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야! 상황 파악 안 돼? 지금 마교하고 혈교, 배교, 포달랍궁, 북해빙궁, 야수궁과 태양궁까지 합심해서 우리 중원 무림을 공격하려 한다고! 그걸 내가 막아야 하는데, 젠장! 자금이 있어야지 움직일 거 아냐? 너도 약속했잖아! 무림 수호를 위해 돕겠다고."
"그런 약속한 적 없어."
"야, 아죽. 너 갑자기 왜 그래? 철전 오십 닢이면 무림을 구할 수 있다는데, 그게 그렇게 아까워?"
"난 무림 같은 거 몰라. 그리고 이제 닷새에 한 번씩 너희들에게 주는 철전 오십 닢도 안 줄 거야."
"……."
아죽을 둘러싼 세 명.
아니, 세 놈.
근처 객잔의 점소이 셋이다.
같은 점소이끼리도 저렇게 삥을 뜯어 왔나 보다.
"이 새끼, 우리가 친구라고 해 주니까 진짜 친구라도 된 줄 아나 봐?"
"그러게. 하! 고아 새끼가 조금 어울려 줬더니 하늘 무서운 줄 모르네."
"야, 닷새에 한 번 철전 오십 닢. 그게 그렇게 어려워? 씨팔. 진짜 피바다 한번 봐야 정신 차릴래?"
"우리 무림맹 비밀 무사들이라고, 새꺄!"
"큭큭큭큭."
"큭큭큭."
지들끼리 말하고도 어이가 없었나 보다.
웃는다.
하지만 아죽은 진지하다.
"나 바빠. 갈래."
아죽이 딱 한 걸음을 떼자 세 놈이 그 길을 가로막았다.
"안 되겠다. 너는 정신 교육 좀 받아야겠다. 무림맹 고수인 내가 특별 수련을 시켜 주겠다, 이 새꺄아아아!"
궤적을 아주 크게 해 주먹을 휘두르는 점소이 일(一).
쉬이이이익.
쿠당탕탕탕.
그의 주먹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아죽이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꺾는 것만으로도 그의 주먹을 피한 것이다.
덕분에 점소이 일은 자신의 중심이 흐트러져 홀로 바닥을 세 바퀴나 구르는 꼴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너, 너 이 새끼! 야, 같이 치자."
"그래. 죽어라, 아죽!"
이번엔 둘이 한꺼번에 아죽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껏 상기한 아죽의 얼굴.
호흡도 거칠어졌다.
흥분한 것이다.
하지만 눈은 살아 있다.
점소이 이(二)와 점소이 삼(三)이 동시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것을 초고도의 집중력까지 발휘해 직시한다.
그리고 이내.
쉬이익.
탓!
쿠당탕탕.
아죽이 점소이 이의 주먹을 막고, 달려들던 그 힘을 이용해 발을 살짝 걸어 넘어뜨렸다.
"으아아악."
척척!
퍼퍼퍽!
쿠당탕탕.
점소이 삼은 주먹을 연속으로 두 번 휘둘렀으나, 아죽이 아주 쉽게 또 정확히 막아 냈다.
그런 후 복부를 한 차례, 낭심을 한 차례, 마지막으로 허리를 숙여 괴로워하는 놈의 엉덩이를 발로 냅다 차 버렸다.
"으악!"
점소이 일이삼이 추하객잔 뒷골목에 쓰러져 아픔과 놀람, 혼란함, 두려움 등에 마구 엄살을 피웠다.
이내 아죽이 아무 말도 없이 그런 그들을 내려다보았고, 일이삼은 두려운 기색이 가득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쳐 뒷골목을 도망치듯 벗어났다.
"하!"
털썩.
점소이 일이삼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아죽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큰 한숨까지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짝짝짝짝.
"축하한다, 아죽. 첫 싸움이 일 대 삼이라 살짝 걱정했는데, 완벽하게 놈들을 물리쳤어. 역시 대단해, 내 동생."
"혀엉."
날 보며 무한한 감동의 미소를 짓는 아죽이었다.
* * *
다시 말하지만 나는 천재다.
사부 없이 홀로 무공을 익혀 스물다섯 살에 화경의 반열에 오른 천재.
