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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22화 (22/245)

22화

며칠째 생각이 많다.

광천마제 시절에도 내가 생각을 이리 많이 하며 살았나 싶을 정도로 많은 생각을 했다.

회귀에 관해선 생각을 미루었다.

추혼책과 각혼필은 귀정사에서 얻었다.

회귀와 두 신물에 관해서는 나중에 귀정사에 가면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계효보다.

계불가신(鷄不可信)이란 네 글자 때문에 요 며칠 계효보를 은밀히 관찰했다.

그런데 들킨 건가?

녀석과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쳤다.

계불가신이란 글자가 정말 맞나 싶을 정도로 충성인 녀석인데,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왜일까?

아까 낮에도 발이 더러워져 버선을 갈아 신으려고 할 때, 놈과 눈이 마주쳤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옷이나 버선을 벗을 때만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몇 번 눈을 마주칠 때 좋지 않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 외에는 진짜 문신이 아닌 광마일기에 적힌 내용 그대로다.

세상천지, 이렇게 충직하고 훌륭한 수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몇 번이고 해야 했다.

역시 문신은 잘못 새긴 것일까?

그렇게 다시 생각이 깊어질 무렵, 난 또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계효보의 무공 경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와 사부의 수발을 드느라 수련이라곤 거의 하지 못하는 계효보다.

하지만 밤에는 한 시진 이상 홀로 수련을 한다.

그때 보았다.

아니, 아침과 낮에도 그의 호흡이나 걸음걸이, 자세 등을 통해 이미 느끼고 있었다.

확실하다.

계효보의 경지는 무려 고수 급이다.

내가 내공을 사용할 수 없어서 그의 내공이 대략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히 그의 무공 경지는 고수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

결코 내 아래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왜지?

광마일기에 분명 그의 경지는 일류 무사 급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도 좀 이상하다.

지난번, 그러니까 마지막 회귀 때 나는 그의 무공 경지를 일류 끝자락이라 기록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고수 급이다.

아! 도대체 뭘까?

녀석의 충성스런 모습에 문신을 깔끔하게 무시하려고 했으나, 놈의 경지 때문에 다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다.

확인해 봐야겠다.

* * *

"사부님, 오늘은 정정산(丁正山)으로 수양하러 가십니까?"

"그렇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도록 하마."

"네. 다녀오십시오, 사부님."

사부는 사흘에 한 번이나 닷새에 한 번, 이렇게 이곳 갑돌산이 아닌 병막산, 을수산, 정정산 등을 돌며 수양을 한다.

오늘이 그날이다.

사부는 말한 대로 저녁에나 돌아올 터였다.

"효보."

"충."

사부가 가고 계효보를 불렀다.

"뒷마당으로 따라와라."

"존명."

뒷마당으로 향했다.

사문의 무공들이 봉인된 장소다.

"여기다."

"네? 뭐가 여기라는 말씀이십니까?"

"천하제일인이셨던 나의 태사조 현화검존께서 익히셨던 천하제일신공이 모조리 봉인된 곳이 바로 이곳이니라."

"헉! 허걱!"

턱이 빠지고 눈알이 튀어나왔다.

연기가 아니다.

저 녀석 진심으로 놀라고 있다.

내가 괜히 충성스런 수하를 의심하는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조금 쓰렸다.

그래도 확실히 해 두어야 한다.

"난 이곳의 봉인을 해제하고 천하제일신공을 익힐 것이다."

"주, 주군……."

"말해라."

"그, 그게…… 너무 갑작스럽고…… 주군의 사부님께서 아시면 많이 실망하실……."

녀석, 덜덜 떨며 식은땀까지 비 오듯 쏟아 내고 있다.

아!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흔들린다.

아니다.

계속해야 한다.

"언젠가는 사부님께서도 이해하실 것이다. 이 모든 게 사문을 위하고 천하를 위하는 길이며, 진정한 도를 실현하는 방법이니라."

"네, 네. 존명."

"그럼 이제 봉인을 해제하겠다."

"저는 앞마당으로 가 있겠습니다."

녀석, 눈동자가 마구 흔들린다.

몸의 떨림은 더욱 격렬해졌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품어 그런 건 아니다.

이 녀석, 지금 겁을 먹고 있다.

천하제일신공을 무더기로 접할 배포가 없는 놈이다.

아! 진짜 또 그만두고 싶네.

그래도 해 보자.

"이곳에서 지켜봐라. 너도 알다시피 지금 내 정신이 오락가락하지 않겠느냐? 혹시라도 내가 다시 기억을 잃는다면, 네가 나를 도와 이것을 해진하고 다시 봉인해야 한다."

"하지만 주군. 저는…… 저는 현화문의 제자도 아니고. 이건…… 말씀하신 대로 천하제일신공……."

털썩.

녀석이 갑자기 오체투지를 했다.

"신이 감당할 만한 일이 아니옵니다. 부디 이 명령만은 거두어 주십시오, 주군."

