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두가 된 이유-16화 (16/245)

16화

무림에는 오랜 논란거리가 하나 있다.

‘과연 일평생 삼재검법 하나만 죽어라 익혀도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논제다.

광마일기 초반에도 그러한 내용이 짧지만 기재되어 있다.

물론 나는 부정적 입장이다.

말이 되는가?

삼재검법 따위로 천하제일인이 된다는 말이?

그건 실제 무공을 익히지 않은, 글로만 익힌 자들.

혹은 망상에 빠져 있거나,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를 정도로 쉴 새 없이 아무 말이나 쏟아 내는 호사가들이나 할 법한 말이다.

진정한 초인의 경지에 올라 보지 못한 자들이나 하는 말이라는 뜻이다.

무학이란 게 얼마나 심오하고 복잡한 세계인데, 단순히 가로 베기와 세로 베기 그리고 찌르기만 익혀서 될 법하냔 말이다.

그랬다.

원래는 그리 생각했다.

예외는 없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있다.

아!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네.

우리 사부 말이다.

내가 광마일기에 적은 우리 사부에 관한 내용을 보자면 그리움과 미안함, 잘생김, 멋짐, 신묘함 등 추상적이거나 외향적인 것이 전부다.

뭐, 십사 갑자의 내공에 관한 내용도 분명 적혀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초점은 분명 사부에 대한 그리움과 나의 죄책감에 맞춰 있다.

사부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고, 사부가 어떤 경지에 올라 있는지는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다.

그게 나의 실수였다.

사부의 말도 안 되는 무지막지한 삼재검법을 견식한 후, 난 그날 밤 급히 현화승천신공을 대성했다.

사부의 가공할 삼재검법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보기 위해서다.

물론 여전히 내공도 모을 수 없고 단전도 생기지 않는다.

어쨌거나 현화승천신공을 대성하며 깨달았다.

도학(道學)과 무학(武學)은 결국 백지장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만류귀종(萬流歸宗)은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임을 재차 깨달았다.

심지어 다른 무학도 아닌 현화승천신공이다.

원래 무공이고 심법이며 신공인 현화승천신공은, 도가의 명상 수양을 쌓는 것보다는 무공을 익히는 것에 치중되어 있다.

당연히 우리 사부는 도를 닦기 위해 그것을 익히고 수련했지만, 종국에는 현화승천신공 자체를 완벽히 깨닫고 대성했다는 말이다.

충기나 발경 같은 것을 시도해 본 적이 없어서 못 했지, 내공의 운용과 이해에 있어서는 이미 진즉 천하제일이었던 것이다.

십사 갑자의 내공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럼 단순히 십사 갑자의 내공만 있어서 이게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현화승천신공을 대성해서 가능한 것인가?

아니다.

광마일기에도 적혀 있고, 내가 현화승천신공을 익히며 알게 된 사실 또 하나.

무도에 있어서 상승의 경지는 어떻게 해서든 깨달음 없이는 오를 수 없다.

하지만 사부가 누군가?

일 갑자의 시간 동안 도만 닦은 반선(半仙)이라 할 법한 진짜 도사 중의 도사다.

도를 닦는 도가에서 궁극의 경지라는 신연일체(身然一體)의 경지에 오래전에 오른 도사다.

자연이 나이고, 내가 곧 자연이다.

자연의 기운을 마치 자신의 신체와 같이 느끼며,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경지라는 뜻이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사부’라는 첫 말을 떼기 전부터 그러한 경지에 올랐을 우리 사부리라.

십사 갑자의 내공, 신연일체에 달하는 깨달음.

그러한 사람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무림의 오랜 논쟁거리인 삼재검법만으로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 * *

갑돌산에 구산사괴의 무덤이 생기고, 을수산이 무너져 내린 후 사흘이 지났다.

우석혜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있긴 한 건가?

오늘도 사부와 평상에 앉아 무학과 도학을 논의한다는 핑계로 수작을 걸고 있다.

