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정말 안 먹어?"
"네?"
"홍소계퇴(紅燒鷄腿, 닭다리 볶음 요리)하고 증계단(蒸鷄蛋, 찐 달걀) 안 먹냐고?"
"아, 네. 넵. 말씀드린 대로…… 닭과 달걀은 안 먹습니다."
"오리알은 먹었잖아?"
"아, 그게…… 닭만 안 먹습니다."
"풉. 그, 그래. 큭큭. 다른 거 먹어."
"넵."
아놔, 계효보 이 녀석 진짜 웃긴 놈이다.
아! 아무리 수하라도 이렇게 대놓고 웃으면 안 되는데.
너무 웃기다.
생긴 게 닭상인 녀석이 놀랍게도 실제 닭과 관련된 요리는 안 먹는다고 하였다.
더 웃긴 건, 꿩이나 기러기 요리 그리고 오리 요리 등은 너무 잘 먹는데 유독 닭만 안 먹는다.
거참, 볼수록 신기한 놈이네.
나와 계효보는 벌써 강서 남창에 도착해 한 객잔에서 식사 중이다.
내 고향이자 광천동이 있는 허창은 하남의 남쪽, 그리고 의제 곽우적의 우각회가 있는 남창은 강서의 북부, 거의 맞닿아 있다고 볼 정도로 가깝다.
그래도 걸어서 열흘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하지만 계효보 이 기특한 녀석이 말을 두 필 구했다.
주군인 나를 모시기 위해 돈도 넉넉히 준비했나 보다.
부자다.
덕분에 불과 사흘 만에 이곳 남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말을 타고 달리기 바빴기에 계효보와 대화를 나눌 시간은 거의 없었다.
간혹 이렇게 식사를 할 때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나는 나대로 머리가 복잡했고, 계효보 녀석도 뭔가 끙끙 앓는 모습이었다.
나한테 뭔가 말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코가 석 자라 그런 녀석을 일일이 신경 써 줄 여유가 없었다.
그런 중에도 난 광마일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틈만 나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
내 정신이 살짝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임을 잘 알기에, 혹시 몰라 대비하는 중이다.
그나저나 계효보 이 녀석은 진짜 왜 이러지?
뭐, 일단 우각회에 도착해 곽우적을 만나기만 하면 여유가 좀 생길 것이다.
그때 이 녀석이 왜 이렇게 앓는 표정을 지었는지 물어봐야겠다.
그나저나 진짜 닭고기는 입에도 안 댄다.
신기한 놈.
"가자."
"넵."
식사를 마친 우리는 곧바로 우각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없다.
젠장.
빌어먹을.
찢어 죽일 무림맹과 정파 그리고 사패천의 배신자 새끼들.
우각회를 통으로 없애 버렸다.
수십 개에 달하는 전각과 연무장, 높디높았던 담벼락마저 다 허물어 버렸다.
허허벌판.
삼 일 밤낮으로 달려 이곳에 왔는데 아무것도 없다니.
아! 돌아 버리겠다.
내가 무공을 되찾기만 한다면, 기필코 정파의 개잡종들과 사패천 배신자 놈들을 산 채로 갈아 마실 것이다.
"주, 주군."
분노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여 씩씩거리고 있을 때, 계효보가 내 눈치를 사정없이 살피며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나는 너무 화가 난 상태라 대꾸도 하지 않고 눈길만 줬다.
"우각당으로 가 보심은 어떠실까요?"
"우각당? 의제가 나를 만나기 전인 우각회의 전신 우각당?"
"네."
내 의제 곽우적은 원래 우각당(牛角堂)의 당주였다.
그냥 흑도(黑道)라고 하기에는 무공이 너무 뛰어났고, 사도(邪道)의 문파라고 하기에는 역사와 규모가 짧고 작았다.
한 마디로 고수를 품은 흑도 패거리가 바로 우각당이었다.
물론 그건 이십 년 전의 일이다.
나와 의기투합한 곽우적은 무공이 빛의 속도로 상승해 결국 화경의 벽을 깨고 무림 오대고수의 반열에 올랐다.
더불어 민초들을 상대로 삥이나 뜯던 우각당은 강서의 패자로 군림하는 강서제일문이 됐다.
아마 무림맹과 사패천 배신자들이 작정하고 손을 썼으면 우각당 자리라고 어디 남아 있겠는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가 보긴 해야겠다.
혹시 의제가 나에게 어떤 표시라도 남겨 두었을지 모르니 말이다.
"그래, 가자."
나와 계효보는 곧바로 우각당으로 움직였다.
조금 전 우리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한 시진도 걸리지 않을 거리다.
* * *
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진짜 있다.
이십 년 전 모습 그대로다.
심지어 우각당이라는 현판까지 떡하니 걸어 놓고 있다.
