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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28화 (28/245)

28화

털썩.

비수가 내 심장을 찌르자마자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버렸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내 품에서 벗어난 어린 초향은…… 아니다.

초향이 아니다.

설마……?

"씨팔, 미친 광마 새끼. 이번엔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계효보의 목소리가 초향의 그 예쁘고 작은 입술을 통해 걸쭉하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내, 놈이 변하기 시작한다.

변신(變身)이다.

변신?

뭐야?

내가 지금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거야?

사람이 어떻게 변신을 해?

그런데 한다.

진짜로 한다.

작았던 키가 커지고, 내 품에 쏙 들어오던 작은 몸이 서너 배로 부풀어 오른다.

보고도 믿기 힘들다.

지금 내가 피를 폭포수처럼 철철 흘리며 죽어 가는 것보다 더 놀랍다.

절뚝 절뚝.

놈이 완전히 계효보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내 절뚝이는 걸음으로 마당을 돌아다니며 무얼 찾는다.

팔뚝만큼 굵은 장작을 집어 들었다.

절뚝절뚝.

장작을 든 손으로 나를 노려보며, 절뚝이는 걸음으로 다가온다.

퍽!

퍽퍽!

퍽퍽퍽!

이내 그 몽둥이로 나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도대체!"

퍽퍽퍽!

"어떻게!"

퍽퍽퍽!

"안 거야!"

퍼퍼퍼퍼퍼퍼퍽!

퍽퍽퍽!

몸을 웅크리고 엎드렸다.

덜 아프게 맞기 위해서가 아니다.

피에 흠뻑 젖은 가슴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각혼필이 잡혔다.

기록해야 한다.

퍽퍽퍽!

퍼퍼퍼퍼퍽!

놈이 변신을 할 수 있다.

이건 나에게 굉장히 위험하다.

언제 어디서 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지금까지의 고생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계가변신(鷄可變身, 닭이 변신을 한다)이란 글자를 새겨야 한다.

퍽퍽퍽!

한 글자를 새겼다.

충분하다.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지만, 놈은 내가 직접 자른 사지 근맥을 치료했다.

하지만 완벽히 치료하지 못했다.

절뚝이는 걸음도 그렇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힘도 약하다.

이 상태라면 네 글자 이상을 문신할 수 있다.

퍽퍽!

한 글자 더 새겼다.

퍼퍼퍼퍽!

세 글자까지 새겼다.

한 글자만 더 새기고…… 어?

몽둥이질이 멈췄다.

"너 뭐 하냐?"

아! 씨파.

걸렸다.

놈이 동작을 멈추고 눈을 끔뻑끔뻑 뜨며 나를 쳐다본다.

나도 그런 놈을 끔뻑끔뻑 뜬 눈으로 쳐다봤다.

"말할 수 있잖아. 말해. 뭐 하냐고."

"나? 아무것도 안 하는데? 그냥 너한테 맞고 있잖아."

다시 나와 놈은 서로 눈만 끔뻑끔뻑해 댔다.

그렇게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효보야."

끔뻑끔뻑.

"칼을 쓰면 안 될까? 많이 아프거든?"

"미친 새끼."

놈이 다시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래, 그거야.

한 글자만 더 적자.

실컷 두들겨 패라고, 닭대가리 새꺄.

어?

다시 몸을 엎드려 몽둥이질을 당하려고 하는데, 아무 소식이 없다.

고개를 돌려 놈을 봤다.

몽둥이를 잔뜩 치켜세운 상태로 뭔가 생각에 빠졌다.

모르겠다.

일단 남은 한 글자부터 적자.

"잠깐."

아이씨.

또 걸렸나?

아직 한 글자 못 새겼는데.

그냥 때리지.

"야, 광마야."

"왜? 이제 안 때려? 맞을 만한데?"

"큭큭큭, 미친 새끼."

놈이 몽둥이를 바닥에 툭 던지고 나에게 바싹 다가와 앉았다.

이내 오른손을 내 머리 위로 올린다.

뭐 하는 짓이지?

"이번엔 무공이 아니다."

뭔 소리야?

"이번엔 네 기억을 흡수해야겠다. 네놈이 어떻게 나에 대해 알았는지, 그것부터 알아내야겠다. 아플 거야."

기억을 흡수해?

닭대가리 새끼가 진짜 미쳤나?

도대체 뭔 닭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라고 생각할 때, 내 머리로 무지막지한 힘이 밀려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요기다.

사부가 말한 삼 갑자의 요기.

그것이 일순간 내 정신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놈의 말대로 엄청난 고통이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 고통은 정말 오랜 시간 이어졌다.

* * *

"하! 미친 새끼. 진짜 별 황당한 새끼를 다 보겠네. 광마일기? 추혼책? 각혼필? 거기에 문신까지? 하! 그래, 인정한다. 내가 방심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정신이 혼미하다.

이젠 말을 하는 것도 힘들다.

