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50화 (150/184)

150화 바른대로 말하면 편하게 저승으로 보내 주겠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고 우리는 그들을 나찰삼귀羅刹三鬼라 부르고 있습니다. 소문으로는 모두 한 백여 명 된다고 들었습니다. 장원은 이곳에 서쪽으로 백여 리 떨어진 이 태항산 자락에서 풍광이 가장 좋은 협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이제 대충 궁금증이 풀렸으면 저기 보이는 동혈에서 쉬시고 내일 새벽 아무도 눈에 띄지 않게 몰래 마을을 빠져나가시오. 목숨을 부지하려면 내 말대로 하시오. 소협, 그들에 대한 것은 가급적 입에 올리지도 마시오. 그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자들은 냉혈한 뱀보다 더 차갑고 잔인한 자들입니다. 악귀도 그런 악귀가 없습니다.”

촌장의 그 말을 끝으로 청운은 촌장이 가르쳐 준 동혈로 갔다.

동혈은 한 사람이 쉬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황토를 구워 만든 침대도 그럴듯했다.

청운은 침대에 드러누워 한 시진 정도를 쉬는 척했다.

* * *

거의 술시戌時가 다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청운은 극황지감술을 운기해 주변을 살폈다.

모두 집 속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청운은 동혈을 가만히 빠져나와 묘묘보허를 전개해 한 줄기 별빛처럼 촌장이 일러준 장원을 향해 내달렸다.

백여 리를 달려가자 과연 장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장원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청운은 장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맞은 편 암봉 위에 올라서서 장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전각은 모두 네 채였다.

가운데 있는 전각은 기와가 올라져 있었고 상당히 규모도 컸다.

그곳이 본채인 것 같았다.

나머지 건물은 흑벽돌도 대충 지은 것 같았다.

정문 앞에는 네 명의 무사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불빛은 본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청운은 한 마리 야조처럼 곧장 본채 지붕으로 날아갔다.

상황을 살피기 위해 청운은 소리 나지 않게 기와를 몇 장 들어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청운은 보다 말고 눈을 돌렸다.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쳐다볼 수가 없었다.

질펀한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냥 술판이 아니었다.

모두 세 놈이었다.

촌장이 나찰삼귀라고 말하던 자들 같았다.

그들은 그냥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십여 명이나 되는 나체의 여인들에게 추잡한 술 시중을 들게 하고 있었다.

저 여인들은 저 악마들이 마을에서 납치해 온 것 같았다.

저 여인들을 다치게 하지 않고 저놈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청운은 잠시 궁리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그자들의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은 것 같았다.

청운은 너무 놀라 자칫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자들은 바로 청운이 꿈속에서도 찾아 헤매던 음산삼귀였다.

청운은 그들이 누군지 알아채자마자 선하령 계곡에서의 지옥 같았던 기억이 떠올라 온몸이 격동했다.

아마 청운에게 이성이 없었다면 당장 술판 한가운데로 뛰어내렸을 것이다.

청운은 이빨을 뿌드득 갈며 속으로 맹세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저들을 죽이겠다고.

청운은 그런 결심을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은 놈들. 드디어 만났구나. 그렇게 찾아도 꼬랑지도 안 보이더니 이곳에서 이런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구나. 내 치료 때문에 하늘이 이곳으로 나를 보낸 것이 아니라 네놈들을 만나게 하려고 하늘이 날 이곳으로 보냈구나.”

청운은 나체의 여인들이 옷을 걸치고 피할 시간을 주기 위해 기습이 아니라 정면으로 치고 들어갈 마음을 먹었다.

본채 앞에 내려선 청운이 전륜장을 발출하자 콰-콰-쾅 하는 폭음과 함께 그대로 문을 박살이 나버렸다.

그 순간 갑자기 모든 전각에서 불이 환하게 켜지면서 모든 전각에서 우르르 장한들이 몰려나왔다.

“뭐야! 무슨 일이냐!”

“웬 놈이냐!”

그러거나 말거나 청운은 음산삼귀가 있는 방으로 곧장 쳐들어갔다.

사방의 전각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온 놈 중에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본채 대전이다. 한 놈뿐이다. 저놈을 포위해라.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청운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자들을 향해 무자비한 살검을 전개했다.

청운은 이곳에 있는 자들 중 한 놈도 살려줄 마음이 없었다.

이런 악귀들은 자비를 베풀어 봤자 세상에 전혀 득이 되지 않을 자들이라고 청운은 생각했다.

무영검이 번쩍할 때마다 으-악—아—악 하는 단말마의 비명을 끝으로 두세 명의 목이 그대로 몸과 작별했다. 송이째 떨어지는 붉은 동백꽃처럼 몸을 잃은 목이 툭, 툭, 투—두둑, 툭 끝없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아비규환의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것은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 도륙이었다.

장원의 마당과 대전 앞은 핏물이 지옥의 무늬를 끝없이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사십여 명의 목이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제 몸을 잃었을 때 벼락같은 고함과 동시에 세 명의 인형이 대전에서 튀어나왔다.

나찰삼귀였다.

아니, 음산삼귀였다.

그들 중 가장 어려 보이는 오른쪽에 있는 자가 청운을 향해 노성을 질렀다.

“네놈은 대체 누구길래, 이 야밤에 남의 장원에 침범해 이런 잔학한 살상을 벌이느냐.”

청운이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음산삼귀를 노려보며 소름이 끼치도록 으스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찰삼귀. 아니, 음산삼귀 그동안 어디에 쥐새끼처럼 숨어 보이지 않나 했더니 이곳 태항산 자락에 숨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구나. 네놈은 내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겠지만 나는 한시도 네놈들을 잊은 적이 없다. 오늘 드디어 만났구나. 대파산 선하령 계곡은 기억나겠지.”