그런 내가 아죽에게 무공을 가르쳐줬다.
기초와 호신술 개념의 무공이다.
하지만 한때 진짜는 아니었어도 천하제일인까지 했던 내가 이십여 일이나 가르친 결과가 오죽하겠는가.
아죽은 고작 이십여 일 만에 웬만한 삼류 무사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준이 되었다.
"형. 헉헉. 자세, 맞아요? 주먹을 이렇게 지르면 돼요?"
"어? 아! 미안. 잠시 다른 생각을 했네. 다시 해 봐."
"네, 형."
열심히 한다.
점소이 일이삼을 꺾은 후 아죽의 사기는 충천하였다.
자신도 할 수 있다는, 그런 꿈.
이전에는 그 어떤 꿈도 꾸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라 했는데, 이젠 녀석이 꿈이란 걸 꾼다.
그 꿈이 주먹과 발차기에 실려 살아 움직인다.
"좋아. 아주 훌륭해. 이젠 보법 수련 시작."
"네, 형!"
아죽은 아주 이른 새벽에 일어나 또 다음 날 새벽까지 일했다.
추하객잔 주인은 진짜 악덕 주인이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곳 추하객잔에 숙박하며 주인에게 웃돈을 주고 아죽을 내 전담 점소이로 쓰게 되었다.
아죽의 저녁 식사 이후 시간은 오직 나에게 할당된 것이다.
그렇게 아죽에게 기초 무공을 가르칠 수 있었다.
"엇!"
털썩.
"죄송해요, 형. 이 부분에서 발이 자꾸 꼬여요."
"그건 반복 연습밖에 방법이 없어. 될 때까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서 또 해야 해. 그러면 언젠가는 성공하게 될 것이고, 그게 몸에 완전히 배었을 때, 어지간한 왈패는 서넛까지 상대할 수 있을 거야. 할 수 있지?"
"네, 형!"
기운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을 한 후 다시 보법을 밟는 아죽.
이제 삼 일 남았다.
난 아죽의 수련을 모두 봐준 후 그를 은밀히 내 방으로 불렀다.
* * *
"……그렇게 협박과 회유를 해서, 흑흑흑. 형, 정말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엉엉엉."
아죽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흉수는…… 칠검문을 위시한 만리현 정도 문파들이었다.
천예휘에게 마수를 뻗었다가 일부러 실패한 것처럼 꾸민 복면인들도 그들 사람이었다.
아향과 아죽이 목격자가 된 것도 칠검문의 협박 때문이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툭툭툭.
난 죄책감에 오열을 토하는 아죽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됐어. 네 상황에 다른 방법이 없었잖아. 이해해. 그리고 아무 걱정도 하지 마. 이제부터 네 뒤는 나와 우각당이 봐줄 거고, 멋진 객잔도 열게 해 줄 거야. 내가 약속할게. 내일 아침 나와 함께 우각당으로 가자."
"혀어어엉."
아죽은 나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계속 흘려 댔다.
* * *
"아니, 이보시오. 아무리 손님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요?"
추하객잔, 이른 아침.
한참 손님 받을 준비로 바쁘던 객잔 안의 모든 동작이 멈추었다.
추하객잔 주인이 나와 아죽을 가로막으며 마구 화를 내고 있었다.
내 뒤에 살벌한 분위기의 한해북이 있음에도,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잔뜩 흥분해 지랄을 하는 그였다.
"왜? 내가 내 발로 가겠다는데 당신이 무슨 권리로 막아? 방값, 밥값 다 지불했잖아."
"그거 말고. 당신이 아죽을 왜 데려가냐고?"
"뭐, 밀린 품삯이라도 있나? 그럼 얼른 지급해. 갈 길 바쁘니까."
"이 사람이 정말!"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가 눈까지 부라리며 나를 협박하는 모습이었다.
웃기지도 않았다.
"아죽이 제 발로 걸어 나가겠다는데, 당신이 무슨 권리로 막냐고. 그 이유가 합당하면, 내가 아죽을 여기에 남기고 혼자 떠나지."
"그, 그러니까…… 아죽하고 나는 가족이나 마찬가지…….
