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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129화 (129/184)

129화 붉은빛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이 땅에서 잠시 살다가 죽고 나면 초라한 야산의 세 평짜리 무덤으로나 기억될 인간의 오장육부에 얼마나 많은 욕망과 탐욕이 들끓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그 욕망과 탐욕이 얼마나 세상을 더 나쁜 상태로 만드는지 그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청운은 구중심처라는 황궁에 들어앉아 권력과 황금에 중독되어 더 많은 쾌락과 환락을 추구하는 지금의 권력 집단이나, 그걸 빼앗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하는 天의 무리나 둘 다 진정한 인간적 삶을 황폐화시키고 피폐화시킨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역사적으로 그들은 서로를 반드시 척결해야 할 악으로 상정하고 대립을 거듭해 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축척한 힘의 경중에 따라 진자운동을 하듯이 서로 권력을 교환해 왔다.

서로 자신들만이 정의라고 주장하면서.

하지만 그들의 권력투쟁에 가장 극심한 피해를 본 사람은 권력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힘없는 양민들이었다.

그들의 본질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대대손손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발명해 낸 가짜 정의와 명분에 속아왔다.

또한 그들의 헛된 가치를 지켜주기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 바치며 그들 무리를 추종하는 자들의 착각과 과대망상이 더 웃기고 서글픈 것이었다.

남궁혁위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이상이 자칫하면 타인의 지옥임 될 수 있다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 만든 자족적인 환상과 자기기만에 사로잡힌 그들은 자신의 돼먹지 않은 헛된 목적 때문에 자신이 타인에게 저지르는 악행에 대한 최소한의 자각도 성찰도 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도 명예도 황금도 아니다.

인간다운 삶의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 평범한 삶의 과정을 보장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정의다.

인간의 삶에서 그 나머지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수천 수백 억겁을 생성과 소멸을 되풀이하는 우주의 질서가 하찮은 먼지인 인간에게 가르치는 것 또한 바로 그것 아닌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최선을 다하는 ‘무위’ 또한 바로 그것에 다름 아니다.

청운은 이 우주에서 인간이 가장 자기 모순적 존재 같다고 생각했다.

* *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깊은 상념에 빠져 있던 청운이 문뜩 이상한 느낌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청운은 급하게 극황지감술을 운기했다.

땅과 하늘 모두에서 이상한 기감이 감지되었다.

땅에는 무수한 뱀이 쉭쉭거리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하늘에는 헤아릴 수조차 없는 주먹만 한 곤충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괴사도 이런 괴사가 없었다.

청운은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 혼잣말을 웅얼거렸다.

“사사천의 넷째 귀수귀마鬼獸鬼魔 여산웅!”

그는 남만의 귀수궁鬼獸宮 출신으로 세상의 모든 뱀과 독물들을 부린다고 강호에 소문이 나 있었다.

특히 그가 부리는 귀혈독봉은 강호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귀혈독봉는 어른의 주먹 크기만 한 커다란 벌이다.

귀혈독봉이 무서운 것은 그 크기가 아니라 흉폭성과 독에 있었다.

일반 벌이 꿀을 먹여 양봉을 하는 반면에, 귀혈독봉은 짐승의 피에 남만에서 채취한 온갖 독물을 타서 길들였기에 피 냄새만 맡으면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환장을 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귀혈독봉은 몸이 강철처럼 단단해서 어지간한 도검으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특히 귀혈독봉의 독이 워낙 강렬해서 그 침에 쏘인 사람은 어지간한 내공의 고수라도 채 일각도 버티지 못하고 절명한다고 소문이 파다했다.

청운은 귀수귀마가 부리는 독물들이 전혀 두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또 한바탕 법석을 떨어야 한다는 생각에 잔뜩 짜증이 났다.

