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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두가 된 이유-7화 (7/245)

7화

"내가! 광천마제 마악치다!"

눈물범벅이 된 나.

주먹까지 불끈 쥔 내가 구산사괴를 향해 흉포하고 극악하게 울부짖었다.

순간 구산사괴의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놀람이 극에 달한 구산사괴.

나의 분노와 살의를 제대로 느낀 것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얼음이 된……?

"형님, 저 새끼 그 새끼잖아요. 이 도사의 제자 놈이요. 숨어 있다가 나왔나 본데요?"

"패라."

"넵!"

놈들이 미쳤다.

아니면 저급한 경지라 나의 각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나 보다.

모르면 깨우쳐 줘야 한다.

난 사부를 저렇게 만든 분노를 고스란히 품고 그들을 향해…… 아!

퍽퍽퍽!

퍼퍼퍼퍼퍽!

퍽퍽!

씨팔.

각성했는데.

분노가 극에 달했는데.

이게 아닌가 보다.

아무 힘도 없다.

그냥 마음만 앞섰다.

난 바닥에 쓰러져 몸을 새우등처럼 웅크린 채, 놈들의 발길질을 사정없이 받아 내야 했다.

"으아아아악!"

사부는 어떻게 이 고통을 참아 낼 수 있었단 말인가?

나도 사부처럼 입을 꾹 닫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 입에서는 연신 비명이 울려 퍼졌다.

‘사부,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아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사부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멈추었던 눈물이 다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잠, 잠깐. 형님. 이 새끼요."

"왜?"

"손가락. 이 새끼 울면서 손가락으로 자신이 나온 저 밀실을 가리키는데요?"

"들어가 봐."

그렇다.

너무 아팠다.

사부에 대한 미안함에 마음도 아팠지만, 사실 놈들의 자비 없는 발길질을 견디기 힘들었다.

너무 아파서, 사문의 율법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장서실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거다.

나란 놈, 참 못났다.

"형님! 여기 다 있어요! 얼른 와 보세요."

놈들이 일시에 장서실로 뛰어 들어갔다.

난 쓰러진 채, 바닥을 기다시피 하여 사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사부는 아직 죽지 않았다.

나는 간신히 사부에게 다가가 손가락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손을 꼭 잡았다.

지그시 감겨 있던 사부의 눈이 떠졌다.

그 잘생긴 얼굴이,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감동이었던 사부의 얼굴이 너무나 초췌해져 있다.

"사부, 흑흑흑. 미안해요. 흑흑."

사부는 끝까지 미소 지었다.

"네…… 쿨럭. 네 잘못이…… 쿨럭. 아니다."

검은 피를 연신 쏟아 내면서도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나에게 그리 말하는 사부님.

나는 다시금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모두 챙겼지? 하나도 빠짐없이?"

"넵! 몇 번에 걸쳐 확인했습니다."

"그럼 저놈들 얼른 없애고 여길 뜨자."

"넵!"

이게 마지막인가 보다.

아니, 혹시 다시 광천동에서 깨어날 수 있으려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기대가 된다.

만약 정말 회귀라는 게 된다면, 그때는 우리 사부를 꼭 구할 것이다.

난 손가락이 모두 잘린 사부의 손을 꼭 잡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 되든 이미 모든 게 끝났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회귀가 되면 더없이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저 저세상에서 사부에게 사죄하고 더 잘 모셔야 할 것이다.

아! 사부는 천당 가고 난 지옥 갈 텐데.

못 만나려나?

쉬이이익.

사부의 목이 놈들의 칼에 베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젠 내 차례다.

난 이미 감은 눈을 더 질끈 감았다.

고통 없이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그때.

툭.

"화살이다."

"누가 오는 것 같습니다."

"몇이나 되는데?"

"모르겠습니다, 형님."

구산사괴가 당황하여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저 멀리서 계효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다! 저기 살인마들이 도사님을 죽인다! 어서들 오세요! 우리 도사님 구해 주세요! 여기예요, 여기!"

계효보 이 녀석.

기특한 자식.

마지막 순간 나를 살리는구나.

살기만 한다면, 살아나기만 한다면, 사부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다.

지난번보다 수백 배 잔혹하게 구산사괴를 죽여 줄 것이다.

계효보, 네가 최고다.

어서 사람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와 주군인 나를 구하여라!

"어쩔까요, 형님?"

"피한다. 이곳에 이러한 무공 비급이 있었다는 게 알려지면, 천하가 우릴 쫓을 것이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이 녀석은요?"

쉬이이익.

팟!

"가자!"

개새끼.

가려면 그냥 가지.

놈들은 마지막 한 방을 제대로 찌르고 떠났다.

심장도 아닌 목이다.

황노의 검에 관통된 목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계효보가 데리고 온 사람들 중 의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구산사괴는 이미 떠났다.