내가 그의 말을 손들어 제지한 후 아죽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죽은 화난 얼굴로 말했다.
"가족 아닙니다. 가족에게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을 주고, 매일 때리고, 하루 한 시진만 재우며 일을 시키지는 않습니다."
"너, 너 이 새끼! 길거리에서 굶어 죽으려던 고아 새끼를 내가 거두어 지금까지 키워 줬더니! 이제 와 뭐라고? 이걸 콱! 그냥!"
"그 은혜, 지금까지 충분히 갚았다고 생각합니다. 저, 그냥 떠나게 해주세요."
무공을 익히고, 나의 지속적인 격려에 아죽은 이제 과거의 아죽이 아닌 새 아죽이 되었다.
거의 환골탈태급이었다.
그 당당한 대꾸에 객잔 주인이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기까지 했다.
난 그런 주인을 향해 얄밉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들었지? 뭐, 더 할 말 있어? 아님, 우린 가고."
"아죽, 너…… 너 이 새끼…….
상황이 자기 뜻대로 돌아가지 않자 주인은 눈을 부릅뜨고 아죽을 노려보며 낮은 음성으로 윽박지르듯 말을 이었다.
"약속은 지키고…… 가야지. 안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내가 끼어들었다.
"약속? 무슨 약속?"
"그런 게 있다. 제삼자는 빠져."
"아죽과 나는 이제 형제야. 그러니 제삼자가 아니지. 그런데 궁금한데. 무슨 약속인지? 말해 봐, 그 약속이 뭔지."
"……."
주인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냥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노려본 후.
"당신과 아죽. 떠나라. 막지 않겠다. 대신…… 내 장담하는데, 이곳 만리현에 정의가 살아 있음을 꼭 증명하고 말 테다."
"그러시든가."
협박이었다.
보복하겠다는 협박.
난 그런 추하객잔 주인을 뒤로하고, 아죽의 손까지 잡아 환히 웃으며 그곳을 벗어나려…… 어?
추하객잔에 올 만한 손님이 아니다.
그것도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시각, 노인 한 명이 걸어서 들어왔다.
초라한 행색을 보아하니, 나름 고급 객잔인 이곳을 이용하는 손님은 아니고.
그렇다고 거지도 아니다.
궁색해 보이지만, 깨끗이 빤 옷이며 목간까지 한 말끔한 얼굴과 몸 상태다.
뭐지?
객잔 안으로 다섯 걸음 들어와 주변을 살피는 노인.
그렇지 않아도 열불이 터졌던 추하객잔 주인의 화가 그 노인에게 쏠렸다.
"아니, 씨팔! 오늘은 무슨 염병이 연달아 터지는 거야. 뭐 해! 당장 저 거지 노인네 쫓아 버리지 않고!"
"넵!"
추하객잔 주인의 호통에 점소이들이 노인을 향해 다가가려 할 때였다.
"아…… 아빠! 아버지! 아버지!"
소녀의 울음이 터졌다.
깨끗이 닦은 접시를 나르던 아향, 그녀가 아버지를 발견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가 안았다.
"향아, 엉엉엉. 향아, 엉엉엉."
"아버지, 엉엉어. 어떻게 된 거예요? 엉엉.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엉엉."
"병이 다 나았다. 고절한 의술을 갖춘 젊은 신의께서 내 병을 모두 치료해 주셨다. 우리 마을에서 여기까지 내 발로 걸어왔느니라, 향아. 엉엉엉."
"아버지. 엉엉엉. 엉엉어엉."
"가자, 향아. 이제 다시 농사도 지을 수 있다. 내가 농사를 열심히 지어, 내년에는 너를 꼭 좋은 곳으로 시집보낼 것이다."
"아버지, 엉엉엉."
아향과 그 아비는 얼싸안고 한참이나 오열을 토했다.
그 모습에 나는 물론 아죽과 점소이들, 숙수들, 다른 시비들까지 모두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물론, 한 사람만 빼고.
"이런, 가지가지 한다. 오늘 진짜 무슨 날이야! 아향, 너까지 가면 나 죽는다."
주인의 말에 아향이 서둘러 눈물을 훔치고는 다가왔다.
