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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146화 (146/184)

146화 제발 좀 세상 똑바로 살아라.

“당해도 싸지.”

바로 그때 이 층으로 올라오던 한 청년이 말했다.

그는 자색의 깔끔한 전포를 입은 이십 후반 정도의 영준한 청년이었다.

그가 다시 한마디 했다.

“누가 우리 청매에게 찝쩍거리는 가 했더니 요새 이 청해 땅에 떠오르는 망나니인 천금보의 둘째 연환검 천호원 공자이셨구려. 천 공자, 청매에게 무슨 볼 일이 있으신지. 그 볼일 나에게 말하시오. 내가 대신 들어주리다.”

천호원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그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호라, 담씨세가의 셋째 은성검 담우린 공자시구려. 아, 그러니까 청가장의 청 소저와 담 공자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 이거지. 청 소저 빚을 당신이 대신 갚겠다. 좋소. 나야 밑질 것 없지. 하지만 나에게는 규칙이 하나 있소.”

“그것이 무엇이오?”

“그것은 나는 모든 빚을 열 배로 되갚는 것이오. 그게 금전적인 것이든 목숨 빚이든. 내가 청 소저에게 뺨을 한 대 맞았으니 담 공자는 스스로 한쪽 팔을 자르시오.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그 정도 모든 빚을 탕감해 주겠소.”

천호원이 곧바로 청운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네 놈도 마찬가지다. 감히 나를 비웃다니. 스스로 한쪽 팔을 자르고 썩 꺼져라.”

청운이 너무 어이가 없어 다시 한번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천호원이 흉폭한 눈빛을 이글거리며 말했다.

“아! 일은 순서대로 처리해야 깔끔하지. 우선 담가 놈과의 일을 마무리 짓고 네놈의 빚을 받을 것이다. 애들아! 저놈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지켜라.”

천호원의 말에 담우린이 어이가 없다는 어투로 비아냥거리듯이 말했다.

“당신이 천 낭자에게 당한 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못된 짓거리 때문으로 생긴 일인데 그걸 빌미로 애먼 사람을 핍박하면 안 되지. 나는 당신의 말에 따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으니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보시오.”

담우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호원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좋다. 이곳은 좁으니 밖으로 나가자.”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청운을 지키는 황의인 둘을 빼고 우르르 객점 밖으로 나갔다.

곧장 담우린을 황의인 다섯 명이 포위했다.

그리고 청옥교를 향해 천호원이 손바닥에 섭선을 탁탁 치며 다가가고 있었다.

곧바로 황의인들이 검을 빼 들고 담우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수십여 초가 번개처럼 교환되었다.

좀처럼 우세가 판가름이 나지 않았다.

담우린이 황의인들 각각보다는 무위가 조금 뛰어난 것처럼 보였으나 다섯을 상대하다 보니 좀처럼 우세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이 천호원은 청옥교를 공격했다.

청옥교는 권과 장으로 천호원을 상대했다.

하지만 실력 차이가 상당히 나서 얼마 못 버틸 것 같았다.

천호원은 마치 그녀를 갖고 놀 듯이 상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청옥교는 천호원의 섭선에 마혈을 제압당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천호원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이채가 떠올랐다.

그리고 입가에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그녀를 옆구리에 끼고 어디론가 가려고 했다.

담우린은 천호원이 하는 짓을 뻔히 보면서도 황의인들 때문에 전혀 몸을 뺄 수 없는 것 같았다.

기합까지 넣으며 있는 힘을 다해 황의인들을 상대하고 있었으나 조금도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청운은 가능하면 남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으나 속으로 저건 아니다 싶었다.

저런 비열한 짓을 보고는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보지 않았으면 몰라도…….

청운은 자신을 감시하려고 서 있는 황의인들 둘의 마혈을 짚어 순식간에 제압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청옥교를 옆구리에 낀 천호원이 입가에 한 줄기 음흉한 미소를 베어 문 채 대로에서 수백여 장 떨어진 숲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의 신법이 상당한 수준이었다.

일류는 충분히 넘어선 수준이었다.

청운은 묘묘보허의 경신술을 전개해 그가 숲에 들어서기 직전 그의 앞을 막아섰다.

천호원이 대경실색한 표정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네, 네놈이 어떻게 여길… 남의 대사大事에 끼어들지 말고 당장 여기서 꺼져라. 하나뿐인 목이 달아나기 전에…….”

청운이 높낮이가 전혀 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사大事는 무슨 대사大事, 세상에 너같이 비열하고 음흉한 놈이 또 있을까? 다시는 그런 추잡한 짓을 못 하도록 오늘 내가 단단히 그 못된 버릇을 고쳐주마.”

으―하―하―핫.

천호원이 돌연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곧바로 청운을 향해 이죽거리며 말했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이곳 청해에서 나를 무시하다니. 아예 죽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내가 너라면 당장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비비며 빌었을 것이다. 하긴 네놈 따위가 무슨 수준이 있어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겠는가.”

그는 청옥교를 내려놓고는 곧장 섭선으로 검초를 전개하며 청운을 공격했다.

청운은 그를 단단히 징계를 내리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청운은 그가 섭선으로 자신의 목을 공격해 오는 순간 살짝 머리를 흔들어 피한 후 곧장 사성의 전륜장을 내질렀다.

청운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달려들던 천호원은 청운의 전륜장에 그대로 적중 당해 오 장 이상이나 날아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입으로 한 사발의 선지피까지 토한 채.

청운이 그에게 다가가자 벌떡 일어난 그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고는 흉광을 희번득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운은 무심한 표정으로 계속 그에게 다가갔다.

