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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31화 (31/245)

31화

진공 스님은 내 손을 놓칠세라 꼭 잡고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나와 스님은 오랜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자랐고, 사부님과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였다.

거의 두 시진 동안 그런 대화를 나누며, 스님은 내 얼굴에서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잘 커 줬구나. 정말 잘 커 줬어. 이렇게 훌륭한 도사님이 될 줄 알았지만, 그래도 장하고 또 장하다. 허허허."

벌써 스무 번도 넘게 들은 말이다.

진공 스님은 진심에서 우러나와 저 말을 반복하였다.

"스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해후상봉(邂逅相逢)도 중요하지만, 추혼책과 각혼필의 비밀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회포는 이곳에 좀 더 머물며 천천히 풀면 된다.

"허허, 그래. 무엇이 궁금하더냐?"

한없이 기쁘고 행복한 얼굴의 진공 스님이다.

"귀정사에 혹시 신물(神物)이나 기물(奇物) 같은 것도 있습니까?"

"있지. 있다마다. 혹시 원하는 게 있느냐? 내가 다른 스님 몰래 챙겨주마, 허허허."

이 양반 말이다.

분명 잘생긴 것 빼고는 분위기며 뭐며 사부를 꼭 빼닮았는데, 이렇게 뜬금없이 나랑 잘 맞는 구석도 있다.

그러고 보니 진짜 나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설마 내가 친아들 아냐?

소림사에 있을 때 몰래 민가의 여자, 그러니까 우리 엄마랑 눈이 맞아서 나를 싸질렀고.

소림사에서 쫓겨난 이유가 그거야?

큭큭큭큭.

내가 생각해도 비약이 좀 심하군.

"그냥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도사가 신물을 어디에 쓰고, 기물을 또 무엇 하러 가지고 다니겠습니까."

"우리 악치가 참 도사가 맞구나. 유현 그 친구가 우리 악치를 정말 잘 키웠어, 허허허."

"그래서……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음, 가만 보자. 귀정사의 역사가 꽤 오래됐단다. 그래서 사찰의 규모에 비해 보물도 상당히 많지. 우선 가장 보안을 철저히 하는 건, 대불전의 금불상이니라. 오백 년 전에 한 시주가 본사에 시주한 불상인데, 그 값을 책정하기도 어렵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구나."

그거 말하는 게 아닌데.

에이, 모르겠다.

"스님, 혹시 추혼책과 각혼필이란 기물도 있나요?"

인자하고 행복한 미소만 짓던 진공 스님이 순간 놀란 눈을 뜨고 말았다.

"그건 어찌 안 것이더냐?"

"아, 그게…… 사부님께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데. 유현 그 친구한테 말한 적 없는데?"

"네? 아! 그럼…… 어디서 들었더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가만. 내가 말을 했었나? 아니야. 진짜 말한 적 없어. 이건 본사에서도 주지인 나만 알고 있는 굉장히 중요한 비밀이거든, 허허. 진짜 어디서 들은 것이더냐?"

"사부님이요."

"말이 안 된다."

"말 돼요."

뻔뻔해져야 한다.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러자 진공 스님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본다.

의심하는 것이다.

"스님, 지금 우리 사부님 뭐 하는지 아세요?"

"유현? 절강 항주에 머물며 도를 닦고 있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건 그냥 좋게 말한 거고요."

"아니야?"

"네."

"그럼 뭐 하는데?"

"연애요."

"연…… 연애?"

"네. 한창 뜨겁게 사랑 중이에요. 그것도 서른여덟 살의 젊은 미녀랑요."

"……."

뜨악하고 허걱 하고 그냥 순간 진공 스님의 얼굴이 그랬다.

꽤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진공 스님은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입을 떼었다.

"도사가 사랑이라니…… 아니, 유현 그 친구가 연애를 한다니…… 이건 진짜 말이 안 되는…….

"말 돼요. 진짜예요."

"하! 하하하! 이건 웃겨서 웃는 웃음이 아니란다, 하하."

"세상엔 말이 안 되는 일이 참 많아요. 제가 귀정사의 두 기물에 대해 아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말이 되는 일일 거예요."

"그래, 허허. 그렇구나."

진공 스님은 놀란 마음을 잠시 추스른 후에 다시 인자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두 기물이 왜 궁금한 것이더냐?"

"있긴 있어요?"

"악치야, 내 너를 그 누구보다 끔찍이 생각하지만, 이에 관한 일은 철저한 비밀을 지켜야 한다. 할 수 있겠느냐?"

"네. 물론이죠. 목숨을 걸고 맹세할게요."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다. 아무리 소중한 물건이라도, 어찌 사람의 생명에 비할 수 있겠느냐? 더군다나 네 목숨은 더 소중하다."

