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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9화 (9/245)

9화

"사부님, 오늘은 일찍 일어나셨네요?"

내가 해맑게 웃으며 마당에 서 있는 사부를 향해 다가갔다.

사부는 밤에 잠이라도 설쳤는지, 얼굴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뭐, 그래도 엄청난 미남인 건 여전하지만 말이다.

"어제 오신 분들은…… 밤새 저러고 계신 것 같던데. 어허, 아직 밤공기가 찬데, 어쩌냐?"

"하하. 말씀드렸잖아요. 우리 현화문과 갑돌산에 대해 말해 줬더니, 자기들도 이곳 갑돌산의 정기 좀 받고 싶다고 사정을 했다고요. 오후에는 돌아간다고 하니, 그냥 두세요. 뭐, 하루 정도 밤이슬 맞는다고 무슨 일이야 생기겠어요?"

"그래도, 손님인데 미안하구나."

매복이다.

나와 함께 하루 전에 도착한 낭인들은 사전에 계획한 장소에 자리를 잡고 매복 중이다.

사부는 당연히 이 사실을 모르고.

구산사괴가 나타남과 동시, 이들이 그들을 포위하고 공격할 것이다.

매복 위치까지 철두철미하게 노검랑 도공우를 비롯한 낭인들과 의논해 계책을 세웠다.

일단 구산사괴가 이곳에 발을 들이면, 도주로까지 완벽하게 차단할 것이다.

한 마디로 작은 천라지망이 이곳에 지금 펼쳐져 있는 것이다.

"효보."

난 사부를 뒤로하고 아침밥을 짓고 있는 효보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은밀히 그에게 말했다.

"정신 바싹 차리고,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해야 한다. 사부님 곁에서 한 시도 떨어져선 안 된다."

"존명."

며칠 전, 도공우에게 슬쩍 물은 적이 있다.

계효보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말이다.

약간은 예상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도공우는 계효보가 절대 자신의 아래가 아닐 것이라 했다.

그렇다고 고수 급이나 그런 것은 아니고, 붙어 보기 전에는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계효보도 일류 급의 무사인 것이다.

이로써 일류 무사 급만 여덟 명이 됐다.

구산사괴, 이번엔 너희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큭큭큭…… 어?

데구르르르.

마당 안으로 뭔가 둥그렇고 시뻘건 게 굴러 들어왔다.

어디서 많이 본 건데?

익숙하다.

그리고 그건, 사람의 수급이었다.

챙챙챙!

채채채채챙!

"으악!"

"기습이다!"

쾅!

퍼퍼퍼펑!

챙챙챙!

"이곳도 놈들이 기습했다! 으악!"

사방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동시에 비명이 들려온다.

정확히 낭인들이 매복한 장소다.

뭐지?

매복과 기습은 우리가 준비했는데?

난 다시 조금 전 마당으로 굴러 들어온 구체, 수급을 확인했다.

노검랑 도공우의 머리였다.

"피해! 뭉쳐라! 가운데! 초가 마당으로 뭉쳐!"

일류 낭인의 외침.

곧바로 수풀에 숨었던 낭인들이 마당으로 신법을 발휘해 모여들었다.

짧은 순간, 벌써 엄청난 격전을 치렀는지 죄다 피 칠갑을 한 상태였다.

그리고…… 아!

열세 명밖에 없다.

일류 낭인 네 명, 이류 낭인 아홉 명이 전부다.

뭐지?

진짜 뭐야?

내 머리가 하얘지는 순간.

그들, 구산사괴가 역시나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상태의 악귀가 되어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도검을 들고 사방을 점하며 이곳으로 다가왔다.

"신호를 보내면 모두 동서남북, 뭉치지 않게 흩어진다! 그래야 한 명이라도 살 수 있다. 지금이닷!"

일류 낭인의 외침에, 열셋의 낭인들이 일제히 사방으로 도주를 했다.

쉬이이이익.

파팟!

샤아아악!

"끄아아악!"

"으아아악!"

속절없이 구산사괴에 당했다.

한 명도 도주에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 한 명은 성공했다.

계효보, 이 개새끼.

아니, 닭 새끼!

날지도 못하는 닭이 영약이라도 처먹었는지, 그렇게 날다시피 신법을 발휘해 도망을 쳐 버린 것이다.

"주군! 제가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곧 돌아오겠습니다!"

아! 씨팔.

저 닭 새끼!

내가 다시 만나면 널 찢어 죽이고 말 테다.

젠장! 이거 광마일기에 적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상황이 너무 안 좋다.

이미 구산사괴가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책은 훌륭했다. 다만, 우리가 몇 달 전부터 계속 이곳을 주시하고 있었음은 몰랐던 모양이구나. 크크크."

아! 돌아 버리겠네.

