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제발 좀 그렇게 살지 맙시다.
땅바닥에 쓰러진 여인을 부축하던 손길을 거둔 청운이 호위를 향해 돌아보며 높낮이가 없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안에 장주가 있소. 내가 필히 그를 좀 만나야겠소. 안내하시오.”
청운은 말을 마치자마자 성큼 중원전장 안으로 들어서려고 했다.
그 순간 호위라는 자가 자신의 검을 빼 들고 청운을 막아섰다.
그러자 뒤에 있던 사내들도 일제히 검을 빼 들고 청운을 포위하듯 에워 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에서 구경하던 행인들이 돌연 긴장한 표정을 얼굴에 가득 내비치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행인 중 하나가 청운을 향해 안타까운 듯이 소리를 질렀다.
“소협, 어서 빨리 사과하고 문 값을 물어주겠다고 하시오. 저자들은 이곳 전장 거리에서 사납고 흉악하기로 소문난 자들이오. 좋게 해결하고 빨리 소협이 가든 길을 가시오.”
청운은 그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는 듯한 태도로 자신을 에워싼 사내들을 한차례 쓱 둘러보고는 사내들을 겁박하듯이 말했다.
“어서 나를 양 장주에게 안내하시오. 내 말을 무시하고 무력으로 나를 어떻게 하려고 하다가 벌어지는 모든 불상사는 전적으로 당신이 책임져야 할 거요. 내 말을 흘려듣지 마시오.”
청운의 단호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사내들은 자신들의 숫자를 믿고 우르르 칼을 휘두르며 청운에게 달려들었다.
청운은 저들에게 단단히 본때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내들의 검이 막 청운의 신형에 닿으려는 찰나.
청운은 오른손과 왼손으로 회와 접 초식을 응용한 금나수법으로 사내들의 검을 모조리 빼앗아 대문 우측에 있는 고목에 박아 버렸다.
일순간 자신의 검을 빼앗긴 사내들이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청운은 자신의 신형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며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퍼—퍼—퍼—퍽.
둔탁한 소리와 동시에 칠팔 명의 사내들이 일제히 신음을 내지르며 자신의 턱주가리를 부여잡은 채 삼사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청운이 매서운 눈길로 땅바닥에 나뒹구는 사내들을 한차례 쓱 훑어보았다.
바로 그 순간, 그 광경을 눈앞에서 목도한 행인들이 환호성과 쾌재를 부르며 박수를 쳤다.
“속이 다 시원하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 것 같다.”
개중에는 대놓고 박장대소를 하는 구경꾼도 있었다.
“아침부터 대체 이게 무슨 소란인가.”
고함 소리와 함께 부서진 대문의 파편을 발길질로 걷어차며 세 명의 사내가 문턱을 넘어오는 것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나타나자 땅바닥에 나뒹굴던 사내들이 벌떡벌떡 일어나며 그들에게 예를 갖췄다.
“총관님를 뵙습니다. 총순찰님과 부순찰님을 뵙습니다.”
총관이라 불리는 자는 사십 대 중반 정도로 황의를 입고 염소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장내를 둘러보는 눈매가 매처럼 날카로웠다.
총관의 좌우에 시립한 흑의의 사내들은 삼십 대 중반 정도로 강인한 인상에 형형한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풍기는 기도가 제법 고수처럼 보였다.
상황을 말없이 살피던 총관이 호위라는 자에게 눈길을 고정하며 말했다.
“이게 대관절 무슨 난리인가. 장 호위 자네가 설명해 보게.”
장 호위라 불리는 자가 청운을 왼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예, 총관님. 저 여편네가 아침부터 문 앞에서 패악질을 부리길래 타이르고 있던 참인데, 저자가 난데없이 끼어들어 다짜고짜 저희를 개 패듯이 두들겨 팼습니다.”
총관이란 자가 청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소협은 도대체 누군데 남의 장사를 방해하는 것이오. 우리 중원전장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오. 파손된 기물과 애들 치료비를 물어내고 사죄를 하면 없던 일로 하겠소. 받아들이겠소.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하겠소.”
청운은 만면 가득 분노의 기색을 내비치며 총관이란 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그럴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으니 어디, 당신 마음대로 해보시오. 대신 그 결과는 전적으로 당신 책임이오.”
청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총순찰과 부순찰이란 자가 검을 빼 들고는 청운을 향해 위협을 가하듯이 다가왔다.
청운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하고 무심하게 그들을 쳐다봤다.
그때 다시 총관이 한마디 덧붙였다.
“소협, 마지막 기회요.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시오. 우리 전장의 총순찰과 부순찰은 이곳 낙양에서 소문난 고수외다. 그들이 출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소.”
청운은 그의 말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표정을 내비치며 줄곳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바로 그 순간 부순찰이란 자가 “이놈!”하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청운의 목을 노리며 사납게 검을 찔러왔다.
성정이 잔인한 자였다.
청운은 다짜고짜 살초부터 펼치는 저런 자를 적당히 대충 다루어서는 안 되겠다고 작정했다.
이참에 단단히 징치를 해서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여기는 버릇을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부순찰의 검 끝이 자신의 목젖에 닿기 바로 직전, 묘묘보허의 보법으로 그자의 검로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그자의 팔목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비틀어 버렸다.
우드드득—
소리와 동시에 그 자의 비명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팔목 관절과 어깨 관절이 통째로 부러진 부순찰은 왼손으로 어깨 부위를 매만지고는 연신 괴로운 신음을 내뱉으며 온몸으로 땅바닥을 쓸고 있었다.
