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
38화
<<광마일기>>
(상략)
-계효보 작(作)
(중략)
그렇게 너와 나는 허심탄회하게 긴 대화를 나눴어.
(중략)
우리는 이제 서로를 이해하고 돕기로 했어.
꼭 기억해 주길 바라.
(중략)
네가 죽기 전에 꼭 기록해 달라고 해서 이 내용도 추가한다.
천예휘 사건의 흉수.
우각당의 왕삼, 만삼, 두삼.
이름에 ‘삼’ 자가 모두 붙어, 우각당에서는 삼삼(三三)이라고 부르고 있어.
네가 처음 회귀했을 때, 너를 죽인 것도 그놈이야.
처음 너를 죽였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너를 항상 이곳에 버리고 갔어.
첨목산 비야골 끝자락.
너 말고도 많은 이들을 죽였나 봐.
여기저기 사람의 유골이 많이 보여.
(중략)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항상 네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고, 네가 죽을 때마다 사과했어.
그런데 이제 네가 나를 이해해 준다니, 고마움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몰라.
우리 앞으로도 서로 도우며……
(하략)
* * *
완벽한 성공이다!
놈이 광마일기의 가짜 일기에 속았어.
심지어……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찢어 씹어 먹었던 광마일기가 모두 복원됐다.
푸하하하하!
이럴 줄 알았어.
역시 엄청난 기물이고 신물이었어.
그리고 문신.
네 글자가 있다.
골반과 옆구리 중간 부분.
아계상기(我鷄相欺, 나와 닭은 서로 속인다).
난 각혼필을 꺼내, 새로 새긴 네 글자 위에 멋진 그림을 그렸다.
물론 이 내용을 모두 광마일기에 기록한 후 그것을 찢어서 씹어 먹었다.
큭큭큭큭큭.
재밌게 돌아가는군.
그런데, 닭대가리야.
이 싸움의 주도권, 이젠 내가 쥔다.
* * *
이름 모를 동굴에서 깨어났다.
광마일기를 읽었다.
배꼽을 잡고 한참이나 동굴 바닥을 굴러다녔다.
광마일기에 그려진 지도를 보며 집으로 뛰어갔다.
알몸으로 알 두 짝을 사정없이 덜렁거리며 뛴 뜀박질이었다.
사부를 만나고, 사부에게 삼재검법을 가르쳐 주었다.
구산사괴가 찾아왔고, 용서했다.
그런 후 사부 몰래 죽였다.
절강 항주로 가 무적 할매와 초향을 만나고, 사부는 그곳에 머물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신가산에 갔다.
닭대가리 새끼는 나와 심토만력근을 나눌 마음이 없나 보다.
잔뿌리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귀정사로 가서 진공 스님을 만났다.
이미 절강 항주를 떠나기 전 사부가 흔쾌히 허락했기에, 구배지례를 하고 작은 사부로 모셨다.
감동의 눈물을 마구 흘리며 기뻐하면서도, 왜 본인이 큰 사부가 아닌 작은 사부냐고 묻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작은 사부에게 또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
무리(武理), 무학(武學)의 양만큼은 이미 천하의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강서 남창으로 떠났다.
* * *
초라한 봉분이었다.
하지만 정갈한 봉분이었다.
누군가 꾸준히 정성스레 관리한 게 분명하다.
난 그곳에서 제사 치를 준비를 마치고 그를 기다렸다.
반 시진 후, 저 멀리서 산을 오르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의제 곽우적.
녀석을 보니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쳤다.
살아 있는 녀석을 보는 것만으로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녀석이 이런 내 모습을 보기 전, 나는 몸까지 돌려 눈물을 모두 닦아 낸 후 마음을 간신히 추스를 수 있었다.
"뉘십니까?"
"우선 제사부터 지내고 이야기를 나눕시다, 형제."
난 정성스레 제사를 지내 주었다.
곽우적도 아무런 의심 없이 나와 함께 부친의 묘에 절을 하며 제사를 지냈다.
그렇게 제사가 마무리되고.
"아직 어느 도사님이신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의형제 맺지 않겠소?"
뜬금없는 내 제안.
녀석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흑도 무리의 우두머리란 걸 알고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흑우당의 곽우적 당주. 맞소?"
"그렇습니다."
"대도곽가의 후예."
"그것까지 알고 있군요."
"무림의 관례대로 형과 아우를 정합시다. 다만, 내가 내상을 입어 내공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진심이십니까? 저와 의형제를 맺자는 제안이오."
"난 그대가 마음에 드오. 심장이 마구 뛸 정도로."
