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95화 (95/184)

095화 자네, 무영문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알고 보니 여위불의 아우였구먼. 여위불은 이따금 후아주를 들고 나를 찾아오곤 하지. 그래, 만수귀왕 여위불은 잘 지내시던가.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세.”

청운이 곤륜선인을 따라 방에 들어서자 그가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청운은 만수림을 떠날 때 만수귀왕이 챙겨 준 후아주 두 통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후아주를 본 곤륜선인의 표정이 뜻밖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밝아졌다.

그가 청운에게 차를 한잔 따라주며 말했다.

“그래, 공자는 이 늙은 곤륜산 산지기에게 무슨 물어볼 것이 그리 많은가. 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시게.”

청운은 하남표국의 멸문으로 天과의 사이에 있었던 길고 긴 이야기를 모두 했다.

그리고 나서 청운은 말없이 자신의 품속에서 산공적과 무문적 그리고 삼재구를 꺼내 놓았다.

곤륜선인이 하나하나 세심히 살펴보더니 안색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곤륜선인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지더니 삼재구를 볼 때는 아예 표정이 석상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곤륜선인이 삼재구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몇 차례나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는 운을 떼기 시작했다.

“자네, 무영문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어디서 이 귀물들을 얻었는지 소상히 말해 보게.”

청운이 산막의 노인에게서 우연히 무영검과 삼공적을 얻는 경위, 천산의 암전상에서 삼재구를 구입한 상황, 형주의 골동품점에서 무문적을 발견하게 된 사정을 모두 이야기했다.

청운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곤륜선인이 한참 동안 청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길고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나라다운 최초의 나라는 환국이었네. 아주 까마득한 전설 같은 이야기지. 환국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이 세상은 말 그대로 혼돈 상태였다네.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와 괴사가 끊이질 않았다네.”

“…….”

“그래서 나라에서는 법술과 도술에 능한 사람들을 모아 나라의 사기와 요기를 제압하고 다스리는 직속대를 만들었다네. 그게 바로 <무영문>의 기원이라네. 신단수 가지와 벽라목의 가지로 피리를 만들어 나라에 발호하는 요기와 사기를 억누르고 퇴치하도록 했다네.”

“네.”

“그 피리가 바로 지금 자네가 지니고 있는 삼공적과 무문적인 것 같네. 그리고 환국이 망할 때 무영문도 사라졌다네. 왜냐하면 무영문은 요즘 중원의 문파와 달리 환국의 직속 관청이었기 때문이지.”

“그렇습니까.”

“그러나 무영문이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진 건 아닐세.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지만 실은 곤륜파와 전진파는 무영문의 일부 비기를 계승한 문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네.”

선인은 말을 이어 갔다.

“당시 무영문이 해체될 때 각지로 흩어진 문도들 중 뜻있는 몇몇이 무영문의 일부 절기를 기억해 계승한 것이 지금의 곤륜파와 전진파의 원조라네.”

“자네가 조금 전에 나의 신법을 보고 그리 놀랐던 것도 아마 서로 닮은 점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네. 자네가 익히고 있는 묘묘보허나 내가 보여준 <곤륜환보>는 그 맥이 같다고 해도 무방할 것일세.”

“……!”

사실은 청운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선인이 하는 말을 귀 기울였다.

“무영문은 그 임무의 특수성으로 인해 술법과 법술 그리고 특히 신법은 뛰어났으나 사실 무공 자체는 그리 탁월한 것이 없었다고 알려져 있네.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곤륜이나 전진의 무공에도 훨씬 미치지 못할 걸세.”

“네.”

“환국이 장백산을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이니 무영문의 근거지도 아마 장백산 근처 어디일 것이네. 자네는 무영문과 인연이 깊으니 시간 날 때 장백산에 한 번 가 보시게. 그리고 그 묵빛의 팔각패는 아마 무영문을 열 수 있는 물건 같네.”

“그렇습니까.”

