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16화 (116/184)

116화 천신天神 같은 신위神威를 내뿜으며.

그 순간, 청운의 입에서 주변의 공기를 파열시키는 듯한 일성이 토해졌다.

“며—으—을—화—아—안.”

콰—콰—콰—쾅—콰—쾅.

지축을 뒤흔드는 엄청난 폭음이 장내에 연이어 울려 퍼졌다.

청운의 검기에 격타당한 금강마불들이 사방으로 십여 장이나 날아가 이곳저곳에 발에 차인 돌처럼 처박혔다.

그 충돌의 여파로 가까이 있던 대전의 지붕이 반쯤 날아가고, 반경 이십여 장 안에 있던 포석들이 모조리 가루가 되어 허공에서 회오리쳤다.

청운은 몸을 돌려 십여 장 너머에 있는 하 국주를 노려보았다.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입가에 한 줄기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청운은 아차! 싶었다.

청운이 재빠르게 장내를 둘러보자 십여 장 이상이나 날아가 여기저기에 처박혔던 금강마불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오뚜기처럼 벌떡벌떡 일어나 다시 청운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잠시 후, 아까와 마찬가지로 금강마불들이 청운의 사위를 포위했다.

금강마불의 피부는 검기에 난자당해 어느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멸환이 금강마불에 가한 충격은 그 정도에 그친 듯했다.

내부는 전혀 손상되지 않은 것 같았다.

청운은 너무 어이가 없어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기어코 ‘멸환겁’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은 무영검을 다시 한 번 굳게 고쳐 잡았다.

금강마불들은 청운의 모진 결심과는 아랑곳없이 오직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청운을 짓이기기 위해 하던 짓을 계속했다.

청운의 입에서 최후의 결심 같은 단호하고도 묵직한 일갈이 장내의 대기를 순간적으로 당겼다 놨다.

“며—으—을—화—아—안—거—어—업.”

청운의 양쪽 팔목에서 번쩍하며 발출된 투명한 자황색의 번갯불이 무영검을 통과하자마자 수천 수백 개의 둥근 환이 되어 금강마불의 전신을 관통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보고도 믿지 못할 정도로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금강마불의 전신은 수천 수백 개의 투명한 자황색의 환에 격중되었다.

마치 작두로 종이를 썰어버린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천 수백 조각으로 얇게 썰어져 종잇장처럼 바람에 날아갔다.

멸환겁의 여파로 대전은 주춧돌만 남기고 폭삭 허물어지고 말았다.

반경 사십여 장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가루가 되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멀리서 그 광경을 목도한 장한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던 무기까지 내팽개치고 줄행랑치기에 바빴다.

누구에게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 가장 소중하기에…….

멸환과 멸환겁을 연속으로 전개한 청운은 기력이 달려 잠시 비틀거렸다.

바로 그 순간, 하 국주가 그 틈새를 파고들며 자신의 독문절기인 운형비권으로 청운을 공격했다.

그의 권에서 피어난 노도와 같은 운해가 청운의 전신 요혈을 휩쓸어 왔다.

다급한 청운은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수치로 여기는 뇌려타곤의 수법으로 간신히 그의 권세를 벗어난 후 벌떡 일어났다.

청운은 천하를 삼등분하고 있는 거대한 표국을 이끄는 국주가 그 정도로 야비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청운이 무영검을 꼬나쥐고 하 국주를 노려보며 성큼성큼 다가갔다.

회심의 일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하 국주는 만면에 실망한 표정을 가득 내비치며 뒤로 주춤주춤 몇 걸음 물러났다.

위기를 모면한 청운이 천신天神 같은 신위神威를 내뿜으며 다가서자 하 국주는 사시나무 떨듯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다 어떤 사생결단의 단호한 결심을 했는지 하 국주는 자신의 독문절기인 운형비권으로 청운을 거세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채 이십여 초가 지나지 않아 푸—욱하는 소리와 동시에 무영검이 그의 단전에 박혔다.

청운이 무영검을 뽑아내자 고목이 쓰러지듯 하 국주는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청운이 하 국주의 목젖을 검 끝으로 겨누며 분노에 찬 일갈을 내질렀다.

“대체 네놈이 중원 각지에서 빼돌린 소녀들을 어디로 보내려고 그따위 짐승 같은 짓거리를 벌인 것이냐. 황궁의 누구에게 보낸 것이냐. 귀비냐. 태공공이냐.”

청운은 자신이 이미 어느 정도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어조로 하 국주를 바짝 다그쳤다.

“자신은 보내기만 할 뿐 어느 선인지는 모른다.”

그러자 하 국주는 웅얼거리며 발뺌을 했다.

청운의 그런 어투는 하 국주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의도도 가지고 있었다.

청운은 어느 정도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고 생각을 하면서 하 국주의 기를 완전히 꺾어 놓기 위해 검 끝을 그의 목젖에 바짝 갖다 대며 겁박했다.

“지금 당장 중원표국에 억류하고 있는 아이들을 내놓아라. 네놈의 목이 두부가 잘리듯 두 동강 나기 전에…….”

고통에 겨워 땅바닥을 나뒹굴던 하 국주가 연신 신음을 내뱉으며 수호대주에게 턱짓을 보냈다.

그러자 수호대주가 서너 명의 부하들과 함께 어디론가 급히 달려갔다.

그 모습을 흘깃 쳐다본 청운이 다시 고개를 돌려 하 국주를 노려보며 조금 전에 하던 말을 계속 이었다.

“표국은 장사만 잘하면 될 일이지, 무슨 대단한 영화를 보겠다고 사마외도의 무리와 결탁을 하는 것도 모자라 나라에서 엄격히 금하는 인신매매에 밀수까지 저지른단 말이오.”