뭐지?
난 뭐에라도 홀린 것처럼, 어쩌면 진짜 의제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미친 듯 흥분하여 그렇게 우각당의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넌 뭐냐?"
문을 지키는 수문 무사는 없었다.
정문을 막 통과했을 때, 마당에 불량한 자세로 앉아 있던 세 놈이 나를 향해 다가와 몽둥이로 막아서며 말했다.
오! 이거였나?
완전 시정잡배가 따로 없군.
위장이었어.
머리가 그리 좋지 않은 나의 의제인데, 이번엔 머리 좀 썼나 보다.
이십 년 전 그때의 흑도, 왈패 무리로 위장을 한 것이다.
짝다리에 껄렁이며 바닥에 침을 뱉는 모습까지, 완전 삼류 잡배가 따로 없다.
이 정도면 무림맹이나 사패천에서도 건들기 힘들 것이다.
우각회를 통으로 없애 버렸는데, 이런 작은 흑도 패거리마저 없애기에는 보는 눈도 있고 부담이 됐을 테다.
아마 의제는 이곳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내가 찾아올 것을 대비해 놓았으리라.
난 험상궂은 얼굴로 나를 협박이라도 하듯 노려보는 녀석을 향해 빙긋 웃으며 은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다, 나."
세 녀석이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뭐, 환골탈태에 반로환동까지 했으니 못 알아보겠지.
"의제, 아니. 우적이를 만나러 왔다."
세 녀석이 이번에는 눈까지 서로 맞추며 의아한 얼굴을 했다.
이 녀석들은 위장이 아닌 진짜 멍청한 삼류 잡배를 불러다 놓은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난 누가 훔쳐보고 엿듣기라도 할까, 험상궂은 얼굴의 녀석에게 입을 가까이 대어 속삭이듯 말했다.
"곽우적. 우적이를 찾으러 왔다고."
내가 입을 가까이 댈 때까지만 해도 인상을 잔뜩 구기며 피하려던 녀석이, 내 말을 듣고는 곧바로 놀란 얼굴을 했다.
이제 좀 알아들은 모양이다.
난 만족한 미소를 지었고, 녀석은 곧바로 나름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당, 당주님과는 무슨 관계이신지……?"
"쉿! 미쳤어? 당주라고 하면 어떻게 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네? 그게 무슨……?"
"휴우. 교육을 덜 받은 모양이군. 아무튼 의제는 어디에 있나?"
의제라는 말에 세 녀석이 다시 의아한 얼굴로 서로 눈을 마주쳤다.
"우리 당주님의 의형이시라고요?"
"어허, 그 당주 소리 좀 그만하라니까? 경을 치려고."
험상궂은 얼굴의 녀석은 물론 다른 두 녀석까지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어쩌면 철저한 비밀 유지를 위해 이런 아랫것들에게까지는 진실을 다 말해 주지 않았나 보다.
"됐고. 의제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나 말해."
"당주님은 안에 계신데요?"
의제 이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천하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데 지금 이곳에 있다고?
설마, 등잔 밑이 어둡다는 계책으로 이러는 건가?
그래도 너무 위험한데.
안 되겠다.
빨리 만나 봐야겠다.
"가자. 당장 의제를 만나야겠다."
내가 서둘러 걸음을 옮기려 할 때, 세 녀석이 다시 나를 막았다.
처음보다는 조금 더 경계의 빛을 띠고 날 막아서는 세 녀석이다.
음, 녀석들의 심정도 모를 바 아니다.
그래도 급한데.
"우선 당주님께 여쭈어보겠습니다. 뉘시라고 전해 드릴까요?"
"의형이 왔다고 전해라."
"의형 누구요?"
"너…… 끄응. 나중에 두고 보자."
내 경고에 움찔하는 녀석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 이름 석 자를 반드시 듣고 말겠다는 결연한 각오마저 보인다.
어쩔 수 없다.
우선 의제를 만나야 한다.
난 아까보다 더 가까이 험상궂은 녀석의 귀에 내 입을 가져다 대고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마악치다."
녀석, 기절초풍하게 놀라…… 응?
이 녀석,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아까 표정 그대로다.
경계, 의심, 의아함, 이해 못 하겠음, 뭐 이런 얼굴이다.
천하에 내 이름을 모르는 무식한 인간이 다 있다니.
짜증이 치밀었지만, 이런 하급 잡배 따위에게 그런 분풀이를 할 때가 아니다.
"어서 가서 전하기나 해라."
"아, 네. 뭐.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껄렁이는 목 인사와 함께 세 녀석 중 험상궂은 녀석이 뜀박질하며 안으로 향했다.
* * *
일각이나 걸렸다.
험상궂은 녀석이 돌아왔다.
그런데 분위기가 영 이상하다.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퍽!
