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04화 (104/184)

104화 수십 년 대계를 하룻밤에 망치는구나.

청운은 곧바로 극성으로 내공을 끌어올려 저주의 단천파혼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최초의 무無와 공으로 되돌리는 극강의 음파가 때아닌 야밤의 대기에 보이지 않는 나선형의 무늬를 그리며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선봉에서 청운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수십 구의 실혼인들이 달려오는 자세와 속도 그대로 전신을 보호하던 철편이 먼저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다음에는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또 그 다음에는 머리가 떨어져 나가고, 마침내 쇠북이 찢어지듯 가슴이 터지며 분해되기 시작했다.

저주의 음파가 만든 끔찍하고도 참혹한 광경이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바로 눈앞에서 존재했던 생명체가 실시간으로 먼지로 화해 사멸하는 장면은 상황을 그렇게 만든 시전자뿐만 아니라 그 상황을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관전자까지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전신이 먼지처럼 분해되는 실혼인의 십여 장 뒤에 서서 실혼인을 조종하던 마령인들 수십여 명도 피를 분수처럼 토하며 삭풍을 맞은 낙엽처럼 사방에 나뒹굴었다.

그들은 땅바닥에 처박히자마자 눈동자를 까뒤집고 전신을 부르르 떨더니 즉사했다.

순식간에 장내에 있던 생명체들이 생명 아닌 것으로 무화되어 되돌아가는 장면은 더 이상 이승이 아닌 것 같았다.

지옥도도 이런 지옥도가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그 광경을 목도한 장내의 사내들은 너나없이 두려움과 공포에 질릴 대로 질려 음파의 강기가 미치지 않는 범위 밖으로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백여 장 이상을 달아나서도 그들은 자신이 아직도 살아 있는지 못 믿어 자기 가슴을 연신 쓸어내리며 숨기에 더 좋은 곳이 없나를 살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이승에 저승의 무간지옥이 구현된 것 같은 목불인견의 장면이었다.

모용주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곧바로 절대로 믿고 싶지 않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장면을 모용세가에 연출한 청운을 흉광과 기광을 희번득거리며 노려봤다.

모용주는 자신의 두려움과 공포를 털어 내듯이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더니 분노의 일성을 내지르며 청운을 향해 단혼도를 휘둘렀다.

“단—혼—일—섬.”

모용주의 휘두른 단혼도의 파공음이 지척에 이른 위기일발의 순간.

청운은 신형을 나선형으로 솟구쳐 오름과 동시에 입에서 떼어 낸 신단적으로 곧장 멸환을 떨쳐냈다.

모용주의 도기와 신단적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쇠가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그 격돌의 여파로 주변에 있던 수십여 명의 사내들이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가 전각에 처박히거나 담벼락을 무너뜨리며 담벼락과 함께 허물어졌다.

밤이면 밤마다 유등을 밝히며 모용세가의 위용을 뽐내던 수십여 개의 석등들도 세찬 경기의 여파에 휘말려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돌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후드득, 후드득.

충돌의 여파가 가라앉자 장내의 풍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오륙 장이나 뒤로 비칠비칠 물러난 모용주는 여러 곳의 뼈가 부러졌는지 전신을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제 발등을 위로 연신 각혈을 하고 있었다.

청운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향해 뚜벅뚜벅 다가갔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청운을 노려보던 모용주가 신음을 내뱉듯 중얼거렸다.

“무위검, 네놈이 모용가의 수십 년 대계를 하룻밤에 망치는구나.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

“모용가의 진정한 잠재력은 네 놈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오늘 네 놈이 모용가를 유린한 대가는 가주께서 틀림없이 받아내실 것이다.”

묵북부답.

모용주의 처절한 저주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청운은 모용주에게 다가갔다.

청운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용주의 단전에 신단적을 그대로 꽂아 넣었다.

더 이상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그의 단전을 파괴해 버렸다.

평소보다 단호하고 잔인한 청운의 단죄는 天의 무리와 결탁한 모용세가에 대한 상징적 징계였다.

그것은 天에 대해 청운 자신이 어떤 결심을 갖고 있는지를 만천하에 공표하는 행위였다.

“잔인해도 너무 잔인하구나.”

바로 그 순간, 철혈단주가 일갈하며 청운을 뒤에서 기습했다.

청운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신에게 달려드는 철혈단주를 향해 신단적을 쾌의 초식으로 내질렀다.

푸—우—욱.

소리와 함께 철혈단주 역시 자신의 단전을 부여잡고 땅바닥에 푹 꼬꾸라졌다.

청운은 무간지옥 같은 모용세가를 한 번 쓱 둘러보고는 공력을 잔뜩 실은 오른쪽 발로 크게 한 번 진각을 밟아 모용세가의 지축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묵직한 일성을 토했다.

“오늘 당신들이 당한 횡액은 내가 저지른 것이 분명하지만 실은 당신네 모용세가가 그동안 강호에 저지른 죄의 일부를 되돌려 받은 것뿐이오.”

청운이 일성을 토한 모용세가의 공간은 적막하기만 했다.

청운은 말을 이어 갔다.

“오늘은 이 정도의 징계로 그치고 떠나겠지만 앞으로 모용세가가 어떤 입장의 변화가 없이 계속 악의 무리와 결탁해 강호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면 내가 강호에서 모용세가를 완전히 지워버릴 것이오.”

청운은 그들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반드시 그리할 것이오. 지금 이곳에 있는 당신들도 이 순간부터 모용가를 떠나시오. 그게 내가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자비임을 절대 잊지 마시오.”

청운은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그들에게 심어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걸어서 모용세가의 정문을 나왔다.