계효보는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땔감도 패 오고, 집안일은 혼자 다 한다.

아! 이 녀석, 말로는 몇 마디만 칭찬해 줬지만, 광마일기에는 한가득 칭찬을 기록해 놨다.

정말 생긴 것 빼고는 전부 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런 녀석이다.

그리고 나는 초향과 이틀째 삼재검법을 수련 중이다.

다섯 살 초향이 가르치고 나는 배운다.

내가 다른 분야에서는 단순 무식이지만, 무공에 있어서만큼은 천재다.

삼재검법 따위는 애초에 뭘 깨닫고 말고 할 것 자체가 나에게는 없다.

물론 사부가 보인 삼재검법을 나도 펼칠 수 있냐는 논외다.

내공이 없어서 그런 걸 펼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광천마제 시절이었어도 삼재검법으로 그것을 펼쳐 보일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삼재검법은 삼재검법인데, 아무래도 사부가 그날 펼친 삼재검법은 그냥 단순한 삼재검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여보 오빠. 왜 안 해? 힘들어?"

초향은 어느새 호칭을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낭군 오빠’에서 이제는 ‘여보 오빠’다.

초향이 좋아하니 됐다.

초향이 좋다면, 그녀가 날 무엇이라 불러도 나는 좋다.

조금이라도 그녀를 더 웃게 해 주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내 손가락을 잘라서 그녀가 웃을 수만 있다면, 진즉 열 손가락이고 발가락이고 다 잘랐다.

"예쁜 초향님,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겨서 사부님께 물어보고 싶어 그러는데, 삼재검법 수련은 잠시 쉬었다가 하면 안 될까요?"

"네. 그래요, 여보 오빠. 헤헤헤."

초향이 해맑게 웃으며 곧바로 그 고사리손으로 내 손을 잡는다.

함께 가자는 뜻이다.

난 그런 초향의 손을 잡고, 우석혜가 한참 사부를 향해 교태를 부리며 수작질을 걸고 있는 평상으로 향했다.

* * *

"사부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허허. 그래, 악치야. 여기 우 여협도 계시니 삼재검법의 어려움이 있으면 얼른 물어보아라."

아! 어찌 내가 삼재검법 따위를 물어본다 그러십니까?

물론, 입 밖으로 이런 말을 내뱉을 순 없다.

"삼재검법 말고 사부님이요."

"나? 허허허. 뜬금없이 나에 대해 무얼 물어본다는 말이냐?"

"정확히 말씀드리면 사흘 전 사부님께서 선보이셨던 삼재검법, 그 강기에 대해 궁금하여 그럽니다."

"음. 그래. 어떤 점이 그토록 너를 궁금하게 만든 것이더냐?"

"사부님께서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 강기 말입니다. 그것은 검은빛이었습니다. 마치 하얀 하늘을 모두 어둠으로 덮어 버릴 것 같은…… 조금 무서워 보였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무서운 게 아니라 극악무도, 사악함의 극치, 절정 마공,‘내가 진정한 대마두요!’라고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당연히 이 말도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광마일기에 그리 적혀 있기 때문이다.

내 무공, 내 검법, 내 검에서 쏘아지는 검강.

계속 말했지만, 나는 원래 착한 아이였다.

이런 사부 밑에서 배우고 자랐는데 어찌 나쁜 심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무공을 펼치고, 검을 휘두르고, 적들과 싸우는 목적 모두 의와 협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젠장!

빌어먹을!

검기고 검강이고 죄다 흑빛, 묵빛, 검은빛이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엄청난 시각적 효과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마공인가?’

누군가는 그리 생각했고.

‘딱 봐도 사파네.’

누군가는 그리 말했다.

젠장!

현화승천신공이라는 멋진 내공 심법을 익혔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쏟아지는 검기와 검강은 죄다 검은빛이고 검은 기운이라 사람들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좋은 일 하고도 마두로 찍혔고, 착한 일 하고도 대마두라 불렸으니, 내가 오죽 억울했겠냔 말이다.

