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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23화 (23/245)

23화

"죽,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아니, 죽여 주십시오, 주군!"

무릎을 꿇고 덜덜 떨며 용서를 구하는 계효보.

이 닭대가리 녀석.

나와 사부가 다른 십간산으로 수양을 하러 간 사이 매일 이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거다.

"언제부터지?"

"그, 그게…… 죄송합니다, 주군!"

"죄송이고 나발이고, 언제부터냐고!"

"허허. 악치야. 그리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그만해도 되지 않겠느냐? 효보는 우리와 같은 도인도 아니지 않으냐?"

"아니, 사부님! 생각해 보십시오. 사부님과 저는 매일 맛도 없는 풀때기만 뜯어 먹고 사는데, 이 녀석은 이렇게 입에 기름칠해 가며 고기를 먹고 있었잖습니까!"

그렇다.

닭대가리 이 녀석이, 나와 사부가 수양하러 간 사이 마당에서 혼자 개구리를 구워 먹고 있던 걸 들키고 만 것이다.

"어험. 그.…… 허허. 우리 악치가 이 사부 때문에 매일 풀만 먹어서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구나? 허허허. 사부가 무척 미안하구나. 허허."

"아! 그, 그게 아닌데. 제 말은…… 전 고기 별로 안 좋아해요. 저 육식 안 하는 거 아시잖아요."

"허허. 그래. 그렇지. 허허허. 둘이 더 대화 나누어라. 허허허."

우리 사부, 삐졌다.

그렇게 사부는 삐져서 앞마당 평상으로 가 버렸다.

젠장.

이게 다 계효보 때문이다.

"야!"

"넵! 죽여 주십시오, 주군."

"일어나."

"넵."

내 눈치를 사정없이 살피며 쭈뼛쭈뼛 일어나는 계효보.

난 녀석을 향해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넵."

"다음부턴 조금 남겨서 숨겨 놔."

"네?"

"어허!"

"아, 넵! 존명!"

"가서 빨래나 해. 무양산 올라갔다 왔더니, 버선이 죄 흙투성이라 벗어 놨으니까."

"존명."

계효보가 그렇게 허겁지겁 빨래를 하기 위해 뒷마당을 벗어났다.

이제 나만 남았다.

장서실 입구는 그대로다.

진법이나 기관을 만진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내부는 어떨지 모른다.

난 계효보가 산 아래 계곡으로 빨래를 들고 떠나는 것까지 확실히 확인한 후에야 사부를 불러 함께 장서실로 들어갔다.

* * *

"하나도 빠진 게 없네요."

"그렇구나. 다 있구나."

"진짜로요."

"넌 어떻게 아느냐?"

"네? 뭘요?"

"여기 비급이 다 있는지 한두 개가 빠졌는지 어떻게 아냐고 물었다."

"아, 그게…… 그냥 깨끗하잖아요."

"그건 내가 주기적으로 들어와 청소를 하니 그런 거고."

"그, 그래요? 전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런 거라고 대답한 건데요? 사부님이 다 있다고 하셨잖아요."

"네가 먼저 하나도 빠진 게 없다고 말했다. 이미 이 내부를 꼼꼼히 확인한 것처럼 말이다."

"아, 배고프지 않으세요? 효보 이 녀석이 빨래를 하러 간다더니, 샘물을 파서 빨래를 하나?"

"말 돌리지 마라. 그리고 아까 무양산에서도 물으려다 말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안 것이냐? 이곳이 장서실이고 또 진법의 해진과 기관을 멈추는 방법 말이다."

"사부님!"

"……?"

"우리 유람 가지 않을래요? 저도 열여덟 살인데, 세상 구경도 좀 하고 그래야죠."

"악치야."

"네. 네?"

"벌받을 때가 됐구나."

"아닌데요?"

"허허허. 사문의 봉인을 허락도 없이 푼 죄는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결과가 좋잖아요. 하하하."

"결과는 결과고, 그 과정에 저지른 죄는 벌을 받아야지. 문규란 게 괜히 있겠느냐? 허허."

"사부님 아까 제가 한 말 때문에 삐지신 거죠?"

"어허, 이 녀석 보자 보자 하니까. 사부한테 그 무슨 말버릇이더냐? 난 사문의 규율에 따를 뿐이다."

"휴우. 알았어요. 어떤 벌을 받으면 되는데요?"