이것도 광마일기에 적어야 하는데.

결국 난 이 상황을 광마일기에 적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놈들의 고문.

이번엔 사부와 내가 함께 당했다.

지난번과 크게 다른 건, 내가 시작부터 함께 당한다는 것 외에 놈들도 다급하다는 것이었다.

계효보가 도주했으니, 자신들의 정체가 발각되기 전에 서둘러 일을 마치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방, 방 안에…… 현화승천신공의 비급이 있다."

결국 내가 실토를 해 줬고, 놈들은 현화승천신공을 발견했다.

"개방 고수님들! 이곳입니다! 괴한들이 도사님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어서요!"

계효보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

"즉시 이곳을 뜬다."

황노가 말을 함과 동시에 사부의 목을 베고, 내 목을 찔렀다.

사부는 즉사를 했고, 나 역시 검에 관통된 목에서 검은 피를 철철 흘리며 죽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개방의 고수들을 이끌고 온다던 계효보가 너무나 여유로운 걸음으로 그렇게 홀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 저 새끼들은 무슨 목구멍에 한이라도 맺혔나? 또 목을 찔렀네?"

비릿한 미소로 나를 깔보며 짜증을 내는 계효보.

왜지?

나의 충직한 수하, 나의 왼팔, 내가 유일하게 믿고 모든 걸 털어놓은 계효보가 왜?

목에서 철철 흐르는 피에 대한 고통보다, 계효보의 이런 언행이 나를 더 혼란스럽고 아프게 했다.

"광마야."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계효보.

아니, 이 녀석이 내가 광마인 건 어떻게 알았지?

내가 광천마제며 광마라 불리는 건 먼 훗날의 일인데.

더 혼란스럽다.

"너,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와! 진짜 네가 천재인 줄은 알았지만, 진짜 완전 기겁하며 놀랐다는 거 아니냐?"

"쿨럭. 쿨럭."

기침과 함께 검은 피가 계속 쏟아져 나온다.

기억도 희미해져 간다.

"저번에 네가 익힌 현화승천신공 내가 흡수할 때, 와! 와! 진짜 놀랐다. 신공의 구결에 약간의 깨달음 정도만 흡수할 줄 알았는데, 와아아아아! 하하하! 어떻게 현화승천신공을 한 달 만에 완벽하게 깨닫고 익힐 수 있었던 거지? 역시 내가 너를 선택한 게 탁월한 선택이었어. 넌 천재야, 천재. 하하하하!"

퍽!

기분 좋게 웃으며 발로 내 머리를 내리찍는 계효보.

한 달이 아니라 반나절이다.

그리고 이번엔 한 식경밖에 걸리지 않았고.

이 찢어 죽일 닭 새끼야.

저 녀석도 나와 함께 회귀하는 거였군.

내 무공을 노리는 거였어.

흡수?

내가 무공을 익히면, 그걸 흡수한다는 건가?

구결과 깨달음까지?

뭔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

하긴, 지금 이 상황 자체도 말이 안 되지.

퍽퍽!

"그런데 이번엔 조금 실망이야. 내가 그렇게 좋은 계책을 줬으면, 새꺄!"

퍽퍽!

퍽퍽퍽!

"끝까지 밀어붙였어야지. 저기 장서실에 봉인되어 있는 무공 중 익힌 게 하나도 없잖아."

퍽퍽!

아! 그런 거였어?

그 계책을 낸 게, 나에게 무공을 익히게 하고 그걸 다시 네가 흡수하려던 거였어?

뭐, 저딴 게 다 있어?

아니, 근데 그런 게 가능하긴 해?

흡성대법이란 마공도 그런 게 가능하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는데.

도대체 뭐지?

새외에서 온 놈인가?

새외에는 그런 무공이나 사술이 있나?

아! 이걸 광마일기에 적지 못한다는 게, 슬프다.

퍽퍽!

퍽퍽퍽!

"그런데 진짜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

잠시 발길질이 멈췄다.

그냥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

"너 말이야. 분명 네가 네 입으로 그랬잖아. 광천마제 시절에. 네가 직접 수십 번도 더 했던 이야기거든. 네 사부, 네가 죽였다고 했는데. 목을 베고 심장을 찔렀다고. 그런 후 비웃음과 함께 시체에다가 조롱까지 한 후, 현화승천신공의 비급을 들고 튀었다고 했잖아."

퍽!

"그런데 왜? 왜 살리려는 거야? 넌 분명 천하에서 가장 악한 인간이어야 하는데. 참, 알다가도 모르겠네? 날 알아보는 것도 여전히 의문이고. 진짜 내 요술에 뭔가 문제가 생긴 건가?"

퍽퍽!

