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그 무공 속에 깃든 사이한 기운은 뭐라고 해야 할지…….
청운도 그를 마주보며 포권을 취했다.
그가 청운을 가운데 있는 천막으로 안내했다.
천막 앞에서 멈추어 선 그가 천막 안을 향해 말했다.
“맹주님, 무위검 대협께서 오셨습니다.”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천막이 활짝 젖혀지더니 맹주 사마휘가 나타났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너스레를 떨며 청운을 반겼다.
“어서 오시게. 강 대협.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네. 상의할 게 많아서…….”
그가 의자를 빼주며 청운에게 자리를 권했다.
청운이 자리에 앉자 옆에 시립하고 있던 무사가 곧바로 찻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맹주가 청운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황궁에서의 자네 활약은 소문으로 익히 들었네. 참으로 대단한 일을 했네. 덕분에 황궁과 무림의 관계가 아주 좋아졌다네. 이 모두가 강호의 흉복이네. 내가 무림을 대신해서 감사를 드리네. 그런데 반송장이 된 귀비와 병필태감이 도망을 쳤다지.”
“…….”
“그들이 대체 어떤 사악한 사술을 부렸기에… 어쨌든 이참에 마족의 씨를 완전히 말려야 하네. 그래야 다시는 강호에 이런 혼란이 야기되지 않을 것이네. 그래서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에서 차출한 일천이백 명의 대원으로 제마단(制魔團)을 꾸렸다네. 단주는 우리 가문의 사마연이 추대되었네.”
“그렇습니까.”
“또한, 제마단은 다시 네 개의 대(隊)로 나눠 소림의 현각, 무당의 현기자, 화산의 양소무, 황보가의 황보천이 대주를 맡았다네. 그리고 맹의 천무대 대원 오백 명은 가천일이 지휘하고 있다네. 이만하면 토벌대의 규모가 그리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청운은 토벌대의 규모가 어느 정도이건 누가 단주와 대주를 맡든지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어차피 이 사태를 빌미로 그들의 이권 다툼에 불과하니까.
청운은 오로지 서로 공을 세우겠다는 그들의 과욕과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큰 인명 손실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청운이 맹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토벌대는 잘 꾸려지신 것 같습니다. 다만 신중에 신중을 기하셔야 할 줄 압니다. 마족이 준비한 수를 우리는 전혀 모르니… 희생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하면 공륜선인님의 말씀을 따라주셨으면 합니다. 마족의 사이한 사술과 주술에 관해서는 그래도 현 강호에서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니까요.”
맹주는 입가에 한 가닥 은은한 미소를 베어 물고는 청운의 말을 받았다.
“내, 자네의 말을 명심하도록 하겠네. 그런데 자네는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네. 사흘 전에 황제가 갑자기 붕어(崩御) 했다네. 장례가 끝나면 삼황자가 황제로 등극할 거라는군. 그 와중에도 삼황자는 십만대산으로 일만의 금군을 출동시켰다네. 삼황자의 분노가 대단한 모양이야.”
청운은 맹주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황제의 붕어도 그렇지만 일만 금군의 출병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렇게 말렸음에도 금군을 동원한 삼황자의 처사가 청운은 내심 못마땅했다.
삼황자의 분노야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 것이었지만 자칫 일만 금군이 마족의 암수에 빠져 큰 희생을 당할까 싶어 청운은 내심 불안했다.
일을 서둘러야 할 것 같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이 초조한 표정을 지은 채 맹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천리신개를 비롯한 다른 분들은 어디 묵고 있는지 혹시 아니는 지요. 서둘러 그들을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맹주가 청운의 말을 곧장 받았다.
“강호의 다른 명숙들은 사흘 뒤 십만대산의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네. 그들은 우리와 별도로 움직이고 있네. 아마, 지금쯤 서녕의 객잔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네. 자네도 그들과 함께 움직일 생각인가?”
청운이 맹주의 말을 받았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만 일어나 봐야 하겠습니다. 사흘 뒤 십만대산의 입구에서 뵙도록 하지요.”
청운이 마시던 차를 마저 마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맹주가 천막 밖에까지 따라 나와 청운을 배웅했다.
그것은 강호에서의 청운의 위상이 그만큼 격상되었음을 보여주는 일례였다.
청운은 서녕이 있는 방향을 가늠하고는 곧장 신형을 날렸다.
청운이 떠난 자리에서 한 줄기 서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천리신개 일행은 <용화루>라는 객잔의 별채에 묵고 있었다.
청운이 들어서자 개방의 방도 하나가 청운을 알아보고는 즉시 안에다 보고했다.
천리신개와 검후, 진소소 그리고 혼원벽력도가 곧장 밖으로 뛰어나왔다.
청운을 본 천리신개가 만면에 웃음을 지은 채 청운의 손을 붙들고 반갑게 맞았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마친 후 방으로 들어갔다.
청운이 오기 전까지 그들은 차를 마시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탁자 위에는 찻주전자와 네 개의 잔이 놓여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검후가 청운에게 차를 따르며 말했다.
“강 대협, 그래 몸은 괜찮으신지요. 황궁에서 너무 많은 진력을 소진한 것 같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대장군과 병필태감 그리고 귀비의 무위가 그 정도일 줄은 나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
“그들의 무공도 무공이지만 그 무공 속에 깃든 사이한 기운을 뭐라고 해야 할지… 인세의 힘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대장군의 <구환마검>은 지금 생각해도 온몸에 소름이 끼칩니다. 그런 자들을 모조리 꺽은 강 대협의 무위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천리신개가 즉시 검후의 말을 받았다.
