 발자국을 다가간 후, 그녀의 귀로 얼굴을 바싹 붙였다.

순간 움찔하였지만, 궁금증이 더 컸던 모양이다.

나를 향해 머리를 바싹 들이미는 그녀.

아니, 계집.

난 나직한 목소리로 귓속말을 했다.

"찢어 죽일 년."

화들짝 놀라 내 입에서 자신의 귀를 떼는 천예휘.

난 곧바로 손바닥을 활짝 펴 휘둘렀다.

찰싹!

아니다.

그 소리가 아니다.

퍽!

맞다.

내가 얼마나 강하게 손바닥을 휘둘렀는지, ‘찰싹’이 아닌 ‘퍽’ 소리가 났다.

심지어, 일류 무사의 경지인 천예휘가 크게 휘청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아무리 계집이 일류라 해도, 완전히 방심한 데다 초근접 상태였다.

비록 내공이 없다 하지만, 내 무학의 깊이와 경지는 감히 천예휘 따위가 범접할 것이 아니다.

그렇게 완벽한 기습 한 방을 성공할 수 있었다.

"큭큭큭큭. 크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쓰러진 상태 그대로, 내 손바닥에 맞은 뺨을 한 손으로 가린 채, 천예휘는 놀란 얼굴로 나의 광소를 쳐다보기만 했다.

아픈 게 아니다.

놀람과 수치, 당황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굴욕적인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라 몸은 물론 뇌까지 정지되어 버린 것이다.

"푸하하하하하하! 맛이 어떻냐, 빌어먹을 계집아! 크하하하하하하하하!"

나의 광소는 계속 이어졌다.

광천마제 시절 내가 어떻게 웃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웃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나는 미친놈처럼 계속 웃고 또 웃고 계속 웃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장내에는 내 웃음소리 외에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의제와 한해북, 그리고 우각당 왈패들까지 다 황당함에 입을 쩍하고 벌려 얼음이 됐다.

수룡검과 칠검문주 등도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그냥 놀란 얼굴만 할 뿐이었다.

그 상황을 가장 먼저 깬 것은 수룡검이었다.

"예휘야!"

천예휘를 부르며 한 번의 도약으로 열 장을 넘어와 쓰러진 천예휘를 품에 안았다.

곧이어 칠검문주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뭣들 하느냐! 저놈을 죽여라! 아니, 때려죽여라!"

곧바로 정도 문파 놈들 수십이 나 한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지르밟고.

많이 맞고 또 많이 맞았다.

그래도 기뻤다.

너무 행복해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퍽퍽퍽!

퍼퍼퍼퍼퍼퍼퍼퍽!

"크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

퍼퍼퍼퍼퍽!

퍽퍽퍽퍽!

"계집아! 아흔아홉 방 중 이제 한 방 갚았다. 아직 아흔여덟 방 남았다고! 푸하하하하하하하!"

이것이 나의 열네 번째 죽음이었다.

맞아 죽으면서 네 개의 글자를 문신할 수 있었다.

이 짓도 계속하다 보니, 이젠 많이 능숙해졌다.

* * *

난 누구?

여긴 또 어디?

이상한 동굴에서 깨어나고 광마일기를 읽고.

"푸하하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하! 난 천재라니까! 푸하하하하!"

한참을 미친 듯 알몸으로 웃었다.

내 몸에 새겨진 문신을 보고 웃은 것이다.

일성장취(一成掌嘴, 귀싸대기 한 방 성공).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죽겠다는 계획이 성공한 것이다.

드디어 내가 계집에게 복수하였다.

‘여자는 때리지 않는다?’

퉤!

내 몸에 칼을 아흔아홉 방이나 꽂은 너는 이미 나에게 여자가 아니다.

그러니 각오해라, 화산검후.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너에 대한 복수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 * *

<<광마일기>>

(상략)

난 왜 수하들에게 내 삶을 모두 왜곡하여 거짓말했을까?

뭐, 이미 당시의 나는 사부와 현화문의 제자가 아닌 광천마제였으니까.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세상이 나를 악으로 규정했으니, 그에 걸맞게 행동하려 했다.

내 삶을 왜곡한 거짓말은 계속 이어졌다.

특히, 화산검후에 대한 거짓말은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한 감이 없지 않다.

아! 그래도 계집이 내 몸에 박아 놓은 아흔여덟 방의 칼빵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사악하고 집요한 계집이다.

사실, 계집이 그럴 만도 하긴 하다.

수룡검과 천예휘 사건.

난 수하들에게 그 사건 역시나 거짓말로 말해 줬다.

수룡검의 비급을 탐해 내가 잔인하게 죽인 후 비급을 갈취했다고 말했다.

또 그런 후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천예휘를 강간했다고도 말했다.

전혀 사실이 아니지만, 난 그냥 그렇게 말했다.

