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60화 (160/184)

160화 네놈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내가 직접 확인해 보겠다.

바로 그 순간 숨 돌릴 틈도 없이 또 다시 열 개의 비도가 청운의 전신요혈을 노리며 섬전처럼 쏘아져 왔다.

가공할 속도였다.

여전히 어떤 파공성도 없었고 마치 대기 속에 뚫린 별도의 통로로 비도가 날아오는 것 같았다.

청운은 쾌-타-절-변-회-접-파척의 초식을 연격으로 펼치며 비도를 모조리 쳐냈다.

팔꿈치까지 저린 청운이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반면에 비틀거리며 뒤로 서너 발자국 뒷걸음치던 장무기가 팔꿈치에서 그 문제의 비도를 발출했다.

두 개로 날아오던 비도는 청운의 몸 앞, 채 일 장도 안 떨어진 위치에서 돌연 네 개로 분리되더니 더 가공할 속도로 목과 심장을 노리며 날아왔다.

하지만 청운은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청운은 멸환의 초식으로 검막을 만들어 전신을 비도로부터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장무기에게 멸환을 쳐냈다.

바로 그 순간 두 마디 비명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아니, 하나는 신음이고 하나는 비명이었다.

신음을 내뱉은 쪽은 청운이었다.

장무기의 비도를 막는다고는 막았지만 하나의 비도를 완벽하게 막지를 못해 청운의 왼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비도가 스친 어께에서 픽, 하고 한 줄기 피가 솟구쳐 나왔다.

비명을 지른 쪽은 바로 혈검령주 장무기였다.

그는 무영검의 검기에 심장 바로 위 어깨가 관통당하고 오른쪽 허벅지는 깊이 갈라져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즉사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로 중상을 입고 널브러져 있었다.

그 광경을 바로 옆에서 바라보고 경악한 표정을 짓던 사사천주 사마흔이 마병 묵성풍혼도를 빼 들고 청운을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강호의 소문은 역시 믿을 게 못 되는구나. 직접 보니 소문보다 두 배는 더 강한 것 같구나.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니. 그 나이에 도대체 어떤 깨달음이 있었기에 그 정도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

“강호에 출도한 이래 이렇게 긴장해 보기는 제혼마검 이후 네가 처음인 것 같네. 좋다! 좋아! 어디 오늘 네놈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내가 직접 확인해 보겠다!”

청운은 한 차례 깊은 날숨을 내쉬고는 무영검을 다시 고쳐 잡았다.

무영검에 내력을 주입하자 검 끝에서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밤하늘에 일렁거렸다.

사마흔도 묵성풍혼도에 내력을 주입했는지 고-오-오-오 하는 귀곡성과 함께 도에서 먹빛의 도기가 이 장 이상이나 뿜어져 나왔다.

그의 도 주변에 무수한 혼불이 먹장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묵빛 도기 주변에 보기만 해도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귀기(鬼氣)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마흔이 묵성풍혼도를 가슴께로 들어올렸다.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와-아 하는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수백 명이 넘는 장한들이 개미 떼처럼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초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왼쪽 가슴에는 손바닥 크기의 맹(盟)이란 흰색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사마흔이 혼잣말을 하듯 웅얼거렸다.

“무림맹 천무대의 개들이 개입을 하다니. 무위검,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군. 승부는 다음에 결하도록 하자. 반드시. 꼭.”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사마흔이 묵성풍혼도를 거두고는 순식간에 자리를 떴다.

나머지 ‘天’의 무리들도 속속 장내에서 몸을 빼내어 사라지고 있었다.

청운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중상을 입고 바닥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던 혈검령주도 사라지고 없었다.

청운이 무영검을 납검하고는 멍하니 넋을 잃은 채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느 밤과 마찬가지로 하늘에는 달무리 진, 달과 무수한 별이 떠올라 있었다.

자연은 단 하루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참으로 험하고 험한 길이었다.

사흘이면 충분히 넘고도 남을 산을 두 배가 넘는 칠 일이 넘게 걸리고도 넘지 못하다니…….

그때 왼쪽 어깨의 쓰라린 통증이 청운의 상념을 깨웠다.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청운은 서둘러 지혈을 했다.

오십여 장 밖에서 누군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몸집이 장대한 삼십 대 후반의 사내였다.

눈빛이 형형한 게 기도가 범상치 않았다.

그가 청운 앞에 다가오자마자 깍듯하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천무대 대주 가천일이 무위검 대협을 뵙습니다.”

청운이 공손하게 마주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맹의 수호대 종횡무적도 가 대협이시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가천일이 다시 말했다.

“대협 지금부터 맹까지 저희들이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가시지요.”

청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가 대주가 길을 안내했다.

청운은 묵묵히 그의 뒤를 따라 지긋지긋한 천문산을 하산했다.

* * *

종횡무적도 가천일이 이끄는 오백여 명의 호위를 받으며 천문산의 천라지망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이백여 명의 구대문파의 제자들과 오대세가의 사람들이 무림맹에 간신히 입성했다.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머리는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져 있었고, 의복은 더 이상 의복이 아닐 정도로 누더기가 되어 있었으며, 피부는 무두질하다 만 쇠가죽처럼 온갖 상처와 말라붙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기라는 기가 다 빠져나간 몸은 봄바람에 쓰러질 것처럼 비칠거렸으며 깊은 우물처럼 퀭한 두 눈은 평생 어둠만 보고 살아온 두더지의 그것과 흡사했다.

