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57화 (157/184)

157화 삶과 죽음 사이에는 원래 관대함이란 없는 법이다.

그들은 세 개조로 나뉘어 절묘하게 공격과 수비를 병행하면서 청운의 진을 뺐다.

그들의 합공이 하도 교묘해서 수십 초가 지나도록 확실한 우위를 잡지 못한 청운은 내력을 좀 더 끌어올렸다.

그 순간 무영검이 우-우-웅 하며 검신을 부르르 떨었다.

갑작스러운 청운의 기도에 놀란 상대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청운은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쾌-타-절-변-회-접의 초식을 연격으로 펼쳤다.

수백 수천 가닥의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마치 살아 있는 이계(異界)의 생명체처럼 직선과 곡선 혹은 전혀 예측 불가능한 점과 선이 되어 광마혼의 광견들을 휩쓸어 갔다.

가공할 청운의 공세에 다급히 몸을 빼내 피하려고 했으나 이미 때가 늦었음을 깨달은 그들은 사생결단의 각오로 있는 힘을 다해 무영검의 검기를 맞받아쳤다.

강기와 검기가 충돌하는 엄청난 폭음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콰콰콰콰까쾅!

“으—악, 으—악, 악…….”

그들의 각오는 결기가 있었으나 역부족은 어쩔 수 없었다.

폭음과 함께 십여 개의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단말마의 비명이 깜깜한 밤하늘을 일순간 뒤흔들었다.

팔다리와 목이 잘린 십여 명의 사내들이 짙은 혈향을 풍기며 썩은 짚단처럼 나뒹굴었다.

동료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한 사내들이 목숨을 도외시하고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세상의 밑바닥을 구르며 쌓아 온 그들의 우애는 지독한 독기가 되어 청운을 덮쳐왔다.

하지만 청운 역시 전혀 봐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판인데 누가 누구에게 손톱만큼의 아량이라도 베풀 수 있단 말인가? 삶과 죽음 사이에는 원래 관대함이란 없는 법이다.

청운의 잔혹한 일검에 다시 십여 명의 사내들이 고혼이 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제 십여 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청운이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근처의 숲에서 함성이 들리더니 오십여 명이 넘을 것 같은 사내들이 싸움판에 합세했다.

청운은 다시 한번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은 무엇이든지 제거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게 비록 신(神)이라 하더라도…….

청운은 죽이고 또 죽였다.

닥치는 대로 몰려오는 대로 도륙했다.

청운은 자신이 사람을 죽이는 일에 이렇게 무감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상대를 죽이고 죽였다.

다 죽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다…….

청운은 이 모든 상황이 후련한 게 아니라 섬뜩했다.

오늘 헤치고 나아가야 할 잔인한 밤길보다 더 캄캄한 앞날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은 자신이 쉬어야 한다는 생각도 잊은 채 산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지금 청운은 한시라도 빨리 자신이 천문산에 만든 지옥과 혈향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자신의 그림자 말고는 아무도 자신을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문득 깨달은 청운이 잠시 제 자리에 멈춰 섰다.

몇 차례 깊은 심호흡을 하며 자신을 가다듬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희미하게 병장기 부닥치는 소리가 청운의 귀에 들렸다.

청운을 극황지감술을 운기했다.

동쪽으로 십여 리 떨어진 숲속 같았다.

청운은 곧바로 그곳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 * *

청운이 천문산에서 낯선 적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바로 그 시간.

무림맹주 사마휘는 집무실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연신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집무실 밖에서 안에 대고 고하는 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맹주님, 천무대 대주 가천일이 맹주님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맹주 사마휘가 턱을 만지던 손을 급히 내리며 말했다.

“어서 들어오시게.”

천무대 대주 가천일은 맹주를 보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고 부복하며 말했다.

“맹주님, 무슨 하명이라도 계시는지요.”

맹주 사마휘가 부복한 대주 가천일을 보며 말했다.

“그만 일어나시게.”

대주 가천일이 일어서며 맹주를 쳐다봤다.

맹주가 가천일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대주는 지금 천문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소식을 들었는가?”

대주 가천일이 살짝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금시초문입니다. 천문산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요.”

맹주가 곧장 말했다.

“대주는 이달 그믐에 이곳 맹에서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를 비롯한 강호명숙들의 회합이 있는 걸 알고 있는가?”

대주가 즉시 대답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찰당에서 맹 주변의 검문검색과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과 천문산과 무슨 관련성이 있는지…….”

맹주가 대주 가천일을 빤히 바로 보며 말했다.

“맹으로 올려는 사람들이 어디로 오겠는가. 바로 천문산을 넘어야 하네. 그런데 지금 ‘天’의 무리가 천문산에 천라지망을 펼치고는 이곳 맹으로 오려는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을 하고 있다네.”

“…….”

“그들이 강호의 힘이 하나로 뭉치는 걸 막으려는 속셈이지. 대주는 지금 당장 대원 오백을 데리고 천문산으로 가게. 맹으로 오려는 사람들을 도와주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나.”

대주 가천일이 읍을 하며 말했다.

“맹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그럼 지금 즉시 천문산으로 출발하겠습니다.”

* * *

청운이 병장기 소리가 나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청성파의 장문인 풍비양과 점창의 장로 태허자를 비롯한 문파 제자 십여 명이 흑의 복면인 수십여 명과 권과 검을 휘두르며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풍비양의 구하천풍검법과 태허자의 분광십팔수가 비록 대단했으나 워낙 수적(數的)으로 열세에 처해 있어서 그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이미 다수의 제자들이 죽거나 심각한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청운이 벼락같은 고성을 내지르며 장내로 날아들었다.