아! 다시 생각해도 열불이 터지네.

갑자기 사부님의 멱살이라도 잡아 따져 묻고 싶었다.

뭐, 저렇게 인자하게 또 감동적으로 웃고 있는 사부를 향해 내가 어찌 그럴 수 있겠냐 싶지만.

"허허허. 오해니라."

"네? 오해라고요?"

"그렇다. 그리고 그건 과정이다."

"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내 경지가 얕아 그러하니라."

"그건 더더욱 아닌 것 같은데요? 저기 맞은편 을수산을 보고도 그리 말씀하시나요?"

"허허허."

"웃지만 마시고요. 저 정말 심각하게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 악치야. 허허."

사부가 나를 향해 한 번 웃어 보인 후, 다시 우석혜와 눈까지 마주친 후에야 다시 나를 향했다.

"우리가 수양을 쌓기 위해 익히는 호흡법이 무엇이더냐?"

"호흡법…… 현화승천신공입니다."

"그렇지. 현화(玄化), 검음(玄)은 세속의 떼를 말하는 것이고, 이는 욕심과 죄업을 뜻하느니라. 또 변화(化)는 그러한 욕심과 죄를 씻고 새로운 사람이 됨을 의미한다."

"그럼 승천은……?"

"승천(昇天)은 우화등선을 뜻하지 않겠느냐? 수양을 통해 욕심을 버리고 죄를 씻어 깨달음을 얻고, 이를 기반으로 우화등선할 수 있다는 의미니라."

"그게…… 검강이 무서워 보이는 이유와 어떤 관계가 있다는 말씀이신지요?"

"아직 내가 수양이 부족해 그 죄와 욕심을 다 버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럼, 우화등선할 때까지는 계속 그런 검강을 쏘실 거란 말씀이세요?"

"허허허. 어찌 그렇겠느냐? 나야 무공에 있어 이제 첫발을 뗀 어린아이와 같지 않겠느냐? 다행히 우 여협께서 계속 도움을 주시니, 곧 조금 위의 경지로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때가 되면 검강의 빛깔과 기운마저 달리 보이고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어떻게요?"

"글쎄다. 조금 더 위의 경지로 올라서면, 아무래도 검은빛은 백광(白光)을 띨 것이고, 무서운 느낌은 온화하고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싶다."

사부.

우리 사부님아!

아!

제가요.

광천마제 시절 천하제일인이라 불렸어요.

뭐, 지금 눈앞에 있는 저 할매를 빼면 아무튼 그리 불렸던 사람이에요.

근데요.

그 지고한 경지에까지 올랐던 제 검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강이 어땠는 줄 아세요?

더 지독하게 검어졌어요.

심지어 경지가 오르면 오를수록 핏빛까지 띠게 됐다고요.

뭐예요, 정말!

"악치야."

"네, 사부님."

"내 비록 이제 막 무공에 첫걸음을 뗐지만, 한 가지는 알겠더구나."

"……?"

"무공이건 도를 닦는 수양이건, 그건 그 주인을 닮는단다. 검에서 무엇이 나오고, 또 그 사람의 눈빛과 표정에서 무엇이 느껴지건, 그건 오로지 그 사람의 마음을 표출하는 것이니라."

우리 사부 말이다.

가끔 저렇게 온화하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의 심장을 난도질한다.

덕분에 뜨끔했다.

내가, 내가 나쁜 놈이고 악한 생각을 했기에 광천마제 시절 내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강이 그러했던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다르다.

사흘 전 사부의 손에서 뻗어 나가던 현강.

분명 검은빛을 띠고 있었지만, 내 것과는 그 느낌이 달랐다.

분명 어마어마하여 심장이 다 쪼그라들 정도로 무시무시했지만, 그게 전부다.

