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45화 (145/184)

145화 네놈은 내가 우스워 보이는 모양이구나.

될 듯 말 듯 되지 않았다.

청운은 점점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이러다 상단전을 여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예전의 무위조차 회복하지 못할까 봐 두렵고 무서웠다.

그러면 자신이 계획했던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제발 그런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한다고 청운은 자신의 눈앞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며 염원하고 또 염원했다.

청운은 자신의 눈앞에서 거세게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며 자신이 간절히 뚫기를 원하는 폐맥에도 저 물줄기처럼 세차게 기가 돌 수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갈망했다.

그렇게 한 달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청운이 폭포에서 나와 장원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양 분타주가 자신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양 분타주가 숨을 헐떡거리며 청운에게 포권을 취했다.

청운도 그를 마주보며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양 분타주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부문주님, 찾았습니다.”

청운이 반색하며 말했다.

“그래, 그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왕숙하의 맥이 틀림없는가요.”

양춘호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 그게, 여기서 너무 먼 곳입니다. 청해성 끝자락과 신강이 맞닿은 황토고원 근처입니다. 왕숙하의 진전을 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후손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왕숙하는 원래 산서 사람인데 그들의 후손들이 왜 그곳까지 가서 뿌리를 내렸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청운이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산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군요. 넉넉잡아 스무날 정도 걸리겠군요. 저는 내일 바로 떠났으면 합니다. 분타주님, 그곳의 지형에 관한 지도와 여행에 필요한 물품과 건량을 좀 준비해 주십시오.”

청운의 말에 양 분타주가 즉시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내일 묘시卯時까지 준비해서 장원으로 오겠습니다. 그런데 말은 어떻게 할까요.”

청운이 잠시 생각한 후에 그의 말을 받았다.

“산길이 많아서 굳이 말은 필요치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건량도 며칠 분만 준비하시면 됩니다. 여행 중에 제가 상황을 봐가며 준비해도 되니까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청운이 일찍 깨어나 운기를 하고 있을 때 양춘호가 부분타주 진소구와 함께 헐레벌떡 장원으로 왔다.

거의 정확히 묘시 경이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그는 일에는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미 출발 채비를 다 마친 채 그를 기다리고 있던 청운은 그가 준비해 온 행낭을 건네받고는 곧장 길을 떠났다.

청운에게는 그 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절실했다.

양 분타주와 진 부분타주는 길을 나서는 청운을 거의 십여 리나 따라왔다.

청운이 그만 가라고 해도 그들은 알았다고 대답을 하면서도 계속 따라왔다.

청운이 몇 번이나 거듭 이제 됐다고 말을 하고 나서야 그들은 간신히 형주분타로 되돌아갔다. 그들은 청운에게 몸조심하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 * *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날씨가 점점 차가워졌다.

형주를 떠나 섬서까지 올 때는 눈을 돌리는 곳마다 단풍이 절정이더니 감숙을 지나칠 때쯤에는 나무마다 산마다 그렇게 타오르며 계절을 태우던 불꽃이 한순간에 꺼져버린 것 같았다.

타오르던 불이 죄다 꺼진 지금처럼 쓸쓸한 늦가을 무렵에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 같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먼 곳의 산봉들은 푸르스름한 빛과 잿빛이 뒤섞여 마치 득도한 고승 같은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고, 그 위의 짙푸른 하늘에는 방금 탄 햇솜 같은 흰 구름이 이전의 계절보다 훨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관도의 나무들은 길 양쪽으로 길고 검은 줄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관도 옆을 흐르는 강물은 하늘이 자기 모습을 비추어 성찰하기 위해 만든 커다란 거울처럼 푸르고 투명했다.

나무들은 제 몸에서 떨어진 낙엽의 웅덩이 속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에 관해 서늘한 명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할 것이 너무 많은지 끊임없이 죽비竹篦소리 같은 낙엽을 떨어뜨리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 같았다.

나무들의 깊은 침묵에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휑뎅그렁한 관도마저 깊디깊은 명상에 잠긴 것 같았다.

모든 가식적인 것을 벗어던진 가을의 헐벗은 풍경이 오히려 본질만이 충만한 계절 같았다.

잿빛 무복에 죽립을 턱까지 눌러 쓴 채 그런 관도를 걸어가는 청년 역시 깊은 상념에 빠진 것 같았다.

가끔씩 살짝 죽립을 들어 올리며 자신이 가야 할 먼 길을 바라보는 청년의 눈빛이 지금 그가 올려다보는 하늘보다 더 깊고 짙푸른 것 같았다.

청운은 거의 열흘 가까이 거의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한 덕분에 드디어 청해의 성도 초입에 들어섰다.

청운은 가능하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서너 차례 정도만 객점에서 숙식하고 대부분은 산속에서 노숙했다.

한마디로 대충 먹고 대충 잤다.

거의 다 왔다고 생각을 하니 청운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하룻밤 푹 쉬고 싶었다.

때마침 백여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여러 개의 객잔이 눈에 들어왔다.

청운은 그 중에 가장 번듯해 보이는 <천화루>라는 현판이 걸린 곳으로 들어갔다.

일 층에는 제법 사람이 많았다.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청운은 점소이에게 삶은 돼지고기와 소홍주 한 병을 시키고는 곧장 이 층으로 올라갔다.

