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다급한 외침이 핏물과 함께 터져 나왔다.
귀혼진은 귀혼창의 그림자 뒤에 숨어서, 존재하지 않은 존재처럼 잠복해서 상대가 어느 것이 실체이고 어느 것이 허상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환각에 빠트려 순식간에 상대를 죽이는 무서운 진이었다.
그들을 제압하는 관건은 그림자와 허상 뒤에 도사린 실체를 얼마나 빨리 찾아내 처치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청운은 허공으로 신형을 솟구쳤다.
동시에 극황지감술을 최대한 운기했다.
의식을 닫고 감각을 최고조로 민감하게 만들자 그림자 뒤에 숨은 그들의 기감이 전부 느껴졌다.
팔귀혼들은 교묘하면서 괴이한 사술邪術로 허공 속에 허공과 유사한 색깔로 기막氣幕을 만들어 몸을 숨긴 채 그림자를 이용한 환술로 상대를 공격했다.
하지만 청운 같은 절세적인 고수에게 그런 허접한 환술이 통할 리가 만무했다.
허공에서 그자들의 기감을 감지한 청운은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그들의 기감이 느껴지는 공간을 향해 무영검을 내질렀다.
청운의 손을 떠난 무영검이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진 어떤 생명체처럼 허공 이곳저곳을 누비며 공간을 찌르고 베고 절단했다.
무영검이 어느 공간에서 한순간 번뜩일 때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한 가닥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즉참된 팔혼귀 하나와 거무튀튀한 귀혼창 하나가 돌처럼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모두 여덟 구의 시체와 여덟 개의 시커먼 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온전한 시체는 하나도 없었다.
팔다리가 절단되었거나 목이 없거니 심지어 몸통이 두 동강 난 시체도 있었다.
상황의 종결은 설명처럼 길지 않았다.
순식간이었다.
채 일각도 지나기 전에 무영검이 스쳐 지나간 공간은 다시 원래의 텅 빈 허공이 되었다.
팔귀혼들의 시체는 바람 없는 날의 연처럼 맥없이 땅바닥에 처박혀 이곳저곳 함부로 나동그라졌다.
하월보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진영에서는 두려움과 절망의 탄식이 석가장 무사들이 모인 진영에서는 환호와 경탄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평생을 걸려 자신이 애써 키운 부하들이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한여름 복날 개처럼 무참하게 도살당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 귀혼신창이 흉광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청운을 쏘아보며 말했다.
“참으로 모질고 잔인한 놈이구나.”
청운이 무심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그의 말을 곧장 받았다.
“능력이 모자라 싸움에 진 자가 이긴 사람을 보고는 늘 그런 소리를 지껄이기는 하지. 내가 저들의 손에 죽었어도 당신이 그런 소리를 할까.”
“…….”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덤빌 테면 빨리 덤벼라.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할 일이 태산 같은 사람이다. 아니면 배후를 모두 밝히고 무릎 꿇고 사과하든지. 아, 물론 오늘의 피해에 대한 배상은 당연히 당신들 책임이고.”
귀혼신창이 무슨 의식의 절차를 밟듯이 자신의 등에 메고 있던 창을 감싸고 있던 검은 가죽을 천천히 풀어헤쳤다.
어른 팔뚝만 한 굵기의 흑빛이 번들거리는 창은 약 세 척 정도의 길이였다.
그가 귀혼신창에 진기를 주입하자 창이 순식간에 두 배로 길어졌다.
그가 귀혼신창의 끝을 청운의 가슴께로 겨누며 예의 그 유부에서 나오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호에서 명성을 좀 얻었다고 네놈의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구나. 잘 들어라 아이야. 이것이 바로 지금의 내 별호를 만들어 준 귀혼신창이다. 사도 십 대 병기 중 하나이기도 하지.”
“…….”
“나는 오늘 이 귀혼신창의 제물로 너의 목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자, 이제 시작하자꾸나.”
말을 채 다 마치기도 전에 귀혼신창을 몇 차례 허공에서 번개처럼 돌리더니 이기어창의 수법으로 청운을 향해 내던졌다.
