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81화 (180/184)

181화 마치 거대한 무의식의 원시적 공간 같았다.

중심으로 진입을 할수록 시시각각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터진 물꼬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이 구분도 없이 마구잡이로 얽혀드는 것 같았다.

지평선과 하늘의 공제선이 맞닿는 그 검붉은 접점에서 이계의 하늘이 현실의 하늘과 뒤엉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검붉은 세 개의 태양과 다섯 개의 달이 순서도 없이 마주잡이로 휘돌고 있었다.

그 이상한 공간은 마치 거대한 무의식의 원시적 공간 같았다.

보려고 하면 없고, 보지 않으려고 하면 바로 눈앞에 있는 이상한 공간.

어디서 어디까지가 실제의 공간이고 어디서부터 환상의 공간인지 구분도 안 되는 공간이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공간이 검붉은 안개 속에서 끝없이 일렁이고 있었다.

멀리서 살피면 크게 보이고 가까이서 살피면 작게 보이는 공간.

그 공간은 현실 세계와 전혀 다른 질서로 움직이는 이계의 세계였다.

심지어 나무와 바위가 거꾸로 떠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나무와 바위와 사람이 까마득한 하늘로 추락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그때 허공과 땅 속에서 법구를 치고 요령을 흔드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지축을 울리는 쿵—쿵—쿵 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외침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돌이 걸어 다닌다.”

“나무가 날아다닌다.”

사람 향상을 한 수천의 거대한 목인(木人)과 석인(石人)이 사방에서 벌떼처럼 공격을 해 왔다.

순식간에 토벌대의 대열이 흐트러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목인과 석인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금군의 병사들과 제마단 단원들이 추풍낙엽처럼 나동그라졌다.

병장기 휘두르는 소리와 무수한 단말마의 비명이 뒤섞인 시공간은 마치 지옥이 현실에 나타난 것 같았다.

청운이 무영검을 빼 들고 번개처럼 장내로 뛰어들었다.

제혼마감과 무림삼괴, 천리신개와 검후, 혼원벽력도도 일제히 장내로 뛰어들었다.

그들이 권과 검, 도를 휘두를 때마다 대여섯 구의 석인과 목인이 박살이 나서 나뒹굴었다.

특히 청운과 제혼마감의 무위가 뛰어났다.

그 둘이 일 검을 내지를 때마다 수십여 구의 석인과 목인이 한꺼번에 박살이 났다.

그 둘은 마치 악귀(惡鬼)를 징계하려고 천계(天界)에서 내려보낸 신장(神將) 같았다.

채 일다 경도 안 되어 수백 구의 석인과 목인을 부숴버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렇게 부서진 석인과 목인들이 채 일 각도 안 되어 스멀스멀 되살아나고 있었다.

허탈했다.

청운은 갑자기 맥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무영검을 축 늘어뜨린 채 멍하니 석인과 목인이 되살아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청운에게 곤륜선인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곤륜선인이 청운에게 말했다.

“저건 아무래도 석천마인(石天魔人)과 목령마인(木靈魔人) 같네. 저것들은 아주 어린 아이일 때부터 온갖 약물로 이지를 상실케 한 후 십 년 이상을 석기(石氣)와 목기(木氣)를 불어넣어 만든 마물(魔物)이네. 어지간하게 부숴서는 끝없이 되살아난다네. 아예 가루로 만들어야 하네.”

청운이 공력을 잔뜩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서둘러 뒤로 물러나시오.”

싸움을 중단하고 사람들이 뒤로 물러난 걸 확인한 청운이 무영검을 납검하고 신단적을 품속에서 꺼냈다.

청운은 제자리에 선 채로 즉시 단천파혼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광경이 사람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신단적의 음파가 미치는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가루로 화해 허공에 흩어졌다.

나무고 돌이고 석인이고 목인이고 모조리 먼지로 화했다.

청운의 연주가 끝났을 때 방원 오십여 장의 주변은 모조리 폐허가 되어 있었다.

가공할 위력이었다.

과거와는 또 다른 경지였다.

그 광경을 눈으로 목도한 사람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청운이 신단적을 품속에 갈무리하고 한참이 지나도,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불신의 눈빛으로 청운을 쳐다봤다.

제혼마감조차 불신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청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같은 편이면서도 공포를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석인과 목인과의 격전으로 금군의 반 이상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고, 제마단 대원들도 거의 수백이 죽어 나갔다.

잠시 후, 제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서둘러 구덩이를 파고 죽은 자들을 묻었다.

그들에 대한 잠시의 애도가 끝나자마자 다시 사람들이 중심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중심을 향해 들어갈수록 검붉은 안개는 더 짙어지고 시공간이 더 이지러졌다.

그 시공간을 넘어 어디선가 요란한 법구(法具) 두드리는 소리와 요령 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중심에 다가간 것 같았다.

그 낯설고 비현실적인 시공간에는 사람의 영혼을 옥죄는 음울한 귀곡성과 검은 얼룩 같은 심령과 생령들이 가득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지독한 두려움과 공포라는 으스스한 두 단어가 그곳에 들어선 사람들의 영육을 무의식처럼 지배하고 있었다.

대다수가 너무나 극심한 공포에 질려 더 이상 싸울 의지마저 상실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그 길엔 또 어떤 가공할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기에 어쨌든 죽더라도 이곳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 하나는 모두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얼마를 그렇게 더 진격했을까.

사방에서 지축을 쿵, 쿵, 쿵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청운이 극황지감술을 운기했다.

언젠가 들어본 익숙한 발소리였다.