살짝 점심때가 지나서 그런지 손님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창가를 중심으로 드문드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마침 왼쪽 창가 한자리가 비어 있었다.

청운은 곧바로 그곳으로 갔다.

청운은 자리에 앉자마자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워 계속 창문 너머만 주시하고 있었다.

청운은 마치 한 덩이 정적처럼 앉아서 멍하니 넋을 놓은 채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뭔가에 쉽게 지루해 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청운이 창밖 풍경을 내다보며 느긋하게 내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허리에 패검을 한 사납게 생긴 한 무리의 사내들이 우르르 이 층으로 올라왔다.

모두 이십 대 후반이나 삼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모두 여덟 명이었다.

그중 가운데 있는 자는 아주 비싸 보이는 푸른 장포에 상아로 손잡이를 만든 섭선을 들고 있었다.

넓은 이마에 푸른 영운건을 멋들어지게 두른 그는 상당한 미남이었다.

다만 살짝 치켜 올라간 그의 눈초리가 조금 사나워 보였다.

옥의 티 같았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의 전체적인 용모는 대단한 미남자였다.

황의를 입은 나머지 일곱 명은 그를 따르는 수하들 같았다.

그들이 이 층에 올라오자마자 마차 바퀴가 부러지는 것 같은 커다란 고함소리를 질렀다.

“야, 이 새끼야! 저 자리는 우리 공자님이 늘 앉은 자리인 줄 뻔히 알면서 다른 손님을 받아. 네 놈이 이 청해에서 살기 싫은 모양이지. 당장 저년을 치워라!”

황의 사내에게 호된 봉변을 당한 점소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대협. 그게 말입니다. 제가 안 된다고 했는데, 저 소저께서 예약된 자리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면서 막무가내로 앉았습니다. 제가 다시 한번 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만 노여움을 푸시지요.”

“됐다.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네놈은 주문받은 음식이나 똑바로 준비해라. 썩 꺼져라.”

황의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가장 구석 창가에 창가의 탁자로 다가갔다.

그자는 자신의 검집으로 탁자를 쾅 치며 협박했다.

“예쁜 소저, 우리 이야기 다 들으셨죠. 그럼 빨랑 일어나 사라지는 것이 예의 아닌가. 자, 자, 우리 피차 피곤한 일은 줄이도록 합시다.”

황의인의 겁박에도 그녀는 얼굴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녀의 그런 태도에 분기탱천한 황의인이 급기야 자신의 검집으로 그녀의 등을 쿡 찔렀다.

그제야 그녀는 황의인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것도 반만, 보고도 못 본 듯 듣고도 못 들은 듯 짐짓 무시하는 태도로.

그녀의 태도는 타인의 이목을 끌면서 동시에 시선을 거부하는 듯 보였다.

객점에서는 잠시 적응의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은 순전히 그녀의 미모 때문이었다.

백옥 같은 피부에 그린 듯한 아미에 사슴 같은 눈 하며, 이십 대 초중반 정도 되었을까? 한마디로 눈에 번쩍 띄는 미모였다.

바로 그때 청의 비단옷을 입은 자가 자신의 섭선으로 황의인을 저지하며 말했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청해의 제일 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한 청가장의 청옥교 소저구려. 오늘 내가 복福이 터져도 대복大福이 터진 것 같구려. 왠지 오늘 <천화루>에 몹시 오고 싶더니만, 소저를 만나려고 그랬던 모양입니다. 소저 같은 미인이면 언제나 환영이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나하고 합석합시다. 오늘 음식값은 이 천모가 책임지겠소.”

그 순간 청옥교가 표독스러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당신들! 지금 나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오. 썩 꺼지시오, 이 자리는 당신들이 오기 전부터 내가 자리 잡은 곳이오. 다른 빈자리도 많은데 왜 하필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것이오.”

청옥교에게 모욕을 당한 천모라는 자는 그녀의 면박을 전혀 모욕이라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그자는 청옥교의 맞은편 의자에 털썩 앉고는 만면에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청 소저,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그렇게 표독스럽게 굴건 뭐 있소. 자, 나와 같이 식사합시다. 나도 알고 보면 썩 괜찮은 사내대장부요.”

그의 목소리가 더 능글거렸다.

면박당하면서도 그는 그녀에 대한 지분거리는 짓거리를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당한 모욕을 만회하려는 것 같았다.

그녀가 흥, 하고 콧방귀를 끼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 천모라는 자가 그녀의 옷소매를 잡았다.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오른손이 그자의 왼쪽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자신이 모시는 상전이 봉변을 당하는 것에 분을 참지 못한 황의인이 급기야 검을 빼 들었다.

다시 천모라는 자가 황의인을 제지하며 말했다.

“오늘의 따귀 값은 훗날 후하게 쳐서 갚도록 하지요. 그 값은 전적으로 내가 정할 것이다.”

청운은 청 소저의 당돌한 방식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와 설핏 웃었다.

자신의 왼쪽 뺨을 만지던 그자가 청운을 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의 느글거리던 입가에서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청운의 탁자로 왔다.

그가 청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은 내가 우스워 보이는 모양이구나.”

그자의 돌변한 태도는 그가 상당히 잔인한 인물임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징표 같았다.

그 뒤에 선 자들의 표정도 어느새 그자의 표정과 똑같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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