하!

감동이다.

내가 왜 이런 녀석을 의심했을까.

그래도 끝까지 해 보자.

털끝만 한 의심조차 남기지 않기 위함이고, 이는 내가 아닌 계효보를 위한 일이다.

"명령이다. 보아라. 기억하라. 나를 진정한 주군으로 모시고 충성을 맹세한다면, 내 명에 따라라."

쿵.

계효보가 땅에 머리를 강하게 들이받았다.

이내 몸을 크게 부르르 떨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었다.

그의 눈은 이미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감격에 감격을 더한 그런 모습이었다.

"존…… 존명. 주군의 명…… 따르겠습니다."

울먹이기까지 하는 녀석.

난 그런 녀석을 뒤로하고 천천히 장서실의 진법을 해진하고 기관을 모두 정지시켰다.

복잡하지 않다.

간단한 진법이고 단순한 기관진식이다.

효보가 아니라 누구라도 한 번만 보면 충분히 기억할 것이다.

이내 장서실의 문이 열리고, 그곳에 가득 쌓인 수백 권의 비급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하나하나가 모두 천하를 구하고 멸할 수 있는 천하제일신공들이니라."

"신, 목숨을 걸고 주군의 현화문과 신공들을 지키겠습니다."

* * *

"허허허. 오늘도 가자고?"

"네, 사부님. 요 며칠 이곳 갑돌산이 아닌 을수산, 병막산, 정정산 등에서 명상을 하고 수양을 쌓으니 좀 더 많은 도의 깨달음을 얻는 듯합니다."

"좋은 일이구나. 이게 다 너의 지극한 마음에 하늘도 감동한 것이리라. 허허허. 그래, 오늘은 어느 산에 가서 수양을 쌓고 싶더냐?"

"무양산(戊陽山)은 어떠실지요?"

"그래, 오늘은 무양산에 가서 도를 닦아 보도록 하자꾸나. 허허허. 효보도 함께 가겠느냐?"

사부의 물음에 마당 구석에 공손한 자세로 있던 계효보가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저는…… 빨래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많습니다."

"어허, 항시 미안해서 어쩌느냐?"

"제자도 아닌 저를 받아 주시고, 외인인 저에게 심법이며 도리며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저야말로 감사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문주님."

"허허허. 어찌 저리도 마음이 선할 수 있을까. 우화등선은 내가 아닌 자네가 더 빠르게 할 것 같네."

"사부님, 그만 가시죠. 효보는 도보다 무림에 더 깊은 뜻을 두고 있습니다. 괜히 우화등선 이런 거 말씀하시면 저 녀석도 곤란해한다고요."

"아! 그런가? 이런, 미안해서 어쩌나?"

"됐으니 가요, 사부님."

나와 사부는 계효보만을 모옥에 남겨 두고 무양산을 향해 움직였다.

이렇게 계효보만 집에 둔 채 십간산(十干山)을 돌며 수양을 쌓는 일이 벌써 보름째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이 그날이다.

* * *

"뭐? 그래서 장서실의 봉인을 해제했다고?"

"네, 사부."

"어찌……?"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계효보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만약 효보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면, 사문의 비급에 손을 댔을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천하제일신공이니까요."

나와 사부는 무양산의 경치 좋은 계곡에 단둘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부가 많이 놀란 모양이다.

"어허. 이를 어쩌면 좋더냐."

"사부님, 한 번만 저를 믿어 주세요."

"나야 당연히 너를 믿는다. 일이 공교롭게 됐구나. 네가 진즉 그런 생각을 하는 줄 알았다면, 나도 미리 언질을 해 주었을 텐데."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네?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사부님도 계효보 녀석에 대해 이상한 낌새를 느끼셨던 거예요?"

"그게 맞기도 하지만 또 아니라고 생각이 되어서 말이다."

"사부님, 말씀해 주세요."

사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요기(妖氣)니라."

"요기요? 요괴할 때 그 요기요?"

"그렇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효보가 요기를 품고 있다. 그것도 삼 갑자에 달하는 엄청난 요기가 느껴지더구나."

이런 젠장!

뭐야?

삼 갑자?

요기가 삼 갑자라고?

이건 뭐 거의 전설에나 나올 법한 구미호라도 된다는 말인가?

"악치야."

사부가 놀란 나를 진정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부드러운 음성으로 불렀다.

"내, 너란 축복을 얻기 전에 세상을 많이 돌아다녔다고 말한 적이 있지 않더냐?"

"네. 천하를 주유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를 통해 또 많은 배움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이건 광마일기에 적혀 있다.

길거리에 버려진 나를 주운 것을, 사부는 언제나 축복을 얻었다는 표현으로 말한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 너란 축복을 만나고, 너와 함께 참된 도인이 되고자 떠도는 길을 멈추었느니라. 하지만 그전에는 정말 많은 사람, 많은 부류를 만나고 보았느니라."