청운은 속으로 설마 마령실인과 금강마불! 하고 중얼거렸다.

그랬다.

그 소리는 수백 구의 마령실인과 금강마불이 지축을 밟는 소리였다.

청운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전진하지 말라고 말한 후 아예 자신이 먼저 앞으로 뛰쳐나갔다.

다시 청운은 무영검을 납검하고 신단적을 꺼냈다.

청운에게 한 번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는 그들은 마령실인과 금강마불을 한곳으로 집중시키지 않고 여러 곳으로 분산해서 사람들을 덮쳐왔다.

그 광경을 본 청운도 단천파혼을 다른 방식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음파를 조절해 사람들을 향해 접근하는 마령실인과 금강마불을 먼저 파괴해버렸다.

서너 번의 연주가 끝나자 수백 구의 마령실인과 금강마불이 모조리 먼지로 화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놀라지도 않았다.

아예 그 결과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조차 있었다.

다시 일각 정도를 더 진입하자 토벌대가 드디어 중심에 도착했다.

약 오 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성대한 제전(祭典)이 펼쳐지고 있었다.

거대한 제단(祭壇) 위에 설치된 화로에서는 커다란 불꽃이 일렁이고 수천이 훨씬 넘는 자들이 중무장을 한 채 제단을 겹겹이 에워싼 채 지키고 있었다.

어둠으로 얼룩진 빛, 구름 덮인 영혼들, 선을 이룬 피, 암흑과 함께 있는 죽음, 죽음의 틈새를 들여다보는 불안한 눈빛들.

지금 저들은 사이한 주문과 주술로 고대의 주령(呪靈)(주술과 영적인 힘을 믿던 시대)시대를 재현하려고 하고 있다.

고립과 소외에서 키운 분노와 증오로 마족들은 절대로 깨닫지 말아야 할, 인간의 자력으로는 지탱될 수 없는 차원인, 신의 가호가 아니라 신의 폭력이 지배하는 차원의 힘을 깨닫고 말았다.

그들은 그 악마적 힘으로 자신들을 차별하고 혐오했던 중원을 향해 분노와 증오의 문을 열려고 하고 있다.

중원이 중원인을 위해 만든 질서를 갈아엎고 자신들의 질서를 필사적으로 세상에 구현하려 하고 있었다.

토벌대들이 장내에 진입하자 법구를 두드리고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갑자기 더 급박해졌다.

마족들이 삼계를 열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것 같았다.

청운은 초조해졌다.

조금이라도 삼계가 열리면 일은 훨씬 더 힘들어진다.

삼계가 열리기 전에 모든 걸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그래야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청운이 막 신형을 솟구치려는 순간 제단을 지키고 있던 수천의 마족 전사들이 토벌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필사적으로 제전을 보호하려는 것 같았다.

청운은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살계를 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자신의 행보를 가로막는 자들을 가차 없이 베고 또 벴다.

무림삼괴와 천리신개, 검후 그리고 혼원벽력도도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적의 전사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들의 무위로 봤을 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특히 제혼마검의 활약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가 한 차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십여 명의 마족 전사들이 썩은 짚단처럼 나동그라졌다.

순식간에 청운의 옷은 소나기를 맞은 듯 피로 흥건히 젖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몹시 눈에 익은 마족의 전사 둘이 보였다.

그들은 마족이 아니었다.

바로 모용후와 남궁혁휘었다.

청운은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그곳으로 날아갔다.

청운이 갑자기 자신들 앞에 나타나자 그들은 깜짝 놀라는 모양새였다.

청운은 모용후를 먼저 공격했다.

모용후는 저주의 마공인 천녀혈수를 펼치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청운의 적수가 아니었다.

모용후는 청운의 공격을 채 삼 초도 받아내지 못하고 단전이 파괴되고 말았다.

황금면객, 아니 그의 아버지 모용성의 마지막 부탁이 아니었으면 청운은 가차 없이 모용후의 목을 베었을 것이다.

그리고 십여 초 만에 남궁혁휘을 제압했다.

최소 백 일 정도는 무공을 사용할 수 없도록 여러 곳의 혈도를 깊게 짚어버렸다.

그리고는 곤륜선인에게 보호를 부탁했다.

청운은 무엇보다 저들의 제전을 중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청운은 자신을 막아서는 마족 전사들을 가차 없이 도륙하면서 무조건 제단을 향해 직진했다.

청운은 오늘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생각하는 것을 멈춘 사람 같았다.

아니, 일부러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을 한다고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오늘은 그런 날이라고 청운은 생각했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기괴한 공간 속에서 자황색의 성운과 빛에 둘러싸인 채 마족의 전사를 도륙하는 청운의 신위는 세상을 구원하려 내려온 천신 같기도 했고, 이미 몰락한 세상을 완전히 끝장내 버리려는 아수라 같기도 했다.

청운이 마족 전사들의 필사적인 저항을 뚫고 제단 오십여 장 가까이 접근했다.

하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조금 늦은 것 같았다.

제단 뒤 시공간이 이상한 모양으로 뒤틀려 있었다.

그 기괴한 시공간은 헐고 찢어져 쩍 벌어진 이승의 커다란 상처 같았다.

그 두렵고 불쾌한 시공간의 틈에서 난생처음 접하는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오른 것 같았다.

공간 자체가 거대한 혐오와 공포로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삼계가 일부 열린 것 같았다.

제단 위에서 화려한 금색 장포를 입고 천관(天冠)을 쓴자가 주문을 외우고 동작을 취할 때마다 흉측스럽고 징그러운 괴수와 요괴들이 그 틈새에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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