그 모습을 응시하던 총관과 총순찰은 순식간에 얼굴색이 새파래졌다.
총관이 뒤로 두어 발짝 뒷걸음치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겁박하던 말투도 순식간에 존중하는 어투로 바뀌었다.
“대, 대협은 대, 대체 누굽니까. 존성대명이 어찌 됩니까.”
청운이 무심하게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강청운이요.”
총관과 총순찰이 잠시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입을 딱 벌리며 경악이 가득 묻어나는 표정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서, 설마, 무, 무위검 강청운 대협이십니까.”
청운은 아까와 똑같은 표정으로 무심하게 말했다.
“내가 대협인지 아닌지 그건 잘 모르겠고, 강호인들이 나를 무위검이라고 부르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오.”
총관과 총순찰이 돌연 청운에게 깍듯하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강 대협, 진작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미리 존성대명을 밝혀 주셨으면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
“다시 한 번 대협을 몰라보고 무례를 저지른 점 사과드립니다. 안으로 들어가셔서 말씀을 나누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청운이 총관을 노려보며 말했다.
총관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기색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청운이 눈빛에 힘을 빼며 말했다.
“상대가 대협이면 존중하고, 힘없는 사람이면 함부로 해도 되는 겁니까. 당신들의 그런 차별과 배척이 힘든 세상을 더 힘들게 하는지 왜 모르시오. 제발 좀 그렇게 살지 맙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인간 이상도 아니고 인간 이하도 아니오.”
청운의 말을 듣고 있던 총관이 흑웅이란 자에게 턱짓을 했다.
흑웅이 재빨리 전장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잠시 후, 그자가 곧바로 총총걸음으로 나오더니 총관에게 귓속말을 했다.
총관이 청운에게 아까보다 더 공손하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대협, 안으로 드시지요. 장주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자신의 말을 끝내자마자 총관은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려는 자세를 취했다.
청운이 총관을 불러 세우며 말했다.
“저 여인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들어가지 않겠소. 어떻게 할지 지금 즉시 결정하시오.”
총관이 오른손으로 자신의 턱을 만지며 잠시 고민을 하더니 청운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협,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 들어가시지요. 저를 따라오십시오.”
* * *
청운과 여인이 총관을 따라 전장 안으로 들어갔다.
총관은 청운과 여인을 전장의 뒤쪽에 있는 별관으로 안내했다.
여인에게는 별관 대청의 탁자에서 좀 기다리라고 하고는 청운을 별실로 안내했다.
별실 앞에서 총관이 안에 대고 말했다.
“장주님, 무위검 강 대협을 모시고 왔습니다.”
별실 안에서 묵직하고도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총관, 대협을 뫼시고 들어오시오.”
청운과 총관이 월동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금포를 입은 육십 대 초반의 노인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청운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요즘 강호를 진동시키고 있는 무위검 대협을 이렇게 뵙게 되어 크나큰 영광입니다. 저는 이 전장을 꾸려 나가고 있는 양수탁이라고 합니다. 자, 어서 이리로 좌정하시지요.”
양수탁이 청운에게 의자를 빼주며 청운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점창파의 속가제자로 들어갔으나 무공에 특별한 재능이 없어 간신히 사일검법을 육성 정도 성취했다고 강호에 알려져 있었다.
이류를 조금 넘어선 일류 정도의 무위를 지니고 있다고 세간에 소문은 사실인 것 같았다.
반면에 상재가 뛰어나 점창산에서 하산하자마자 곧바로 전장업에 뛰어들어 낙양에서 제법 괜찮은 전장을 일구었다.
청운과 총관이 자리에 앉자 양 장주가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이 차는 운남의 오지에서 딴 제법 귀한 것입니다. 향과 맛이 제법 그럴 듯합니다. 맛을 한 번 보시지요.”
청운이 담담한 표정으로 장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차도 좋지만 나는 차를 마시려고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으면 합니다.”
“네, 좋습니다.”
“대청에 있는 저 여인은 은자 열 냥을 빌리고 원금을 포함해 그 몇 배를 이미 갚았다고 했소. 그런데도 저 여인의 어린 딸까지 강제로 데려오다니, 아무리 염왕채라도 그렇지, 그게 정년 사람이 할 짓이오.”
“…….”
“그리고 엄연히 나라에서 정한 이자율이 있는데, 국법을 마음대로 어기면서 장사를 하면 안 되지요. 당장 저 여인의 딸을 당장 돌려주시오. 내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나도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없소.”
장주가 마시던 차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심란한 얼굴로 말했다.
“안 그래도 저 여인의 서류를 훑어봤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무슨 착오를 한 것 같습니다. 대협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만 노여움을 푸시지요.”
청운이 장주에게 여인의 서류를 한 번 보자고 했다.
장주의 안색이 갑자기 사색이 되더니 찻잔을 쥐고 있던 손까지 떨기 시작했다.
그 손 떨림 때문에 찻잔에 있던 찻물이 조금 탁자 위에 쏟아졌다.
청운은 순간적으로 뭔가가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청운은 검미를 잔뜩 일그러뜨리며 내친김에 장주를 한 번 더 윽박질렀다.
“장주가 정녕 내 제안을 거부한다면 나는 부득이 강호의 법칙으로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마 그럴 원하는 건 아니겠지요.”
양 장주의 얼굴색이 백납처럼 하얗게 변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은근슬쩍 타협책을 제시했다.
“강 대협,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아무 조건 없이 그 애를 내어드리겠습니다. 그것으로 이 상황을 종결지었으면 합니다. 서류와 장부는 우리 전장의 영업 비밀입니다. 제 입장도 좀 고려를 해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