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102화 (102/184)

102화 문득 수백 년 전 무림의 기사器使 하나를 떠올렸다.

바로 그때, 장한 중 하나가 손가락으로 대전의 지붕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침입자다. 대전 지붕 위다.”

외침과 동시에 수십 명의 인형이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기세가 흉흉했다.

청운의 지척까지 쇄도한 장한들이 청운을 사위에서 압박했다.

묘묘보허를 전개하면 이들의 포위망을 벗어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웠다.

그러나 청운은 그러지 않기로 작정했다.

청운은 모용세가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확실히 일깨워 줄 강렬한 경고를 남기기로 결심했다.

청운이 무영검을 뽑아 들었다.

진기를 주입하자 무영검에서 뻗어 나온 자황색의 검기가 이 장이나 넘실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호기롭게 지붕 위로 올라온 자들이 청운의 무위를 목도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두려움을 느낄 땐 누구나 무리 가운데로 숨으려고 한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그것이 본능이다.

그 순간 누구나 나만 아니면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공포와 두려움이 때로는 사람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한다.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그 모습을 보고는 울화통이 치밀었는지 꽥 소리를 질렀다.

“뭣들 하고 있느냐. 저놈을 당장 쳐죽이지 않고. 뒤로 물러나는 놈은 내 검에 먼저 죽을 각오를 해라.”

그의 외침과 동시에 십여 명의 사내들이 검을 휘두르며 청운에게 달려들었다.

청운은 자신의 몸을 팽이처럼 돌리며 쾌—타의 초식을 연격해 내질렀다.

“으—악—악—악—악.”

“퍼—퍼—퍼—퍽.”

“끄—응.”

청운의 검기에 휩쓸린 십여 명의 장한들이 가슴이 베어지거나, 팔이 잘리거나, 다리가 부러진 채 지붕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청운은 한 마리 나비처럼 대전 앞마당에 날아 내렸다.

그곳에는 백여 명이 넘는 장한들이 흉광을 희번덕거리며 청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청운이 섬뜩한 눈빛을 이글거리며 그들을 쓱 둘러보았다.

청운의 눈빛과 마주친 앞줄에 있던 장한들이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청운이 일갈했다.

“살고 싶으면 내 앞을 막지 마라. 굳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내가 살계를 열진 않겠다. 경고에도 불구하고 내 길을 막는 자는 가차 없이 베겠다.”

청운은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은 후 일부러 발에 공력을 실어 일보를 내디뎠다.

쿠—웅.

지축이 십여 장 가까이 울렸다.

바로 그때였다.

묵직한 중저음의 공력이 실린 목소리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웬 놈인데 겁대가리 없이 야밤에 모용세가를 침입해 난장판을 벌이느냐. 당장 무릎을 꿇고 침입한 의도를 이실직고하면 무공을 폐하는 가벼운 징계로 목숨은 거두지 않겠다. 꿇어라. 지금 당장.”

그자가 장내로 들어서자 청운을 포위하고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길을 텄다.

무섭도록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모용세가의 엄격한 가풍을 알 수 있었다.

“이 장로님을 뵙습니다.”

모용세가의 이 장로.

단혼섬뢰 모용주.

오십 대 후반으로 가주인 모용성의 사촌 형으로 가주를 제외하고는 모용세가의 제일 고수라는 소문이 강호에 회자되고 있었다.

그의 단혼섬뢰도법은 이미 십여 년도 훨씬 전에 화경의 경지를 넘어섰다고 했다.

모용주는 한참을 뚫어지게 청운을 노려보더니 으스스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네놈이 누구인지 이미 대충 짐작은 하고 있다. 네놈의 검과 그 무위가 그걸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지.”

“…….”

“복면을 뒤집어썼다고 네놈의 정체가 감추어지는 건 아니지. 무위검 강청운! 겁대가리 없이 감히 모용세가를 유린하다니.”

모용주는 무거운 목소리로 일갈했다.

