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66화 (166/184)

166화 한 환관의 용모파기에 청운의 눈길이 고정되었다.

하단전에서부터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단전도 마치 동틀 무렵 산정이 밝아 오듯 환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청운은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 빠져있었다.

완전한 무아의 상태에 돌입했다.

두 시진 이상이 더 지났을 때였다.

상단전에서도 서서히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단전에서부터 상단전으로 빛의 꽃이 차례로 피어나는 것 같았다.

마치 청운의 몸속에 있던 밝은 거울이 청운의 전신을 안에서 밖으로 비치는 것 같았다.

아름다웠다.

그러던 어느 순간 청운의 이마에서 번쩍하는 눈부신 빛이 확 쏟아지더니 청운은 그 자세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아니, 고요의 깊은 잠에 빠져든 것 같았다.

한 가지 이상한 현상은 그때부터 청운의 몸에서 지독한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청운 자신만 맡지 못하는…….

얼마나 그렇게 곤한 잠을 잤을까.

황궁무고의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들어왔다.

삼황자의 시중을 드는 그 환관이었다.

그는 무고 안을 두리번거리더니 청운을 발견하고는 다가갔다.

청운의 이 장 가까이 다가간 환관이 갑자기 자신의 코를 틀어쥐었다.

견디기 힘든 지독한 악취였다.

악취의 진원지는 청운의 몸이었다.

환관이 코를 틀어쥔 채 청운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청운은 잠결에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 느낌에 감았던 눈을 떴다.

왼손으로 코를 틀어쥔 채 이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환관의 모습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청운은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청운도 지독한 악취 때문에 자기 코를 틀어쥐었다.

어디서 나는 냄새인가 살피던 청운은 그 악취의 진원지가 바로 자신의 몸이란 걸 알고는 대경실색했다.

청운이 다급하게 환관에게 목욕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환관이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환관은 목간(沐間)이 있는 곳이 아니라 아예 환관들의 전용 목욕탕인 혼당사로 청운을 곧바로 데려갔다.

청운은 즉시 목간통으로 들어가 씻었다.

하도 악취가 심해 세 번이나 씻었다.

두 번을 씻고도 악취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서 마지막에는 악취를 없애는 약재를 탄 물로 씻었다.

그제야 악취가 가시는 것 같았다.

목욕을 마치자 환관이 갈아입으라고 청색의 관복을 한 벌을 내주었다.

환관은 급하게 옷을 구할 때가 없어서 관원들이 입는 관복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청운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환관이 삼황자가 그를 기다리고 말했다.

환관이 먼저 앞서갔다.

환관을 뒤따라가면서 청운은 몸이 날아갈 정도로 가볍다는 걸 느꼈다.

몸속에 있던 오래된 탁기가 다 빠져나간 것 같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전신의 감각이 예전보다 곱절은 더 예민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삼황자의 집무실 앞에 있는 목련 나무에서 꽃이 피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것 같았다.

환관은 삼황자의 집무실 앞에서 청운이 당도했다고 고했다.

그는 문만 열어 주고는 곧장 되돌아갔다.

청운이 예를 갖추자 삼황자가 환하게 웃으며 어서 자리에 앉으라고 말했다.

청운이 자리에 앉자마자 삼황자가 말했다.

“강 소협, 그래 무슨 소득이 좀 있었는가. 얼굴색이 훨씬 밝아 보이는구먼.”

청운이 곧바로 삼황자의 말을 받았다.

“황자님 덕분에 오랜만에 푹 잤습니다.”

삼황자가 호탕하게 웃고는 말했다.

“안 그래도 조 내관로부터 그 이야길 들었네. 배짱 하나는 두둑하구먼. 심한 악취까지 풍기며 잤다지.”

청운이 민망한 미소를 짓고는 은근슬쩍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렸다.