희미한 피리소리와 함께 땅에서는 온갖 종류의 뱀이 수―익―쉭 소리를 내며 몰려오고, 하늘에서는 부―우―부―우 하는 날갯짓 소리와 동시에 귀혈독봉이 날아오고 있었다.

땅은 몰려드는 뱀으로 인해 거의 바닥이 보이지 않았고, 하늘은 귀혈독봉으로 인해 때 아닌 대낮에 먹구름이 낀 듯 어둑어둑했다.

뱀과 귀혈독봉이 십여 장 정도 가까이 다가왔을 때 청운은 무영검을 빼들며 혼잣말을 하듯 웅얼거렸다.

“사사천에는 별 잡스러운 인간들이 다 모여 있구나.”

청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신강기로 신형을 보호하고는 삼공적, 아니 벽라적을 품에서 꺼내 입에 물었다.

뱀과 귀혈독봉이 삼 장 안으로 들어온 순간 벽라적을 힘껏 불었다.

뱀들이 돌처럼 굳어지고 귀혈독봉이 하늘에서 우박처럼 떨어졌다.

청운은 단 한 번의 칼질로 움직이지 못하는 뱀과 독봉들을 짓이겨 버렸다.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죽이고 죽여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뱀과 벌이 이렇게 많은지 청운은 난생처음으로 실감했다.

뱀과 귀혈독봉이 전혀 무섭지는 않았으나, 징그럽고 지긋지긋했다.

청운은 뱀과 독봉을 부리는 자의 기척을 감지하기 위해 극황지감술을 최대한 운기했다.

방원 십여 리 안에서는 사람이 내는 어떤 기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청운은 점차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기력이 딸려 결국에는 자신이 당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가슴 한쪽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적과의 싸움에서 이런 불안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청운은 그런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 더욱 세차게 뱀과 귀혈독봉을 도륙했다.

하지만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뱀들과 독봉이 끝없이 몰려들었다.

마치 방금 자신이 죽인 뱀과 독봉이 곧바로 되살아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여전히 땅에는 쉬―익―쉭 거리는 뱀들로 가득했고 하늘에는 독봉이 먹구름처럼 새까맸다.

뱀과 독봉을 쉬지 않고 죽이면서도 한 가지 의문이 청운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사사천邪邪天의 구사九邪들이 자신의 행적을 이렇게나 정확히 꿰고 있나 하는 점이었다.

화산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청운은 그 사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청운은 그 의문을 물어보기라도 하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까만 귀혈독봉 사이로 대여섯 마리의 매가 하늘을 선회하는 것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청운은 바로 저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모두 여섯 마리였다.

청운은 오십여 장 높이에서 선회하는 매를 노려보면서 허공섭물로 주변에 있는 엄지손가락 정도 크기의 돌 여섯 개를 끌어 올렸다.

한 손에 세 개씩 손가락 사이에 꼈다.

잠시 후, 매가 자신의 머리 위를 선회하는 순간!

청운은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던 돌을 전륜지를 전개하는 수법으로 힘껏 허공으로 쏘았다.

까―까―까―끼―르―륵.

소리와 함께 매들이 떨어뜨린 돌처럼 하늘에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바로 그 순간 뱀과 독봉을 조종하는 피리 소리가 더욱 맹렬해졌다.

자신의 눈인 매를 잃은 귀수귀마가 끝장을 볼 심산인 것 같았다.

뱀과 독봉들이 아까와는 전혀 다른 기세로 몰려들었다.

청운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공력이 엄청나게 손실되더라도 단천파혼을 전개하기로 청운은 결심했다.

다음을 생각할 처지가 아니었다.

다음의 적은 다음에 해결하기로 하고, 청운은 무영검을 검집에 납입하고는 재빨리 품속에서 무문적, 아니 신단적을 꺼내 들었다.

신단적을 입에 대자마자 청운은 단천일보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단천파혼의 음파가 미치는 범위 안에 있던 뱀들과 귀혈독봉이 퍼―퍼―퍼―퍼―퍽 하는 소음과 함께 밟힌 계란이 터지듯 몸이 터져 죽었다.