“윽…….”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그 불법과 탈법을 감추기 위해 살수를 키우고 그것도 모자라 금동마불 같은 마물까지 제련한단 말이오. 내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내고 가겠지만 하남과 하북 그리고 산서와 산동표국의 멸문과 관련된 증거를 가지고 다시 올 것이오.”

청운은 말을 이어 갔다.

“나는 중원표국과 대륙표국 그리고 사해표국이 하남표국을 포함한 다른 표국의 멸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확신하고 있소. 당신들이 아무리 부인해도 내가 여태껏 수집한 모든 정황과 증거가 당신들이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소.”

“…….”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나는 틀림없이 다시 당신에게 올 것이오. 그날이 중원표국이 강호에서 간판을 내리는 날이 될 것이오. 내 장담하…….”

청운이 막 자신의 말을 끝맺을 때쯤 먼발치에서 수호대주와 함께 걸어오는 십여 명의 어린 소녀들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후 그 무리가 청운 앞에 당도했다.

소녀들은 모두 열세 명이었다.

청운 앞에 도착한 어린 소녀들이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벌벌 떨고 있는 초췌한 소녀들을 보자 청운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분기를 참지 못한 청운이 땅바닥에 널브러진 채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하 국주의 옆구리를 냅다 걷어 차버렸다.

청운의 발길질에 걷어차인 하 국주가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신음을 내지르며 땅바닥을 십여 바퀴를 구른 후, 대나무 회초리에 맞은 개구리처럼 쭉 뻗어버렸다.

힐끔 그 모습을 한차례 바라본 청운이 눈길을 돌려 수호대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저 소녀들 모두에게 은자 삼백 냥씩을 내주시오. 이백오십 냥은 전표로, 나머지 오십 냥은 은자로 내오시오. 저 소녀들을 강제로 억류한 대가요.”

청운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호대주와 그의 수하들이 어디론가 급히 달려갔다.

일각쯤 지나자 그들이 양손에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를 가득 들고 나타났다.

청운이 턱짓을 하자 수호대원 중 하나가 소녀들에게 주머니 하나씩을 나누어 주었다.

청운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중원표국을 한차례 쓱 둘러보았다.

청운의 눈빛은 누군가 엉뚱한 짓을 하면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무서운 암시를 주는 것 같았다.

장내에 있던 장한들은 청운의 눈길이 자신의 몸에 닿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그제야 청운이 소녀들을 전부 데리고 중원표국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청운은 소녀들을 데리고 곧바로 하오문 총단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소녀들을 낙양 관청에 인계하려고 했으나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어서 하오문에서 자신이 당분간 보호하기로 했다.

상단의 규모나 영향력으로 봐서 틀림없이 중원표국은 낙양 관청의 관리들 거의 대부분을 뇌물로 철저하게 관리를 해왔을 것이다.

청운은 그걸 뻔히 알면서 관리들의 손에 소녀들을 인계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진배없다고 생각했다.

관리들이란 원래 그런 작자들이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일이 발생하는 것 그 자체를 귀찮게 여긴다.

더군다나 자신들이 처리해야 할 일의 종류가 까다롭고 힘들수록 그들은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작자들이다.

그래서 아무리 엄중하고 심각한 일이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중원표국에 연통을 넣을 것이고, 중원표국은 얼씨구나 하고 몇 푼의 돈을 상납하고 소녀들을 다시 되돌려 받을 것이다.

청운은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물론 낙양의 관청에 소수의 정의롭고 청렴한 관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청운은 그 소수의 공정성과 정의감을 믿고 소녀들을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너무 안일하고 위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청운은 소녀들의 처리를 두고 여러 가지 경우를 고려했다.

그런 연유로 청운은 소녀들이 안정을 찾으면 중원에 산재해 있는 하오문 분타와 긴밀히 연계해 고향으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무엇보다도 소녀들의 품에 거금이 있는 상태에서 산을 넘다가 녹림도를 만나거나 혹은 파락호들이 들러붙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도로아마타불이 되고 말기 때문이었다.

청운은 어느 하나도 쉬운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 * *

번듯했다.

보기가 좋았다.

척 보기에도 총단 같았다.

자신이 흑수방에서 받은 돈으로 지은 건물이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뿌듯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렸다.

뿌듯한 이유는 충분한 보상을 받아냈기 때문이었고 가슴이 아린 이유는 그 사건 때문에 희생된 문도들 때문이었다.

청운이 대문 가까이 다가가자 문을 지키던 문도 하나가 청운을 알아보고는 큰 소리를 지르며 포권을 취했다.

“호법사자님을 뵙습니다!”

그 외침과 동시에 안에서 대문 쪽으로 우르르 달려 나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청운이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이십여 명이 넘는 문도들이 일제히 포권을 취하며 총단이 떠나갈 정도의 큰 소리로 인사했다.

“호법사자님을 뵙습니다!”

“사자님을 뵙습니다!

곧이어 외당주 방천호와 총사 하여빈, 문주 서소지도 모습을 나타냈다.

모두들 반갑게 청운을 맞이했다.

청운도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일일이 인사에 답을 했다.

세수가 오십이 훨씬 넘었음에도 문주 서소지의 자태는 언제 봐도 우아하고 단정했다.

문주 서소지 옆에는 그녀와 상당히 닮은 이십 대 중반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서 있었다.

연분홍 경장을 입고 삼단으로 곱게 땋은 머리에 붉은 댕기까지 매고 있었다.

얼굴은 분명 처음 보는데 그녀가 풍기는 기감과 분위기는 왠지 익숙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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