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08화 (108/184)

108화 하기는 하는데 다른 방식으로 하세.

마련주 여우성이 잠시 갈등하는 빛을 얼굴에 내비쳤다.

잠시 후 그가 한 가닥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운을 뗐다.

“하기는 하는데 다른 방식으로 하세. 자네의 마지막 초식을 지금 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네. 이건 평생 칼밥을 먹고 살아온 무인의 강한 예감일세.”

청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하고는 어디론가 신형을 날렸다.

청운도 즉시 그의 뒤를 따랐다.

환제도 어느 정도 내상을 다스렸는지 급히 뒤따랐다.

마련주가 그 반경이 오십여 장이 훨씬 넘는 거대한 암봉 앞에 날아 내렸다.

청운과 환제도 동시에 날아 내렸다.

거대한 바위를 앞에 두고 제혼마검은 오른쪽에 서고 청운은 바위 왼쪽에 자리를 잡았다.

환제는 뒤로 십여 장이 나 물러나 뒤에서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네와 나 둘 다 동시에 저 바위를 향해 마지막 초식을 펼치는 것으로 오늘의 비무를 마무리 하세. 어떤가 내 생각이. 동의하는가.”

청운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제검마혼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받았다.

“아주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실제 대적처럼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제혼마감이 청운을 돌아보며 빙긋이 웃었다.

“내 제안에 선뜻 동의해 줘서 고맙네. 내가 숫자를 셋까지 세면 동시에 최후의 초식을 펼치도록 하세. 자, 그럼 시작하겠네. 하—나—두—울—세—엣.”

“제—혼—암—천.”

“멸—환—거—업.”

청운과 제혼마검의 입에서 동시에 거대한 암봉을 뒤흔드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청운의 팔목에서 번쩍하며 성운 같은 투명한 자황색의 거대한 둥근 환이 무영검을 거쳐 마치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우처럼 암봉을 스치고 지나갔다.

제혼마검의 검 끝에서는 수백 수천 가닥의 짙푸른 마기가 뇌전처럼 암봉을 직격했다.

특히 그의 검광 속에서는 짙푸른 검기보다 더 짙은 뾰족한 심 같은 뇌기가 번쩍번쩍했다.

그것은 마치 마기의 마기 같았다.

쩌—저—저—쩍—콰—콰—콰—콰—앙.

때아닌 야밤에 지진과 산사태가 난 것 같은 폭음과 굉음이 여옥산 전체를 뒤흔들며 진동시켰다.

거대한 암봉이 파괴되고 허물어지는 소리에 그 주변의 땅굴과 고목에서 안온한 밤을 보내던 짐승들과 산새들이 일제히 튀어나와 바람처럼 달아나거나 하늘로 날아올랐다.

굉음이 그치자 그들의 눈앞에 보고도 믿지 못할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제혼마검의 마기에 직격된 오른쪽의 암봉은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조금 전까지 암봉이 자리하고 있던 자리에는 바위 대신 짙은 어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에 무영검의 검기가 스치고 간 왼쪽의 암봉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대로 제자리에 있었다.

조금 전과 약간 다른 점은 있었다.

마치 누가 암봉을 횡으로 잘게 썰어서 수천 장의 종잇장을 곱게 제자리에 포개 놓은 것 같았다.

암봉은 예전과 똑같은 모습의 다른 상태로 존재했다.

왼쪽의 암봉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혼마검이 돌연 으—하—하—핫 하는 광소를 터뜨렸다.

곧바로 청운을 돌아보며 감탄의 말을 연이어 쏟아냈다.

“내 오십 평생 중에 오늘처럼 기분이 좋은 날은 처음이네. 자네의 이런 검을 보기 위해 지금까지 내가 검을 닦으며 살아온 것 같네. 이건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네.”

“감사합니다.”

“자, 내 가슴을 한 번 쳐다보게. 지금 내 가슴이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얼마나 두방망이질 치는지. 마련을 떠나오기 전에 나는 세상에 이런 검이 강호에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네.”