* * *

살랑거리는 따뜻한 봄바람에 폭죽이 터지듯 새순이 펑펑 터지고 있었다.

겨우내 힘을 비축했던 새순들이 추위로 담금질한 송곳처럼 강둑의 땅거죽을 뚫고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계절의 한 막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또 다른 계절의 한 막이 경극에서 순식간에 얼굴의 가면을 바꿔치기하는 변검처럼 바뀌고 있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바뀌는 계절과 어떤 계절에도 바뀌지 않는 푸른 강물이 어우러진 적벽 아래.

검은 무복에 죽립을 턱밑까지 눌러쓴 한 사내가 적벽 아래 강심에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간간이 죽립을 젖히며 강물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빛은 적벽의 깊고 깊은 강심보다 더 깊고 푸르다.

그 사내는 적벽을 휘도는 모든 세월이라도 낚아 올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의 낚싯대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만수림에서만 나는 오금죽으로 만든 것이고, 낚싯줄은 세상에서 가장 질긴 천잠사다.

그것도 모자라 낚싯바늘은 곤륜산에서만 난다는 귀하디귀한 자하신철이다.

더 희한한 것을 낚싯바늘이 있음직한 낚싯줄 끝에는 살아 있는 기러기 다섯 마리가 여여하게 잔물결을 타며 놀고 있었다.

따스한 봄날에 적벽의 절벽 아래서 한가로이 낚싯대를 드리운 사내는 바로 청운이다.

청운은 모용세가의 일을 마무리 짓자마자 곧장 적벽으로 달려왔다.

만년화리를 낚기 위해서다.

기록에 의하면 삼십 년 주기로 만년화리가 적벽강으로 회귀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었다.

청운은 지금 반드시 만년화리를 낚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운을 한 번 시험해 보는 중이었다.

신외지물을 얻으려면 천운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청운도 잘 알고 있었다.

청운은 하늘이 자신에게 큰일을 시키기로 작정했다면 어쩌면 인연이 닿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청운은 벌써 이십여 일 동안 다른 모든 일을 뒤로 미루어 둔 채 적벽에서 낚시만 하고 있었다.

청운 때문에 하오문의 형주분타는 분타를 개소한 이후로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청운이 서찰과 함께 보내온 자하신철로 된 곡괭이를 녹여 낚싯바늘을 만드느라 전 분타원들이 자하신철을 다룰 수 있는 장인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거기다 미끼로 쓸 기러기 백여 마리를 잡아서 키우느라 양천호는 새 전문가를 세 명이나 고용했다.

요즈음 하오문 형주분타의 문도들은 분타에서 오십여 리 떨어진 적벽까지 매일 미끼로 쓸 살아 있는 기러기 다섯 마리와 청운의 하루치 음식을 공수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했다.

그 일은 부분타주 진소구가 전담했다.

청운도 자신 때문에 형주분타의 전 분타원들이 고생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자신이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일은 강호 전체의 안위뿐 아니라 결국에는 하오문의 안위와도 깊게 관련된 것이었다.

또 하루치의 마지막 해가 자신이 채 못다 한 가슴속 이야기를 토로하듯 강물 위에 자신의 몸을 함부로 부리고 있었다.

강물에 붉게 젖어든 붉디붉은 황혼이 출렁이는 물살에 하류로 떠밀리고 있었다.

어느새 그 속절없고 가없는 긴 흐름을 따라온 어둑어둑한 밤이 일렁이는 수면에 시나브로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깊은 속을 풀어내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보름이다.

삼십 년 전에도 보름달이 뜬 밤에 만년화리가 잡혔다고 사료에 기록되어 있었다.

청운은 물결이 조금 이상할 때마다 극황지감술을 극한으로 운기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운기한 덕분에 극황지감술이 백두산을 하산했을 때보다 이성 정도 더 격상되는 뜻하지 않은 성취를 이루었다.

환한 달빛 아래, 저 깊은 적벽의 심연에는 무엇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 것일까?

유장하게 절벽을 휘돌며 굽이치는 물굽이는 오늘 밤도 무심하게 청운의 그림자만을 흘깃 한 번 수면에 비추어 주고는 그대로 흘러가 버린다.

강물처럼 흐를 수 없는 청운은 수면 위에서만 간신히 흔들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또 바라볼 뿐이었다.

한밤중이 되자 어느새 바람마저 쌀쌀했다.

세상의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이 하루의 일상에 지쳐 깊은 잠에 빠진 적벽의 보름밤.

캄캄한 하늘에서 깜빡깜빡 점멸하며 쏟아지는 모든 별빛은 고스란히 청운의 차지였다.

잠시 한눈을 팔면 어느새 남쪽 하늘에서 반짝이던 별이 사라지고, 어디에도 없던 별이 북쪽 하늘에 얼굴을 내밀었다.

아득한 우주가 자신이 태어난 시원의 기억을 더듬기라도 하듯 무수한 별들이 밤새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하며 아무리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사람은 갈망하면서 불안을 견디는 존재다.

아니, 간절히 갈망하기에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한순간의 기연으로 모든 걸 충족시킬 수 있다면 세상의 어느 누가 평생 자기 자신과 맞서 혼란과 갈등이 야기하는 존재의 불안을 견디며 더 나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을 하겠는가?

간절히 원하는 인연은 갈망과 불안을 동시에 견디며 기다리고 기다리려야 간신히 얼굴을 비추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세의 인연이 바로 자기 눈앞에 나타나도 알아차리지 못해 그냥 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것이 바로 인연이고 인생이다.

아득한 북극성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져 있던 바로 그 순간.

청운은 물결이 여느 때와 달리 이상함을 직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