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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17화 (17/245)

17화

우석혜가 걷어 올렸던 치마 속 바지를 슬쩍 내려 맨살을 가린 후, 자세까지 바로잡으며 물었다.

"다쳤는가?"

"아닙니다."

"싸움이나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네. 자고 일어났더니 그냥 거짓말처럼 단전과 내공, 모든 게 사라졌습니다. 일부 기억까지 상실하였고요."

"음…… 내, 자네 맥을 잡아 봐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그녀는 곧바로 내 맥을 잡지 않았다.

사부에게 눈빛으로 허락을 구한 후에야 맥을 짚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흘러.

"참 기이하구나. 기이해."

뜻 모를 혼잣말을 계속 내뱉는 그녀였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내 맥을 짚으며 이해하기 힘들다는 얼굴만 하였다.

결국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내 맥에서 손을 뗐다.

떨렸다.

그녀가 무슨 답을 줄지.

과연 그녀에게 무공을 되찾을 방법을 얻게 될지, 떨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오라버니, 아니 죄송합니다. 유 도사님."

"네, 우 여협."

"마 도사가 현화문의 심법 외에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게 맞습니까?"

"그렇지요."

사부가 단호하게 대답했고, 우석혜는 시선을 돌려 나를 향했다.

"네. 없습니다."

내 대답.

이게 거짓말이면서도 진실이다.

회귀를 했으니 현시점의 나는 무공을 익힌 적이 없는 게 사실 아니겠는가.

"그것참 신기하군요."

나도 사부도 우석혜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녀가 머릿속을 정리하길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결국 그녀의 입이 다시 떨어졌다.

"마 도사, 자네."

"네, 여협."

"허허. 이걸 말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휴우."

도대체 뭐기에 저렇게까지 할까?

부푼 기대가 조금씩 불안감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결국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전설로나 전해지는 천무지체. 어쩌면 자네가 그러한 신체를 가진 게 아닐까 하는 게 나의 첫 번째 추론이네."

천, 천무지체?

하!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우석혜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웃을 수도 없고 믿기 힘들지만, 또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왜?

내가 무공에 있어서 천재는 맞지 않겠는가.

그건 내가 잘 안다.

그래도 천무지체는 좀 심한 것 같은데?

분명 나보다 월등히 뛰어난 무재를 타고난 놈을 한 명 알고 있기도 하고.

"무공을 수련한 적이 없는데, 그 근골과 혈맥이…… 정말."

또 저런다.

도대체 내 상태가 얼마나 상식 밖이기에 저런단 말인가?

내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에게서 연이어 충격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근골과 혈맥은 화경 급 고수라고 해도 믿겠어. 아니, 믿겠는 게 아니라 맞아. 아니다. 그것도 아니야. 화경 급 고수보다 더 나아. 당장에 수십 갑자의 내공을 운용한다고 해도, 몸에 무리가 가기는커녕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질 걸세."

그녀의 눈빛이 떨렸다.

거짓말을 해서 떨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말을 하면서도 그 말을 믿기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그녀가 그런데 나는 오죽하겠는가?

이거 진짜, 내가 현경의 벽을 깨고 그 경지에 오른 거 아닐까?

심장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시 절망감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런데 왜 단전과 내공이 사라졌나요? 심지어 축기도 되지 않습니다."

"음……."

그녀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 고민이 아니라 갈등하는 눈치였다.

무언가 분명 알고 있는 게 확실하다.

그저 그것을 말하길 주저하는 것이다.

"휴우. 어쩔 수 없군. 말이 안 되기는 하는데…… 한 가지만 알려 주지."

"네."

"본 궁의 시조가 풍화사태 여협이셨네. 삼백 년 전의 천하제일인이셨던 천뢰무신의 사부님이시기도 하시지."

"천뢰무신과 풍화사태 여협, 그리고 초진아 의선의 이야기는 들어 보았습니다."

"그런가? 뭐, 워낙 유명한 분들이시니 그럴 수도 있겠군."