"……?"
"오해는 마시오. 남색을 밝히는 도사는 아니니."
녀석이 피식 웃는다.
"진심이시군요."
"그렇소."
"제 무공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부족한 내공입니다. 내공을 서로 사용하지 않으면 저에게 많이 유리하다는 뜻입니다."
"상관없소. 누가 형이 되든. 그대와 형제가 된다는 것만으로 나는 더없이 기쁘오."
"양보하지 않겠습니다."
"오시오, 형제."
역시나 곽우적에게는 이런 방식이 통했다.
나와 녀석은 그렇게 다시 의형제가 되었다.
당연히 내가 형이고 녀석이 동생이다.
참고로 의제가 나보다 네 살 더 많다.
* * *
"끌고 와라."
"넵!"
우각당 창고.
말이 창고지, 줄곧 사람을 가두거나 고문하는 장소로 쓰였던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곽우적의 명령에 이미 잡혀 온 왕삼, 만삼, 두삼이 포승줄에 묶여 끌려왔다.
"당주님, 데리고 왔습니다."
놈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었다.
이미 잡히기 전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이며 몸이며 성한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이런 방식만큼은 사파나 흑도가 확실히 마음에 든다.
"시작하시게, 아우."
"네, 형님. 놈들을 족쳐라!"
"넵!"
이들의 고문 방법은 유구한 역사답게 매우 고매하다.
그냥 두들겨 패는 것이다.
퍽퍽퍽!
퍽퍽퍽!
"다 말하겠습니다!"
퍽퍽퍽!
"살려 주십시오, 말하겠습니다!"
퍼퍼퍼퍽!
"제발, 제발 말할 기회를…… 으악!"
잠시 후, 우린 놈들의 자백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입니다, 형님, 아니 당주님. 제발 믿어 주십시오. 추하객잔을 비롯한 몇 개의 객잔 점소이들을 협박해, 그곳을 찾은 여자 손님의 음식이나 술에 미혼산이나 음약을 탄 후 몹쓸 짓을 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천예휘라뇨? 수룡검이 남창에 왔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곳에 머무는지는 몰랐습니다. 억울합니다!"
쾅.
그때였다.
창고의 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한참 전에 의제의 명령을 받고 첨목산 비야골을 다녀온 우각당의 수하가 돌아왔다.
"당주님, 확인했습니다. 헉헉."
그는 급하게 달려온 듯, 아니면 많이 놀랄만한 것이라도 봤는지 숨을 헐떡대며 얼굴까지 창백했다.
"어땠느냐?"
"유골이…… 최근 죽은 것으로 보이는 시체까지…… 잠깐 확인한 것만 스무 구가 넘습니다. 흩어져 있는 유품으로 보아, 대부분 여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참담한 표정의 곽우적.
그가 나와 눈을 마주했다.
난 그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을 참수해라."
"넵!"
"살려 주십시오!"
"당주님! 억울합니다!"
"살려 주세요!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왕삼, 만삼, 두삼.
셋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면서 끝까지 절규하며 애원했다.
"잠깐!"
내가 손까지 들며 놈들을 끌고 가는 우각당 수하를 제지했다.
다들 의아한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왕삼, 만삼, 두삼만이 죽었다 살아난 얼굴을 할 뿐이었다.
난 그렇게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웃고 있는 놈들에게 다가갔다.
"감, 감사합니다, 도사님."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협."
놈들은 감격인지 아니면 안도한 것인지, 웃으면서 마구 눈물을 흘려 댔다.
그리고 나도 그들을 향해 웃어 줬다.
퍽퍽퍽!
발로 한 놈씩 찼다.
시작일 뿐이다.
퍽퍽퍽!
퍼퍼퍼퍼퍼퍽!
퍽퍽퍽퍽!
퍼퍼퍼퍼퍽!
아주 지랄맞게 때리고 또 때리고 계속 때렸다.
내가 얼마나 미친놈처럼 놈들을 때렸는지, 다른 이들은 입만 쩍 하니 벌리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한 식경이나 놈들을 실컷 두들겨 팬 후에야 발길질을 멈추었다.
"형, 형님, 괜찮으십니까?"
내 상태가 오락가락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아우, 못 보일 꼴을 보여 미안하네. 그래도 복수는 해야지."
나를 두 번 죽이고 야산에 버린 복수다.
"네? 복수요? 저놈들과 만난 적이 있으십니까?"
"아, 그게 아니라. 하하. 저놈들에게 유린당하고 죽은 여인들의 원한을 풀어 주려는 복수, 뭐 그런 것 말이네."
