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71화 (171/184)

171화 어떻게 저런 무공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청운은 그 밀물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자신을 차츰 비워나갔다.

자신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자신마저 비워버린 청운의 무영검은 그의 장영이 나타나면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의 장영이 사라지면 별안간 나타나 어김없이 장력의 빈틈에 치우의 서기와 전륜의 빛을 비추었다.

거의 백여 초가 지나도록 승기를 잡지 못한 병필대감이 청운보다 먼저 초초함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그의 장심에서 불그스름한 사기(邪氣)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덩달아 그의 혈안도 금방이라도 불꽃이 타오를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바로 그때 숯불에 달군 인두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그의 장심과 손가락 끝에서 고-오-오-오, 하는 듣는 사람의 영혼을 물어뜯는 귀곡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청운은 바짝 긴장했다.

천산의 천도봉에서 바로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었던 저주의 마공인 천녀혈수였다.

그는 이참에 반드시 승부를 결할 참인 것처럼 보였다.

청운도 자신을 빠르게 잊기 시작했다.

대결도 잊고, 상대도 잊고, 이곳이 황궁이란 것도 잊고, 자신이 자신이라는 생각마저 잊어갔다.

자신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도록.

병필태감은 필생의 내력을 끌어올리는 것 같았다.

그의 붉디붉은 혈안이 마치 피가 끓어오르는 것처럼 것 같다고 청운이 느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장심과 손가락 끝에서 검은 머리를 산발하고 송곳니를 드러낸 채 붉은 혀를 마치 채찍처럼 길게 빼문, 보는 것조차 혐오스러운 귀녀의 나신 형상이 나타났다.

징그럽게도 그 귀녀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자라났다.

마침내 그 귀녀상의 크기가 실제 사람보다 더 크게 자라났다.

모두 열 개였다.

갑자기 그 귀녀상들이 귀신이 사람을 홀리듯 병필대감을 중심에 두고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한순간 그 귀녀상들이 병필대감의 장심에서 차례로 포개지며 하나로 합쳐졌다.

귀녀상의 나신에서 절대로 꺼지지 않을 것 같은 지옥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마치 지옥에서 공포의 악귀가 자신의 몸속에 지옥 불을 가득 담은 채 이승으로 도망쳐온 것 같았다.

병필태감의 모습을 바라보던 주변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자신의 싸움도 잊은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예 무기를 집어던지고 달아나는 자도 수두룩했다.

청운은 천산에서 맞닥뜨릴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가공해진 그의 모습을 자신을 전부 비워버린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청운은 자신을 전부 비운 자신의 영육에 치우의 서기와 전륜의 빛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무영검에서 투명한 자황색의 서기 같은 빛이 사방으로 줄기줄기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병필대감이 지옥의 입구에서 머리채를 잡고 악귀를 끌어올리듯이 자신의 장심에서 청운을 노려보고 있던 혐오스러운 귀녀를 청운을 향해 내던지듯 떨쳐냈다.

주변 사람의 고막을 파열시킬 듯한 고-오-오-오, 하는 엄청난 귀곡성과 함께 붉디붉은 나신의 귀녀가 청운의 목과 심장을 당장에라도 할퀴고 물어 뜯어버릴 듯한 가공할 기세로 청운을 덮쳐왔다.

병필태감이 발출한 귀녀상이 청운의 삼 장 가까이 도달한 순간 청운 역시 극한으로 끌어올린 치우의 서기와 전륜의 빛이 주입된 무영검으로 멸환겁을 전개했다.

극한의 멸환겁과 극강의 천녀혈수가 충돌한 자장 속에 있던 대기가 일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폭발했다.

그 충돌의 여파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가루가 되어 가공할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먼지만 가득한 그 소용돌이 속에서 처절한 외마디 비명 하나와 묵직한 신음 하나가 장외로 흘러나왔다.

주변을 새까맣게 뒤덮었던 먼지가 차츰 가라앉자 모든 상황이 한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청운과 병필태감이 대치하고 있었던 땅은 거의 삼 장 깊이로 파인 채 깊은 웅덩이가 생겨났고, 미리 장내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던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썩은 짚단처럼 나동그라져 울컥울컥 선혈을 토하고 있었다.

아예 혼절해 움직이지 못하는 자들도 수십여 명이 넘었다.

청운은 몇 사발의 피를 제 발등 위에 토하며 무영검으로 간신히 땅을 짚은 채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청운의 맞은편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왼팔과 오른쪽 허벅지가 거의 잘린 병필태감이 피를 철철 흘리며 거의 산송장이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그때 혼잣말로 웅얼거리는 듯한 탄성이 여러 곳에서 새어 나왔다.

“저게 과연 인간의 무공이 맞기는 맞는가. 어떻게 저런 무공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혹여 지옥의 나찰과 천계의 신장이 저 두 사람의 몸을 빌어 강림이라도 한 석인가. 도대체 저게 무슨 무공이기에…….”

“…….”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신형을 부르르 떨고 있는 청운의 눈에 황궁 시위 두 명이 병필태감에게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곧장 그의 마혈을 찍고는 오라로 포박해서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갔다.

환관들의 무리와 결탁해 그들의 편에 섰던 장군과 군졸들은 자신들이 신처럼 떠받들었던 병필태감이 청운에게 허망하게 패하자 심한 혼란에 빠진 것 같았다.

우왕좌왕하면서 전열이 급격하게 흐트러지고 있었다.

무기를 버리고 도망가는 자들도 부지기수였다.

황군 쪽으로 전세가 급격하게 기울고 있었다.

