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32화 (132/184)

132화 저들이 누군지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신지요.

“소협께서는 어떻게 저들의 준동을 알고 이곳 이가장까지 오시게 되었습니까.”

청운이 차를 한 모금 마시다 말고는 말했다.

“객점에서 우연히 달을 구경하다가 일군의 흑의인들이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고 그들을 추적했습니다.”

“음…….”

“그들의 은밀한 행동으로 보아 뭔가 심상찮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순전히 우연입니다. 그런데 대인께서는 저들이 누군지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신지요.”

이자천이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르고는 한 모금 마시고는 청운의 말을 받았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제 짐작으로는 아마 동창의 태공공이 사주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는 나를 항상 눈엣가시로 여겼습니다.”

청운이 재차 물었다.

“대인께서는 무슨 일로 그자의 눈 밖에 났습니까.”

이자천이 깊은 한숨을 몇 차례 몰아쉬더니 청운의 말을 받았다.

“태공공이 귀비와 붙어서 조정을 제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것은 소협도 잘 아시지요. 그들은 노골적으로 귀비의 자식인 칠 황자를 다음 대통을 이을 세자로 책봉되도록 대소신료들을 상대로 간계를 부리고 있습니다.”

“…….”

“어디서 그 많은 황금이 났는지 조정의 대신들에게 뇌물을 먹이고, 심지어 대신들을 자신의 편으로 회유하기 위해 어린 소녀들까지 선물로 바칩니다.”

청운은 그 말을 듣고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자천의 말을 귀를 기울여 들었다.

“몇몇의 진정한 충신을 제외하고는 귀비와 태공공의 그런 노골적인 공세에 안 넘어가는 대신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나라의 군권을 쥐고 있는 대장군까지 자기들 편으로 포섭했습니다.”

“…….”

“그들은 그런 힘으로 자신들의 제안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무서운 보복을 했습니다. 우선 관직부터 박탈하고 그것도 모자라 결국 목숨까지 빼앗지요. 오늘 소협께서 보신 것처럼.”

청운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계속 하던 말을 이었다.

“나는 나라를 위해 성군의 자질이 엿보이는 삼 황자를 마음속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지요. 그 일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습니다.

“…….”

“나는 그들의 그런 흉계를 뻔히 알고서도 힘이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실이 끔찍하게 죄스러웠습니다. 나는 그걸 견딜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관직을 강제로 빼앗기기 전에 내가 먼저 관직을 집어던지고 궁을 나와 버렸지요.”

청운의 표정을 살핀 이자천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나 또한 어렴풋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진짜 위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건들이 거의 매일 내 주변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자식과 아내는 아예 그들이 모르는 먼 곳에 보내버리고 시비 둘만 데리고 나 혼자 이곳 이가장에서 생활했습니다. 오늘 같은 사태가 닥칠까 두려워서…….”

“이해합니다.”

“나 혼자 죽는 것이야 뭐가 두렵겠습니까. 이미 살 만큼 충분히 살았는데. 다만 나라가 저 지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프지요.”

“…….”

“귀비와 태공공이 저지르는 모든 피해는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힘없는 백성들에게 돌아가겠지요. 지금껏 역사가 그랬으니까요.”

청운이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지금 천하가 이상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대인 같은 분이 계시니 곧 다시 좋은 세상이 올 것입니다. 여태껏 역사가 그랬으니까요.”

“…….”

“그래서 대인께서는 꼭 살아 계셔야 합니다. 일단은 그들이 대인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몸을 피하시지요. 제가 비록 힘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대인께서 생각하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겠습니다. 세상에는 저 같은 사람들도 제법 많습니다.”

청운은 말을 이어 갔다.

“대인께서는 그때까지 무조건 살아 계셔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을 때 대인 같은 분들이 모여 다시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아야지요.”

“고맙소.”

“제가 다시 여기에 올 때 대인께선 이곳에 계시면 안 됩니다. 이곳은 당분간 저희 하오문의 분타로 사용하겠습니다. 저는 대인께서 반드시 그리하리라 믿고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 * *

청운은 사사천의 괴이하고 기괴한 무공을 상대하면서 오히려 단순함이 주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수법이 너무나 낯설고 괴상해 적절하게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사소하고 하찮은 빈틈을 노출하며 스스로 자멸하고 말았다.

힘이란 그건 것이다.

자신을 벼리고 담금질하는 치열한 과정과 절차를 거치지 않는 사이한 방법으로 쉽게 얻은 힘.

그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작은 빈틈에 의해 와르르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구음신마와 사혼환마, 요사, 귀수귀마.

그들 모두는 괴이한 사공과 사법에 취해 진짜 힘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자들일 뿐이다.

그런 사이한 무공과 술법들이 처음에는 습득과 성취가 빠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한계도 명확하다.

그들은 자신이 성취한 것에 너무 빨리 만족하고 자신의 것만이 최고라는 착각에 빠져 자신을 담금질하고 벼리는 일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힘에 대한 깨달음이 부족했기에 그들은 진정한 고수와 맞닥뜨리자 자신의 실수에 의해 한순간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수많은 각성과 깨달음에 의해 정제되고 벼려진 올바른 힘은 모든 사이한 힘을 꿰뚫을 수 있다.

참으로 진실된 것은 참으로 단순한 것이다.