"으악!"
코, 코피가 난다.
오자마자 주먹부터 휘두르는 녀석이다.
"너, 지금! 무슨 짓이냐!"
"이런 미친 새끼가 있나! 아오, 당주한테 개 혼났네, 잡상인 들인다고. 이런 씨팔 놈이!"
퍽퍽퍽!
퍽퍽!
주먹으로 맞고 발로 맞았다.
험상궂은 놈이 날 미친 듯이 때리기 시작하자, 다른 두 놈까지 가세했다.
이런 구족을 멸할 놈들!
마음은 그러고 싶었으나, 당장 아무런 힘도 없다.
뭔가 마음으로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만!"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목소리를 높였다.
아! 효과가 있다.
사정없이 나를 지르밟던 놈들의 발이 멈춘 것이다.
"뭔가 오해가…… 의제가 날 보면 분명 알아볼……."
퍽퍽퍽!
"창문으로 다 보셨어, 새꺄! 아무리 봐도 너란 놈은 모르신단다, 이 정신 나간 새끼야! 뒤져! 죽어!"
퍽퍽퍽!
다시 무지막지한 구타가 시작되었다.
거짓말 하나 안 치고 죽을 것 같다.
진짜 이러다 죽는다.
맞다!
효보!
나의 충성스런 수하 계효보!
이런 삼류 잡배 따위는 마차로 가득 싣고 와도 순식간에 전부 목을 따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병막산에서 본 효보는 분명 제대로 무공을 익힌 무인이다.
그러니 충분히 이 녀석들 따위는…… 아! 없다.
효보가 가장 필요한 순간, 녀석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우각당에 왔을 때부터 녀석은 없었다.
도대체 왜?
어디로 간 거야?
퍽퍽퍽!
흙바닥에 쓰러져 새우등을 하고 머리를 감싼 나를 세 녀석은 무려 한 식경이나 두들겨 팼다.
뼈가 몇 군데 부러졌다.
사지에 감각이 없다.
의식도 희미해져 간다.
"어? 엿됐다."
"왜?"
"이 새끼 봐 봐. 안 움직여."
"숨은 쉬는데?"
"그냥 갖다 버리자. 수레 가져와."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 놈들이 나를 수레에 싣고 삐거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 *
툭.
야산인가?
놈들이 수레에서 나를 꺼내 흙바닥으로 던졌다.
난 가망이 없다.
입도 뻥끗 못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 같은데. 확실히 명줄을 끊어 버릴까?"
"됐어. 칼자국 냈다가 걸리면 더 안 좋아. 화타가 되살아나도 살리기 힘들겠는데, 뭐. 산짐승들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가자. 기분도 더러운데 가서 술이나 한잔하자."
"그래. 가자고."
그렇게 나를 버린 세 녀석이 사라졌고, 내 의식은 더더욱 희미해져 갔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죽음이었다.
퍽퍽퍽!
뭐지?
분명 거의 다 죽었었는데?
인생의 마지막 대사까지 멋지게 쳤는데?
퍽퍽퍽!
무지하게 아프다.
"개새꺄! 죽어! 죽어! 죽으라고!"
이 목소리?
입을 여는 건 물론 눈도 뜨기 힘들었지만, 정말 마지막 힘을 쥐어짜 한쪽 눈을 간신히 떠 상대를 보았다.
효보다.
계효보.
계효보가 왜 나를?
퍽퍽!
"전생에도! 그렇게! 끈질기게! 죽지! 않더니!"
퍽퍽퍽!
"좀 죽어라, 개새꺄!"
퍽퍽퍽!
이 미친 새끼야!
죽일 거면 칼을 써!
아파!
아프다고!
문명의 이기인 칼을 놔두고 왜 자꾸 발길질이야!
그러니 닭대가리 소리나 듣지!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계효보의 발길질은 계속 이어졌다.
뭔가 화가 가득한 것이, 아까 우각당 놈들의 발길질보다 훨씬 더 아프다.
퍽퍽!
퍼퍼퍽!
"환골탈태! 반로환동! 등신 같은 새꺄!"
퍽퍽!
"회귀! 회귀라고!"
퍽퍽!
"환골탈태, 반로환동이 아니라! 이십 년 전으로 회귀했다고, 단순! 무식! 광천마제 돌대가리 새꺄!"
퍽퍽퍽!
뭐지?
회귀라고?
내가 회귀를 한 거라고?
아! 정신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가는데,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나저나 이걸 광마일기에 적어야 하는데.
아니지.
어차피 이게 끝인데.
그래, 끝이다.
그 증거로.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죽을 때가 되면 다들 본다는 그거.
내가, 나 마악치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삶이 마치 주마등처럼 내 눈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성공했었군.’
의식이 희미해져 간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