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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136화 (136/184)

136화 마지막 배려를 스스로 걷어차지 마시오.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은 황금도 무력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주변의 약자들을 돌아볼 줄 아는 배려와 연민입니다.”

“…….”

“이번 사태에 관한 사항은 저에게 모든 걸 일임해 주시지요. 제가 책임지고 석가장을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사특한 무리가 석가장을 넘보지 못하도록 단단히 본때를 보여주겠습니다.”

청운의 말이 끝나자마자 석 장주는 청운의 두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저는 강 대협만 믿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태가 잘 마무리되면 약자들을 위해 더 많이 베풀며 살겠습니다. 대협에게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칠 일 후.

석가장의 전각들 지붕이 부드럽게 노을빛에 물들어가는 유시酉時 무렵.

황금색 비단으로 치장한 육두 마차 한 대와 백여 명이 훨씬 넘는 말을 탄 무사들이 석가장의 정문 앞에 도착했다.

황금빛 비단 휘장이 젖혀지자 네 명의 인물이 마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하월보의 보주 단월금 하유선과 총관 우선약 그리고 죽립을 턱밑까지 눌러 쓴 흑의인 한명과 보기에도 섬뜩한 핏빛 장포를 걸친 자였다.

핏빛 장포를 입은 자는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키는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몸은 마치 뼈 위에 옷를 걸친 듯 깡말랐다.

특히 그의 얼굴은 회칠한 것처럼 백납 같았고 푹 꺼진 두 눈은 짐승의 눈처럼 흰자위는 거의 없고 검은 동자만 번들거리고 있었다.

움푹 파인 그의 눈에서 귀기鬼氣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등에는 검은 가죽으로 둘둘 말은 무기 같은 걸 메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붉은 적의를 입은 여덟 명의 사내들이 그림자처럼 도열해 있었다.

그들의 등에도 괴인처럼 등에 천을 두른 뭔가를 메고 있었다.

그들이 나타나자마자 석가장 안에서 백여 명의 무사들이 몰려나왔다.

하월보주 일행은 석가장의 무사들이 안중에도 없는 듯 무시하며 석가장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 시간 청운은 다른 일로 몹시 분주했다.

청운은 극황지감술을 최대로 끌어올린 채 석가장을 뒷산을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었다.

청운은 석가장 주변에 매복한 살수들을 일일이 찾아내 도륙하고 있었다.

청운은 묘묘보허를 최대한 전개하며 한 줄기 바람처럼 날아다니며 연신 전륜지를 발출했다.

전륜지가 발출된 곳에서는 어김없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이마나 가슴이 꿰뚫린 살수들의 식은 시체가 있었다.

살계殺界를 열기로 작정한 청운은 주저함도 없었고 망설임도 없었다.

거의 백여 명 이상의 매복한 살수를 소리 없이 처치한 청운은 묘묘보허를 전개해 한 줄기 연기처럼 곧바로 대전의 지붕 위로 날아 내렸다.

정문 앞의 상황이 한눈에 보였다.

하월보와 석가장 무사들 수백여 명이 대치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주변 대기에 떠돌고 있다.

자칫 누군가 실수로 불쏘시개를 던지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석 장주와 석가명을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하 보주가 말했다.

“석 장주, 결국 달달한 권주는 마다하고 쓴 벌주를 선택하고 말았군요. 그깟 선산이 뭐라고 그렇게 버티는 것이오. 버티긴. 당신 뒤에 있는 무사들을 믿고 그러는가 본데, 석 장주! 정신 차리시오. 내가 보기에 저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하오.”

“…….”

“시험해 볼 테면 당장 해 보시오. 나는 내가 양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양보했소.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시면 석가장은 무사할 것이오. 석 장주, 제발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를 스스로 걷어차지 마시오.”

하 보주의 말을 곧바로 받은 석 장주가 의연하고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하 보주의 요구는 너무 터무니없는 억지요. 남의 선산을 힘으로 빼앗으려고 하다니. 세상에 그런 법은 없소. 석가장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차라리 석가장을 달라고 하시오. 당신들의 진정한 목적은 선산이 아니라 석가장이 아니오.”

석 장주는 하 보주의 반응을 살피며 말을 이어 갔다.

“당연히 안 될 걸 뻔히 알면서 선산을 팔라고 하는 것은 그걸 미끼로 석가장 전체를 가로채겠다는 흑심이 아니면 무엇이오.”

“…….”

“나는 석강장의 숟가락 하나라도 그저 내어 줄 마음이 없으니 어디 당신 마음대로 해보시오. 석가장의 모든 가솔들은 목숨을 걸고 석가장을 지킬 것이오.”

석 장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 보주는 죽립을 턱밑까지 눌러 쓴 흑의인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하 국주의 신호를 받은 흑의인 돌연 자신의 오른팔을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치켜든 오른팔로 허공에다가 커다란 원을 그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순간 그자는 당황하는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대전의 지붕에서 카랑카랑하고 우렁찬 목소리 하나가 장내로 날아들었다.

“이제 그만 팔을 내려라. 당신이 아무리 팔을 휘둘러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쯤 염라대왕 앞에서 자신들이 이승에서 지은 죄를 실토하고 있을 것이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전의 지붕에서 장내로 한 사내가 날아들었다.

그의 신법은 너무나 신묘해 마치 바람을 타고 미끄러지는 것 같았다.

그는 바로 석가장 주변에 매복한 살수들을 모조리 처치하고 대전의 지붕에서 장내를 주시하던 청운이었다.

