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저 저주의 마물이 중원표국에 있었다니…….
하 국주가 수호대주에게 턱짓을 하며 툭 내뱉듯이 한마디 했다.
“그들의 잠을 깨워라.”
바로 그때 핏빛의 적포를 입은 깡마른 자가 하 국주를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자가 흰자위뿐인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국주, 내가 저놈을 먼저 상대할 테니 잠시만 참아 주시오. 나에게 방책이 있소. 나를 믿고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눈에 불안의 기색을 가득 담은 하 국주가 마지못해 그에게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그자가 예의 그 번들거리는 눈으로 청운을 잔뜩 노려보면서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의 무위는 정말 경악할 정도로 가공스럽구나. 나는 강호에 나온 후 누군가의 무위에 경탄한 것은 딱 세 번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현 마련주 제혼마검과 팔대천왕 중 첫째인 수라마군이고, 세 번째는 내 주군인 사사천의 천주인 사마흔이다.”
“…….”
“그리고 이제 그 경탄의 목록에 네놈을 네 번째로 추가해야만 할 것 같구나. 나이까지 감안한다면 네가 첫 번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대단하구나. 그렇다고 네놈이 오늘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는 없다.”
그가 말을 이어 갔다.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 것이다. 나는 사사천의 구사九邪 중 여섯째 서우천이다.”
청운이 무섭도록 무감한 태도로 말했다.
“당신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구료. 강호에서 구음신마의 구음벽골조 아래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껏 당신이 상대한 사람과 나는 많이 다를 것이오. 어디 당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봅시다. 언제든지 시작하시오.”
구음신마는 청운의 무시하는 태도에 분기를 참지 못하고 청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그가 공력을 운기하기 시작하자, 그의 검붉은 손톱이 한 척이나 길어졌다.
청운은 강호에는 참 기괴한 무공도 다 있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구음신마가 청운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자, 그의 뒤에서 가만히 시립하고 있던 네 명의 사내들도 즉시 자신들의 무기를 빼 들고 공격에 가담했다.
구음신마가 조공을 펼칠 때마다 그의 손톱에서는 역한 비린내가 났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구음신마의 손톱은 각각이 하나의 검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열 개의 검이 동시에 공격을 하는 형국 같았다.
어느 곳을 어느 순간 어느 방향에서 공격해 올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의 조공이 맹렬해질수록 역한 비린내도 더 짙어졌다.
구음신마의 한 척이나 되는 손톱은 날카로운 검이면서 지독한 독이었다.
무영검이 그의 손톱과 부닥칠 때마다 청운은 생고무를 때리는 느낌을 받았다.
손톱의 탄력에 자칫하면 검을 놓칠 뻔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손톱에는 얼마나 지독한 맹독이 묻어 있는지 조공에 스친 청운의 옷자락이 치—이—익, 치—이—익 소리를 내면서 타들어 갔다.
구음신마는 자신의 손톱과 손톱에 발린 맹독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듯했다.
구음신마뿐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무기를 든 그의 수하들의 공격도 만만찮았다.
이래저래 혼란이 가중되었다.
청운은 하 국주가 다음에 또 무슨 악독한 수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음신마와의 싸움을 최대한 빨리 끝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청운은 하 국주의 음흉한 능구렁이 같은 성정으로 보아 틀림없이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최후의 악독한 수단을 준비해 놓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청운은 회의 초식으로 검막을 형성해 구음신마의 조공과 독을 철저히 방어하면서 멸환을 전개했다.
청운의 입에서 장내를 쩌렁쩌렁 울리는 일갈이 터져 나왔다.
“며—으—을—화—아—안.”
청운의 외침과 동시에 무영검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온 투명한 자황색의 강기에 스친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과 사물들이 파괴되고 분쇄되었다.
“악!”
“아—악—악.”
“으—악, 악, 악, 악.”
듣는 사람의 신경을 끊어 내고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여섯 마디의 단말마가 끝나자 언제 이곳에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냐는 듯 돌연 장내는 고요한 적막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 펼쳐진 광경은 바로 지옥 그 자체였다.
구음신마의 수하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통 네 개가 갑자기 자신에게서 사라져 버린 몸통을 찾으려는 듯이 사방으로 나뒹굴고 있었고.
구음신마는 왼팔이 어깨부터 잘려져 나갔고 오른쪽 다리는 허벅지 부근에서 절단된 상태로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구음신마의 모습은 도살당하다 간신히 도망친 황소의 몰골이었다.
숨을 헐떡거릴 때마다 입에서 울컥울컥 선지피를 토해 내고 있었다.
그러고도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는 그 와중에도 청운을 노려보며 한마디 했다.
“강호에 이런 검법이 존재하고 있었다니. 정말로 무섭도록 잔인한 검이로구나. 지옥의 나찰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나이에 벌써 만독불침이란 말인가. 나의 무흔시독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다니, 이건 내가 직접 당하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나.”
“…….”
“천주가 이 모든 걸 알아야 하는데. 그래야 내 복수나마 해줄 수 있을 텐데.”
구음신마는 간신히 흘리듯 내뱉은 그 몇 마디 신음 같은 말을 끝으로 절명했다.
청운이 천천히 몸을 돌려 무감한 눈빛으로 하 국주를 쳐다봤다.
청운의 표정은 아직도 더 준비된 수가 있느냐고 하 국주에게 묻는 듯했다.
청운이 하 국주를 향해 한 발짝 내디디며 무심한 어투로 입을 뗐다.
“더 준비한 수가 있으면 즉시 시작하시오. 아니면 내 요구를 즉각 들어주든지. 지금 당장 양자택일하시오.”
