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68화 (168/184)

168화 한순간 무저갱의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무리를 해서라도 사마흔을 빨리 해치우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청운은 결심했다.

결심을 끝내자마자 청운은 내력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무영검에서 수천 수백 가닥으로 뻗어 나온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파-츠-츠-츠 하는 검명을 흘리며 장내의 공간 자체를 뒤흔들었다.

청운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상제가 무슨 안 좋은 느낌을 받았는지 사사천주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우님! 조심하게!”

상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운이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멸환을 극한으로 전개해 사사천주가 서 있는 공간 자체를 갈기갈기 짓이겨버렸다.

바로 그 찰나 상제가 구환마검을 빼들고 싸움판에 끼어들어 무영검의 검기를 맞받아쳤다.

하지만 찰나의 차이로 구환마검은 무영검의 강기를 전부 다 막지는 못했다.

무영검과 구환마검의 격돌로 인해 파생된 엄청난 폭음 속에서 주변 대기를 찢어발기는 처절한 한 줄기 외마디 비명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이십여 장 이상이나 떨어져 있는 본채 일부가 허물어지고 한 척이 넘는 바닥의 포석이 무수하게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다시 바닥으로 다시 떨어질 때 청운은 상제의 구환마검과 맞닥뜨린 충격으로 뒤로 서너 걸음 이상이나 물러나다 다시 중심을 잡았다.

반면에 상제는 한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나 있었다.

사사천주 사마흔은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잘린 채 반송장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참을 수 없는 분기로 표정이 일그러질 때로 일그러진 상제가 구환마검을 고쳐 잡고는 청운을 향해 다가왔다.

청운은 상제가 자신을 향해 발을 내디딜 때마다 미지의 어둠 같은 공포가 스멀스멀 몰려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청운을 노려봤다.

청운도 마주 노려봤다.

청운은 단지 그와 눈빛을 한 번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아득한 심해로 가라앉는 것 같은 압박감을 받았다.

그와 마주하는 순간 칠흑보다 더 깜깜한 암흑의 덩어리가 덮치는 것 같았다.

그 암흑은 어둠만이 가득 일렁이는 심연이었다.

한순간 무저갱의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 같았다.

숨이 막힐 듯한 답답한 강렬한 어둠의 덩어리가 전신을 점차로 죄어오는 것 같았다.

그가 암흑 속에서 피어오르는 안개 같은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네놈이 감히 내 아우를 저 지경으로… 네놈이… 감히…….”

그의 무심하고 음울한 목소리는 마치 어둠의 핵이 응집된 기운을 내뿜는 것 같았다.

그가 구환마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청운은 자신의 전신이 어둠의 깊숙한 심장 같은 암흑 속으로 확 빨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빛이 사라진 곳에서 태어난 거대하고 광활한 어둠이 지배하는 낯선 세계 속으로 자신의 전부가 던져지는 것 같았다.

그건 마치 시작과 시원에 대한 공포 같은 것이었다.

그가 서 있는 공간이 태초로부터 솟아난 거대하고 감당할 수 없는 어둠의 늪으로 변해 버린 것 같았다.

태초의 순간부터 모든 것을 지배해 온 어둠이 주변의 빛을 하나하나 몰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구환마검이 만들어내는 암흑의 공간 속에 정체 모를 불안과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했다.

그 암흑의 공간 속에는 혼돈과 공허와 허무 같은 모든 어둠의 상징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 암흑은 무거워도 너무 무거웠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도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공간은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실체와 허상이 뒤섞인 혼돈의 암흑이었다.

그 암흑이 지배하는 심연 속에는 죽음의 검은색만이 가득했다.

‘태초’의 암흑은 인간의 모든 지각이나 경험마저 증발시키는 근원적 공포였다.

그 암흑의 깊이는 실을 아무리 내려뜨려도 닿지 않는 무한의 바닥 같았다.

그런 암흑이 청운이 발 딛고 있는 땅을 삼키고 청운이 올려다보는 하늘을 삼키고 마침내 청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한꺼번에 삼켜버렸다.

바닥을 차올라 하늘까지 치솟는 어둠에 모든 색깔이 굴복하는 것 같았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커다란 암흑의 공간 자체가 이동하는 것 같았다.

하나의 깜깜한 암흑이 더 깜깜한 다른 암흑을 연신 불러오는 것 같았다.

드디어 그가 저주의 구환마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의 구환마검은 보이지 않는 어둠의 전제이자 본질 같았다.

구환마검이 만드는 검로는 어둠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입구 같았다.

태양이 타 죽은 곳에서 나타난 거대한 암흑의 구멍 같았다.

어느 순간 청운은 자신이 갑자기 다른 공간 속으로 급속히 추락하는 느낌을 받았다.

청운은 태어난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낯선 공간 속으로 떨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추락하지 않기 위해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발버둥 치는 자신의 손에 잡히는 것이라고는 검고도 검은 어둠뿐이었다.

청운은 이대로 자신이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구환마검이 허공에 번득일 때마다 대기에 새로운 어둠의 씨가 뿌려지는 것 같았다.

어둠의 질긴 뿌리에서 다른 어둠이 가지를 치듯 계속 자라나는 것 같았다.

깊디깊은 암흑의 심연 속에서 방향도 규칙도 없는 검이 연이어 솟아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칠흑의 우주 속에서 한순간 신기루가 번쩍하며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그 번쩍이는 암흑 속에서 뇌전의 소용돌이가 이는 것 같았다.