또 마을 구경 갔다 오라고 하시려나?

그럼 나야 좋지, 큭큭.

"벽곡단. 한 달이다."

우리 사부 삐진 거 맞다.

아! 참 도사도 삐지는구나.

아까 내가 풀때기만 먹는다고 투덜거린 것에 대한 복수리라.

난 결국 한 달 동안, 풀때기도 못 먹고 벽곡단만 먹어야 했다.

따끈따끈한 쌀밥에 나물볶음이 먹고 싶다.

그리고 내가 벽곡단 벌을 거의 마쳐 갈 무렵, 그들이 찾아왔다.

구산사괴, 그들의 반갑지 않은 방문이 있는 날이다.

* * *

구산사괴는 짐짓 여유를 부리는 듯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예전이라면 두렵고 경황이 없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젠 보인다.

나는 지금 무척이나 여유로우니까.

사부가 있다.

세상천지 무엇이 두렵겠는가?

구산사괴는 겉으로는 여유를 부리는 듯하나, 속으로는 잔뜩 긴장하고 경계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들의 실력.

광천마제 시절의 내가 기록한 경지가 정확해 보인다.

황노는 완연한 고수 급의 무인이고, 나머지 셋은 일류다.

천천히 마당으로 들어선 이들 넷.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나선 것은 사부가 아닌 계효보다.

계효보가 검을 손에 쥔 상태로 마당의 중앙으로 나서자, 황노를 제외한 여발무, 위은치, 한인심이 그를 품(品) 자 형태로 포위했다.

뒤에 있는 황노는 움직이지 않았다.

황노는 계효보가 아닌 사부를 경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시선이 황노에게 닿아 있는 사이, 곧바로 계효보와 셋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계효보가 먼저 몸을 날렸다.

챙!

채채채채채챙!

펑.

쿠당탕탕.

구전백환검이다.

계효보는 오로지 자신의 구전백환검만을 휘둘러 구산사괴 세 명을 상대하고 있다.

난 이미 사문의 무공은 물론 계효보의 절기인 구전백환검마저 완벽하게 익혀 깨친 상태다.

확실히 계효보의 경지가 고수 급임이 이 싸움을 통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무려 완연한 일류 무사인 셋을 상대로 계효보는 작은 생채기마저 허락하지 않으며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오십여 합의 공방이 오갔고, 결국 구산사괴 중 가장 약한 축에 들던 한인심이 가슴에 커다란 상처와 함께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곧바로 황노가 분기탱천하여 가세하였다.

"사부님!"

황노는 쉽지 않다.

내가 다급히 사부를 외쳤고, 황노가 계효보를 향해 도약하자마자 사부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흑강오선(黑剛五線).

사부의 손끝에서 검은빛의 강기가 다섯 줄기 발출되었다.

음!

삼재검법 중 찌르기 초식이긴 한데, 그게 다섯 개로 변형되었다.

내가 가르쳐 준 건 아닌데.

더 웃긴 건, 저 정도 위력이면 소림사 금강불괴의 호신강기도 찢어발기지 않을까 싶다는 거다.

황노 따위야 당연히 막을 수 없다.

쉬이이이이익.

피육.

픽.

피피픽.

계효보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몸을 날리던 황노가 툭 하고 쓰러졌다.

사부가 발출한 다섯 줄기 강선이 정확히 놈의 양쪽 손목과 양쪽 발목 그리고 단전에 적중한 것이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벌어진 일이고, 마당 흙바닥에 쓰러진 황노 본인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 파악이 안 돼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내 고통이 그의 사고(思考)를 이 차로 정지시켜 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곧이어.

툭.

툭.

계효보와 대치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던 나머지 두 녀석, 여발무와 위은치가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을 하면서 자신의 병장기를 손에서 떨구고 말았다.

다시 툭, 툭.

무릎까지 꿇은 두 녀석.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고 몸을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떠는 모습이, 자신들도 저 꼴을 면하기 힘듦을 제대로 깨달은 모양이었다.

"살…… 살려 주십시오, 무신이시어. 저희가…… 저희가 미쳐서…… 살려 주십시오!"

두려움에 몸을 부들부들 떨고, 땅이 쿵쿵 울릴 정도로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걸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놈들을 가만 지켜보던 사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사부는 매우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악치야."

"네, 사부님."