귀청을 찢어발기는 듯한 으스스한 귀곡성과 함께 마치 살아 있는 커다란 검은 뱀처럼 묵빛의 귀혼신창이 청운의 전신요혈을 짓이길 듯이 쏘아져 왔다.
청운은 그자의 창도 창이지만 창에서 쏟아지는 을씨년스러운 귀곡성이 더 싫었다.
그 귀곡성은 마치 음공처럼 듣는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내기를 진탕시켰다.
어지간한 강호의 고수들이 그자의 창에 꿰뚫리기도 전에 창에서 쏟아지는 귀곡성에 내기가 진탕되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귀혼신창의 고혼이 되었다고 강호에 소문이 파다했다.
함부로 무시해서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청운은 치우전륜공을 최대로 끌어올린 호신강기로 귀혼신창의 귀곡성에 대항하면서 검은 섬전처럼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그자의 창을 무영검으로 쳐냈다.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귀혼신창에 실린 내력이 엄청났다.
귀혼신창을 쳐낼 때마다 청운은 손아귀와 팔이 욱신욱신 울리는 걸 느꼈다.
귀혼신창의 명성이 허명은 아니었다.
환제의 혈마린창과는 또 달랐다.
환제의 혈마린창이 시공간 전체를 장악해 붉은 환영을 만들어 상대를 압박하는 반면, 귀혼신창은 시공간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가장 빠른 직선의 창로槍路로 상대를 짓쳐 왔다.
십여 합 이상의 선제공격을 퍼부었음에도 청운에게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하자 귀혼신창이 조금 초조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청운이 마치 자신의 무위를 시험하듯이 가볍게 상대하자 귀혼신창은 분기를 참지 못하고 벼락같은 괴성을 내지르기까지 했다.
“네 이놈. 최선을 다 해라. 그게 강호 선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운이 자신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여유를 부리자 더 이상 참지 못한 귀혼신창이 어느 순간 허공에 있던 창을 회수했다.
바로 청운이 노리던 순간이었다.
귀혼신창이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해 창을 회수하는 찰나의 순간 내기를 진탕시키던 귀곡성도 잠시 미약해졌다.
바로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청운은 쾌―타―절―변―회의 초식으로 한 가닥 섬전처럼 귀혼신창의 가슴을 찔러갔다.
청운의 벼락같은 공격에 당황한 귀혼신창이 다급하게 창으로 가슴을 찔러오는 무영검을 쳐냈다.
그러나 무영검은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창을 살짝 피해 그의 왼쪽 어깨를 그대로 관통했다.
“으―헉.”
작지 않은 상처를 입은 귀혼신창이 신음 비슷한 헛바람을 내뱉으며 뒤로 주춤 물러나자 무영검은 귀혼신창이 그렇게 피할 줄 이미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검로를 바꿔 그대로 목을 찔러 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경로로 자신을 찔러오는 무영검의 검로에 깜짝 놀란 귀혼신창이 체면이고 뭐고 다 내팽개친 채 강호인이라면 누구나 꺼리는 뇌려타곤의 수법으로 땅바닥을 몇 바퀴나 나뒹굴며 간신히 자신의 몸에서 목이 분리되는 횡액을 면했다.
그 대거로 한 줌의 머리카락과 왼쪽 귀를 희생하고서.
수치와 분노로 머리끝까지 분기가 차오른 귀혼신창이 목숨을 도외시한 채 괴성을 지르며 청운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귀―혼―월―인.”
그 순간 귀혼신창에서 귀신의 울부짖음 같은 귀곡성과 함께 수백 가닥의 묵빛 창기槍氣가 청운의 전신요혈로 쏘아져왔다.
청운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호신강기로 전신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쾌―타―절―변―회의 초식을 연격해 맞받아쳤다.
한순간 장내에 엄청난 폭음이 일었다.
그 여파로 근처에 있던 사람들 일부가 강기에 휘말려 털썩털썩 엉덩방아를 찧었다.