"아, 네. 여봐라."
"넵!"
"저놈들 그냥 죽이지 말고, 최대한 고통을 준 후 죽여라!"
"넵!"
"살려 주십시오! 엉엉엉!"
셋은 그렇게 다시 지옥의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창고에는 곽우적과 나 둘만이 남게 되었다.
잠시 후 의제가 씁쓸하면서도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형님, 부끄럽습니다."
"자네 잘못이 아니질 않은가? 난 오히려 과감히 그들을 처벌하는 자네의 모습에 크게 감동하였네."
"휴우, 그래도 첫날부터 형님께 저런 수하 놈들이나 보여 드리고…… 형님 아니었으면 저들이 앞으로 얼마나 큰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을지도 모르고요."
"이제 다 끝나지 않았나."
"아, 맞다. 형님, 그럼 수룡검의 여동생은 문제가 없겠죠? 솔직히 아까 형님이 그 이야기를 하실 때는 반신반의했는데, 진실을 알고 나서는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습니다. 수룡검 그리고 화산파를 상대로 우리 우각당이 전쟁을…… 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아무튼 문제없겠죠?"
"하하, 다 끝났대도. 왕만두가 죽었는데, 그 계집에게 무슨 일이 생기겠나? 하하하."
"네? 왕만두요?"
"아, 여기선 삼삼이라고 부른다 했지? 왕삼, 만삼, 두삼. 난 삼삼이란 별명보다 왕만두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 아이고, 악인이래도 죽은 사람 이름 가지고 놀리면 안 되는데. 자, 아우도 따라 하시게."
"뭘요?"
"조금 있으면 귀신이 되거나 벌써 귀신이 됐을 텐데, 이름 가지고 놀렸다고 우리한테 들러붙어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겠는가? 액땜을 해야지."
"아! 역시 형님은 고절한 도사님이십니다, 하하. 그런데 어떻게 액땜해요?"
"퉤. 퉤. 퉤. 세 번."
"……?"
"뭐 해? 얼른 해. 이게 직빵이야."
"아, 네. 퉤. 퉤. 퉤."
"큭큭큭."
"큭큭. 형님, 술이나 하시죠. 그래도 수하였던 놈들이 죽었는데, 잔치를 벌이기는 그렇고. 제 방에 조촐한 술상을 보라 하겠습니다."
"그러세, 아우."
나와 곽우적은 그날 밤이 새도록 술을 마셨다.
기뻤다.
의제와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너무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술에 취해 몇 번이고 녀석을 보면서 울었는지 모르겠다.
감격의 눈물이었다.
더불어 수룡검 문제까지 말끔하게 해결한 기쁨이, 우리의 그날 술자리를 더더욱 취하게 만들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잔뜩 분노한 수룡검과 살기를 마구 뿜어 대는 미래의 화산검후, 그리고 칠검문을 비롯한 몇 개의 문파가 쳐들어왔다.
수룡검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기 여동생이 몹쓸 짓을 당할 뻔했다는데, 천하에 눈깔이 돌아가지 않을 오빠가 어디 있겠냔 말이다.
광마일기에서 읽은 딱 그 모습 그대로였다.
어젯밤, 천예휘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아! 빌어먹을.
왕만두가 흉수가 아니었어?
좆됐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의제의 목이 수룡검에 의해 날아갔고.
난, 씨팔.
이번엔 화산검후의 칼에 제대로 맞아 죽었다.
이것으로 계집의 나에 대한 칼빵이 아흔아홉 번째가 되었다.
죽으면서도 계집에 대한 분노로 쉬이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덕분에 간신히 계집의 칼에 맞아 죽는 것까지 광마일기에 기록한 후 죽을 수 있었다.
이것이 나의 열두 번째 죽음이었다.
* * *
난 누구?
여긴 또 어디?
동굴에서 깨어났다.
이번엔 계효보에 관한 내용이 없다.
문신도 없다.
못 만났나?
모를 일이다.
그리곤 같은 일을 반복했다.
진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번에도 신가산에도 가봤다.
역시나 심토만력근은 없었다.
이제 신가산에 더 갈 필요는 없다.
귀정사로 가 구배지례를 또 했다.
시간은 많았고, 작은 사부를 통해 내 무학과 무리는 더없이 깊고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절정의 벽을 넘지 못한다.
귀정사에 몇 달 머문 후 곧바로 강서 남창으로 향했다.
다시 시작이다.
이번엔 확실히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천예휘의 아구창도 사정없이 후려갈길 것이다.
칼빵만 아흔아홉 방이다.
꼭 원수를 갚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