청운의 단호한 겁박에 양 국주가 수호대주를 돌아보며 자신의 결정을 던지듯 말했다.
“그들의 잠을 깨워라.”
수호대주가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오른손을 들어 뒤에 있는 수호대원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이십여 명의 수호대원들이 우측 담장 아래에 있는 커다란 석탑을 향해 우르르 달려갔다.
석탑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석탑을 빙 둘러 박혀 있던 청동으로 된 신주神柱를 뽑아 내기 시작했다.
어른 몸통만 한 신주神柱의 크기는 거의 일 장에 달했다.
신주神柱를 다 뽑아 낸 대원들의 손에는 옥으로 만든 정병淨甁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대원들이 거대한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끼—익—끼—이—익 하는 듣기 거북한 쇳소리가 석탑에서 들려왔다.
잠시 후 석탑의 철문이 활짝 열리더니 온몸에 금칠을 한 것 같은 열두 명의 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키는 거의 칠 척에 달했고, 온몸이 울퉁불퉁한 근육질로 탱탱했다.
그들이 걸어오는 모습은 마치 금불상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청운이 신음을 내뱉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설마, 소뢰음사의 금강마불金剛魔佛! 저 저주의 마물이 중원표국에 있었다니…….”
청운의 놀라는 표정을 바라보던 하 국주가 돌연 광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황금은 귀신도 부릴 수 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나는 황금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 네놈이 저 금강마불의 손아래에서도 살아남는다면 군말 없이 네놈의 요구를 들어주마.”
세상에 금강마불이라니!
그것도 중원의 상계를 좌지우지하는 상단 중의 상단에서 저런 마물을 숨겨 두고 있었다니!
금강마불은 다섯 살 이전의 신체 건강한 아이들에게 격체전력을 통해 일 갑자의 내공을 불어넣은 후, 온갖 약물에 담가 전신을 금강불괴지신金剛不壞之身처럼 단단하게 제련한 마물이다.
심령을 제압하는 침과 주술로 이지를 상실하게 해서 마성魔性을 깃들게 한 후 특수 배합한 약물로 가득 채워진 관속에서 평생 잠을 재워 그들의 선천적 잠력을 최대치로 키운 것이 바로 금강마불이다.
계속 잠을 재우는 이유는 혹시 다른 일에 신경이 쏠려 잠력이 조금이라도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금강마불은 일생에 딱 한 번 잠에서 깨어나 모든 잠력을 쏟아붓고는 곧바로 죽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금강마불의 잠을 깨우는 방법은 특수 제조한 약물을 입속에 붓고 백회혈에 박힌 심령을 제압하는 침을 뽑으면 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소뢰음사가 사찰의 존폐가 걸린 절체절명의 겁난을 대비해 비밀리에 금강마불을 제련하고 있다는 소문이 강호에 은밀하게 퍼져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여태껏 실제로 금강마불의 실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금강마불은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마물이다.
청운은 무고한 한 생명이 금강마불로 만들어지는 동안 그들이 당했을 잔혹한 행위를 생각하다가 순간적으로 기혈이 뒤얽힐 뻔했다.
그리고 그런 잔인무도한 행위를 저지른 자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목적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인간을 인간이 아닌 도구로 만드는 인간들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분기가 치밀어 올랐다.
물론 이곳에 있는 자들 모두가 금강마불을 만드는데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청운은 그런 사실을 알고도 동조하거나 묵인한 행위 또한 천인공노할 죄라고 생각했다.
단 한 번 태어나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의 삶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만드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청운은 저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무영검을 다시 한 번 힘주어 그러쥐고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금강마불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청운은 그들의 삶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이미 마물이 된 이상 강호에 끼칠 해악을 생각해서라도 모두 제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청운이 오 장 가까이 다가가자 금강마불이 청운을 에워싸더니 권과 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청운은 쾌—타—절—변—회의 초식을 연환해 맞받아쳤다.
그들과 몇 초식을 교환한 청운은 화들짝 놀랐다.
마치 쇳덩이를 치는 느낌이었다.
그들의 권과 장에서 발출된 권력과 장력에 깃든 힘이 어마어마했다.
호신강기로 전신을 보호하고 있었음에도 청운의 옷이 걸레처럼 찢어발겨지고 내기가 진탕되는 것 같았다.
채 이십여 초식도 교환하지 않아 금감마불의 세찬 권풍과 장풍의 여파에 청운의 옷이 찢어져 맨가슴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그들의 권풍과 장풍이 몸을 스칠 때마다 살이 떨어져 나가는 둔중한 통증이 느껴졌다.
청운은 공력을 십 성 정도 가까이 끌어 올리고는 쾌—타—절—변—회—접—파—척을 연환해 금강마불을 연타했다.
마물은 마물이었다.
무영검에서 발출된 가공할 검기에 격타당한 금강마불들은 주춤주춤 뒤로 몇 발 짝 물러났다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청운을 향해 돌진해 왔다.
청운은 기어코 ‘멸환’까지 펼칠 수밖에 없는가 하고 난감해했다.
청운은 이 소모적인 싸움을 끝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극한까지 끌어올린 내공을 무영검에 주입했다.
무영검이 청운의 의도를 알겠다는 듯이 돌연 우—우—웅 하며 요동을 치며 가공할 검명을 토해 냈다.
검명이 순간적으로 주변의 대기를 움켜쥐었다 풀어주는 것 같았다.
무영검에서 뻗어 나온 수천수백 가닥의 투명한 자황색의 검기가 삼 장 가까이나 일렁거렸다.
청운의 놀라운 무위를 눈앞에서 빤히 보고도 금강마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무심한 얼굴을 한 채 권과 장을 휘두르며 청운을 짓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