근처 석가장의 담장 일부도 허물어졌다.
그 초식의 교환으로 귀혼신창이 신형을 비틀거리며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나 입가에 한 가닥 핏줄기를 흘리고 있는 반면, 청운은 마치 천신天神처럼 위풍당당하게 제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청운은 곧바로 마치 토끼를 노리는 매처럼 쾌―타―절―변―회―접의 초식을 연격해 귀혼신창을 짓쳐 갔다.
무영검에서 뻗어 나온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마치 뇌전처럼 귀혼신창의 전신으로 쏘아져 갔다.
그 순간 다시 한번 귀혼신창의 입에서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다급한 외침이 핏물과 함께 터져 나왔다.
“귀―혼―월―강.”
무영검에서 발출된 자황색의 검기와 귀혼신창에서 뻗어 나온 묵빛의 창기가 장내에서 충돌하자 아까보다 더 큰 엄청난 폭음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폭음과 동시에 조금 전 허물어지다 만 담벼락은 완전하게 허물어졌고, 둘의 대결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다시 삼사 장이나 비칠비칠 뒤로 물러났다.
몇몇은 그 여파를 이기지 못해 땅바닥에 나동그라지기까지 했다.
귀혼신창은 가슴이 한 자 이상이나 갈라진 채 십여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 신형을 비틀거리고 있었다.
귀혼신창의 모습을 바라보던 청운은 이참에 모든 걸 마무리 짓기로 결심하고는 곧장 멸환을 전개해 귀혼신창을 짓쳐 갔다.
무영검에서 발출된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자신의 전신을 찢어발길 듯이 쇄도하자 귀혼신창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자신의 최후의 절초를 펼쳤다.
“귀―혼―월―천.”
귀혼신창에서 뻗어 나온 수백 가닥의 묵빛 창기가 무영검에서 발출된 검기를 간신히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에 묵빛 창기는 마치 검은 종이처럼 조각조각 잘려 허공에 나부꼈다.
“으―아―악.”
묵빛 창기가 수백 수천 조각으로 잘리는 순간과 동시에 귀혼신창의 외마디 단말마도 장내의 대기를 수백 수천 가닥으로 찢어발겼다.
그 외마디 비명이 그가 이승에서 마지막 남긴 자신의 목소리가 되고 말았다.
자신들이 신처럼 믿고 있었던 귀혼신창이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청운의 검날에 비참하게 혼이 되는 모습을 목도한 하월보 측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청운이 앞으로 한 발짝씩 다가갈 때마다 그들은 뒤로 몇 발짝씩 비칠비칠 물러났다.
청운이 하 보주를 향해 다가가자 하 보주와 총관은 자신의 부하들마저 내팽개친 채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청운이 묘묘보허를 전개해 한 줄기 바람처럼 그들의 퇴로를 막아섰다.
하 보주와 총관은 죽음의 사신이라도 마주한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청운이 그들을 냉랭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비아냥거림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하 보주님, 오실 때는 마음대로 왔지만 가는 것은 당신 마음대로 갈 수 없소, 일에 대한 계산은 명확히 하고 가셔야죠.”
하 보주와 총관이 잠시도 안절부절못하는 초조하고 불안한 기색이 가득 담긴 어조로 청운의 말을 간신히 받았다.
“가… 강 대협, 무… 무슨 계산 말입니까?”
청운이 서릿발 같은 서늘한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그걸 정말 모른단 말이오! 우선 당신들이 저지른 무례를 정중히 사과하고 이 사태의 배후를 밝히고 다시는 이런 짓거리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즉시 다짐하시오. 그리고 여기뿐 아니라 저기 뒷산에 죽어 있는 냄새나는 살수들의 시체도 모조리 되가져 가시오.”
“아… 알겠습니다.
“당신들이 가져온 쓰레기는 당신이 치워야 할 것 아니오. 또한 당신들로 인해 손괴된 석가장 시설물에 대해서도 모두 보상하시오. 그것이 내가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고 최소한의 요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