맹주 사마휘는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성문 앞에 나와 있었다.

맹주는 성문을 들어오는 구대문파와 세가의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며 부상의 정도와 안위를 물었다.

그는 사람들이 천문산에서 생사의 격전을 치르느라 너무 지친 관계로 회의는 이틀 뒤 사시(巳時)에 개최하기로 공표했다.

술시(戌時)가 조금 지났을까. 청운이 쉬고 있는 방 문밖에서 누군가 청운을 불렀다.

“강 소협. 안에 계시는가?”

천리신개의 목소리였다.

청운은 웃통을 벗고 어깨에 금창약을 바르다 말고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는 방문을 열어주며 인사를 했다.

천리신개와 혼원벽력도 그리고 검후와 진소소였다.

청운이 모두에게 자리를 권했다.

천리신개가 자리에 앉자마자 청운을 바라보며 운을 뗐다.

“강 소협. 그래 몸은 좀 어떠신가?”

청운이 즉시 천리신개의 말을 받았다.

“덕분에 큰 탈은 없습니다. 장문인과 다른 분들께서는 어떠신지요?”

천리신개가 한 차례 깊은 한숨을 몰아쉬더니 말했다.

“다행히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은 없는 거 같네. 그런데 강 소협 ‘天’이 갑자기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지 모르겠군. 자네는 저들이 왜 그런다고 생각하는가?”

청운이 한 차례 천장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나서 말했다.

“제 생각으로는 그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강호의 힘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방해할 목적 같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뭔가 중대한 일을 획책하는 것 같습니다.”

청운의 말이 끝나자마자 혼원벽력도가 물었다.

“강 소협은 그 중대한 일이 뭐라고 짐작되는가?”

청운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제 짐작으로는 저들이 어디선가 곧 삼계(三界)를 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검후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한 차례 신음성을 흘리며 물었다.

“그들이 기어이… 강 소협 그자들이 삼계(三界)를 열려는 곳이 어디인지 혹시 짐작 가시는 바가 있는지요.”

청운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는 대답했다.

“저로서도 거기까지는…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추측입니다만, ‘天’의 핵심 인물들이 주로 황궁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그래서 황궁 아니면 마족(魔族)의 본거지인 십만대산(十萬大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은 둘 다 일수도 있구요.”

모두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침묵을 가장 먼저 깬 사람은 천리신개였다.

“강 소협. 이번 회의에서 어떤 의제가 채택이 되면 좋겠는가. 여기 있는 우리 네 사람은 무조건 강 소협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자고 의견일치를 보았네. 그래서 이렇게 왔네. 소협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안이 무엇인가?”

청운이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우선은 각 문파나 세가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강호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두 번째는 토벌대가 구성되면 곤륜파와 전진파에 그 지휘권을 맡겨야 합니다.”

“…….”

“삼계(三界)를 열려는 자들에게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공보다 법술과 주술에 능통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칫 어설프게 잘못 대응하면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착잡함이 묻어났다.

다시 천리신개가 운을 뗐다.

“소협의 의견을 잘 알겠네.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네. 이 일이 끝나자마자 각 문파와 세가들이 서로 강호에서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기 위해 또 한판 드잡이질을 할 게 틀림없네. 그런 그들이 논공행상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휘권을 곤륜파와 전진파에 쉽사리 넘겨주려고 할지… 참으로 난감한 일이군.”

청운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전체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들 문파와 세가의 이익 때문에 자칫 잘못된 선택을 하면 강호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타격을 받을 게 틀림없습니다. 그리되지 않는다면 이런 회합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그 점을 이번 회의에서 반드시 주지시켜야 합니다.”

천리신개가 고개를 몇 차례 끄덕이고는 말했다.

“소협의 뜻을 잘 알았네. 우리 네 사람은 무조건 소협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겠네. 그럼 우린 이만 가 보겠네. 푹 쉬시게.”

청운은 그들이 돌아가자마자 제갈신의가 준 내상약을 복용하고는 곧바로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큰 내상은 없었으나 천문산에서 워낙 많은 격전을 치르느라 내력과 체력이 많이 소진되어 시급히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한 차례 대주천을 마치자 몸이 훨씬 거뜬한 것 같았다.

청운은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 * *

무림맹 두 장로의 피살이 불러온 여파는 대단했다.

그것은 용광로처럼 무림의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그 사건의 파문이 아니었으면 중원의 모든 문파와 세가들을 이렇게 결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모두 제 잘난 맛에 취해 강호 전체의 위기에는 안중에도 없던 문파와 세가들이 어떤 위기를 직감한 것 같았다.

무림맹의 두 장로를 잃은 것은 뼈아픈 손실이었으나 그나마 강호의 문파들이 뜻을 같이하기로 한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청운은 생각했다.

대전에서 개최된 회의는 각 문파와 세가의 장로급 이상만 참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청운은 그동안 ‘天’에 대한한 공로를 인정받아 예외로 참석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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