내 기억을 진짜로 흡수하긴 한 모양이다.

엄청난 고통이 끝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놈은 사부가 평소 명상을 즐기는 평상에 걸터앉아 저리 혼잣말 비슷한 말들을 하고 있었다.

놈의 손에는 내 광마일기와 각혼필, 그리고 심토만력근의 말린 편들도 들려 있다.

사타구니가 아프다.

정말 힘겹게, 정말 힙겹게 마지막 힘을 쥐어짜 고개를 숙여 내 사타구니를 확인했다.

피부가 죄다 뜯겨 있다.

문신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절뚝 절뚝.

놈이 다시 절뚝이는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어떻게 나를 알아보고 잊어버려야 할 것들까지 기억하나 했더니, 결국 이놈이었군? 광마일기. 하하! 진짜 어이가 없네."

때리지 않는다.

더 불안하다.

"찢어 버려? 아니지. 이건 아무래도 기물인 것 같은데, 불에 태워야겠지?"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한다.

좆됐다.

광마일기와 추혼필이 사라지면, 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놈의 노예가 될 것이다.

"큭큭큭, 광마야."

놈이 나에게 바싹 다가와 쭈그려 앉는다.

내 심장은 터질 듯하다.

광마일기와 각혼필 만큼은 안 되는데.

이제 곧 귀정사를 찾아가 그것들에 얽힌 비밀을 알아낼 생각이었는데.

끝난 것 같다.

광마일기와 추혼필 없이는 놈에게 대적할 방법이 없다.

"나도 엄청 궁금했거든. 내 ‘억겁의 굴레’가 왜 비틀어졌는지 말이야. 처음에는 오로지 광천마제였던 네 의지가 내 ‘억겁의 굴레’에 저항해 틀어진 줄 알았는데, 그것 하나가 아니었어. 이거였군. 추혼책과 각혼필. 내 ‘억겁의 굴레’와 광천마제의 힘, 그리고 이 두 가지 기물의 힘이 모두 섞여 비틀어졌던 거야, 하하하."

놈은 손에 든 광마일기와 각혼필을 잠시 살핀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거, 태워? 말아?"

놈은 나를 약 올리기라도 하듯 말했다.

내 속은 진짜 약이 잔뜩 올라 미칠 것 같다.

"네가 여기 몇 글자만 적으면 그냥 둘게."

뭔 소리지?

광마일기와 각혼필이 나의 힘이 되고, 그것으로 내가 놈의 목숨을 노릴 것이 뻔한데, 그걸 그냥 둔다고?

"할래? 아니면 그냥 불태울까?"

죽을힘을 쥐어짜 고개를 들어 놈을 노려보았다.

"오! 하겠다는 의지인가?"

놈은 그렇게 실실 웃으며 내 손에 각혼필을 쥐여 줬다.

심지어 광마일기의 새 장까지 내 앞에 펼쳐 놓았다.

"적어. 그러면 이거 불태우지 않고 그냥 너 갖게 해 줄게."

"……?"

"효보는 요괴다. ‘억겁의 굴레’라는 시간과 회귀 요술을 부린다. 그리고 그 ‘억겁의 굴레’를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놈을 죽이는 것뿐이다. 그리고 만약 놈을 죽이면…… 나도 죽는다. 안 적어? 그냥 불태울까?"

난 각혼필을 움직였다.

방법이 없다.

지금 상태로는.

"그래, 적어. 이것들이 남아 있어야 다시 나한테 반격할 기회라도 생기지, 큭큭큭. 글자 똑바로 써."

놈은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을 내가 모두 기록하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놈이 약속했다. 광천마제의 힘을 모두 얻게 되면, 자신이 왔던 요계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그때가 되면 나도 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힘을 되찾고, 비틀어져 버린 내 삶도 다시 바로 잡을 수 있다. 저주가 아니었다. 이 회귀는, 놈과 나 모두에게 기연이다. 이제 난 효보를 믿는다. 아니, 내 목표만 보고 정진할 것이다. 꼭! 그래야 한다."

놈이 불러 주는 말을 모두 광마일기에 기록했다.

"큭큭큭. 잘하네, 우리 광마."

"……."

"열심히 하자고. 그래야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안 그래? 캬! 진짜 이번엔 정말 놀라긴 했다. 일 갑자 넘는 내공 얻었다고 좋아라 했는데 말이야. 네가 내 무재를 바꿔 준다고 했을 때는 하늘이라도 나는 기분이었다고. 알아? 그런데…… 미친."

"……."

"한순간에 다 잃었네. 내공도 다 잃고. 그런데 광마야, 우리 요괴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놈이 말을 멈추고 품속에 넣어 두었던 심토만련근의 편을 꺼냈다.

"이거 먹으면 내공 반 갑자 정도는 되찾으려나? 에휴,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개고생이냐, 새꺄."

퍽!