“자네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가장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삼재구三災球일세. 삼재구가 세상에 출현했다는 것은 곧 삼계三界가 열린다는 걸 의미하네. 그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스러운 일이네.”

“…….”

“삼계에는 세 개의 검은 태양이 뜨고 다섯 개의 붉은 달이 뜬다고 도가의 서책에는 기록되어 있네. 그리고 그 시공간도 우리가 사는 시공간과 전혀 달라서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힘이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네. 나도 서책만 보았지, 실제로는 뭐가 뭔지 잘 모른다네.”

그는 말을 이어 갔다.

“삼계는 마계魔界, 명계冥界, 요계妖界를 의미하네. 삼계가 열린다는 것은 곧 세상이 대겁난에 휘말린다는 것이지. 내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삼계는 딱 세 번 열렸었네.”

“세 번이요?”

“환국 이전에 한 번, 그리고 춘추전국시대 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호십육국 시대에 마지막으로 열렸다네.”

“음…….”

“삼계가 열릴 때마다 전란이 끊이지 않고 역병이 돌아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 나갔네. 삼계는 절대 열려서는 안 되네. 나는 天의 무리들이 삼계를 열려고 하는 자들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드네.”

“말씀 잘 알겠습니다.”

선인은 또 할 말이 있는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이 삼재구는 삼계가 열리는 걸 막을 유일한 신외지물일세. 이 삼재구에는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의 힘이 들어 있다고 알려져 있네. 그 삼황三皇의 힘만이 삼계의 겁난을 견제할 수 있다네.”

“네.”

“삼계가 열리는 것이 감자되면 삼황의 신력도 동시에 세상에 현현한다네. 그 구슬 속에 있는 십이지신은 삼황의 명을 수행하는 신장들이지. 그들은 삼계에서만 자신의 신위를 보인다네.”

“…….”

“때가 되면 삼재구가 자네를 삼계로 이끌어 갈 걸세.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일반적인 무공으로는 그 무위가 신화경에 이르더라도 삼계의 마물들을 상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네. 삼계는 이 세상의 힘과는 전혀 다른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네…….”

“그렇군요.”

“그렇다고 무공이 삼계에서 완전히 무용하다는 말은 아닐세. 삼재구에 봉인된 삼황과 십이지신의 힘을 끌어내려면 무공 또한 거의 신화경에 이르러야 가능하네. 하지만 삼재구의 도움이 없이는 신화경에 이른 무공도 한계가 있네. 내 말 명심하게.”

길고 긴 이야기를 끝낸 곤륜선인이 청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청운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청운이 밖으로 나가기 전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곤륜선인에게 질문을 했다.

“선임님, 그들은 왜 삼계를 열기 위해 그토록 혈안이 돼 있는지요. 삼계가 열리면 그들에게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선인이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저들이 주도하는 세상을 만들려는 것이지. 세상의 동요와 혼란을 틈타 자신들이 새로운 질서의 주인이 되고 싶은 것이지. 그 새로운 질서 속에서 자신의 탐욕이 시키는 대로 활개를 치겠다는 것이지.”

청운은 그 말을 듣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 모습을 본 선인은 말을 이어 갔다.

“그들은 그 질서가 결국은 자신들까지 죽이고 만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 족속들이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탐욕에 눈이 멀어 그걸 못 보는 자들이지. 아니면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고.”

밖으로 나온 곤륜선인은 청운에게 신법을 펼쳐 옥루봉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와 보라고 했다.

청운은 묘묘보허를 펼쳐 순식간에 옥루봉의 정상에 갔다 왔다.

곤륜선인이 입가에 한 자락 은은한 미소를 베어 물고 말했다.

“자네의 신법이 대단한 건 틀림없지만 뭔가 조금 부족해 보이네. 무영문을 한 번 찾아보게. 아마 그곳에 묘묘보허의 후반부가 있을 것 같네. 자 그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세.”