음산삼귀 중 가운데 서 있는 자가 무슨 소리인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 놈이 아닌 밤중에 실성을 했나. 이 마당에 대파산 선하령 계곡 타령이라니… 이런 미친놈을 봤나. 무위를 보니 강호의 무명소졸은 아닐 터.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청운이 그에게 칼끝을 겨누며 말했다.

“하긴, 가해자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지. 이미 일을 끝냈으니까. 하지만 피해자는 절대로 잊을 수가 없지. 빚을 받아 내야 하니까. 귓구멍을 열고 똑똑히 들어라.”

“…….”

“나는 그날 네놈들 때문에 천 길 계곡으로 떨어져 죽다 살아난 하남표국의 강청운이다. 누가 네놈들을 사주했느냐. 물론 대답하지 않아도 天이란 것을 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네놈들 입으로 말하는 것을 다시 한번 듣고 싶구나. 말해라! 즉시!”

음산삼괴가 화들짝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동시에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뱉었다.

“무—무위검! 강청운!”

왼쪽에 서 있는 자가 말했다.

“강 대협. 우, 우리는 하수인에 불과하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그자가 가운데 있는 자에게 고개를 돌리며 다시 말했다.

“대형! 그렇지요. 우리는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지요.”

대형이란 자가 그자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지금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지금은 저놈을 죽이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모두 달려들어 당장 저놈을 쳐 죽여라!”

그 소리와 함께 십여 명이 동시에 청운에게 달려들었다.

일순간 무영검에서 삼 장 가까이 뻗어 나온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번쩍하며 깜깜한 밤의 대기를 갈랐다.

동시에 십여 개의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무영검의 검기를 뒤따라 장내에 울려 퍼졌다.

그때 다시 대형이란 자가 소리를 꽥 질렀다.

“뭐 하느냐! 계속 달려들지 않고! 이 밥버러지 같은 놈들!”

대형이란 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청운의 무위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사내들이 마치 석상처럼 제자리에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별안간 대형이란 자의 양쪽에 서 있던 음산삼귀 중 둘이 기다란 낮과 같은 이상한 무기를 휘두르며 청운을 덮쳐 왔다.

청운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무영검으로 쾌—타—절—변의 초식을 연격으로 펼치며 그들을 짓쳐 갔다.

“으—악—악.”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비명과 함께 두 명 다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단 일 초였다.

한 명은 오른쪽 어깻죽지 부근부터 팔이 잘린 채 버둥거리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무릎 바로 아래 부근부터 두 다리가 절단된 채 양손으로 땅바닥을 긁어 대고 있었다.

청운은 그들에게 물어볼 말이 있어서 일부러 단칼에 목숨을 거두지 않았다.

졸지에 두 명의 아우를 잃은 대형이란 자가 몸을 솟구쳐 달아나기 시작했다.

십여 장을 달아났을 때 청운이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그자를 향해 무영검으로 검기를 날렸다.

번쩍하는 한 줄기 섬광과 동시에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대형이란 자가 가슴이 관통된 채 즉사했다.

청운이 장내에서 벌벌 떨고 있는 자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 먼저 움직이는 놈이 먼저 죽을 것이다.”

청운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십여 명이나 되는 사내들이 무기를 버리고 제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청운이 바닥을 기고 있는 음산삼귀, 아니 음산이귀를 노려보며 말했다.

“누가 하남표국을 그렇게 하라고 사주했느냐. 바른대로 말하면 편하게 저승으로 보내 주겠다. 빨리 말해라. 나머지 팔다리도 끊어지기 전에.”

한쪽 어깻죽지를 잃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자가 한쪽으로 몸을 틀며 말했다.

“이렇게 된 마당에 그깟 비밀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회주와 상제가 시켰다.”

청운이 다시 물었다.

“상제가 누구냐?”

그자가 다시 말했다.

“그건 우리도 모른다. 우리는 단지 주어지는 지시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이제 그만 편하게 우리를 보내다오. 더 이상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은 없다. 부탁이다.”

청운이 무영검을 한 차례 바닥으로 그어 내리자 음산 이귀의 목이 몸에서 분리되었다.

청운이 몸을 돌려 바닥에 꿇고 있는 사내들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청운의 눈빛과 마주친 사내들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간덩이가 약한 자들은 아예 청운의 눈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땅까지 푹 숙이고 들지 않았다.

청운이 검 끝으로 앞에 있는 다섯 명의 사내를 가리켰다.

청운의 검 끝이 누군가를 향할 때마다 꿇고 있던 사내들이 혹시 자신을 가리킬까 싶어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

청운은 자신이 가리킨 사내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높낮이가 없는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이 마을에서 붙잡아 온 여인들을 이곳으로 모두 데리고 오너라. 지금 당장!”

청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섯 명의 사내들이 본채의 뒤쪽 건물로 우르르 달려갔다.

청운은 다시 무영검의 검 끝으로 십여 명을 가리켰다.

그들을 일으켜 세우고는 곧장 말했다.

“너희들은 지금 즉시 이곳 장원에 있는 모든 재물들을 샅샅이 찾아서 이곳으로 옮겨라. 내가 다시 둘러볼 것이니 절대 엉뚱한 마음을 먹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나머지는 저기 산자락에 구덩이를 파고 이곳의 시체들을 옮겨 즉시 매장해라. 뭣 하느냐! 당장 시작해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