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39화 (39/245)

39화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있어?

"죄송합니다, 손님. 정말 안 돼요."

"은자 다섯 냥. 됐지?"

"정말 안 돼요. 죄송해요."

"열…… 열 냥이다. 특별히 네게 은자 한 냥을 주지."

"손님…….

점소이 녀석이 결국 울상이 되어 버렸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있다니.

추하객잔에 왔다.

오늘이 바로 천예휘 사건이 벌어지는 날이다.

그녀가 묵는 별채가 잘 보이는 방을 잡으려 했다.

안 된단다.

이미 방이 다 차서.

아무 방이라도 달라고 했지만, 빈방이 없단다.

그래서 곱절도 훨씬 넘는 은자 다섯 냥을 부르고, 나중엔 열 냥까지 불렀다.

그런데도 안 된다.

미치겠다.

여기서 하루 묵으며 천예휘 주변을 감시해야 하는데.

조금 더 일찍 올 걸 그랬나?

"손, 손님…….

나보다 더 안절부절못하는 점소이가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부른다.

"다른 객잔에는 여유 있는 방들이 꽤 있을 것입니다. 건너편 유간객잔만 해도 빈방이 꽤 있어요. 죄송하지만, 그곳으로 가 보심이…….

휴우, 점소이가 무슨 죄가 있겠나?

다 내 사정인데.

그래도 꼭 머물러야 한다.

이곳에서.

"점소이 친구, 이름이 뭔가?"

"방청소라고 합니다."

"방씨군. 그래, 청소 친구. 이건 내 성의니 받아 두고…….

난 방청소 점소이에게 은자 한 냥을 손에 꼭 쥐여 주고, 또 다른 제안을 했다.

* * *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우면 된다.

추하객잔에 빈방이 없다고 어디 나 한 사람 누울 자리 없겠는가?

점소이 둘과 숙수 둘, 그렇게 총 넷이 지내는 방을 하루 빌렸다.

은자 아홉 냥을 썼다.

미친.

우리 사부가 탁발을 열심히 해 준 덕분에 전낭이야 아직 두둑하지만, 많이 아깝다.

하지만 제대로 잡았다.

냄새도 나고 불편하지만, 그건 조금도 문제가 안 된다.

오히려 천예휘가 묵는 별채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비싼 손님을 살펴 즉각 즉각 대응하려고 점소이가 묵는 방을 이렇게 정한 것 같다.

최상이다.

이제 한 시진도 남지 않았다.

그것이 색마가 됐건 무엇이 됐건, 흉수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흉수가 누군지만 알아낸다면, 수룡검과 나 사이에 얽히고 꼬인 오해와 억울함을 모두 풀 수 있으리라.

이 내용까지 광마일기에 모두 적고, 다시 창밖 건너편 천예휘의 별채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나의 열세 번째 죽음이었다.

* * *

난 누구?

여긴 또 어디?

이상한 동굴에서 깨어났다.

광마일기를 읽었다.

아! 돌겠네.

도대체 어떻게 죽은 거지?

거의 실시간으로 광마일기를 적었는데.

없다.

모르겠다.

누가?

왜?

어떻게?

날 죽였을까?

전혀 모르겠는 것만은 또 아니다.

처음부터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추하객잔이 손님 많은 객잔인 것은 맞다.

하지만 하루 은자 한두 냥이면 충분히 괜찮은 방에서 묵을 수 있는 객잔이다.

그걸 내가 은자 다섯 냥, 또 열 냥에다가 점소이에게 따로 은자 한 냥이라는 덧돈까지 불렀음에도 방을 잡을 수 없었다.

대화와 흥정은 방청소 점소이와 나 둘만이 했다.

하지만 이미 객잔 주인을 비롯한 다른 점소이들과 몇몇 손님이 그런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말이 안 된다.

분명 추하객잔에도 무언가 있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내가 죽었을 것이고.

아! 돌겠네.

또 삼 년을 기다려야 한다.

뭐, 사부랑 초향 그리고 작은 사부와 생활하고 시간을 보내는 일은 즐겁지만, 좀 그렇긴 하다.

몸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문신은 따로 없다.

이번에도 닭대가리를 못 만난 건가?

광마일기에 놈에 대한 기록도 없다.

난 여전히 진짜 일기는 씹어 먹고, 가짜 일기를 남기고 있다.

딱히 숨길 것이 크게 없어, 진짜 일기를 그냥 남기기도 하고.

우선 닭대가리는 나중에 다시 생각하자.

밖에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광천동에서 알몸인 상태로 광마일기의 무공 부분을 읽었다.

이젠 끝까지 다 읽지 않아도, 보는 순간 즉시 그 모든 것을 익히고 깨달을 수 있다.

여전히 단전과 내공은 없지만 말이다.

알 두 쪽을 덜렁거리며, 광마일기의 지도를 따라 집으로 향했다.

사부에게 삼재검법을 가르치…… 강서 남창에 도착했다.

* * *

이번엔 많이 일찍 왔다.

한 달도 더 전에 남창에 도착했다.