"정녕 네 말이 맞았구나."

"뒤처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악을 써 가며 살려 달라던 구산사괴였으나, 나와 사부가 대화를 시작하자 가슴을 졸이며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 내가 ‘뒤처리’를 운운하자 그들에게서 다시금 통곡과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엉엉엉!"

결국 착한 사부는 그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못했다.

"보내 주어라."

"사부님! 하지만 저들은 사부와 제 목숨을 노리고 온 자들입니다."

"안다. 알다마다. 하지만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른 듯하구나. 참회하고 있지 않으냐?"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엉엉 우는 놈들을 한 번 더 씁쓸한 얼굴로 바라본 사부가 다시 나를 향해 말을 이었다.

"악치야, 보내 주자꾸나."

사부의 명령이다.

나는 거부할 수 없다.

"네."

사부에게 답을 한 후 놈들을 향했다.

여발무와 위은치는 물론, 가슴에 큰 상처까지 입은 한인심까지 어느새 꾸역꾸역 일어나 무릎을 꿇고 있었다.

황노만이 근맥이 잘리고 단전이 파괴되어 꼼짝도 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내가 그들을 향하자, 놈들은 마치 염라대왕의 선고라도 기다리는 얼굴로 덜덜 떨며 나를 보았다.

"가라."

내 말이 떨어졌지만, 그들은 눈치만 살피며 쉬이 움직이지 못했다.

"가라. 떠나지 않으면 죽인다."

덧붙여 내뱉은 말.

이내 여발무와 위은치가 각각 황노와 한인심을 업고 부축하여 빠르게 산 아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효보."

"충!"

"수고했다. 마당 정리도 부탁한다. 아니, 마당은 내가 정리할 테니, 너는 당장 개울로 가 목욕하고 옷에 묻은 피도 깨끗이 빨래하여라."

"존명."

계효보의 몸에는 구산사괴의 피가 흠뻑 묻어 있어 그리 시킨 것이다.

결국 계효보까지 개울로 떠나고 남은 건 사부와 나 둘뿐이었다.

"악치야, 네가 정말 다 컸구나. 몸만 큰 줄 알았더니, 이제 마음까지 어른이 되고 진짜 도사가 되었다. 허허허."

"다 사부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듣기 좋은 소리도 할 줄 알고, 진짜 다 컸어. 허허허. 허허허허."

사부는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미안해요, 사부.

* * *

"처리는?"

개울에서 목욕과 빨래를 하고 돌아온 계효보에게 은밀히 물었다.

"깨끗이 처리했습니다."

"시체는?"

"문주님께서 평소 다니시지 않는 곳에 아주 깊게 묻었습니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충!"

구산사괴를 용서할 리가 있나.

내가 다시 회귀를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만약 이 회귀가 계속된다면 말이다.

최소한 나와 사부가 죽은 횟수만큼은 되돌려 줄 생각이다.

광천마제 마악치와 현화문의 어린 도사 마악치의 타협점이라 생각하자.

* * *

<<계요일기>>

난 계효보다.

요괴들이 사는 세상, 요계에서 왔다.

보였다.

성공이다.

아니,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무려 일류 무사 셋을 상대로 여유까지 부리며 싸워 이겼다.

그들 셋 모두 나와 내공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아니, 둘은 나보다 더 많은 내공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압도적으로 이겼다.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다.

내 무력의 절반만 썼을 뿐인데,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내 눈에 보였다.

현화문의 무공을 쓸 수도 없었지만, 쓸 필요도 없었다.

구전백환검만으로도 충분하고 넘쳤다.

혹시나 했는데, 내가 진정한 고수의 반열에 오른 것을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광마, 이 새끼는 진짜 무공에 있어서만큼은 미친 천재가 맞다.

내 무공이 이렇게 미친 속도로 상승의 경지에 올라갈 줄은 나조차 짐작도 못 했으니 말이다.

내 ‘억겁의 굴레’가 성공한 것이다.

알지 못하는 무엇이 조금 비틀어지긴 했지만, 이젠 상관없다.

내 목적은 달성했고, 달성 중이며,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회귀 전, 내가 보았던 그 사나이.

절대자.

천하의 주인.

무림의 정점에 홀로 서 천하를 오시하던 광천마제 마악치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아! 그런데 이 새끼가 계속 버선을 뒤집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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