“황자님. 제가 부탁한 자료들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삼황자가 탁자 옆에 있는 고색창연한 궤짝을 탁자에 올리더니 청운 앞으로 밀었다.

청운이 뚜껑을 열고 자료를 모두 꺼냈다.

환관의 용모파기(容貌疤記)와 출신 배경들이 적힌 종이가 수북했다.

청운은 한 장 한 장 자세히 살폈다.

최종적으로 남은 것은 다섯 장이었다.

특히 오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한 환관의 용모파기에 청운의 눈길이 고정되었다.

그자의 용모파기를 바라보는 청운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기까지 했다.

천산에서 보았던 바로 그자였다.

파황군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바로 그자였다.

천녀혈수라는 저주의 마공으로 청운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자였다.

청운의 얼굴을 바라보던 삼황자의 눈빛에도 순간적으로 이채가 일었다.

삼황자가 청운에게 물었다.

“왜, 아는 자인가. 그는 사례감 병필태감이네. 황제 폐하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이지.”

청운은 아차 했다.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태공공이 아니라 이자였구나.

이 자가 태공공을 허수아비로 앞세워 놓고 뒤에서 모든 걸 조종했구나.

청운이 삼황자에게 물었다.

“이 자가 귀비와도 친합니까?”

삼황자가 즉시 청운의 말을 받았다.

“워낙에 여러 가지 일을 두루 잘하는 사람이라 황궁에서도 마당발이지. 잘은 모르지만 아마 귀비와도 상당히 친할 것이네. 틀림없이. 그에게 무슨 이상한 점이라도 있는가?”

청운이 대답했다.

“황자님, 이자가 바로 ‘天’의 수괴 중 하나입니다. 천산에서 제가 직접 이자를 맞닥뜨린 적이 있습니다. 이자로 인해 제가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삼황자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이를 어쩔까. 아까도 말했듯이 그는 폐하의 신임이 워낙 두터워 나로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네. 그를 치려면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하네. 일이 참 힘들게 생겼구먼…….”

청운이 환관의 용모파기를 한쪽으로 밀치고는 다른 자료도 꼼꼼히 살폈다.

황궁에서 높은 품계에 있는 오(吳) 씨 성을 가진 자는 모두 세 사람이었다.

태중대부(황제의 고문) 오사헌, 대리평사(최고 재판관) 그리고 대장군 오웅비였다.

그들의 출신 성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청운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번득 머리를 스쳤다.

‘그들이 황궁에서 뭔가를 획책하기 위해서라면 수십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두고 철저히 준비했을 것이다.’ 라고 청운은 생각했다.

신분 세탁도 그만큼 철저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대만 조사해선 안 된다.

최소 삼 대조까지, 아니 그 이상도 조사해야 한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이 수상한 환관들의 용모파기와 오 씨 성을 가진 세 사람을 손으로 지목하면서 삼황자에게 말했다.

“황자님. 이들 중 누군가는 틀림없이 자신의 출신 배경을 철저히 세탁하고 황궁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들의 출신 가문에 대해서 최소 삼 대까지 다시 조사해 주십시오. 무엇보다 귀비와 사례감 병필태감이 황궁에 들어온 시점과 그들의 출신 배경 그리고 황궁에 들어온 절차, 그들이 누구와 친밀하게 지내는지 이 잡듯이 조사해야 할 것입니다.”

“…….”

“저의 조심스러운 판단으로는 어쩌면 그들 전부가 마족 출신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더 윗대에서부터 황궁에 침투하기 위해 신분을 세탁했을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은밀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할수록 저희의 승산이 그만큼 더 커집니다. 그들 무리의 우두머리들만 신속히 제거하면 나머지 일은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삼황자가 한 차례 한숨을 몰아쉬고는 말했다.

“자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겠네. 그리고 이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네. 내가 아주 은밀하게 자네를 황궁으로 불러들였지만 이미 자네는 적들에게 노출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네. 자네의 무위로 봤을 때 별로 걱정을 하진 않네만, 저들이 어떤 암계를 준비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아주 조심하게.”