“네놈의 눈에는 모용세가가 한낱 하류집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구나. 내 오늘 네놈에게 모용세가가 어떤 곳인지 단단히 맛을 보여주마. 살아서 이곳을 나갈 생각은 꿈도 꾸지마라.”

청운이 거추장스러운 복면을 벗으며 말했다.

“내 진작부터 모용세가가 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모용후를 통해 알고 있었소. 오늘 다시 대전 지하의 연공실에서 그 증거를 발견했소.”

청운은 말을 이어 갔다.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 天과의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약속한다면 이 정도에서 물러나겠소.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내 오늘 모용세가에 확실한 경고의 증표를 남길 생각이오. 어떻소.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모용주가 인상을 있는 대로 일그러뜨리며 고성을 질렀다.

“저런 찢어 죽일 놈을 봤나. 감히 천하의 모용세가에 침입해서 되도 않은 훈계를 하다니. 모용세가는 네놈의 훈계를 받을 정도로 그렇게 하찮은 곳이 아니다. 우리 세가가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던 그것은 네놈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

“…….”

“중요한 것은 오늘 네놈이 모용세가에 무단으로 침입해 본 세가를 모욕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네놈이 죽을 죄다.”

모용주는 자신의 오른편에 서 있는 사십 대 중반의 흑의를 입은 자를 돌아보며 지시를 내렸다.

“철혈대주는 지금 당장 광혼철혈대를 준비시켜라.”

모용주의 지시를 받은 철혈대주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 장로님, 광혼철혈대는 가주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분부를 거두어 주십시오.”

모용주가 버럭 화를 내며 철혈대주를 다그쳤다.

“가주가 세가에 부재하면 내가 가주를 대신하는지 모르느냐. 내 명령에 토 달지 말고 지금 당장 광혼철마대를 움직여라.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모용주의 서슬 퍼런 분노에 철혈대주란 자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뒤로 돌려 오른손을 허공에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수십 명의 장한들이 세가의 왼편 구석에 있는 전각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리고는 치렁치렁 감긴 쇠사슬을 걷어내고는 철문을 열기 시작했다.

철—거—덩—철—거—덩—컥.

척—척—척—척—척.

‘저게 대체 뭔가?’

괴이하고 기괴했다.

청운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얼핏 봐도 길이가 육 척이 넘고 그 무게가 이백 근이 훨씬 넘을 것 거대한 언월도를 든 거인이 장내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모두 서른여섯 명이었다.

아니 서른여섯 구의 철인이었다.

그들 모두는 철편을 촘촘히 덧댄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있었다.

더 기괴한 것은 그들 바로 옆에는 검은 무복을 입은 장한들이 동행했다.

특이하게도 철인들은 무복을 입은 장한이 동작을 취하면 그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한동안 그 괴이한 광경을 바라보던 청운은 문득 하오문의 비고에 비치되어 있던 [무림편람]에 기록되어 있던 수백 년 전 무림의 기사器使 하나를 떠올렸다.

청운은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한 심음성을 내뱉었다.

“설마, 마족의 마령실인!”

마령실인.

다섯 살이 되지 않은 골격이 좋은 아이 하나와 감각이 뛰어난 아이 하나를 온갖 약물과 기상천외한 대법과 술법으로 영적으로 짝지은 저주의 마물.

골격이 좋은 아이는 금종조와 철포삼보다 훨씬 강력한 육신갑을 거의 극한까지 익힌 후, 온갖 약물로 제련하여 실혼인을 만들어 공격의 선봉을 맡게 하고.

감각이 뛰어난 아이는 온갖 영약으로 감각을 극대화한 마령인을 만들어 선봉에서 실제로 공격을 책임지는 실혼인을 뒤에서 조종한다.

독한 약물과 대법의 부작용으로 골격이 좋은 아이는 뒤에서 조종하는 마령인에게 혼을 빼앗기는 실혼인이 되고.