구환마검은 그 무엇으로서도 느낄 수도 잡을 수도 없는 암흑의 그림자 같았다.

검선의 <자전십이파검>이 어둠이 부재한 빛의 살기라면, 흑황의 <구환마검>은 빛이 부재한 어둠의 저주였다.

암흑의 입이 불어내는 저주가 자신의 전신을 짓눌러오는 것 같다고 청운은 느꼈다.

청운은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빛이 없듯이 완벽한 어둠 역시 없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오직 각자의 빛과 어둠이 있을 뿐이 라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은 무영검에 필생의 내력을 주입했다.

우-웅 하는 무영검의 검명이 주인의 위기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대기에 가득 찬 암흑을 잠깐 쥐었다 풀어주는 것 같았다.

무영검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는 마치 하나의 몸통에서 각기 다른 곳으로 뻗어 달아나려는 거목의 가지와 같았다.

달아나다 어느 순간 잊었던 몸통을 생각하고 다시 되돌아오는 것 같은, 하나의 중심에서 피어났다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태초의 불꽃 같았다.

청운은 생각했다.

진정한 검은 정해진 검로 밖의 숨겨진 검로를 추구해야 한다.

보이는 검은 누구나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보이는 검로 밖을 부단히 벗어나며 미끄러지는 보이지 않는 검은 예측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어느 순간 청운의 내면에서 무심한 듯 투지에 찬 흥분이 가득 차 오르기 시작했다.

청운은 자신이 느끼는 걸 자신의 ‘무위’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청운은 마음을 편안히 하고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청운은 모든 것을 비우기 시작했다.

청운은 자신을 억압하던 자신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같았다.

자신을 옥죄던 자신의 과거로부터도 해방되는 것 같았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배하던 자신의 고정관념으로부터도 해방되는 것 같았다.

청운은 어느 순간 자신의 존재 자체가 없는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청운은 이곳에 있는 자신은 사라지고 정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던 다른 자신이 현재의 자신을 대신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자신의 전부를 비운 고요한 무위의 우주 속에서, 자기 존재의 근원에서, 마치 환영처럼 다른 자신이 자신의 몸을 빌어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았다고 청운은 느꼈다.

청운은 그렇게 태어난 다른 자신에게 현재의 자신을 전부 맡겨 버렸다.

그의 생각과 그의 몸과 그의 팔다리가 마음대로 모든 걸 하도록.

청운의 내면 깊은 곳, 까마득한 우주에서 서서히 눈뜬 성운과 유성들의 눈이 상제의 암흑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청운은 흑황의 우주와 무위의 우주 사이에서 천년바위처럼 버티고 있었다.

청운의 내면 깊은 곳에서 무위의 우주가 무한히 일렁이기 시작했다.

무위의 우주가 태어나기 전에 수많은 다른 우주가 태어나 쌓여가고 있었다.

청운은 상제의 암흑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무위가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운은 그 영원 같은 찰나의 순간이 완전해질 때까지 가만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위의 심연이 빛과 어둠을 동시에 만들어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 이상 다른 어떤 것도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안과 밖을 구분하기 힘든 암흑이 별안간 청운의 전신을 덮쳐왔다.

그의 검로는 어느 때는 위치가 명확한 점과 선이었다가 또 다른 어느 순간에는 그 위치마저 사라지는 파동이 되기도 했다.

구환마감이 점과 선으로 뻗어올 때는 위치와 검로가 있다가 파동으로 변하는 순간 순식간에 위치도 검로도 사라져 버렸다.

구환마검의 검기가 무영검의 검기를 밀치며 마치 소리와 물결이 중첩되어 밀려오듯이 청운의 전신요혈로 들이닥쳤다.

청운이 점이라 생각하고 대응하면 구환마검은 어느새 선으로 변하고, 선이라 생각하고 대응하면 갑자기 파동으로 돌변했다.

그의 검로는 정해진 위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구환마검은 원인은 없고 결과만 있는 가공할 검이었다.

몸에 닿기 전에는 위치도 알 수 없고 검로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공간에서 환영처럼 갑자기 무수한 검이 나타났다.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마치 멈춤과 정지가 갑자기 확 덮치는 것 같았다.

청운은 서둘러 자신을 더 비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천 겹의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비운 청운의 무위가 커다란 눈을 치떴다.

그 무위의 우주 속에서 태초의 빛이 서서히 차 오르기 시작했다.

우주가 자신을 모두 비운 청운에게 유리처럼 밝고 투명한 순수의 빛을 빌려주듯이.

청운은 모든 것을 잊기 시작했다.

주변도 잊고, 상대도 잊고, 자신마저 잊으며 영과 육에 오직 무위의 빛이 가득 차오르도록 자신을 모조리 비웠다.

자신의 전신을 텅 빈 우주의 상태에 가깝도록 만들었다.

자신을 모두 비우자 그 빈자리에 무위의 빛이 가득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청운은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치 자기의 내면에서 우주의 투명한 눈이 자신의 전신을 지그시 쳐다보는 것 같다고 청운은 느꼈다.

어느 순간 청운은 자신을 둘러싼 암흑이 두렵기는커녕 아늑하기까지 했다.

모든 것을 비운 ‘무위의 눈’으로 바라보자, 청운의 무위가 무한하고 영원한 세계로 열렸다.

그 열린 세계 속에는 변하는 것 같은 변하지 않음이 있었고, 청운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청운의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