놈이 다시 몽둥이를 들어 내 머리를 때렸다.

개고생이 아니라 닭고생이겠지, 닭대가리 새꺄.

그런데 요괴라고?

진짜 요괴야?

요계에서 왔다고?

하! 돌겠네.

이 상황에 믿지 않을 수도 없고.

설마 닭고기를 먹고 그렇게 서글프게 울었던 이유가 그거였어?

닭 요괴라서?

"단전도 다시 만들 수 있고, 잘린 근맥도 회복 가능하지. 아까 봤지? 변신술하는 거, 큭큭큭. 와! 이거 우리 요계에서는 코흘리개들한테도 안 통하는 장난인데."

"……."

"아무튼 허튼 생각 하지 말고, 너는 그냥 너 갈 길 가. 난 네가 죽을 때만 네 무공을 흡수하면 되니까. 서로 좋잖아. 넌 새 삶을 계속 살고, 난 내가 필요한 거 얻고. 너무 저주니, 뭐니 그런 생각하지 말고. 응? 열심히 하자고. 알았지?"

퍽퍽퍽!

퍽퍽!

놈은 그렇게 쭈그려 앉은 상태로 내 머리를 계속 때렸다.

"잘 좀 해."

퍽퍽!

"잘하자고."

퍽퍽퍽!

난 손을 들었다.

힘이 없어 간신히 드는 시늉만 했다.

그런데 놈이 그걸 봤나 보다.

몽둥이질이 멈추었다.

"왜? 할 말 남았어? 죽을 때 안 됐어?"

"칼…….

"응?"

"소원…….

"뭐라는 거야?"

"칼을…… 쓰라고."

"풉. 푸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쉬이익.

툭.

이것이 나의 열 번째 죽음이었다.

* * *

난 누구?

여긴 또 어디?

광마일기를 읽었다.

……저주가 아니었다. 이 회귀는, 놈과 나 모두에게 기연이다. 이제 난 효보를 믿는다. 아니, 내 목표만 보고 정진할 것이다. 꼭! 그래야 한다.

-광마일기 中

음, 뭔가 계획이 틀어졌다.

효보에게 돌아간 후의 기록은 이게 마지막이다.

내가 놈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걸까?

효보가 요괴였다고?

그렇지.

그게 아니라면 삼 갑자의 요기를 설명할 방법이 없긴 하지.

효보를 믿어?

이건 좀 그런데?

머리가 또 복잡하다.

이럴 땐 불알을 들춰 보면 답이 나오곤 한다.

있다.

깨끗하고 뽀얀 내 사타구니가 마치 하얀 도화지라도 되는 듯, 정확히 열한 글자가 문신되어 있다.

계불가신(鷄不可信 : 닭을 믿어서는 안 된다).

계인저회(鷄因詛回, 저주받은 회귀의 원인은 닭이다).

계가변(鷄可變)?

닭이 변할 수 있다?

무슨 뜻이지?

그의 태도가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이 바뀔 수 있단 건가?

아! 도대체 뭐야?

혹시 ‘변신’을 쓰려다 다 못 쓴 건가?

변용도 아니고 변신?

그건 너무 말이 안 되지.

아니다.

요괴라면 가능할지 모르겠군.

확실하진 않지만 조심해야겠다.

아니, 이건 진짜 조심해야 한다.

변신이라니.

아무도 믿어선 안 된다.

그나저나 어쩌지?

놈을 죽이면 나도 죽는다고?

하!

돌겠네.

그럼 놈을 죽일 수도 없잖아?

아니다.

방법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내가 모르는 것뿐.

아니, 놈을 죽일 수 있어도 꼭 죽여야 하나?

어쩌면 이 반복 회귀란 거, 역시나 저주가 아닌 기연이고 기회일지 모른다.

그게 더 합리적인 생각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 해도, 내가 기회로 만들면 그뿐이다.

아직 계효보를 믿을 수 없지만, 뭐 다시 살았으니 일단 열심히 해 보자.

뭐라도.

우선 귀정사에 가 보자.

그곳에 답이 있다.

추혼책과 각혼필을 얻은 그곳.

그곳에 가면 계효보의 그 ‘억겁의 굴레’라는 요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최소한, 추혼책과 각혼필에 관해서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목표는 귀정사다.

그나저나 밖에 나가면 효보가 날 기다리고 있을 텐데, 어떻게 하지?

좀 어색하겠는데?

그냥 뻔뻔하게 모른 척할까?

일단 만나 보자.

난 서둘러 광천동 밖의 큰 바위로 움직였다.

* * *

큰 바위 위에서 한 시진을 기다렸다.

놈은 오지 않았다.

한 시진을 더 기다렸다.

역시 오지 않는다.

다시 한 시진, 해가 저물고 있다.

춥다.

난 알몸의 상태다.

또 한 시진을 기다렸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춥고, 배고프다.

그보다, 집이 어딘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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