단천일보의 연주를 끝낸 청운이 하늘과 땅을 한차례 휙 둘러보았다.

방원 오십여 장 안에 뱀과 귀혈독봉의 시체가 가을날 낙엽처럼 새까맸다.

청운이 숨을 쉴 때마다 역겨운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토할 것 같았다.

이제야 모든 것이 끝이 났는가 싶어 막 신단적을 품속에 갈무리하려고 했을 때 삼십여 장 밖에서 또다시 뱀과 독봉들이 새까맣게 자신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당혹스럽고 난감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긴장을 한 탓인지 청운은 갑자기 목이 말랐다.

그 순간 갑자기 번뜩하는 하나의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청운은 환호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 물이다, 물.’

물속까지는 저 징그러운 뱀과 귀혈독봉들이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마침 백여 장 오른쪽에 계곡이 있었지.’

청운은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귀수귀마를 죽여야 이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나겠지만 지금은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청운은 신단적을 입에 물고 단천파혼을 연주하면서 귀수귀마가 눈치 채지 못하게 계곡 쪽으로 신형을 움직였다.

계곡의 높이는 이십여 장쯤 되었다.

계곡 삼십여 장 정도에 이르렀을 때 청운은 묘묘보허를 최대한 전개해 단숨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은 차가웠지만 한서불침지체인 청운에게는 오히려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상대로 뱀과 귀혈독봉은 물속까지는 따라오지는 못했다.

청운은 귀수하백에게서 배운 수공을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독봉들은 물 위에서만 웅웅거렸다.

청운은 최대한의 속도로 하류로 내려갔다.

두 식경 정도 내려가자 계곡을 완전히 벗어난 것 같았다.

청운이 물 위로 머리를 내밀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계곡이 아니라 강이었다.

그 지긋지긋한 뱀도 독봉도 없었다.

청운은 신형을 솟구쳐 올랐다.

바로 그 순간, 번쩍하는 세 줄기 붉은빛이 허공에 떠 있는 청운을 향해 쏘아져 왔다.

청운은 다급한 헛숨을 들이마시며 허공으로 한 번 더 솟구쳤다.

붉은빛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청운의 신형을 따라왔다.

맞았다.

그것은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손가락처럼 가느다란 살아 있는 붉은 뱀이었다.

등에는 두 개의 작은 날개까지 달려 있어 허공을 마음대로 날아다녔다.

분기탱천한 청운이 단번에 토막을 내버릴 심산으로 무영검을 휘둘렀다.

그 붉은 뱀은 무영검의 검기를 피하기까지 했다.

청운은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해 맥이 탁 풀렸다.

“으―흐―흐―흐.”

바로 그 순간 음산한 괴소와 함께 커다란 바위 뒤에서 괴인 하나가 나타났다.

기괴했다.

키는 난쟁이만 했고, 머리카락이 눈까지 가리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몸에는 뱀 가죽으로 만든 같은 시커먼 옷을 걸치고 있었다.

허리춤에 여러 개의 가죽 주머니까지 달고 있었다.

더 기괴한 것은 양쪽 어깨에서 가슴 부위에 흑백의 뱀 두 마리를 두르고 있었다.

사이하게 번들거리는 눈과 쉭, 쉭 거리는 붉은 혀가 볼수록 징그럽고 혐오스러웠다.

괴인이 음침한 괴소를 입가에 흘리며 말했다.

“나는 사사천의 구사 중 넷째 귀수귀마 여산웅이다. 네 놈의 무위는 정말 경탄할 만한 것이지만 나의 귀여운 비홍사飛紅巳가 네 놈의 몸에 바람구멍을 낼 것이다. 여섯째를 죽이고 둘째 형님과 여덟째를 반병신으로 만든 혈채를 내가 모두 받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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