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06화 (106/184)

106화 여옥산 입구 관제묘에서 기다리겠다.

청운은 일반 무림인들이 현 강호의 정세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극황지감술>을 운용해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슬쩍 엿들었다.

청운은 <극황지감술>은 이미 주변의 소음과 상관없이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만을 가려듣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탁자의 왼쪽 대각선에 앉은 흑의를 입은 사내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는 삼십 대 중반으로 하관이 길쭉하고 이마가 좁았다.

“자네들도 알다시피 태청일검 육검자와 소림의 무여대사가 어디 보통 고수인가. 잘은 몰라도 그 둘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강호에 채 스무 명도 되지 않을 것이네. 그런 고수가 채 십 초를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다니.”

청운은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황금면객이라는 자의 무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네. 그리고 더 무시무시한 것은 그가 펼치는 검법이 강호의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네. 자다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여태껏 아무도 그 검법의 유래를 밝혀내지 못했다고 하네.”

이번에는 흑의인의 맞은편에 있는 황의인이 그의 말을 받았다.

“나는 황금면객이 비무의 형식을 취해 육검자와 무여대사를 살해한 것이라고 보네. 비무를 빙자해 그런 짓을 저지른 이유는 아마도 강호의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 같네. 아마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틀림없이 어떤 거대한 세력의 음모가 있을 것이네.”

“…….”

“강호란 곳이 원래 죽음과 삶이 일상적으로 교차하는 곳이긴 하지만 이번 사건은 정말 충격적이네. 고수 중의 고수라고 평가되던 그들이 제대로 힘 한 번 못쓰고 절명하다니. 황금면객이란 자의 무위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네.”

청운은 그들에게서 더 이상 들을 만한 말이 없어 극황지감술을 슬며시 거두었다.

충격이었다.

틀림없이 天의 짓이다.

그들이 아니면 그런 짓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

청운은 소림의 무여대사와 화산 육검자의 피살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그것은 정당한 비무를 가장해 자신들을 배신한 자를 어떻게 처단하는지를 강호에 공표하는 天의 간악한 술수였다.

황금면객의 행위는 정당한 비무라는 강호의 상식을 이용해 자신들과 척을 지면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지를 만천하에 보여주는 고도의 정치술이었다.

자신들을 향한 강호의 적대적 여론을 방비하면서 배신자도 처단하는 이중의 효과를 天이 노린 것 같았다.

사안의 폭발력이 강호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강호의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곧 화산에서 구대문파의 수장들이 모여 회합을 한다는 소문도 들렸다.

청운은 하오문의 총단에 들렀다 곧바로 화산으로 한 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운은 탁자 위에 있는 마지막 잔을 마시고는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푹 쉬기 위해 곧장 예약해 둔 방으로 올라갔다.

뜨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니 모든 근심과 걱정도 딴 세상의 일 같았다.

매일매일이 지금 이 순간처럼 편안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청운은 생각했다.

적당한 포만감과 취기가 그동안의 조바심과 불안을 한꺼번에 녹여 버리는 느낌이었다.

잠시 긴장을 푼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슈—슈—슈—슉.

파공음과 동시에 한 줄기 은빛 광채가 창호지를 꿰뚫고 들어와 그대로 맞은편 벽에 박혔다.

한 뼘이 조금 넘는 한 자루 비도였다.

놀라운 것은 비도가 벽에 박힐 때 비도도 벽도 한 치의 진동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그만큼 비도를 발출한 자의 무위가 대단하다는 방증이었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비도술은 익히고 있었지만, 발출된 비도가 박히는 대상에 어떤 떨림도 남기지 않는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저런 경지는 비도술을 전개한 자의 무위가 최소 화경을 넘어서야 겨우 가능한 일이었다.

따뜻한 목욕물에 잠시 풀렸던 긴장이 다시 청운의 신경을 바짝 죄어 왔다.