장내로 진입하자마자 청운은 무영검으로 흑의 복면인들을 짓쳐 갔다.

청운이 개입하자마자 전세는 단번에 역전되었다.

무영검에서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밤하늘에 번뜩일 때마다 폐부를 찢어발기는 듯한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서너 명의 흑의 복면인들의 목이 몸과 분리되어 나동그라졌다.

채 일각도 안 되어 흑의 복면인들 중, 거의 반수가 죽자 삐-익 하는 신호음과 함께 흑의 복면인들이 어두운 숲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흑의 복면인들이 모두 달아나자 청운이 풍비양과 태허자에게 공손하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풍 장문인과 태 장로님, 어디 다치신 곳은 없는지요. 혹시 저놈들이 누구인지 짐작이 되는 것이 있습니까.”

풍비양과 태허자가 청운에게 가볍게 예를 갖추고는 말했다.

“무위검 소협이 아니었으면 참으로 큰 낭패를 당할 뻔했습니다. 우리는 괜찮지만 제자들이 문제군요. 서둘러 지혈을 하고 상처를 살펴봐야 할 것 습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풍비양과 태허자는 문파 제자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청운도 검상을 당한 제자들을 서둘러 지혈을 해 주고 나서 내상을 심하게 입은 제자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장심을 등에 대고 내공을 불어넣어 주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완벽하게 치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다경 정도 흐르자 일단은 모두가 어느 정도 운신이 가능해졌다.

우선은 천문산을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모두가 뜻을 같이했다.

죽은 제자들을 묻고 다시 길을 나선지 한 시진 정도 되었을까.

또, 어디서 병장기 부닥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번에는 남쪽으로 십여 리 떨어진 곳 같았다.

청운이 그 사실을 풍 장문인과 태 장로에게 말하자 그들이 깜짝 놀랐다.

태 장로가 청운을 돌아보며 말했다.

“강 대협, 십여 리 떨어진 곳이라 했습니까. 부끄럽지만 나는 듣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인지 서둘러 그리로 가 봅시다.”

청운이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일이 급박한 것 같으니 제가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럼 조금 있다가 다시 뵙겠습니다.”

백여 장 밖에서 십여 명의 인물들이 수십여 명의 흑의복면인들에게 포위를 당한 채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청운이 막 장내로 뛰어들려는 순간 수백여 개의 암기와 비도가 밤비처럼 자신을 향해 쏘아져 왔다.

“어딜, 감히!”

노호성을 터트린 청운은 전신에 호신강기를 두른 채 암기와 비도가 쏘아진 곳을 가늠해 무영검을 떨쳐냈다.

“으—헉.”

“으, 으-악, 악-악……!!”

고목과 바위 뒤 그리고 풀숲 이곳저곳에서 헛바람 새는 소리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바닥에서 무수한 그림자가 일어서는 것 같더니 일제히 청운을 향해 쇄도했다.

청운은 한 마디 나직한 신음성을 내뱉었다.

“은비천(銀秘川)의 살귀들!”

청운은 악에 받칠 대로 받혀 속으로 웅얼거렸다.

“얼마든지 오너라! 먼저 오는 놈부터 먼저 죽여주마!”

칠흑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깜깜한 하늘과 땅에서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종횡무진으로 번뜩거렸다.

그때마다 나무와 바위 심지에 허공에서도 처절한 비명이 터지고 솟구쳤다.

잔인하고 잔혹하다고 생각할 틈조차 없는 잔인하고 잔혹한 밤이었다.

호흡을 가다듬을 틈조차 없이 청운이 보이지 않는 적들을 상대하고 있을 때 자신의 등 뒤 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도 치열한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청운을 뒤따라온 청성 장문인 풍비양과 점창 장로 태허자 일행이 장내에 진입하자마자 싸움에 휘말렸다.

저들의 공격 목표가 세 군데로 분산되자 청운은 한결 여유가 생겼다.

청운은 수십여 명의 흑의인들에 포위당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다른 싸움판으로 즉각 뛰어들었다.

청운이 그 싸움판으로 개입했을 때는 이미 십여 명 정도가 죽어서 겨우 네다섯 명 정도가 흑의복면인을 상대로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청운이 끼어들자 전세는 단번에 역전되었다.

무영검이 한 차례 번뜩일 때마다 서너 명의 흑의복면들의 목과 팔다리가 한 가닥 처절한 비명과 함께 몸에서 분리되었다.

채 일다 경도 안 되어 수십여 명이던 흑의복면인의 숫자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전세의 불리함을 느낀 흑의 복면인들이 한순간 삐-익 하는 날카로운 신호음과 함께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조금 전만 해도 아수라 지옥 같았던 장내에 뜬금없는 고요와 적막이 찾아왔다.

가쁜 숨을 내쉬고 있던 청운이 살귀들이 달아난 칠흑 같은 어둠을 노려보고 있었다.

청운의 행색과 몰골은 마치 죽음의 전장에서 방금 빠져나온 병사의 그것과 마찬가지였다.

머리카락은 마치 누군가 베다 만 풀처럼 함부로 헝클어져 있었고, 암기와 비도가 스쳐 찢어질 때로 찢어진 넝마 같은 옷에서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청운이 아수라 같은 자신의 몰골에 질려있을 때 누군가 청운에게 다가왔다.

조금 전 청운에게 도움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구한 사람들이었다.

모두 오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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