"네, 스님. 그럼 꼭 지키겠다고 약속드릴게요."

"허허. 그래, 고맙구나."

"있어요?"

"있다."

"지금도 있어요?"

"있지. 일천 년 넘게 본사에서 보관 중이다. 한시도 이곳을 벗어난 적이 없는 기물이란다."

뭘까?

이 시대에 추혼책과 각혼필이 각기 두 개가 되는 건가?

"혹시 볼 수 있어요?"

"그건 어렵겠구나."

"왜요?"

"나도 본 적이 없단다."

"어째서요?"

"그게 본사의 신물 안에 봉인되어 있어서 말이지. 그것도 우리 귀정사의 자랑인 자불팔층석탑 안에 봉인되어 있단다. 대불전의 금불상보다 더 귀히 다루는 석탑이니라. 추혼책과 각혼필을 확인하려면 자불팔층석탑을 부숴야 하는데, 그건 또 아니지 않겠느냐? 내가 아무리 주지라도 이곳에서 쫓겨나고 말 테다, 허허."

"그럼, 아무도 확인한 사람이 없어요?"

"전대의 주지 스님께서 열반에 들기 전에 나에게 말씀해 주셨다. 추혼책과 각혼필 그리고 자불팔층석탑 모두 일천 년이 넘게 그 자리에 그대로 보전되고 있다고. 최소한 일천 년 동안은 확인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 그럼 진공 스님은 그걸 나에게 주기 위해, 일천 년 동안 보전되던 자불팔층석탑을 부순 걸까?

더 미안해지고 고맙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스님, 추혼책과 각혼필이 어떤 기물이고 어떤 사연이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그 이야기는 이곳 귀정사의 주지 스님들에게만 전해지는 이야기다. 일천 년 동안 그렇게 주지에서 주지에게만 전해졌는데…….

진공 스님이 잠시 입을 닫는가 싶더니, 이내 간절한 내 눈빛과 마주치고 말았다.

"허허, 실수로라도 어디에서 이 이야기를 흘리면 아니 되느니라, 악치야."

"네. 꼭, 꼭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그래, 우리 악치가 정말 훌륭히 잘 커 줬구나, 허허허."

진공 스님은 그렇게 또 기쁘게 웃은 후 말을 이었다.

"사실 너무 오래된 전설이라 숨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느니라. 나도 전대의 주지 스님께 들어서 그냥 알고는 있지만, 그 이야기를 다 믿기도 힘들고. 아무리 기물이라 하나, 물건에 그런 영험한 힘이 있다고 순수하게 믿기는 힘들더구나."

이번엔 살짝 장난기가 묻어나는 얼굴로 미소 지은 후 말을 이었다.

"일천 수백 년 전, 영악한 이무기가 있었다. 그 심성이 곱지 못해 이무기는 승천하여 용이 될 수 없었지. 하지만 이무기는 꼭 승천하여 용이 되길 결심하고, 이내 하늘을 속여 승천하게 되었단다."

이무기?

용?

뭔가 어마어마한데?

"이를 알아챈 한 사람이 있었다. 하늘에서 점지하여 이 땅에 보낸 용인(龍人)이자 영웅이었지. 그는 영악한 이무기의 꾐을 알고 승천을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이무기와 싸웠느니라. 하지만 아무리 용인이라 해도 인간의 힘으로 이무기를 홀로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 결국 용인은 죽었다."

하! 이야기가 좀 이상하다.

"죽어 하늘로 간 용인은 옥황상제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옥황상제는 용인에게 천검(天劍)을 하사해 다시 그를 땅으로 내려보냈다. 그것도 시간을 거슬러, 용인과 이무기가 싸우기 전의 시간대로 내려보낸 것이었지. 그리고 용인은 다시 이무기와 싸웠고, 또 죽었다."

이야기가 이상한데, 점점 빠져든다.

또 살아났겠지?

"또 살아났다. 그리고 또 죽었다. 옥황상제는 이번엔 그에게 천간(天干, 방패)까지 더해 다시 그를 땅으로 내려보냈다. 역시나 원래의 시간대로 돌려보낸 것이다. 용인은 또 싸웠고, 또 죽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같은 죽음을 반복했단다."

무한 회귀다.

"옥황상제는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겨 말렸지만, 용인은 더욱 땅으로 돌려보내 주길 간청하였다. 그 굳은 의지를 안 옥황상제는 결국 그에게 하사한 천검과 천간에 무한 회귀의 힘까지 실어 주어 그를 돌려보냈다."

진짜 무한 회귀다.

그런데 검과 방패인데?