방으로 들어온 곤륜선인이 얇은 책자를 하나 청운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것은 내가 도가의 중요한 기본적인 비술과 법술을 기록한 것이네. 곤륜의 것은 아니니 전혀 부담가질 필요는 없네. 틈틈이 익히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삼계와 맞닥뜨리면 크게 소용이 있을 것이네.”

청운은 곤륜선인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책자를 품속에 갈무리했다.

그리고 자신의 고민 하나를 이야기했다.

“선인님, 제가 천의 문제로 곧 사천당문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곳과 그리 멀지 않아서 예까지 온 김에 한 번 가 볼 생각입니다. 당문은 전통적으로 독과 암기로 명성을 떨쳐온 문파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제가 우연히 몇 가지 영약을 복용한 적이 있어 그들의 용독술은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만 그들의 암기술에는 대비책이 전혀 없습니다. 특히 당문의 일인자인 천수천귀의 암기술은 무음경과 무적경 사이의 경지라는 데 어떻게 대비하면 되겠습니까.”

청운의 말을 들은 곤륜선인이 대경한 표정을 지었다.

성인은 암기술은 일반 무공과는 달라서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아무리 무공이 높아도 필패라고 말했다.

암기술에 대비하는 최적의 방법은 상대가 암기를 발출할 때의 찰나적 기를 느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귀기와 요기와 사기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기를 감지하는 비술 하나가 있으니 시일이 얼마나 걸리든 그것을 다 익힐 때까지는 절대로 곤륜산을 내려가지 말라고 했다.

행여 다 익히지 않고 하산한다면 자하신철은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그 비술을 통달하면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의 기는 물론이고 바위와 물 같은 무생물의 기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곤륜선인 자신도 그 정도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곤륜선인이 청운에게 구결을 일러주었다.

“단—인—천—천—무—흘—무—진—상—기—생—성—.”

그 비술의 이름은 <극황지감술>이었다.

청운은 거의 달포간이나 옥루봉에 곤륜선인과 함께 머물면서 극황지감술을 수련했다.

그것은 무공을 바탕으로 하기에 무공과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으면서도 인간의 오감을 극한까지 일깨우는 비술이기에 무공과의 관련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무공이 수련과 각성을 통해 자신의 몸속에 잠재된 힘의 근원을 인지하고 일깨우는 공부라면.

극황지감술을 내면의 깨어난 오감으로 외부에 있는 기의 근원을 극한까지 감지하는 감각의 비술이었다.

뭔가를 깨우치고 각성하고 느낀다는 점은 무공과 비슷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내부 감각을 외부로 활짝 열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무공과 상당히 달랐다.

* * *

청운이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기감을 느끼게 될 때쯤 곤륜선인이 그를 불렀다.

그 정도 수준이면 세상의 어떤 암기에도 쉽게 당하지 않을 정도는 되니 하산을 해도 좋다고 허락을 했다.

곤륜선인은 지금의 그 느낌으로 천수천귀가 암기를 발출할 때의 기를 느끼라고 했다.

그러면 천수천귀가 어느 손으로 암기를 발출하던 다 알아챌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입으로 암기를 내뿜더라도 방비할 수가 있다고 했다.

그건 무공의 경지와는 또 다른 경지라고 했다.

청운이 곤륜선인에게 하직 인사를 올릴 때 곤륜선인이 청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자네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만수귀왕의 서찰이 아니라 자네의 그 깊은 눈빛을 보고 내 모든 걸 내 줄 생각을 했다네.”

“…….”

“자네의 그 심연 같은 눈빛은 사람을 해하는 눈빛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려는 눈빛이었네. 강호에서 아무리 힘든 고초를 겪더라도 그 눈빛을 잃지 말게.”

“말씀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자신을 소중히 하게. 자네가 인정하든 하지 않든 앞으로 자네는 많은 사람을 구해야 할 운명이네.”

청운이 곤륜선인에게 정중하게 마지막 포권을 취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가 검은 광목에 둘둘 만 곡괭이를 하나 내주었다.

엄청난 무게였다.

일반 철의 대여섯 배나 될 정도로 무거웠다.

곤륜선인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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