청운은 서둘러 옷을 걸치고는 비도를 뽑아 들었다.

뽑아든 비도에서 시전자의 서늘한 예기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비도의 손잡이 부분에 세로로 접은 쪽지 하나가 리본처럼 묶여 있었다.

청운은 쪽지를 거의 찢듯이 펼쳤다.

급하게 흘려 쓴 필체가 비도의 벼린 날처럼 날카로웠다.

[여옥산 입구 관제묘에서 기다리겠다. 용기가 있으면 즉시 나오느라.]

쪽지에는 자신에게 비도를 날린 자의 이름도, 자신을 만나고자 이유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다짜고짜 나오라고만 적혀 있었다.

쪽지의 내용으로 봐서는 선의인지 악의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간다. 가지 않는다. 그래도 가 봐야 한다.’

청운은 잠시 갈등하다 결국 가기로 작정했다.

자신을 불러내려는 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악의든 선의든 초대를 받고도 가 보지 않으면 어차피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청운은 무영검을 허리에 차고는 객점을 나섰다.

오늘따라 유난히 밤의 봄바람이 서늘한 것 같았다.

생각할 것이 있어 신법을 전개하지 않았는데도 관제묘까지는 채 일각도 걸리지 않았다.

관제묘 앞 공터에 두 인형이 밤의 수호자처럼 서 있었다.

둘 다 대단한 기도를 내뿜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도 두 사람 주변의 대기가 그들의 기파에 쉴 새 없이 출렁거리는 것 같았다.

청운은 잠시 치우전륜공을 끌어올려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둘 다 오십대 초중반 정도로 보였다.

왼쪽에 있는 자는 붉은 적의를 입고 있었고 오른쪽에 있는 자는 흑의를 입고 있었다.

적의를 입은 자는 사각턱에 강인한 인상이었고, 흑의를 입은 자는 청수한 선비 같은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청운이 오 장 정도 가까이 다가가자 오른쪽에 있는 중년인이 입가에 웃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내는 것도 아닌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청운을 향해 운을 뗐다.

“어서 오게. 자네가 요즘 강호에서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는 무위검인가. 자네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대단한 기도를 가지고 있군. 수라마군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 탁월한데, 자네를 잘못 평가한 것 같네.”

“…….”

“내가 보기에 자네의 무위는 이미 현경의 경지조차 넘어선 것 같네. 담금 무림에서 자네처럼 젊은 나이에 그런 경지에 도달한 자는 아마 자네뿐일 것 같네.”

“과찬이십니다.”

“도대체 어떤 깨우침이 있었기에 그 나이에 저런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다니 직접 당사자를 대면하고도 도대체 믿을 수가 없네.”

“…….”

“아—참, 이런 내 정신하고는. 상대를 평가하기에 급급해 내 소개도 하지 않다니. 내 결례를 이해하게. 나는 마련의 여우성이고, 이쪽은 백우천일세.”

청운은 흑의 중년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경실색했다.

흑의인은 바로 당대의 마련주 제혼마검이었고, 적의인은 마련의 삼제 중 일인인 환제였다.

청운은 즉시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예의를 차렸다.

“강호의 소졸 강청운이 마도의 두 전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두 분께서는 저에게 무슨 가르침이라도 계신지요.”

흑의인이 실없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한마디 했다.

“무위검이 강호의 소졸이라면 이 무림에 소졸 아닌 자가 어디에 있겠나. 쓸데없는 격식은 집어치우고 내가 자네를 찾아온 이유만을 간단히 말하겠네.”

“네.”

“참고로 내가 자네를 찾아오게 된 연유에는 수라마군의 절절한 간청이 있었네. 내 솔직히 말하지. 나는 天에 조력하는 대가로 마련의 운영 자금을 융통하고 있네.”

“…….”

“나는 그 막대한 이득을 하루아침에 포기하기가 결코 쉽지가 않네. 마련뿐 아니라 강호의 모든 문파는 실상 자파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이익 단체일 뿐이라네.”