"……."

"풍화사태 여협에 관한 기록은 궁 밖으로 알릴 수 있는 외전(外傳)과 궁 내에서도 극히 일부만 알 수 있는 비전(非傳)으로 나뉘네. 그리고 무공에 관한 내용은 대부분 외인비전일세."

"그, 그럼……?"

"이걸 굳이 숨길 이유가 없으니 알려 주겠네. 풍화사태 여협께서 남기신 기록에 따르면, 여협께서 현경의 반열에 오르신 후에 단전이 사라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네."

"현경이요?"

진짜 내가 현경의 벽을 깬 게 맞나?

"확실히 말이 안 되긴 해. 무공도 익혀 본 적 없는 자네가 같은 증상을 겪는다는 게.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그런 현상이 일어난 일은, 삼백 년 전 풍화사태 여협이 유일하다네."

말이 안 되긴?

내가 광천마제 마악치인데 어떻게 말이 안 되겠는가?

그럼, 회귀 때문인가?

아니다.

그거야말로 말이 안 된다.

난 이맘때쯤 사십 년 치의 내공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럼 설마…… 처음 회귀했을 때 생각했던 그것.

현경의 반열에 오르며 환골탈태와 반로환동한 게 맞고, 그 상태로 회귀를 한 건가?

그것도 아닌데.

아! 돌겠네.

"아까 일부 기억까지 상실했다고 했지?"

"네? 아, 네. 맞습니다."

"그건 더더욱 모르겠고.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 물론 단전이 없지만, 그 있고 없고를 떠나 몸 자체가 전체적으로 정상이야. 아니, 정상을 넘어 말했듯…… 휴우. 진짜 현경 급 고수라고 해도 믿을 만한 신체를 가지고 있어, 자네는. 만약……."

"만약……?"

"만약…… 신체가 아닌 정신에 이상이 있다면…… 상단전이 형성되어 있다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겠지만, 상단전 자체가 없으니 자세히 알 수는 없고. 미친 것 같진…… 호호호. 미안하네. 아무튼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네만."

진짜 혼란스럽다.

도대체 지금 내 상태가 어떻단 말인가?

회귀는 왜 반복되는가?

내 기억은 왜 아무것도 없는가?

알 수 있는 것만이라도 알아보자.

어쩌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그 답을 알아야 한다, 기필코!

"여협, 현경의 고수가 되면 어찌하여 단전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까?"

그녀가 짧게 고민한 후 답을 주었다.

"화경의 반열에 오르면 인간이 품을 수 없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내기를 단전에 품을 수 있다네."

알지.

알다마다.

광마일기에 내 내공이 팔 갑자라고 적혀 있는데.

"그럼 그다음 단계인 현경은 어떠할 것 같나?"

"더 많은 내공 아닙니까?"

"아닐세. 모든 것을 비우게 된다네."

"그럼 내공을 쓰지 못한다는 것 아닙니까?"

"틀렸네. 그 자체로 자연이 되고, 자연이 곧 사람이 되는 경지라네. 이를 곧 신연일체(身然一體)라 하고, 자연의 모든 기운이 곧 나의 기운이니, 언제든 필요하면 자연의 기운을 끌어다 쓸 수 있으니 단전에 축기할 필요 자체가 없지 않겠는가?"

"그럼 단전이 사라진 이유도……?"

"그렇지. 단전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것일세. 그러니 이차 환골탈태를 통해 필요 없게 된 단전이 사라지는 것이지. 한 마디로 반선(半仙)이요, 입신(入神)의 경지라 부를 만한 게 바로 현경의 지고한 경지라네. 어쩌면 자네 사부님께서 현재 그러한 경지에 올라 계신 게 아닐까 싶네."

또 충격적인 말을 뱉고 마는 우석혜였다.

사부가 현경의 고수일 수도 있다고?

사부의 경지가 신연일체요 반선의 경지임은 맞다.