“네, 감사합니다.”

“그런 방식으로도 검을 사용할 수 있다니. 자네에 의해 오늘 나는 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나 더 얻었네. 나는 오늘 내가 일평생 내 검에 대해 고민하던 한 가지 문제를 여전히 풀지는 못했지만 얼핏 이해는 한 것 같네.”

“…….”

“내가 내 문제를 스스로 풀지는 못했으나 남이 풀어놓은 해답을 훔쳐본 것 같은 느낌이네. 이 비무는 자네가 확실히 이겼네.”

“아닙니다. 련주님의 저에 대한 평가는 너무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지금 당장 실전에 돌입하면 서로가 승부를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검은 이미 내 방식으로 완성된 검이라면 자네의 검은 이제 비로소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이네. 그래서 자네가 이긴 것이네.”

“오히려 오늘 제가 련주님의 검을 보고 깨달은 것이 많습니다.”

“하하, 그런가. 이미 그 끝을 본 검과 이제 막 시작하는 검이 평수를 이루었다면 그건 시작하는 검이 이긴 것이네. 내 검은 기대할 미래가 거의 없지만 자네의 검은 그 끝이 어디일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가늠조차 되지 않네.”

제혼마검은 기쁜 표정을 채 감추지 못하고 말을 이어 갔다.

“이렇게 기쁜 날 술 한 잔이 없다는 게 어디 말이 되는가. 나는 진정한 상대를 만나면 생사결을 치를 때는 대적하기 전에, 생사결이 아닌 경우에는 대적한 직후에 한 잔 술을 주고받는 것을 원칙으로 산고 있다네.”

“네.”

“대적 전에 내 술을 대접받은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대적 후에 이렇게 나로부터 술잔을 받은 경우는 자네가 최초일세.”

“…….”

“모두 내 검에 의해 고혼이 되었거나 아니면 도저히 술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얘기지. 나는 생사결이든 생사결이 아니든 무조건 최선을 다한다네.”

청운이 그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며 말했다.

“련주님 덕분에 검에 대한 새로운 안계를 넓혔습니다. 련주님의 검을 통해 제가 몰랐던 새로운 차원을 엿본 느낌입니다.”

제혼마검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전혀 겸손할 필요가 없네. 내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전부 진심이네. 자네는 자네의 검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좋네.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아 당금 무림에서 검으로 자네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네. 내 장담하네.”

제혼마검이 십여 장 뒤에 있는 환제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준비가 다 되었습니까. 지금 곧바로 갔으면 합니다만.”

환제가 제혼마검에게 목례를 하며 대답했다.

“예, 련주님. 여기서 오 리 정도 떨어진 풍광 좋은 여옥산 계곡 입구에 이미 자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 즉시 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제혼마점이 청운에게 얼굴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자네, 설마 내 초대를 거절하지는 않겠지.”

청운이 입가에 한 줄기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는 말했다.

“당금 무림에서 누가 감히 련주님의 초대를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무한한 영광입니다. 련주님께서 앞장을 서시지요.”

* * *

여옥산 계곡 입구 평평한 바위 위에 때아닌 천막 한 채가 동그마니 지어져 있었다.

칠팔명의 장한들이 횃불을 들고 천막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제혼마검이 청운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서 가세. 간혹 한 송이 꽃이 힘든 삶의 시름을 잊게 하듯이 때때로 세상에는 술이 필요한 밤이 있는 법이네. 오늘이 바로 그런 밤이지.”

제혼마검이 툭 던지듯 한마디 말을 내뱉은 후 먼저 천막을 젖히며 안으로 들어갔다.

청운도 천막의 한쪽 귀퉁이를 제치며 뒤따라 들어갔다.

언제 준비했는지 천막의 바닥에는 두툼한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고 탁자 위에 단출한 술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제혼마검과 환제 그리고 청운이 차례로 탁자에 앉았다.