덕분에 이 소문은 빠르게 세상으로 퍼져 나갔고, 어느새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당연히 화산검후도 이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계집이 날 볼 때마다 눈깔이 뒤집혀 칼을 미친년처럼 휘두르는 이유일 테다.

(하략)

* * *

이상하다.

계효보에 대한 기록은 이번에도 없다.

뭐지?

닭대가리가 날 포기한 건가?

아니면 상황이 여의치 않아 나타나지 못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벌써 요계로 넘어갔나?

어쩌면 내가 죽은 후에 나타났을지도 모를 일이지.

됐다.

우선 이번 일부터 확실히 해결하자.

이제 흉수가 누구인지도 알고,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지도 안다.

알몸으로 광천동을 벗어나 사부를 만났고, 삼재검법을 가르치고, 구산사괴를 사부 몰래 죽이…… 남창에 도착했다.

* * *

지난 생에서 추고가 냈던 계책을 내가 낸 것처럼 했다.

지난번보다 일찍 행동했고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한해북도 불러들였다.

아죽의 자백을 들었고, 모두가 잠든 새벽에 몰래 데리고 나왔다.

아향까지 빼돌렸다.

아향은 우각당에 도착해 건강한 모습의 아버지를 보고 오열을 토했다.

아향의 자백까지 들을 수 있었다.

일사천리다.

나와 의제, 아죽, 아향 네 사람은 변용했다.

수룡검에게 가려는 것이다.

수룡검과 천예휘에게 사실을 모두 밝히고, 그들을 우리 편으로 만든다.

칠검문, 풍진방, 쌍창호문 등 정파를 위장한 악인들 모두를 이곳 만리현에서 아예 지워 버릴 생각이다.

나의 거침없는 추진력에 의제는 물론 모두가 나를 놀람과 존경의 눈빛으로 보았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변용한 우리 네 사람이 수룡검을 만나러 막 우각당을 떠나려 할 때.

우각당의 수하들이 모두 몰려나와 우리를 배웅했다.

수룡검과 만나 협상을 마치면, 곧바로 칠검문 등을 치러 갈 생각이기에 모두 무기까지 챙겨 만반의 태세를 갖춘 상태였다.

그 표정과 분위기가 비장하기 그지없었다.

이들의 임시 대표로 한해북이 나섰다.

"도사님, 곽 형, 당호가 소식을 보내오면 즉시 칠검문을 치러 가겠소. 이곳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염려 마시고, 수룡검과 협상에 집중하시오."

"고맙소, 한 형. 한 형 덕분에 더없이 든든한 마음으로 수룡검과 담판을 지으러 갈 수 있소."

의제의 말마따나, 한해북의 도움이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큰 도움이었다.

우각당은 의제를 제외하면 죄다 삼류고, 이류 몇 명이 전부였으며, 무공을 떠나 모두 왈패 출신이기 때문에 일을 맡기기…… 아! 이건 뭐지?

한해북의 고마움에 나도 한마디를 하려는 순간.

등이 화끈거렸다.

등이 화끈거렸는데, 가슴에 뭔가 날카롭고 뾰족한 것이 불쑥 튀어나왔다.

단검이다.

단검이 왜?

정확히 심장을 찔렀군.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어떤 씹새끼가 나에게 암습을 가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죄, 죄송합니다."

두려운 얼굴로 울먹이며 사과를 한 후 곧바로 도망치는 녀석.

추고 이 새끼.

내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형님, 왜 그러십니…… 엇! 칼! 칼이 꽂혔…… 잡아라! 추고를 잡아라! 의원을 불러! 의원! 어서 의원을 불러!"

하! 씨팔.

다 된 줄 알았는데.

저 새낀 뭐지?

계효보는 분명 아니다.

계효보가 나를 이 시점에서 죽일 이유가 전혀 없다.

아! 정신이 혼미해진다.

빠르게 광마일기를 꺼내 몇 글자를 적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쓰러져야 했다.

추고를 쫓는 놈들, 의원을 부르러 간다는 놈들, 여기저기 우왕좌왕 왈패들이 함성과 고함이 모두 먹먹하게 들린다.

진짜 죽을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

"쯧쯧."

나는 죽어 가고 장내는 모두 아수라장이 된 상황.

누군가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이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어서 들릴 수 없는 작은 소리였는데 이상하게 들렸다.

난 죽어 가면서 마지막 힘을 쏟아 소리가 났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두가 헐레벌떡 난리가 나 소리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을 때, 한 명.

우각당의 왈패 중 한 명이 나를 향해 혀를 찬 후, 등을 돌려 천천히 이곳을 벗어나고 있었다.

뒷모습만 봤다.

하지만 누군지 알 것 같다.

시야에서 거의 사라질 때쯤.

놈의 모습이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머리가 닭대가리로 변해 사라졌다.

닭이다.

닭이 우각당 내부에 있었다.

문신, 죽어 가며 가까스로 네 글자를 새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열다섯 번째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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