광천마제 시절의 내가 뿜어내던 살기나 사악함, 잔혹함, 이런 것은 없었다.

내 것이 그랬으니, 사부 것 역시 그러했다고 착각하였고 또 그냥 그리 믿어 버린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게 인간의 심리 아니겠는가.

아! 정말.

우리 사부 대단하다.

삼재검법 첫날 산 하나를 통으로 무너뜨리고, 사흘이 되는 날은 이렇게 상승의 깊고 높은 무리(武理)까지 깨달아 나에게 가르쳐 주니 말이다.

우리 사부, 천재 아냐?

* * *

난 뒷마당으로 가 가부좌를 틀고 오랜 시간을 보냈다.

사부의 가르침을 되새기기 위함이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사부의 가르침은 깊고 높은 상승 무학의 이치에서나 나올 깨달음이었다.

난 힘들게 그것을 정리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 후 광마일기에 세심하게 기록하였다.

고맙게도 내내 내 옆에 있던 초향은 그런 나를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명상까지 하며 도움을 주었다.

그 일련의 과정을 모두 마쳤을 때에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난 서둘러 초향의 손을 잡고 앞마당에 있는 사부와 우석혜에게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미친!

저 할망탱구가 감히 어디서!

우석혜 이 할망탱구가 이제는 대놓고 무릎 아래의 하얀 맨살까지 드러내며 사부를 유혹하고 있다.

고결한 우리 사부 앞에서 이 무슨 망측한 짓이란 말인가!

내 당장 저 욕망이 가득 찬 할망탱구의 멱살을 쥐어 잡고 주먹으로 죽방을 한 대…… 갈기고 싶지만, 힘이 없다.

그럴 힘 따위는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은 더더욱 없고, 아마 앞으로도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빌어먹을.

결국 난 공손한 자세로 사부와 우석혜 앞에 서야 했다.

"또 궁금한 게 생겼느냐? 허허허."

"이번엔 우 여협께 궁금한 게 있어서 왔습니다."

"나? 말해 보시게, 우리 제자 사위. 호호호."

두 손까지 모아 공손한 자세로 서 있지만, 솔직히 조금 그렇다.

왜인지 저 할매한테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안 간다.

머리에서는 천 번 만 번 고마워해야 한다고 하는데, 마음이 그렇게 따르지 않는다.

이것도 회귀 전에 각인된 감정 때문인가?

절강 앞바다에서 열흘 동안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던 그 감정 때문에?

사부에게 있고, 초향에게도 있다.

그리고 우석혜 이 할매한테도 다른 의미지만 분명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게, 계효보나 구산사괴에게는 그런 게 없다.

이들의 차이라면, 광천마제 시절에 적었던 광마일기에 사부나 초향 그리고 무적 할매에 관한 기록은 한 명당 수십 쪽에 달하게 기록되어 있다.

계효보는 아예 기록이 없다.

계효보에 관한 기록은 회귀 후부터 가득하다.

이번 회귀만 해도 녀석에 관한 칭찬을 석 장도 넘게 기록해 놨다.

광천마제 시절 구산사괴에 관한 기록도, 사부를 기록하며 부수적으로 딸린 것 외에는 반 장 분량이 전부다.

광천마제 시절의 감정만 각인되어 이어지는 것일까?

그래서 할매에게 머리로는 감사하지만, 마음으로는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거고?

어쩌면 이 할매가 자꾸 우리 고결한 사부한테 이상한 짓거리를 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아! 이 문제도 광마일기에 기록해서 천천히 더 고민해 보고.

일단 중요한 것부터 해결하자.

"단전이…… 사라졌습니다.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물론 내공까지 함께 사라졌고요."

그녀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광천마제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내가 아는 한, 그녀가 바로 당금 무림의 천하제일인이다.

그녀가 모르면 천하의 그 누구도 모른다는 뜻.

그녀에게 내 문제에 대한 답을 들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단전과 내공이 사라진 이유와 그걸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우 여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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