"용인과 이무기의 싸움은 수천 번, 수만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 시간만 합쳐도 수천 년이나 될 엄청난 세월이었으리라. 이무기도 수백 수천 번의 회귀를 겪은 후에는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둘의 싸움은 멈추지 않고, 말했듯 수만 번에 이를 때까지 이어졌다."

진짜 무한 회귀, 무한 싸움이다.

"비록 그것이 싸움이었다 할지언정, 수천 년 동안 이어졌기에 둘의 깨달음은 이미 입신의 경지를 넘어서게 되었단다. 영악했던 이무기는 이미 승천한 용들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었고, 용인은 인간의 몸으로 신의 힘을 가진 존재가 되었단다."

"……."

"둘이 싸움을 멈추었을 때, 그들은 이미 천상의 신들조차 깨치지 못한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지. 그렇게 둘은 싸움을 멈추고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끝이에요?"

"아니지. 이제 진짜 중요한 부분이다."

"네. 알려 주세요."

"용인과 이무기가 하늘로 올라가며, 둘이 얻은 깨달음을 인세에 남기고 싶어 했단다."

"설마, 그게 추혼책과 각혼필인 건가요?"

"그렇다."

"두 기물을 통해 무엇을 깨닫는다는 말인가요?"

"옥황상제께서 주신 무한 회귀의 힘. 그 힘을 이무기의 비늘로 만든 공책과 용인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붓에 전이했다고 한다."

"추혼책과 각혼필이군요?"

"그렇다."

"두 기물을 가지면 무한 회귀를 할 수 있는 거고요?"

"그렇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악인(惡人)이 죽기 직전 진심으로 참회하는 마음을 각혼필로 추혼책에 적으면 옥황상제가 하사한 힘과 용인 그리고 이무기의 마음이 합쳐져, 그 힘이 발동된다고 하더구나."

"무한 회귀가 시작된다는 말씀이시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언제 멈추는데요?"

"무한 회귀를 통해 추혼책에 적힌 참회의 마음을 모두 씻어 내고 이루었을 때 회귀는 멈춘다고 하더구나."

아니다.

계효보의 요술 ‘억겁의 굴레’가 아니었어.

내 무한 회귀는 ‘억겁의 굴레’가 아닌 추혼책과 각혼필의 힘에 의한 것이다.

난 엄청난 정신적 충격에 쉽게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허허허, 악치야."

"……?"

대꾸할 정신조차 없어 멍한 눈으로 진공 스님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자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겐 필요가 없는 물건이니라."

아니요.

필요해요.

아니, 지금 제가 무한 회귀 중이에요.

"스님."

정신을 바싹 차려야 했다.

머리를 능력치 이상으로 빠르게 굴렸다.

확인할 것이 있다.

"만약 추혼책과 각혼필의 힘이 발동했을 때, 다른 힘이 끼어들 수도 있나요?"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구나."

"예를 들어 요괴가 요술을 건다든가 하면요."

"허허, 요즘 세상에 어디 요괴가 있다고. 허허허."

"예를 들어서요."

"얼마나 강력한 요괴인지는 모르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삼 갑자에 달하는 요공을 가진 요괴라면요?"

"그야 나도 확신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내가 추혼책과 각혼필을 실제 보거나 시험해 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가능성만이라도요."

"힘들지 않겠느냐? 옥황상제가 하사한 힘과 수만 년 동안 깨달음을 얻어 신의 존재가 된 용인과 이무기의 정신이 전이된 기물이란다. 요괴의 삼 갑자 따위의 요공으로 어찌 그 힘을 막을 수 있겠느냐?"

"막을 순 없어도 조금 비틀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은요?"

"음, 점점 알기 힘든 질문을 하는구나. 옥황상제께서 천검과 천간에 본인의 힘을 모두 하사했을 리는 만무하고. 당연히 일부의 힘만 하사했을 것이다. 용인과 이무기 또한 자신들의 모든 힘이 아닌 마음을 담았다고 했고."

진공 스님이 잠시 꽤 진지한 얼굴로 고민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추혼책과 각혼필 자체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겠구나. 그렇다고 해도 요괴 따위가 완전히 어떻게 할 것은 아닐 것이다."

"약간의 틈 정도는 만들 수도 있겠군요."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 만약 목숨이라도 걸고 자신의 모든 요공을 쏟아부었다면 말이지."

"거기에…… 만약 추가로 스님과 같은 고수의 힘까지 섞여 버리면요? 추혼책과 각혼필의 힘이 어떻게 변해 발동될지는 아무도 예측하기 힘들겠네요?"

"고수? 나?"

스님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 절대 고수요. 이십여 년 전, 내공만 무려 칠 갑자에 달했던 절대 화경의 고수요."

내 말에 진공 스님이 뜻 모를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다.

"설마…… 설마 이미 현경의 벽마저 깨어 버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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