청운은 그들의 동요를 바라보면서 상황을 마저 정리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내기가 몹시 진탕되어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지만, 청운은 무영검을 짚고 신형을 간신히 바로잡았다.

한시라도 빨리 상황을 정리하고 잠시라도 쉬고 싶었다.

청운이 내공을 살짝 실어 일갈했다.

청운의 목소리가 허공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모두 싸움을 멈춰라. 모든 게 끝났다. 지금이라도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는 자는 선처를 베풀 것이다. 끝까지 반항하는 자는 즉참할 것이다.”

병필태감 쪽 병사들이 잠시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한두 명이 먼저 무기를 버리자 점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는 자들이 많아졌다.

이 다 경쯤 지나자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었다.

청운이 황제와 삼황자가 있는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을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들리는지 알 수 없는 괴이한 소리에 장내에 있던 사람들이 놀란 꿩처럼 허둥댔다.

그들은 징-징-징 울리는 음침한 법구(法具)를 치는 것 같은 소리에 뒤섞인 요령 흔드는 것 같은 괴이한 소리에 넋이 반쯤 나간 것 같았다.

특히 대소신려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서둘러 빠져나갈 기회를 엿보며 우왕좌왕했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서로의 두려움을 확인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알 수 없는 공포의 그림자가 이곳에 있는 모두를 지배하고 있었다.

특히, 황궁 시위와 대소신료들은 황제와 삼황자에게 무슨 횡액이 닥칠까 전전긍긍했다.

다행히 삼황자는 침착했다.

그의 무게감 있는 태도는 자신이 앞으로 이 황궁을 이끌 지배자임을 모두에게 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극황지감술을 최대한 끌어올린 청운은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동쪽으로 백여 장 정도 떨어진 땅속이었다.

청운은 반송장이 되어 오랏줄에 묶여 있는 병필태감에게 즉시 달려갔다.

그의 등에 대고 진기를 불어넣었다.

그가 끄-응, 하는 신음을 한 차례 내뱉고는 간신히 눈을 떴다.

청운이 다급하게 그에게 물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요. 빨리 말하시오.”

그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띠고는 신음을 흘리듯이 말했다.

“잘난 네놈이 스스로 알아봐라. 알아도 이미 때가 늦었지만.”

청운은 그를 내팽개치고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천리신개 일행과 황궁 시위 이십여 명도 다급하게 청운을 뒤따랐다.

소리는 이제 사용하지 않은 우물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청운은 두꺼운 철판으로 덮여 있는 우물의 뚜껑을 곧바로 들어 올렸다.

소리가 더 크게 올라왔다.

안력을 잔뜩 돋우어 우물의 바닥을 들여다보았다.

무저갱 같은 우물에는 시커먼 어둠이 잔뜩 고여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우물 속에서 들리는 괴이한 소음.

잠시 우물 앞에서 머뭇거리던 청운은 병필태감의 말을 되새기고는 곧장 컴컴한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일단 일이 터지기 전에 막는 것이 최선이라고 청운은 생각했다.

우물은 깊어도 너무 깊었다.

거의 오십여 장 이상을 떨어지고 나서야 청운은 겨우 바닥에 내려설 수 있었다.

바닥에는 물이 발목까지 정도까지 고여 있었다.

우물 바닥은 거의 말라버린 수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안력을 최대한 돋우었지만, 어둠이 너무 짙고 빛이 하나도 없었기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의 빛이라도 있어야 안력도 유용하다.

아무리 뛰어난 고수라도 빛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는 행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곳에서는 안력도 거의 무용지물이다.

청운은 극황지감술을 최대한 운기하며 간신히 지형지물을 살피며 앞으로 나아갔다.

수로는 자연적인 동굴과 맞닿아 있었다.

여러 종류의 법구(法具)를 두드리고 공후를 불고 요령을 흔드는 괴기스러운 소리가 지하 공간에서 점점 더 크게 웅-웅 울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리듬과 박자가 다급해지고 있었다.

족히 오십여 장은 더 온 것 같다고 청운은 느꼈다.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청운은 순식간에 그곳으로 날아갔다.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해괴한 짓거리를 벌이고 있었다.

팔색가사(八色袈裟)를 걸친 백여 명의 재천신교의 무리로 보이는 자들이 원을 이룬 채 입구를 철통 같이 지키고 있었다.

괴이한 법구를 두드리고 요령을 흔드는 소리가 점점 더 요란해지고 있었다.

그 괴이한 소리는 동굴과 공명해 듣는 사람에게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청운은 안력을 최대한 돋우어 그들의 행태를 자세히 살펴봤다.

재천신교의 무리 뒤에서 속이 훤히 비치는 하얀 나삼을 입은 수십여 명의 소녀들이 요사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들은 이지를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하나같이 눈빛이 몽롱했다.

머리에 화려한 천관을 쓰고 황금색 궁장을 입은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연신 괴이한 주문을 외우며 그 소녀들의 춤을 독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에 화관을 쓰고 핏빛 같은 붉은 가사를 입은 자가 재천신교의 무리 맨 앞에서 붉은 옥으로 된 선장(禪杖)을 흔들어대며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주문을 선창하고 있었다.

그자의 선창에 따라 재천신교 무리들이 양팔을 머리 위로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주문을 떼창하고 있었다.

그것은 악몽에서나 나올 법한 을씨년스럽고 으스스한 광경이었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청운은 초조해졌다.

재천신교의 무리 앞에서 선장을 흔들고 있는 그자의 얼굴이 눈에 익은 것 같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은 아! 하고 한 차례 침음성을 내뱉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