광마일기에도 분명 그리 적혀 있다.

그리고 고작 사흘 전에 보지 않았는가?

그 무지막지한 신위를 말이다.

난 나도 모르게 턱이 빠지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사부를 바라보았다.

"허허허. 우 여협, 뭔가 착오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제 아랫배에 묵직한 단전이란 놈이 아직 남아 있으니 말이죠."

맞다.

사부는 단전이 있다.

십사 갑자의 내공 또한 품고 있다.

우석혜가 사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런 심각한 상황 속에서 입발림이라도 했단 말인가?

하지만 우석혜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물론, 그 초승달 눈매를 짙게 그리고 몸을 슬쩍 사부에게 기대며 답을 하였다.

"유 도사님께서는 무공을 익히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환골탈태를 하지 않으셨고, 그로 인해 단전을 보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무공을 본격적으로 익히신다면, 천하가 놀랄 속도로 지고한 경지에 오르실 수 있으실 겁니다."

"허허허. 허허. 그렇군요. 허허허."

우리 사부, 무적 할배 맞네.

무적 할배가 또 허허거리며 웃는다.

수천만의 무림인이 들으면 놀라고 억울해 주화입마에 걸릴 이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듣고서도 그냥 허허 웃을 뿐이다.

"여협,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잃어버린 단전과 내공을 되찾을 수 있는 겁니까?"

"미안하지만, 나도 정확한 원인을 모르니 그 답을 줄 수 없네."

"그럼, 현경의 고수가 되어 단전이 사라진 후에는 자연의 기운을 어떻게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인가요?"

난 절박했다.

또 간절했다.

그런 마음으로 우석혜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런데 우석혜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조금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자네 나와 본 궁을 아주 탈탈 털어먹을 생각인가?"

"네? 그, 그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자네가 원하는 답,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몰라 묻는 것인가?"

"제, 제가……."

"본 궁의 시조이시자 최고수이신 풍화사태 여협의 최상승 무공과 비전(祕典) 그리고 심득을 전수해 달라는 것 아니던가?"

"아! 그게……."

"이미 자네에게 알려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알려 주었네. 아무리 내가 궁주라고 하지만, 외인에게 궁의 비전을 전해 줄 수는 없다네. 본 궁은 삼백 년 동안 이것들을 지키기 위해 수백 수천의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네."

"죄, 죄송합니다."

난 급히 허리를 깊이 숙여 그녀에게 사과해야 했다.

어쩌겠는가?

이건 내가 기억상실이고 뭐고를 떠나, 분명 조급한 마음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다.

우석혜의 말대로, 아마 조금 전 내가 한 질문의 답은 위화궁을 떠나 그 어떤 문파에서도 최상급으로 다루는 기밀일 터이다.

궁에 속한 제자들에게도 쉬이 전해 주지 않을 비전을 알려 달라고 했으니 얼마나 황당하고 기분이 나빴겠는가.

진지했지만 훈훈했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고 말았다.

사부와 함께 있을 때면 언제나 봄바람과 같은 훈훈함과 초승달 눈매를 그리던 그녀였다.

하지만 나로 인해 그녀는 한겨울의 매서운 찬 바람 같은 기운을 펄펄 풍기고, 초승달 눈매는 어느새 야차의 그것이 되고 말았다.

더 이상 그녀에게 그 어떤 질문도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때.

-호호호. 내가 가르쳐 줄 수는 없지만, 그 답을 얻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

사부의 귀에다 속삭일 때나 들릴 법한 목소리.

그것이 전음으로 내 귀에 간지럼을 태웠다.

-자네, 나와 계약 하나 하지 않겠나? 자네는 궁금증을 해결하고, 나는…… 오호호호. 호호호호호!

우석혜, 젊은 무적 할매.

그녀가 다시 웃기 시작했다.

음흉하기 짝이 없는 웃음이었다.

* * *

<<계요일기>>

나는 계효보다.

요괴들이 사는 세상에서 왔다.