"사실 네놈에게 내 요술을 걸 때, 그 저항이 너무 심해서 제대로 걸릴지 확신할 수 없긴 했었어. 다 죽어 가던 놈이 무슨 의지로 내 요술을 그리도 강하게 거부하던지. 참, 대단하긴 하더라. 그때는 아주 잠깐 속으로 네놈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했으니 말야. 큭큭큭."

퍽!

퍽퍽!

"뭐, 내 ‘억겁의 굴레’가 완벽하게 걸리진 않았어도. 회귀와 흡수, 중요한 부분은 다 걸렸으니 됐다. 빨리 다음으로 가자. 다음엔 좀 제대로 해 봐. 힘 좀 내보자고."

퍽!

퍽퍽퍽!

요술?

억겁의 굴레?

그건 또 뭐야?

퍽!

퍽퍽퍽!

퍽퍽퍽!

이 개새끼야!

아니, 닭대가리 새끼야!

제발.

칼을 쓰라고, 칼을.

* * *

<<광마일기>>

(상략)

……

매일 밤 천주전에서 연회를 벌였다.

수백 명이 넘는 기녀들이 춤을 추었고,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천주전 담벼락을 넘어 사패천의 밤을 깨웠다.

난 높디높은 태사의에 앉아 이백여 명의 수하들을 내려다보며 내 과거를 자랑하길 좋아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인간이 누구냐!"

내 질문에 이백여 명의 수하들이 일제히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

"천주님이십니다!"

"크하하하. 그렇다. 본좌가 바로 천하에서 가작 악독하고 무서운 인간, 아니 악마의 화신 광천마제 마악치다."

"천주천하!"

"천하제일!"

"사도천하!"

"절대지존!"

여기저기서 수하들이 잔을 높이 들고 찬양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놈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내가 천하제일신공을 어떻게 얻었는지 말했나?"

"알고 싶습니다!"

"듣고 싶습니다!"

"사부를 죽이고 빼앗았지. 사부의 목을 베고, 심장을 찢어발겼다. 얼마나 통쾌하던지, 크하하하하! 쓰러진 사부의 머리를 발로 밟으며 욕설을 하고 침까지 뱉었다. 나야말로 진정한 악인 아니겠느냐?"

"맞습니다!"

"존경합니다!"

"천주께선 최고십니다!"

"뒈져 버린 나의 사부를 위해 건배! 크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

술잔을 깨끗이 비운 후 머리에 털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나직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형님."

나의 의제 곽우적이 은은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 것이다.

"벌써 수백 번도 더 하셨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뭐? 듣기 싫은 놈은 듣지 말라고 해."

"그게 아니라……."

천하에서 가장 사악한 놈은 내가 맞다.

하지만 단순, 무식은 내가 천하제일이 아니다.

내 의제 곽우적.

이 녀석이야말로 진짜 단순하고 무식한 놈이다.

그런데 가끔 이 녀석이 이렇게 분위기를 잡으면 또 그럴듯해 보일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매번 형님 사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뭐? 어쩌라고?"

"슬퍼 보이십니다."

사부님이 돌아가시고 단 한 순간도 편히 잠을 자 본 적이 없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고, 그렇게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될 때까지 오열을 토한 후에야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아버지이자 어머니셨으며 스승님이셨던 우리 사부님.

내 삶이었고 모든 것이셨던 분이 바로 사부님이다.

너무 아파서, 너무 괴로워서 그랬다.

세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는 날이 갈수록 커졌고, 그럴수록 나는 더더욱 괴로워해야 했다.

작은 오해가 쌓이고, 누명이 중첩되고, 세상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대마두라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악인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고, 스스로 대마두임을 인정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세상의 온갖 욕설을 듣고, 모든 이들이 나를 저주할 때야 비로소 제대로 된 잠이란 걸 잘 수 있었다.

난 그렇게라도 죗값을 치르고 싶었다.

내 삶, 어떻게 해서든 착하고 바르게 살려 노력했던 내 삶을, 그렇게 나 스스로 왜곡해 세상에 알린 것이다.

난 그렇게 매일 거짓말하며 악인이 되는 길을 선택하였다.

……

(하략)

* * *

퍽퍽퍽!

죽을 때가 됐긴 됐나 보다.

내 모든 삶이 마치 주마등처럼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니 말이다.

광마일기에 적혀 있던 그때의 그 순간마저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직접 있었던 것처럼 떠올랐다.

이번엔 계효보의 발길질 때문이 아니라, 씁쓸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인생 한번 참 더럽게 살았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난 또 죽었다.

이것이 나의 세 번째 죽음이었다.

* * *

난 누구?

여긴 또 어디?

신기한 동굴에서 깨어나 광마일기를 읽고 각성했다.

난, 광천마제 마악치다.

젠장.

기분이 별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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