그들은 그걸 깨닫지 못했기에 겉만 거창하고 실속은 전혀 없는 어쭙잖은 사법으로 진정한 힘을 상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아주 작은 허점이 노출되자마자 일순간에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무너지고 말 것이다.

물론 단순한 것이 최고는 아니다.

그냥 단순한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말 그대로 단지 단순하기만 한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다채롭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정제되지 않은 단순함은 말 그대로 어설픈 것일 뿐이다.

진정한 단순함은 대가의 붓질과 유사하다.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복잡다단한 필법을 다 익히고 난 후.

자신의 모든 필법을, 버린 필법 위에 새로운 깨우침의 힘찬 일획이 얹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단순함은 목숨을 건 수많은 생사결의 상황을 극복한 자의 무심無心 위에 세운 탑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세상에 그저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목숨을 걸고 보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 검은 스스로의 한계와 새로운 가능성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이 이루려고 하는 것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헌신할 때 겨우 응답하는 것이 바로 도道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일에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

너무 빠른 성취와 성공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그런 자세와 태도만이 도道은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그 본질이 학문이든 무공이든지 간에…….

* * *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얼마를 걸었을까.

거대한 담장이 둘러져 마치 하나의 성을 방불케 하는 석가장의 고루거각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청운은 저 으리으리함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평생 적응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청운이 석가장의 정문 가까이 다가가자, 빗자루를 들고 담벼락 주변을 쓸고 있던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장한이 자신을 한동안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빗자루를 담벼락 한 쪽에 기대어 놓고는 총총걸음으로 청운에게 달려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청운의 얼굴을 본 그 사내는 허리가 부러질 듯이 청운에게 읍소를 했다.

숙였던 허리를 펴자마자 그 사내가 소리쳤다.

“무위검 강 대협을 뵙습니다. 아―아.”

그 사내의 외침을 들은 문지기 중 하나가 창을 담벼락에 기대어 놓고는 부리나케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빗자루로 당방 주변을 쓸던 사내는 바로 삼 년 전 이맘때 석가명과 함께 섬서의 진무사령을 만나고 석가장으로 돌아올 때 본 적이 있는 자칭 청산박의 호걸(?) 중 하나였다.

그가 단박에 청운을 알아보고 소리를 친 것이다.

석가명이 그들에게 일자리를 준 모양이었다.

그들이 성실하게 사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청운은 그때 생각이 나서 입가에 한 줄기 미소를 머금은 채 가볍게 예를 갖추고는 석가장 안으로 들어갔다.

청운이 채 몇 걸음 들어서지도 않았을 때, 먼발치에서 석가명과 가영이 청운을 향해 잰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석가명과 가영이 청운의 삼 장 가까이 다가와서는 공손하게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췄다.

“무위검 강 대협을 뵙습니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오라버님을 뵙습니다.”

청운도 깍듯하게 포권을 취하며 답례를 했다.

“석 공자님께서도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가영이도 이제 아가씨가 다 됐구나. 그간 잘 지냈느냐.”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가영이는 청운의 품에 거의 달려들다시피 안겨 왔다.

청운은 가영이의 등을 몇 번 토닥여 주고는 살짝 떼어 냈다.

예전처럼 가영이를 함부로 안아 올리기에는 조금 부담이 되었다.

청운은 이제는 어느 정도 아가씨 대접을 해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청운의 그런 태도에 가영이는 조금 삐쳤는지 입을 조금 샐쭉거렸다.

청운이 가영에게 성도에서 산 선물을 주면서 세월이 참 유수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월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석가명은 아버님이 기다리고 계신다면서 청운을 대전 뒤에 있는 장주 석호원의 집무실로 바로 안내했다.

석 장주가 월동문 앞에까지 나와 청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운이 들어서자 석 장주는 포권을 취하며 청운을 맞이했다.

“강 대협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청운도 깍듯하게 포권을 취하며 예를 표했다.

“장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별래무양하셨는지요.”

청운과 장주와 석가명이 탁자에 앉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시비가 서둘러 차를 따랐다.

석 장주가 헛기침을 하자, 그걸 신호로 시비가 뒷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시비가 나가자마자 석 장주가 말했다.

“오시는 길에 별고는 없었는지요. 갈수록 강호의 상황이 험악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소식은 듣고 있습니다. 대협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워낙에 녹록치 않은 일이라 걱정이 앞섭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청운이 곧바로 석 장주의 말을 받았다.

“장주님의 염려 덕분으로 저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석가장엔 별일이 없는지요. 제갈신의께서도 잘 계시는지요.”

석 장주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청운의 말을 받았다.

“무가武家가 아닌 저희 같은 장사치에게 무슨 큰일이 있겠습니까. 큰일이라고 해봐야 금전적으로 손해를 좀 보는 정도이지요. 제갈신의께서도 건강하게 잘 계십니다.”

“…….”

“강 대협, 꼭 긴한 볼일이 아니더라도 지나는 길에 저희 석가장을 한 번씩 들려주시지요. 오늘 이렇게 오신 김에 푹 쉬었다 가시지요.”

청운이 곧장 석 장주의 말을 받았다.

“장주님,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장주님의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저희 문도인 현성이를 치료해 주신 제갈신의께 인사차 들렀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