청운이 장내로 날아 내리자 하월보 측의 무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죽립을 눌러 쓴 채 청운을 주시하고 있던 흑의인이 검을 빼들고 청운에게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청운은 그럴 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그자의 검기가 막 목에 당도하기 바로 직전 한 차례 슬쩍 신형을 흔들어 피한 후 그자의 가슴을 향해 전륜장을 내질렀다.

순간 청운의 오른쪽 장심에서 황금빛이 번쩍했다.

“으―악.”

단말마의 짧은 비명과 함께 전륜장에 가슴이 정통으로 격타당한 흑의인은 실 끊어진 연처럼 십여 장이나 뒤로 날아가 담장에 처박혔다.

흑의인은 몇 사발 검붉은 피를 울컥울컥 뱉더니 마치 살 맞은 한 마리 꿩처럼 뻗어 버렸다.

그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한 하월보주와 총관 안색이 돌변했다.

하 보주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청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귀하는 도대체 누구요. 귀하가 보기 드문 고수인 건 틀림없지만 당신 혼자 힘으로 오늘의 상황을 되돌릴 순 없소. 당장 신분을 밝히고 물러난다면 더 이상의 죄는 묻지 않겠소. 썩 물러나시오.”

청운이 입가에 한 줄기 냉랭한 조소를 베어 물고는 말했다.

“과연 그럴까. 거꾸로 내가 제안하겠소. 지금 즉시 이곳에 있는 모두가 무릎을 꿇고 석 장주님께 사과하고 당신들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밝히고 물러가면 더 이상의 피해는 없을 것이오. 당신들이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갈릴 것이오. 모든 것은 당신의 선택에 달렸소. 부디 잘 판단하기를 바라오.”

“으―하―하―핫.”

갑자기 하 보주가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그리고는 오른팔을 허공에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자 말을 탄 채 멀찍이서 대기하고 있던 하월보의 무사들이 일제히 석가장 안으로 돌진했다.

그 광경을 본 석 장주와 석가명의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

급기야 석가명도 검을 빼 들었다.

그 순간 무영검을 빼든 청운이 허공으로 한 마리 솔개처럼 솟구쳐 올랐다.

무영검이 번쩍거리는 곳마다 단말마의 비명과 혈화가 분수처럼 피어올랐다.

주인을 잃은 수십 필의 말들이 진영 속에서 날뛰자 장내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자신의 바로 눈앞에서 동료 수십여 명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절명하자 뒤에 있던 무사들 대부분이 우왕좌왕하는 것을 넘어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심지어 공포에 질려 말머리를 돌려 도망가는 자들도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동료가 죽은 것이 비통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목숨보다는 덜 소중하니까.

“멈춰라!”

바로 그 순간, 소리와 함께 핏빛 장포를 입은 백납의 얼굴을 한 자와 여덟 명의 적포인이 청운을 향해 날아왔다.

장내에 내리자마자 그들은 청운을 에워쌌다.

핏빛 장포를 입은 백납 얼굴의 괴인이 청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그자의 높낮이라고는 전혀 없는 목소리는 마치 유부幽部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청운이 조소하듯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남의 이름을 묻기 전에 자신의 이름을 먼저 밝히는 게 순서 아니오. 귀하는 누구요.”

괴인은 혈안을 번들거리며 청운을 한동안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더니 예의 그 소름 돋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 들어라. 아이야. 나는 염천우다.”

백납의 혈안 괴인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마자 석가장 무사들의 진영이 심하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리 중에 있던 어떤 무사가 놀람의 외침을 질렀다.

“사사천의 귀혼신창과 팔귀혼!”

백납 괴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청운이 비아냥거리는 반말 투로 말했다.

“사사천의 세 번째 개. 귀혼신창 염천우. 잘 들어라. 나는 강청운이다.”

청운의 이름이 청운의 입을 떠나자마자 때 아닌 여름에 서리가 내린 듯 장내가 침묵에 빠졌다.

팔귀혼 중 하나가 깊은 침음과 함께 나지막한 신음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무위검 강청운!”

귀혼신창과 팔귀혼이 동시에 몸을 움찔거리며 낯빛이 돌변했다.

곧바로 원래 자신의 표정을 회복한 귀혼신창이 예의 그 으스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에 대한 소문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나는 그 소문을 믿지 않는다. 나는 내 눈으로 본 것만 믿는 사람이다. 네놈은 어디 안 끼는 데가 없더구나.”

“…….”

“네놈이 왜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잘 만났다. 오늘 내 아우들의 피맺힌 원한을 확실히 갚아주마. 애들아! 귀혼진을 펼쳐 저놈을 갈가리 찢어 죽여라.”

팔귀혼들이 천으로 감싸고 있던 자신의 등에 짊어지고 있던 뭔가를 풀었다.

묵빛의 장창이었다.

거무튀튀한 창에서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귀기가 줄줄 흘러넘쳤다.

그들이 창을 가슴께로 들어 올리자 그들의 몸과 창에서 느닷없이 무수한 검은 그림자가 뻗어 나왔다.

돌연 시커먼 장창의 그림자만 장내에 어른거리더니 갑자기 팔귀혼들의 신형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고―오―오―오.”

이내, 사람의 폐부를 옥죄는 귀곡성이 이는가 싶더니 장창에서 자라난 수십여 개의 그림자가 섬전처럼 청운의 전신요혈을 물어뜯을 듯이 압박했다.

그 순간 청운도 자신의 애검 무영검을 가슴께로 들어 올렸다.

자신을 압박하는 그림자를 노려보며 청운이 무영검에 내력을 주입할 때마다 검 끝에서 투명한 자황색의 섬광이 번쩍번쩍하며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했다.

청운은 이제 무영검에서 자신의 피가 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죽이고 싶으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는 청운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팔귀혼을 뒤에서 지휘하던 귀혼신창 염천우도 바짝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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