그리고 잠시 후, 계효보가 나타났다.

난 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지고 있는데, 계효보 이 녀석…… 왜지?

터벅터벅, 다급함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걸음으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러더니, 퍽!

"쿨럭."

계효보가 발로 내 머리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본능적으로 비명이 나오려 했으나, 이미 피로 가득 찬 기도에서는 비명 대신 검은 피만이 쏟아져 나왔다.

뭐지?

뭐야?

왜?

나의 충신이자 왼팔이 될 계효보 네가 왜?

"아! 하필 목을 찌르고 간 거야? 빌어먹을 새끼들."

도대체 왜!

생긴 게 지랄 맞긴 해도, 내가 그토록 신뢰하고 아꼈던 계효보 네가 왜 이러는 거야?

혼란스럽다.

도대체 뭐가 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퍽퍽!

다시 자신의 발로 내 머리를 두 번이나 강하게 내리찍는 계효보.

날 죽이려는 게 아니다.

그냥 짜증이 나서 내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차 버리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 역시 아픔보다는 충격이 더했다.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씨, 정말 어떻게 안 거지? 회귀를 하면 분명 모든 기억이 지워져야 하는데. 야, 광마야! 너 진짜 처음에 나를 어떻게 알아본 거냐? 말 못 하면 표정으로라도 설명해 봐, 새꺄!"

‘닭대가리니까 알아본 거지.’

퍽퍽퍽!

퍽퍽!

내가 아무런 표현도 할 수 없는 상태임을 놈도 안다.

그냥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는 거다.

그나저나, 회귀를 하면 기억이 지워져?

그건 놈의 말이 맞다.

광천동에서 깨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광마일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 회귀했을 때 놈의 반응이 이상했다.

내가 자신을 알아보자 크게 당황했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눈알을 사정없이 굴리고, 주저하며 움찔했던 것들 모든 게 다 저 녀석도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단 말인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해야 하는 내가 자신을 알아봐서?

또 묻지도 않았던 시간대를 먼저 나에게 물었다.

내가 환골탈태한 것이 아니라 회귀한 것이라 깨닫게 해 주려는 의도였나?

그러고 보니, 내가 현재의 시간대를 깨닫고 사부님께 가자고 했을 때 놈이 우렁찬 목소리로 답을 했었다.

무언가 엄청 신이 난 목소리였는데, 내가 그걸 깨달아서 기뻤던 건가?

이해되지 않았던 조각들이 조금은 맞춰지는 것 같다.

하지만 더 큰 것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설마 놈도 나와 같이 회귀를 하는 것인가?

그게 가능하다면, 놈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그렇게 해서 무얼 얻는다고.

잠깐! 결국 놈은 광마일기의 존재를 모른다는 거잖아?

만약 이게 회귀가 분명하다면, 혹시 광마일기와 각혼필 때문인가?

텅 빈 광천동 안에 있는 건 나와 그것들 뿐이니.

광마일기의 원래 이름은 추혼책이다.

설마 정말 그것과 연관이 있다면…….

퍽퍽!

퍼퍼퍽!

"아, 정말! 이번에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았는데, 하나도 물어보지 못하고 죽어 버리네. 등신 같은 새끼. 야! 야!"

퍽퍽!

"너, 새꺄! 회귀하기 전에 네가 분명 네 입으로 그랬잖아! 네가 사문의 신공이 탐나 사부를 죽이고 비급을 훔쳐 도망쳤다고. 그래서 새꺄, 내가 저 멀리까지 가서 비싼 돈 주고 비수까지 사다 줬는데, 뭐냐? 아씨, 정말 내 요술이 어떻게 잘못된 건가? 아니면 이 새끼가 광천마제 시절 거짓말을 친 건가?"

퍽퍽퍽!

퍽퍽!

퍼퍼퍼퍽!

"휴우. 그래도 잘했다. 두 번의 회귀 만에 현화승천신공을 얻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물론 넌 다 잊어버리고, 네가 익혔던 현화승천신공은 모두 내가 흡수하겠지만 말이야. 큭큭큭."

아! 이건 또 뭔 소리야?

현화승천신공을 흡수해?

아니, 그냥 현화승천신공이 아니라 내가 익힌 현화승천신공을 흡수한다는 말 같은데?

하나가 이해되니, 계속해서 다른 이해 못 할 것들이 생겨 버리는군.

뭐, 어차피 죽고 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텐데.

아씨, 이거 광마일기에 기록해야 하는데, 기록도 못 하고.

방법이 없다.

아마도 회귀는 또 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또 저놈에게 속아 버리겠군.

그게 정말 억울하다.

됐다.

그냥 죽자.

퍽퍽퍽!

퍽퍽퍽!