의제와 의형제를 맺고, 왕만두를 흠씬 두들겨 팬 후 죽였다.

왕만두의 악행을 내가 밝혀내자, 나에 대한 의제의 신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덕분에 의제에게 앞으로 있을 일을 그럴듯하게 둘러댄 후 함께 행동할 수 있었다.

혼자 안 되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우각당 전체를 동원한 것이다.

원래 나쁜 짓을 하던 놈들이라 그런지 감시나 미행, 추적, 거짓말, 뻔뻔하게 버티기, 약점 찾기, 공갈하기, 협박하기 등등에 매우 능숙했다.

일단 손님이나 행인을 가장한 감시자들을 추간객잔에 돌려 가며 여럿을 붙였다.

특히 추간객잔 주인에 대한 감시에 집중시켰다.

분명 내가 은자 열 냥을 불렀으면, 부리나케 달려와 없던 방이라도 만들어 줬어야 할 주인이다.

하지만 그는 들었음에도 못 들은 척했다.

아주 강하게 의심이 든다.

그다음은 광마일기에 적혀 있는 목격자 두 명.

시비 아향과 점소이 아청에게는 전담 감시자를 붙였다.

또 추간객잔 주인과 더불어 그들에 대한 뒷조사도 시켰다.

그렇게 모든 지시를 내리고, 나와 의제는 추하객잔의 건녀편, 지난번 방청소 점소이가 말했던 유간객잔에 임시지휘본부를 꾸렸다.

그냥 추하객잔이 잘 보이는 이 층을 통으로 빌린 것이다.

"이 거리는 우각당에서 관리하는 곳이 아니라고?"

"네, 형님. 남창 만리현은 양분되어 있습니다. 객잔과 상점이 밀집해 있는 이곳 거리는 정도 문파 녀석들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저희 우각당은 여기서 조금 떨어진 기루 거리와 상단 구역을 맡고 있습니다. 관리 영역은 정도 문파 놈들이 더 넓지만, 수익 면으로 봤을 때는 우리가 그들의 두 배가량 됩니다."

"정도 문파라면?"

"개나 소나 칼 한번 잡아 봤다고, 무슨 문이니 방이니 파니 하고 문파를 개파하고 그런 실정입니다. 형님 앞에서 이런 말 하긴 조금 창피하지만, 이곳 만리현에서는 제가 최고수입니다."

"우각당 하나와 다수의 정도 문파 대결 구도로 보면 되겠군."

"네. 그렇습니다. 그중에서도 칠검문, 풍진방, 쌍창호문 세 곳이 제법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곳이죠."

광마일기에 언급된 것은 칠검문이다.

천예휘 사건의 전말에 대해 설명했던 게 바로 칠검문주였다.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유력한 용의자다.

아니, 가장 유력한 용의자 중 한 명이다.

의제와의 대화를 통해 더더욱 그 의심이 짙어졌다.

천예휘 사건을 조작하고, 흥분한 수룡검을 이용해 의제와 우각당을 없애 버리면, 이곳 만리현은 모두 그들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 그대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

천예휘 사건의 조작을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칠검문을 비롯한 정도 문파 놈들이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천예휘의 미모를 탐한 색마가 흉수일 가능성 역시 그에 못지않게 높고 강하다.

우선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된다.

우각당의 힘만으론 칠검문, 풍진방, 쌍창호문을 모두 감시할 수는 없다.

추하객잔과 객잔 주인, 그리고 아향과 아죽에 대한 감시가 우선이다.

* * *

"보고드리겠습니다, 당주님."

뒷조사를 시켰던 우각당 수하가 이틀 만에 돌아왔다.

이들은 사파고 기루 거리를 관리하고 있다.

하오문과 밀접한 관계인 것이다.

곧 그가 하오문에서 수집해 온 내용을 요약해 나와 의제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보고하라."

의제의 답에 그가 보고를 시작했다.

"추하객잔 주인. 십 년 전 외지에서 왔는데, 탐욕이 많은 인물입니다. 작은 노점의 소면 가게를 시작으로 사업을 벌여 오 년 만에 지금의 추하객잔을 열었습니다. 평소 칠검문주, 풍진방주 등 정도 문파 수장들과 매우 가깝게 지내며, 주기적으로 돈까지 바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수하의 보고가 이어졌다.

특별히 의심 가는 점은 없다.

이곳 거리의 객잔 주인이나 상점 주인들 모두가 칠검문주 등과 가깝게 지낸다.

그들에게 잘 보여야 장사도 잘 할 수 있으니, 뇌물을 준다는 것 역시 특별할 것이 없다.

"이상입니다. 시비 아향에 관한 보고입니다. 현재 열일곱 살로 작년부터 추하객잔에서 별채의 귀빈을 전담으로 시중드는 시비로 일했습니다. 현재 천예휘가 묵고 있는 별채의 전담 시비입니다. 대단한 효녀로 알려졌고, 추하객잔에서 일하게 된 것 역시 작년부터 병으로 누운 아비의 약값을 벌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요 며칠 그녀를 감시한 녀석들의 말에 의하면, 사흘 전 집에 다녀온 후부터 매우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며 눈치를 많이 살핀다고 했다."