“나도 검후님과 같은 생각이네. 만약 십만대산에 도사린 무리들의 무공이 그와 비슷하다면 이건 보통 큰일이 아닐세. 거기다가 그들이 또 무슨 암수를 준비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그래, 강 대협은 그자들을 어떻게 상대할 생각인가? 따로 준비해 둔 복안이라도 있는가?”
청운이 차분하면서도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느 정도 희생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저로서도 현재 특별한 대책은 없습니다. 최선은 저들이 완벽한 준비를 마치기 전에 치는 것입니다. 그래야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곤륜선인님을 한 번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쪽의 일에 관해서는 그분보다 더 해박한 지식을 가진 분이 현 강호에는 없으니까요.”
혼원벽력도가 청운의 말을 받았다.
“지금으로서는 강 대협의 생각이 최선인 것 같네. 이 객잔 맞은편 <천성루>에 곤륜선인과 무림삼괴가 묵고 있다네. 차를 마시고 한 번 가 보시게. 그분들이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것을 강 대협에게는 말할 수도 있으니…….”
청운은 차를 다 마시자마자 곧장 <천성루>로 향했다.
곤륜선인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들떠 청운은 별채에 들어서면서 소리를 쳤다.
“선인님, 청우입니다.”
잠시 후, 별채의 월동문이 열리더니 곤륜선인을 비롯해 네 명의 도사풍 복장을 한 사람이 나타났다.
모두 오십 대 중후반으로 하나같이 흰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곤륜선인을 보자마자 청운이 크게 읍을 하며 인사를 했다.
“선인님, 별래 무양하셨는지요. 그동안 찾아뵙지 못해 송구합니다.”
곤륜선이 입가에 인자한 미소를 베어 물고는 말했다.
“자네가 어디 보통 바쁜 사람인가. 이렇게 만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이지. 그리고 서로 인사를 나누시게. 내가 소개하지. 이쪽은 내 사제 여위현이네. 현재 곤륜의 장로로 계시네. 그리고 저 두 분은 전진의 구처기 수석장로님과 손불이 장로님이시네.”
청운이 일일이 공손하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강호 소졸 강청운이 장로님을 뵙습니다.”
구처기 수석장로가 환하게 웃으며 청운의 말을 곧장 받았다.
“당대 제일의 협객이 무명 소졸이라니. 강 대협, 자신을 너무 낮추는 것 또한 결례라네. 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서 차라도 마시며 이야기하세.”
청운이 방으로 들어서 의자에 앉자 대기하고 있던 전진의 어린 문도 하나가 일일이 차를 따라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청운이 곤륜선인에게 물었다.
“선인님, 저들이 어떤 흉계를 꾸밀지 혹시 짐작 가시는 바가 계시는지요.”
차를 한 모금 마시다만 곤륜선인이 말했다.
“나라고 뭐 뾰족한 대책이라도 있겠나. 다만, 혹시나 해서 여기 전진의 장로님들과 상의를 해서 몇 가지 준비를 하기는 했네. 저들의 주술과 용독에 대비해 두어 가지 환약을 준비했고, 저들의 사악한 주술과 주문을 을 깰 부적들을 좀 준비했네.”
“…….”
“하지만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네. 어쨌든 모든 큰 희생 없이 일이 잘 마무리되어야 할 터인데.”
청운이 고마운 표정을 지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선인님의 노고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그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마련주가 어디에 묵고 있는지 아십니까. 아무래도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곤륜선인이 답했다.
“이 길 끝자락에 있는 <영한루>를 아예 전세를 낸 모양이야. 한 오십여 명 된다는군. 어서 갔다 오시게. 이럴 때일수록 사람을 잘 챙겨야 하네. 큰 것보다 작고 사소한 것이 사람과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는 법이지.”
청운은 차를 마시자마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무림삼괴에게 먼저 갈까 하다가 제혼마검에게 먼저 가기로 했다.
무림삼괴와 만나면 아무래도 거나하게 술판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영한루> 앞에는 십여 명의 무사들이 상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청운이 다가가자 흉광을 번뜩이며 노려보기 시작했다.
청운이 삼 장 가까이 다가가자 일제히 검을 빼 들었다.
그들 중 가운데 있는 자가 청운에게 위협하듯이 말했다.
“멈춰라. 여기는 마련에서 전세를 낸 곳이다. 썩 돌아가라.”
청운이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강청운이오. 련주를 뵈러 왔다고 안에다 기별을 넣어 주시오.”
청운이 신분을 밝히자 사내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혹시, 무위검 강 대협이십니까.”
청운이 고개를 끄떡이자 사내는 부리나케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잠시 후 누군가 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수라마군이었다.
그는 청운을 보자마자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반기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게 누군가. 무위검 강 소협 아닌가. 이런 곳에서 자넬 보게 되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자,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 련주께서 기다리시네.”
청운이 깍듯하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군님. 그동안 잘 계셨는지요.”
청운의 인사를 받으며 청운의 신체를 쭉 훑어보던 수라마군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자네, 그 사이에 또 무슨 일이 있었는가. 기도가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네. 이제는 내 안목을 훨씬 넘어서 있는 것 같네.”
청운이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작은 깨달음이 있기는 했습니다. 별건 아닙니다.”
수라마군이 한 차례 헛웃음을 짓고는 청운의 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