하지만 그 울음은 곧 다시 터지고 말았다.
"아버지께서 일 년 만에 걷게 되셨어요. 엉엉. 아버지께서…… 일 년 만에 걸음을…… 엉엉엉."
"뭐? 와! 씨팔. 나만 나쁜 놈이야? 다 잘되자고 그러는 거 아냐? 그리고 너는 분명 할 일이 있잖아! 약속했잖아!"
"안 한다고, 안 한다고 했어요. 못 한다고요. 그러니 제발…… 가게 해 주세요, 주인아저씨."
"그게 네가 결정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란 거 몰라?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네 아버지도 다 죽어!"
추하객잔 주인은 결국 이성을 잃은 모습이다.
아죽을 억지로 잡아 두려고 할 때도 그렇고, 지금은 더 완강히 아향을 막으려는 모습이었다.
이틀 뒤 있을 음모의 실행을 위해서라면, 최소한 둘 중 한 명은 있어야 할 테니 말이다.
뭐, 다른 사람으로 대신할 수도 있겠지만, 추하객잔 주인이 곤란해질 것은 분명했다.
상대는 칠검문주 등일 테니 말이다.
"아향, 정신 차리고 내 말 똑바로 들…….
쉬이이이익.
퍽!
쿠당탕탕.
가장 멋진 자세로 도약해 날아 차기를 했다.
퍽퍽퍽!
퍼퍼퍼퍼퍼퍼퍽!
벽에 부딪힌 후 바닥에 쓰러진 놈을 연이어 때렸다.
발로 밟고, 차고, 때리고.
오랜 시간 지독한 괴롭힘을 당해 삶의 의지마저 잃어버린 고아 아죽.
아버지를 치료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의 효녀 아향.
놈들은 그것을 이용한 것이리라.
물론, 칠검문주 등이 원흉이지만, 객잔 주인도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때렸다.
그런 다음 또 때렸다.
일 각을 그렇게 두들겨 팬 후에야 내 발길질은 멈추었다.
"불만 있으면 우각당으로 와. 우리 모두 그곳에 가 있을 테니. 알았어?"
얼굴에 피가 범벅이 돼 몸을 잔뜩 웅크린 추하객잔 주인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맞기 싫다는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마 공자님, 저 왔습니다."
추고다.
추고가 그 특유의 예쁘면서도 멋진 미소를 지으며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나보다 아향의 아비가 먼저 반응했다.
"어이쿠, 신의님. 오셨습니까. 아향아, 이분이시다. 이 젊은 신의께서 내 병을 말끔히 치료해 주셨다."
아향과 그 아비는 추고를 향해 허리가 부러지도록 감사 인사를 했다.
그렇게 나, 아죽, 아향, 아향의 아비 그리고 한해북까지 추하객잔을 벗어났다.
* * *
일이 모두 잘 풀렸다.
이제 곧 우각당에 도착한다.
아향의 분위기를 보아, 우각당에 도착하면 그녀의 자백을 듣는 일 또한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유간객잔에서 상황을 지켜보다 합류한 의제도 기분 좋다.
한 달 가까이 함께 일했던 우각당의 수하 녀석들 모두가,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일이 잘 풀렸다는 것을 분위기상 알아채고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우리 스무여 명은 기쁜 걸음으로 우각당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막 산길을 돌아 우각당이 있는 마을에 접어들려 할 때, 그들이 있었다.
우리의 길을 막고 있는 자들.
의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들의 신분을 내게 알려 주었다.
"형님, 칠검문주, 풍진방주, 쌍창호문의 문주와 저자는…… 수룡검 천무휘군요. 그 옆의 여인은 천예휘고요."
또 한 명 있다.
내게 두들겨 맞아 얼굴이 퉁퉁 붓고, 피범벅이 된 추하객잔 주인.
그가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저기, 저 녀석들입니다! 아죽과 아향이 객잔 돈을 훔치는 걸 제가 잡았는데, 저들이 그런 저를 이 꼴로 만들고, 막아서는 다른 점소이 세 명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객잔 돈을 모두 털어 갔습니다! 강도! 살인자들입니다!"
아! 정말.
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