그 말을 들은 청운은 표정이 점점 굳어만 갔다.

“강호에서 협의니, 정의니 하는 말 따위는 사실 이익 위에 도포된 사탕발림이지. 백도냐 흑도냐 하는 것도 실상 따지고 보면 자파의 이익을 위해 명분을 내세우느냐 아니면 다짜고짜 힘을 앞세우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

“전자를 우선하는 쪽을 사람들이 백도라 부르고 후자를 중시하는 쪽을 흑도라 부를 뿐이지. 자파의 이익 앞에서는 강호의 어떤 세력도 자유롭지 못하다네. 그건 우리 마련도 마찬가지일세.”

그는 말을 이어 갔다.

“나는 수라마군의 안목과 견해를 그 누구의 말보다 존중하네. 하지만 그의 말만 믿고 天을 단칼에 배척하고 자네의 편에 서는 것은 손해가 너무 막심하네. 그래서 자네를 시험하고자 이렇게 발걸음을 했네.”

“네.”

“어떤가. 내 제의를 수락하겠나. 자네가 내 제안을 지금이라도 거부한다면 나는 그냥 마련으로 돌아가겠네. 부디 심사숙고하게. 자칫하면 자네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네.”

생각하고 말 것도 없었다.

이미 뽑아진 칼이다.

‘어차피 天을 상대하려면 한 번은 건너야 하는 다리다.’

청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청운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어떤 방식으로 하시겠습니까. 저는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天을 끊어내는 일이라면 목숨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어떤 방식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누가 먼저 나서시겠습니까.”

제혼마검이 입가에 한 줄기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뗐다.

“자네의 그 기백이 참으로 마음에 드네. 기백만큼 실력이 뒤따르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삼 초면 충분하지 않겠나. 재고 말 것도 없이 그럼 지금 당장 시작하지.”

그가 막 앞으로 한 발 나서려 할 때 왼쪽에 서 있던 환제가 그를 막아서며 말했다.

“련주님, 제가 먼저 무위검을 시험해 보겠습니다. 그게 순서 아니겠습니까. 련주께서 나서실 필요가 없도록 제 선에서 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제혼마검이 환제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환제가 자신의 등 뒤에 메고 있던 창을 빼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의 오른손에 쥔 붉은 창은 약 세 척 정도의 길이였다.

하지만 그가 창에 진기를 주입하자 놀랍게도 순식간에 두 배 정도로 늘어났다.

그가 예전초식을 취하듯 자신의 창을 앞으로 쭉 내밀며 말했다.

“이것은 혈마린창이라고 하네. 마도 병기 서열 최상위에 속하는 것이라네. 나도 그럴 테니 자네도 최선을 다해 주기 바라네. 그게 바로 무인끼리의 예의네. 자, 자네가 먼저 시작하게.”

청운은 환제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며 말했다.

“예,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청운은 무영검을 뽑아 들고 치우전륜공을 주입했다.

무영검이 우—우—웅, 하는 검명을 토하며 한 차례 부르르 떨더니, 이 장이 훨씬 넘는 자황색의 검기가 밤의 어둠을 헤치며 일렁거렸다.

청운의 무위를 접한 환제가 갑자기 표정이 심각해지며 반짝 긴장하는 것 같았다.

그의 혈마린창에서도 검붉은 마가가 붉은 유등처럼 주변의 어둠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청운이 땅을 박차고 그를 향해 신형을 솟구쳤다.

청운은 쾌—타—절—변—회—접의 초식을 연격해 그의 전신요혈를 짓쳐 갔다.

환제도 창을 자신의 머리 위로 맹렬히 돌리기 시작했다.

혈마린창을 따라 붉은 마가가 회오리바람처럼 일기 시작하더니, 그의 심형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동시에 입에서 장내를 뒤흔드는 일성이 뒤따랐다.

“탈 — 백 —쇄 —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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