감각이 뛰어난 아이는 두 개의 영혼이 한 몸을 지배하기에 주기적으로 발작을 한다.

마령실인의 공격이 무서운 점은 선봉에서 공격하는 실혼인의 몸이 거의 강시에 버금갈 정도로 단단해 어지간한 도검에는 상처 하나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뒤에서 실혼인을 조종하는 마령인은 격전이 벌어지는 장소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장내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살피며 공격을 조종한다.

그래서 상대는 그만큼 대응하기에 더 힘들다.

공격의 선봉을 맡은 실혼인은 뒤에서 마령인이 취하는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한다.

마령인과 실혼인은 두 개의 몸이 하나의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마령실인의 공격은 때로는 한 사람이 공격하는 것처럼 민첩하고, 때로는 두 사람이 공격하는 것처럼 공수의 연합이 일체적이다.

마령실인은 실혼인의 쇠처럼 강한 육체와 마령인의 민첩한 감각을 하나로 결합시킨 마물이다.

마령실인을 상대하는 사람은 강시처럼 단단한 실혼인의 공격에도 대응해야 하고.

실혼인을 뒤에서 조종하는 마령인의 뛰어난 감각까지 대처해야 하기에 이중의 위험에 처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어지간한 고수들조차 채 몇 합을 받아내지 못하고 실혼인의 거대한 언월도에 목숨을 잃고 만다.

마족이 된 연유에는 지금 천하를 지배하고 있는 한족의 영향이 크다.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빛나고 공이 있는 양지의 일을 좋아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빛이 나지 않는 더럽고 힘든 음지의 일은 누구나 하기 싫어한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심지어 죽는 것까지 인간의 영육은 온전히 자력으로만 살 수는 없다.

그 누구의 삶도 상호 의존하며 유지되는 것이다.

그래서 욕망과 취향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산다.

그것이 세상이고 사회다.

바로 그래서 인간은 때로 서로 협력하고 이해하고 때로는 상대를 참고 견디며 같은 시간과 장소에 사는 것이다.

상대가 나와 생각이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 다르다고 상대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 바로 악의 근본이다.

한족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의 우위를 앞세워 높은 관직과 돈이 되는 일을 독차지했다.

반면에 한족들의 차별과 핍박으로 인해 세상의 어둠 속으로 숨어든 마족들은 대대손손 빛의 그림자 같은 음지의 삶을 전전하며 수천 년을 암흑 속에서 살았다.

세상의 좋은 자리를 독차지한 한족들이 힘없는 약자들의 노동과 희생, 착취를 바탕으로 온갖 영화를 다 누리면서도.

자신들을 위해 음지에서 헌신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체제가 구축한 질서가 조금이라도 위협받을라치면 힘없는 약자들에게 위기의 책임을 덧씌워 무참히 짓밟고 학살했다.

강자들에 의해 수천 년간 핍박받은 약자들의 누적되어 온 불만과 증오, 저주가 마족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되고 말았다.

기록에 따르면 마족들은 수천 년간 은밀하게 숨어서 괴이한 종교를 믿으며 세상에서 금지된 온갖 귀술과 괴술로 절대로 깨달아서는 안 되는 ‘극악’의 힘을 깨닫고 말았다.

그렇게 깨달은 극악의 힘으로 마족들은 세상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불만, 불안과 두려움, 고착화된 불평등과 불공정을 자양분으로 자신들의 미신을 절대적인 종교로 체계화하기에 이르렀다.

마족들은 그 종교를 구심점으로 단합하여 수천 년간 사이하고 요사한 힘을 키웠다.

그렇게 배양한 힘으로 마족들은 유사 이래 몇 차례 세상의 질서를 뒤집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하늘의 허락을 받지 못했는지 매번 자신들의 원하는 세상의 질서를 세우기 바로 직전 뜻하지 않은 변고나 난데없이 나타난 걸출한 인물들에 의해 그 꿈이 번번이 좌절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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