뇌물을 정말 무지하게도 먹였다.

몇 대의 수레에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뇌물을 바친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무려 육 년 동안 그 짓을 했다.

내 목표 마악치.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 도둑질에, 사기, 살인, 강도까지 정말 별의별 짓을 다해 돈을 모았고, 그 돈을 고스란히 사패천 고수들에게 육 년 동안 바쳐 사패천에 입성할 수 있었다.

천주전.

광천마제 마악치가 매일같이 수백 명의 수하를 불러 놓고 술을 퍼마시는 곳이다.

맨 끄트머리였지만, 술상도 봐 주지 않아 천주전 입구의 끄트머리에 시립한 상태로 있어야 했지만, 결국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난 마악치에게 ‘억겁의 굴레’를 시전하려 했다.

불가능했다.

아니, 죽을 뻔했다.

내 삼백 년 치의 요공(妖功)을 끌어 올리는 순간, 마악치와 눈이 마주쳤다.

"내 수하 중에 닭같이 생긴 놈도 있었군. 하하하."

다행이다.

닭 같이 생겨서.

함부로 요술을 부릴 수는 없었다.

걸리는 순간 죽음이었고, 절대자인 마악치는 내가 요공을 끌어 올림과 동시에 그것을 감지했다.

다른 방법을 간구해야 했다.

난 인간들이 잘 쓰는 계책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건 ‘배신’이란 너무나 우아하면서도 고매하기까지 한 계책이었다.

난 곧바로 중상모략과 이간계를 시작했다.

결국 수하들은 그를 배신했고, 어제까지만 해도 원수였던 정파 놈들까지 끌어들였다.

광천마제는 무너졌고, 그의 도주는 무려 일 년이나 지속되었다.

그리고 끝까지 그를 지키던 그녀의 부인, 초향마저 목숨을 잃었다.

더 이상 그를 지켜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사람들은 그를 기억상실, 광증, 치매라 하였다.

무림맹과 사패천에서는,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 상처를 안고 무리하게 수련을 하다 상단전에 손상을 입은 결과라 추론하였다.

나에겐 기회였다.

‘억겁의 굴레’를 시도했고, 난 다시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겨야 했다.

미친!

그 상태에서도 나의 최강 요술은 그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내가 ‘억겁의 굴레’를 성공한 건, 마악치가 삼존하구룡협(三尊下九龍俠)이라는 정파 무림의 최종 병기이자 비밀 병기였던 자들을 상대한 후였다.

천수신권, 맹주 창궁검제, 화산검후의 화산파를 비롯한 구파일방과 무림맹에서 오래전부터 있을지 모를 무림의 재앙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어 비밀리에 키운 이들이라 했다.

화경 급 고수 한 명과 여덟 명의 초절정 고수.

절강 태주 용왕산의 지극현애에서 이들은 마악치와 싸웠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죽었다.

마악치는 실로 대단한 자였고, 절대자라 불릴 만한 사나이였다.

내가 그를 다시 찾은 건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하남 허창 병막산의 어느 동굴.

그곳에서 그는 가부좌를 튼 상태로 죽어 가고 있었다.

호흡마저 끊겼다고 느껴질 정도로, 절반은 이미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나에겐 마지막 기회이자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모든 것을 걸고 삼백 년 요공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그에게 ‘억겁의 굴레’를 시전했다.

아!

호흡마저 끊기고 의식조차 없이 죽어 가던 그였는데.

저항했다.

그것도 엄청난 저항이었다.

분명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임에도, 그의 무엇이 그렇게 강한 힘을 만들어 나의 요술에 저항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나도 내 목숨까지 걸고 요술을 이어 가야 했다.

그리고 결국.

‘억겁의 굴레’를 그에게 거는 데 성공하였고, 그는 그렇게 나와 함께 회귀하였다.

하지만 불안전한 성공, 절반의 성공이었다.

광천마제 마악치의 힘.

그것이 ‘억겁의 굴레’를 비틀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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