“알겠습니다. 황자님.”

“그리고 물도 차도 음식도 철저히 가려서 먹어야 할 것이네. 그건 나도 마찬가지네. 내가 이렇게 산지도 벌써 십 년이 훨씬 넘었다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이네. 도대체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할 수가 없으니.”

“…….”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야 마땅할 황궁이 가장 위험한 곳이라니. 이거야 원… 팔다리 쭉 뻗고 마음 편하게 한 번 푹 자 보는 게 내 소원이네. 하루라도 빨리 일이 마무리 되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네. 며칠 내로 다시 부르겠네. 그럼 그때 또 봄 새.”

삼황자의 집무실을 나오면서 청운은 모든 것은 다 가진 황자라는 자리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실감했다.

청운은 그 자리가 부럽기는커녕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 * *

삼 일 후 삼황자가 다시 청운을 찾았다.

삼황자가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몽땅 청운에게 건넸다.

서류를 살펴보던 청운의 안색이 돌변했다.

청운이 보고 있던 자료는 대장군 오웅비에 관한 것이었다.

청운이 삼황자에게 대장군 오웅비의 서류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황자님. 이걸 보십시오. 대장군 오웅비의 조모에 대한 출신 지역과 배경 그리고 살아온 이력 모두가 모호합니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간 대장군이 군사 운용을 어떻게 했는지 철저히 조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나라의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장군이 정말 ‘天’의 수괴 중 하나라면 이건 보통 큰일이 아닙니다.”

“…….”

“제 생각에는 일단 귀비와 병필태감 그리고 대장군을 중심으로 그들과 관계된 인물들을 조사하면 황궁에 흐르고 있는 암류의 실체를 밝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아주 은밀하게 이들을 서서히 고립시켜야 합니다. 특히 유사시에 대장군이 움직일 수 있는 군사의 수를 최소한으로 줄일 있는 방안을 당장 강구해야 합니다.”

청운은 잠시 삼황자의 반응을 살피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의 심복들로 생각되는 자들도 무슨 빌미라도 만들어 병사들과 함께 변방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일이 쉬워집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상황이 아닙니다. 정 안 되면 봉화를 올려서라도 그들과 군사들을 모조리 변방으로 보내야 합니다.”

“알겠네.”

“마지막으로 황자님께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을 은밀히 불러 주십시오. 이 일에 도움이 될 몇 분을 황궁으로 은밀히 불러들여야겠습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청운의 말을 경청하던 삼황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집무실 벽에 늘어뜨려져 있는 손가락 굵기만 한 붉은 줄을 잡아당겼다.

잠시 후 한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삼황자 앞에 부복했다.

황궁 시위 같았다.

그는 이십 대 중반 정도로 흑의의 무복을 입고 있었다.

잘 벼린 한 자루 중검 같은 기도를 풍겼다.

청운은 일필휘지로 천리신개 앞으로 서찰을 썼다.

내용은 검후, 혼원벽력도와 함께 대장군의 저택에서 가장 가까운 객점에서 추후 자신의 연락이 있을 때까지 은밀하게 대기를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청운은 서찰을 접어서 사내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서찰을 황궁에서 가장 가까운 개방 분타에 좀 전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사내가 밖으로 나가자 삼황자가 경탄 어린 시선으로 청운을 쳐다보며 말했다.

“강 소협, 대단한 명필이네. 자네 같은 사람이 왜 강호에 있는가. 일이 끝나자마자 황궁으로 출사를 하시게. 내 폐하에게 강력하게 추천해서 자네에게 걸맞은 자리를 주겠네. 어떤가. 내 제안이. 진지하게 한 번 고려해 보게.”

청운이 한 차례 빙그레 웃고는 삼황자에게 자신이 과거 과거시험에 번번이 낙방한 과거를 들추며 청운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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