돌연 소리를 꽥 지른 천호원이 살초를 전개하며 청운의 전신요혈을 공격해 왔다.

천호원의 검초가 제법 날카롭기는 했으나 청운의 눈에는 그의 검로가 낱낱이 다 보였다.

청운은 묘묘보허의 보법으로 마치 그의 검초를 한 줄기 바람처럼 헤집고 들어가 그의 귀싸대기를 연속으로 세차게 갈겼다.

청운은 음흉하고 비열한 그에게 최대한 모욕을 안겨 줄 생각이었다.

청운의 손바닥에 세차게 뺨을 얻어맞은 천호원은 입에서 피분수를 토하며 뒤로 주르륵 주르륵 밀려났다.

청운은 그를 바람처럼 따라붙으며 귀싸대기를 계속 올려붙였다.

천호원이 그만, 그만하면서 바닥에 쓰러질 때까지 청운은 멈추지 않았다.

천호원이 살아 있는 시체처럼 완전히 땅바닥에 널브러지고 나서야 청운은 그의 뺨을 때리는 걸 멈추었다.

그의 단전을 파괴해 버리고 싶었으나 그건 너무 잔인한 처사 같아서 그만두었다.

청운이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면서 한마디 내뱉었다.

“뭣도 아닌 놈이 가문의 배경만 믿고 거들먹거리기는. 바로 너 같은 놈을 나는 세상에서 제일 경멸하고 혐오한다. 제발 좀 세상 똑바로 살아라.”

청운이 청옥교의 마혈을 풀어주자 벌떡 일어난 그녀가 분에 못 이겨 쓰러진 천호원에게 곧장 달려가더니 수차례 발길질을 했다.

이미 청운에게 너무 얻어맞아서 정신을 잃은 천호원은 그녀의 발길질에 맞으면서도 신음 하나 내뱉지 않았다.

그냥 짚단처럼 몸으로 땅바닥을 뒹굴 뿐이었다.

청운과 청옥교가 다시 <천화루> 앞으로 되돌아갔을 때, 담우린과 황의인들은 여전히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황의인들은 청운 일행을 보고는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황의인들의 검초가 조금 흔들렸다.

그 순간 담우린의 검에 맞은 황의인 하나가 가벼운 검상을 입고 진에서 이탈했다.

그 틈을 기점으로 담우린의 검이 더욱 사나워졌다.

하지만 황의인들도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맞대응했다.

잠시 후 상처를 입고 진에서 이탈했던 황의인도 다시 싸움에 가담했다.

청운의 옆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청옥교가 담우린을 도울 요량으로 싸움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청옥교는 무공이 워낙 약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칫 큰 부상을 당할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그녀의 모습에 가슴을 졸였던 청운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녀 모르게 전륜지를 발출해 황의인들의 마혈을 모조리 짚어버렸다.

사납게 검을 휘두르던 황의인들이 갑자기 썩은 짚단처럼 제자리에 픽픽 쓰러지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그들과 싸우던 담우린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던 담우린이 청운을 발견하고는 눈빛을 반짝였다.

청운이 그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제야 담우린이 상황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청운이 몸을 돌려 다시 막 객점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담우린이 잰걸음으로 청운에게 다가와 깍듯하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소협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청운도 그에게 마주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공자, 괘념치 마십시오. 싸움이 공정하지 않아 실례를 무릅쓰고 끼어들었을 뿐입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담우린이 다시 한 차례 읍을 하며 말했다.

“소협, 양해라니! 무슨 그런 말씀을… 저희 때문에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신 것 같은데… 다시 객점에 들어가기도 많이 불편하실 것 같은데,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곳에서 그리 멀지도 않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저희 세가가 음식은 괜찮게 한다고 근동에서 소문이 자자합니다.”

청운은 초면에 폐를 끼치는 것 같아 거절하려다 그의 말마따나 다시 객점에 들어가자니 영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그래서 청운은 고맙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초면에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조금 불편합니다. 하지만 소협의 말대로 다시 객점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군요. 잠시 신세를 지겠습니다.”

담우린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사해가 다 동도인데, 폐는 무슨 폐가 된다고… 오히려 저에게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운과 청옥교와 담우린 세 사람은 함께 담우린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중에 담우린이 청운의 신분을 물었다.

청운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담우린과 청옥교는 대경실색을 했다.

그들은 같이 가는 내내 청운의 옆얼굴을 흘금흘금 곁눈질하며 그가 정말로 이 시대의 전설인 무위검 강청운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 같았다.

담우린의 말대로 담씨세가는 채 십여 리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세가는 큰 주봉主峯인 진령산을 뒤에 둔 야트막한 야산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방이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세가의 풍광이 수려했다.

세가의 규모도 상당했다.

석가장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중원 어디에 내어놓아도 다른 세가에 전혀 빠지지 않을 것 같았다.

대전을 비롯한 전각들의 숫자만도 십여 개가 넘는 것 같았다.

이곳에 세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패루牌樓(큰 건물이나 대로에 세우는 상징적인 대문) 앞에 청운 일행이 당도하자 그 앞의 낙엽을 빗자루로 쓸고 있던 노복 하나가 그들에게 읍을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안에다 대고 그들이 세가에 왔음을 알렸다.

패루를 지나 청운이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흑의의 무복을 입고 문을 지키던 무사가 깍듯하게 읍을 하고는 문을 열어 주었다.

담우린은 청운과 청옥교를 대전 뒤 내원에 위치한 객당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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