"그게 방금 하신 말씀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사람들은 날 때부터 혹은 후천적으로 가지고 얻는 기운이란 게 있다."

"그게 어떤 것이죠?"

"흔히들 알고 있는 양기와 음기, 한기와 온기 등은 물론, 간혹 마기(魔氣)나, 귀기(鬼氣), 사기(邪氣), 시기(屍氣)와 같이 특별한 기운을 타고나는 경우도 보았단다. 후천적으로 마공을 익힌 마인들이 마기를 품게 된 경우도 있고 말이다."

"효보가 요기를 품고 태어났다는 말씀이시군요."

"후천적으로 이를 얻었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선천이 아닐까 싶다. 요즘 세상에 요공(妖功)을 익히는 사람이 있다는 말도 들어 보지 못했고, 만약 어딘가에 그런 게 있다고 하여도 효보의 나이로 삼 갑자의 요공을 익히는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겠느냐?"

"그렇지요. 어쨌거나 요기를 품고 있다는 거잖아요. 요(妖), 요망하다, 간사하다, 요사스럽다 같은 뜻을 품은 그 요기요. 그것도 삼 갑자나. 거의 전설에나 나오는 구미호 수준 아니에요?"

"허허허. 악치야."

"……."

"삼 갑자의 요기가 매우 특이한 경우기는 하지만, 내가 많은 이들을 만나고 겪으며 한 가지 큰 깨달음을 얻은 게 있다."

"그게 뭔가요?"

"마기나 귀기, 사기, 요기 같은 안 좋은 기운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여, 그 사람이 꼭 그렇게 사는 법은 없다는 말이니라. 그래서 네게 미리 언질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너무 중요한 이야기잖아요. 삼 갑자의 요기라면."

"보름 넘게 효보를 관찰하였고 지금도 지켜보고 있단다. 그 요기는 효보의 아주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다. 본 문의 비급이 봉인된 것보다 더 강력히, 또 아주 깊이 봉인되어 결코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숨어 있느니라. 그래도 네 사람이기에 효보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

"내 말 한마디로 네가 선입견을 갖는 게 걱정되었고, 그로 인해 소중한 인연을 깨 버릴까 봐 두려웠단다. 그래도 효보가 지금까지 잘하고 있지 않더냐? 너처럼 말이다."

"저, 저요?"

"응?"

"저도 무슨 기운을 가지고 태어난 거예요?"

"아, 아니다. 말이 헛나갔구나. 허허허."

우리 사부, 참 도인 맞다.

거짓말을 못 한다.

"전 무슨 기운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허허허. 아니라니까 그러네."

"사부님. 말씀해 주세요. 저 다 컸어요."

"허허허. 허허허허."

"말씀해 주시라고요."

"그게…… 그게 말이다. 허허허."

"그만 웃고, 말씀하세요."

"어험."

사부가 마른침을 삼키고, 슬쩍 내 눈치까지 본 후에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광기(狂氣)."

아! 씨파.

뭔, 타고난 기운대로 사람이 안 살아?

내가 광천마제가 된 게 다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거야.

"사부님, 뜬금없는 질문이긴 한데, 계효보가 보유하고 있는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도 아세요?"

"대략 십오 년 치의 내공을 보유하고 있더구나."

말이 안 된다.

계효보는 분명 고수의 경지다.

그런데 십오 년 치?

이건 고수도 아닌, 일류 중에서도 거의 최약체라 할 수준이다.

아니, 그 이하다.

그래서 그랬나?

경지에 비해 내공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심토만력근을 탐낸 것인가?

확신할 수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다.

일단 그 가능성도 열어 두어야 한다.

우선 지금 시험부터 완수해야 한다.

"사부님, 지금까지 사부님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사부님께서는 효보를 신뢰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사부가 잠시 고민을 한 후 신중한 얼굴로 말했다.

"내 수양이 많이 부족한가 보다. 생존해 있는 사람 중, 지금껏 내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딱 두 명뿐이구나. 내 오랜 친우가 한 명 있고, 네가 있다."

"효보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는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니라. 혹시 그 아이로 인해 네가 마음의 상처라도 입지 않을까 하여 말이다."

"사부님……."

감동이다, 우리 사부.

매일 허허거리기만 하고 명상만 하는 줄 알았더니, 나를 이토록 걱정해 주고 있었다.

"악치야, 이번에 네가 한 일이 옳다고 말해 주기는 어렵구나. 하지만 옳지 않아도 잘했다 말해 주고 싶다. 일단 의심이란 마음이 싹트기 시작하면,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단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네 의심의 싹은 지울 수 있을 것이다."

"사부, 가시죠. 지금 가서 확인해 보죠."

나와 사부는 곧장 사문으로 돌아갔다.

* * *

계효보, 이 새끼!

이 닭대가리 새끼!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놈이, 결국 나와 사부 몰래 하던 짓거리를 현장에서 딱 들키고 말았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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