"네, 당주님. 그녀의 집은 반나절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열흘에 한 번꼴로 다녀온다고 합니다.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최근 그 아비의 병이 매우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음, 그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겠군."

이건 의제의 말이 맞다.

최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오비이락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아향은 병을 앓고 있는 아비에게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

수하의 보고는 조금 더 이어진 후 점소이 아죽으로 넘어갔다.

"아죽에 대한 보고입니다. 고아 출신으로 아홉 살 때 추하객잔 주인이 노점을 운영할 때부터 거두어 지금까지 점소이로 고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열여섯 살로 근면 성실하여 점소이 일을 하면서 틈틈이 숙수들에게 요리까지 배웠는데, 그 실력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다만 추하객잔 주인이 품삯을 턱없이 적게 준다고 합니다."

"얼마나 주는데?"

"월 품삯을 은자도 아닌 철전으로 지급하는데, 서른 닢도 안 되는 철전을 매달 지급한다고 합니다."

"도둑놈이군. 이어서 계속."

"넵. 이건 본 당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내용입니다. 왕삼, 만삼, 두삼을 고문하다가 알아냈는데, 아죽에 대한 괴롭힘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그리고 지독하리만큼 악질적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구타와 갈취, 협박은 물론, 가끔은 성 착취까지…….

"퉤! 왕만두 이 개새끼들, 더 고통스럽게 죽였어야 했는데."

의제가 매우 화가 나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수하는 그런 의제의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보고를 이어갔다.

"문제는 그런 아죽에 대한 괴롭힘이 비단 왕만두 놈들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또 있어?"

"넵. 그것도 아주 많이 있었습니다. 추하객잔 주인도 그러했고, 다른 점소이도 동참했으며, 몇몇 추하객잔의 단골손님도 확인했습니다. 그중 일부는 정도 문파의 무인 놈들이었습니다."

"하! 진짜 미치겠네. 그 어린 게 무슨 큰 죄를 저질렀다고 다들 지랄들일까."

의제는 분노를 쉬이 삭이지 못할 정도로 화가 많이 나 보였다.

대신 내가 보고하는 수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곳에서 아죽을 감시하는 자들의 말에 의하면, 아죽 역시 예전보다 훨씬 더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며 눈치를 많이 살핀다고 하였소. 아향처럼 말이오. 그에도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오?"

"네, 도사님. 말씀하신 부분도 다각도에 걸쳐 조사했지만,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음, 알겠소."

이후 수하의 보고는 조금 더 이어졌다.

그가 자리를 떠난 후 나와 의제는 사건을 정리하고 용의자를 좁혀 보았다.

가장 유력했던 왕만두는 죽었다.

그런 후 사건이 발생했으니, 그들은 흉수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세 가지 가능성이 남는다.

첫째는 천예휘의 여성을 탐한 색마.

사실 이 경우, 일은 매우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냥 때려죽이면 된다.

둘째는 칠검문을 비롯한 만리현 정도 문파의 음모.

이를 해결하려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마 상당한 위험과 희생을 감수해야 할 것.

최악의 경우 만리현에서 우각당과 정도 문파 간의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

그래도 분명 이 경우라면 해결 가능하다.

셋째는 상기 언급한 두 가지 모두가 아닌 제 삼의 흉수.

이게 제일 문제다.

만약 지금까지 내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제삼의 흉수가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첫째나 둘째일 가능성이 거의 구 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상황 파악은 모두 마쳤다.

앞으로의 계책을 세우고 실행하면 된다.

의제에게 좋은 계책이 있는지 한번 물어봐야겠다.

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의제를 향했다.

"형님, 이제 좋은 계책만 세워 이행하면 흉수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계책을 세우셨습니까?"

곽우적, 이 녀석.

언제부터 이렇게 민첩했지?

선수를 빼앗겼다.

내가 물어보려고 했는데.

의제의 물음에 난 눈만 연신 껌뻑껌뻑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의제 역시 그런 나를 보며 눈만 껌뻑껌뻑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바라보며, 눈만 계속 껌뻑껌뻑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기만 했다.

일 각, 한 식경, 그리고 한 시진이 지났다.

계속 서로를 쳐다보며 눈만 껌뻑껌뻑했다.

이것이 바로 천하제일 단순 무식과 천하제이 단순 무식이 만나 계책이란 것 세울 때의 광경이었다.

"형님?"

"응? 왜?"

"계책……?"

"응, 어. 왜? 뭐?"

"도움을 청할까요?"

"누구 있어?"

"제 수하 놈 중에 제법 먹 좀 갈아 봤다는 녀석이 있습니다."

"뭐 해? 어서 불러."

"네, 형님."

잠시 후, 추고라는 녀석이 들어왔다.

열아홉 살의 미소년과 미남을 오가는, 예쁨과 멋짐이 아직 공존하는 그런 녀석이었다.

여자들한테 인기 많게 생겼다는 뜻이다.

기생오라비처럼.

난 녀석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