청운이 극구 사양했으나 제혼마검이 술병을 들어 청운과 환제에게 먼저 한 잔씩 따라주었다.

청운은 민망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런 청운의 모습을 바라보던 제혼마검이 입꼬리를 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그는 곧바로 넋두리하듯이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수라마군의 안목도 다 되었군. 자네의 무위를 이렇게나 낮게 평가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모르겠군. 순수하게 무공으로만 따진다면 마련에서 그는 바로 나 다음으로 강하다고 할 수 있는데.”

청운이 민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수라마군께서 하나도 틀린 게 없습니다. 그는 저를 아주 정확히 보았습니다. 그 사이에 제가 조그마한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을 뿐입니다.”

수라마군과 환제가 경악에 가까운 얼굴빛을 띠면서 청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환제가 곧바로 청운의 말을 받았다.

“무공이라는 게 밥 먹듯 늘어나는 게 아닌데. 자네의 잠재력이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나로서는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네.”

제혼마검이 환제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자네의 생각으로는 앞으로 강호가 상황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처음에는 나도 天이 그런 악의 무리인지는 짐작도 못했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마련에 제공되는 그들의 돈 때문이었네.”

“대부분 그렇습니다.”

“자네에 대한 수라마군의 간절한 청도 물론 한몫했지만 내가 마음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화산의 육검자와 소림 무여대사의 피살 때문이었네. 비록 비무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그건 명백히 어떤 사악한 의도가 밑바탕에 깔린 살해에 가까운 것이네.”

청운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天과 마련의 관계에 대해 찬찬히 되짚어 보았네. 그 과정에서 나는 그들의 진정한 실체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네.”

“…….”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그들이 그렇게 황금을 물 쓰듯이 하면서 도대체 무슨 이득을 챙기려고 하는지 그 진정한 목적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네.”

제혼마검은 말을 이어 갔다.

“자네가 지금까지 천을 상대하면서 알게 된 모든 것을 나에게 말해 주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이 없네. 오늘 자네가 나에게 말하는 모든 정보가 그들에 대한 내 판단에 큰 도움이 될 걸세.”

청운이 제혼마검의 눈을 마주 보면서 하남표국의 멸문에서부터 지금까지 天과의 사이에 있었던 모든 사실을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청운의 말을 듣던 제혼마검과 환제의 표정에서 수시로 놀라움과 경악의 빛이 교차했다.

청운이 마지막으로 삼계와 모용세가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삼계는 절대 열려서는 안 됩니다. 삼계가 열리는 순간, 그 시공간에는 인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조화와 존중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 선한 인간의 심성은 사라지고, 분노와 증오 그리고 혐오와 배신 같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배척, 환멸하는 악한 심성이 온통 세상을 지배하게 됩니다.”

“…….”

“한마디로 세상에 전대미문의 아수라 지옥이 펼쳐지는 것이지요. 천인공노할 전쟁과 범죄가 끊이지 않을 것이고 이래저래 수많은 무고한 사람이 생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그 와중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당연히 자신의 한 몸조차 지키기 버거운 약자들입니다.

“그렇군.”

“그리고 결국에는 강호의 어떤 문파와 세력도 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그 순간이 되면 백도와 흑도로 갈라져 간신히 유지되던 강호의 질서도 완전히 망가질 것입니다.”

청운은 강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삼계의 힘으로 天의 무리들이 자신들에게 최대한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무자비하게 강호의 질서를 재편하려고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때는 강호의 그 누구도 그들을 통제, 제지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음…….”

“그리고 제가 모용세가를 징치한 것은 모용세가가 天과 깊숙이 관련이 되어 있고 심지어 멸족한 것으로 알려진 마족의 저주를 다시 세상에 불러냈기 때문입니다. 天과 마족의 관계도 시급히 밝혀내야 중대한 사안 중 하나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