퍼퍼퍼퍼퍽!

나는 놈의 발길질에 당하며 서서히 죽어 갔다.

기억이 계속 흐릿해진다.

그렇게 내가 나의 죽음을 느끼고 있을 때.

정말 죽을 때가 된 것인지, 내가 살아왔던 모든 삶이 마치 주마등처럼 그렇게 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기억났다.

저 닭대가리 새끼.

내가 광천마제 시절, 천주전 대청에서 수백 명의 간부급 수하들을 불러 놓고 매일같이 술을 마시며 연회를 벌일 때.

맨 끄트머리에 술상조차 없어 앉지도 못하고 서 있던 수십 명의 하급 간부 중 한 명이다.

말단 중에서도 끄트머리 말단의 하급 간부 수십 명 중 한 명 말이다.

만약 놈의 외모가 닭상이 아니었으면, 이 기억조차 없었으리라.

퍽퍽퍽!

"죽으라고! 더럽게 안 죽네! 죽어!"

퍽퍽!

퍼퍼퍼퍽!

제발.

제발.

제발 부탁이다.

칼을 쓰라고.

아파.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죽음이었다.

* * *

난 누구?

여긴 또 어디?

신기한 동굴에서 깨어나 광마일기를 읽었다.

‘음, 마지막 부분이 기록되지 않은 걸 보니, 사부를 구하는 데 실패한 모양이군.’

그런데 정말 회귀가 되는 것인가?

신기한 일이다.

아니, 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일단 나의 충성스런 수하이자 왼팔이 될 계효보에게 물어봐야겠다.

광천동 밖에 있는 바위 위에 앉아 있으면 녀석이 올 것이다.

지금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 * *

<<계요일기(鷄妖日記)>>

난 계효보(鷄曉報)다.

나는 닭과, 그러니까 계족(鷄族)의 요괴다.

요괴들이 사는 세상, 요계(妖界)에서 왔다.

자의(自意)로 온 게 아니다.

나를 괴롭히던 극악무도한 요괴 놈들.

그놈들은 언제나 그렇듯 그날도 나를 때리고 괴롭혔다.

그러다 그냥 장난으로 보냈다.

놈들의 장난에 의해 인간계(人間界)로 보내진 거다.

시공간과 차원을 넘는 게 고작 장난이라고?

젠장.

빌어먹을.

그놈들에겐 그저 날 골탕 먹이고,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한 장난에 불과했다.

요계는 요괴의 종족에 따라 그 신분이 차별된다.

우리 계족은 하급 중에서도 최하급 요괴다.

거의 노예나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계족도 나와 같이 처참한 삶을 살아간다.

오죽했으면, 내가 인간계로 보내진 후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겠는가?

낯선 세계인 인간계는 내게 두려운 곳이었다.

어쩌면 요계에서 계속 당하며 살았던 삶이 본능처럼 낯선 환경을 더 두려워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꼭꼭 숨어 인간들과의 접촉을 피했다.

나를 이곳으로 보낸 요괴들이 곧 나를 요계로 소환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정말 아무도 날 찾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요계에서는 내가 사라진 것 자체를 모를 것이라는 사실을.

아니, 내가 사라지고 말고는 그들에게 애초에 관심의 대상조차 될 수 없음을.

결국 나는 그들이 나를 소환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야 했다.

평생 숨어 살 수 없어서 밖으로 나온 것이다.

두렵지만, 그래도 인간계에 적응해 살아야 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인간계, 인간들이 사는 세상.

인간, 그들은 약했다.

거기에 더해 우매하고 미련하기까지 했다.

우리 요계에서 칠팔십 살 먹은 어린 요괴들이나 부리는 장난 같은 요술에도 기겁을 하고, 마치 나를 신이라도 되는 양 떠받들었다.

좋았다.

기뻤다.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내가 왕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생겼다.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괴물 같은 놈들.

인간계로 와, 처음으로 죽을 뻔했다.

날 괴롭히던 요계의 사악한 요괴들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놈들이었다.

작은 마을에서, 얕은 요술로 마을의 신앙처럼 떠받들어지는 삶을 살던 나.

그놈들은 그런 나를 향해 미신이고, 사술이며, 사기꾼이라고 때렸다.

정말 죽기 직전까지 때린 후에야 간신히 구타를 멈췄다.

그들의 힘, 인간계로 와서 처음으로 느낀 무림인이란 자들의 힘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인간들에게 그런 괴물 같은 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보다 더 두려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들의 힘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한데 여기에도 반전이 있었다.

나를 죽기 직전까지 때렸던 이들.

나로 하여금 인간계의 무지막지한 힘을 깨닫게 했고 두려워하게 했으며 종국에는 동경하게 했던 자들.

이곳에서는 그들을 고작 이류 무사라 부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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