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비검무-77화 (77/184)

077화 모든 것은 공자의 운과 일진에 달려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우르르 청운이 있는 이 층으로 올라왔다.

그들은 대략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들은 팔선탁에 앉자마자 점소이를 불러 술과 지금 가장 빨리 되는 음식을 이것저것 시켰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가운데 황의를 입고 구레나룻을 기른 자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말도 가장 많이 했다.

청운은 아무래도 오늘 저자가 저 무리의 밥값을 낼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청운은 일순간 호기심이 잔뜩 일어 그들의 대화를 듣기 위해 청력을 돋우었다.

황의를 입은 자가 호기를 부리며 떠벌리고 있었다.

“자네들 소문 들었나. 검선의 장진도가 나타났다네. 어제 저녁나절에 이곳에서 약 백여 리 떨어진 의창산 기슭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네.”

“소동?”

“홍화나찰이 그 장진도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탐욕에 혈안이 된 군웅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자 장진도를 냅다 허공에 던져 버리고는 줄행랑을 쳤다네.”

“그런 일이 있었는가?”

“그렇네, 바로 그때 혈검령 사자와 십여 명의 무림맹 검수와 외당주 매화절검 서일기가 나타나 둘 사이에 한바탕 치열한 격전이 있었다네.”

“그래서?”

“그 소동을 정리한 자가 누군지 아는가. 그는 바로 요즘 무림에 새로운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는 무위검 강청운이었다네.”

“무… 무위검?”

“당시 무위검은 소림에서 소림의 삼 선승 중 일인인 무여대사와 대결을 하고 곧장 무당산이 가까운 이곳 형주로 오는 길이었다네.”

“이럴 수가…….”

“무위검이 현장에 나타나자 혈검령 사자가 장진도를 포기하고 그만 떠나버렸다네. 무위검은 장진도를 주워 서일기에게 곧장 건네주었다네.”

“…….”

“그리고 그가 한마디 했다네. 그 장진도는 틀림없이 가짜일 거라고.”

황의인의 말이 끝나자 마주 보고 앉은 흑의를 입은 자가 곧바로 말을 받았다.

“검선의 장진도 뿐만이 아니라네. 보름 전쯤 감숙에서는 흑황의 장보도가 나타나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네.”

“흑황?”

“그렇네, 흑황가 누군가? 그는 사백여 년 전 마도 제일의 고수가 아니었든가. 사람들이 서로 그 장보도를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이 붙었다네.”

“…….”

“십여 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수십여 명이 반병신이 되었다고 하더라고. 큰일이야. 큰일… 왜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지 모르겠네.”

흑의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황의인 옆에 있던 자가 말을 건넸다.

“이보게들. 그건 그렇다 치고 사람들의 말로는 무위검이 이번에는 아마 무당의 일인자인 적송자와 대결할 것 같다는군. 그 무위검이라는 자,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오, 대단하네.”

“화산의 육검자와 소림의 무여대사를 꺽고 양의무극신공을 바탕으로 한 양의검법과 태극혜검의 극의를 깨달았다는 무당제일검 적송자와의 대결이라니.”

“기대가 되는군.”

“우리도 이참에 다른 일 다 제쳐두고 당장 무당산으로 올라가세. 그런 대결은 강호에서 칼밥을 먹고 사는 자라면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 하는 것 아닌가. 요즘 이것보다 더 흥미로운 일이 강호에 어디 있겠는가.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이번에는 다시 그 황의인이 떠들기 시작했다.

“무위검이 그런 대결을 벌이는 이유가 아마 天 때문이라고 하지. 天이 어떤 집단인지는 아직 아무도 그 실체를 모른다고 하더군.

“天때문이라?”

“개방과 무림맹 그리고 정보를 팔아먹고 사는 쾌활림과 하오문에서도 天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는군.”

“음…….”

“장진도에 天과 적송자와 무위검이라… 강호가 참 흥미진진하고도 혼란스럽게 돌아가는군.”

“그렇지.”

“그건 그렇다 치고, 일단 밥을 서둘러 먹고 자네 말대로 곧바로 무당산으로 올라가세. 평생에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그런 절호의 구경거리를 놓쳐서는 강호에서 칼밥을 먹고 사는 무인이라고 할 수 없지.”

청운은 장한들의 대화를 엿들으면서도 새삼 깜짝 놀랐다.

강호의 소문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청운은 바로 무당산을 오를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天의 문제가 강호에서 공론화되는 것은 꿈에서도 바라 마지않았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이 무당산으로 가면 안 그래도 피곤한데 성가시고 귀찮은 상황을 무수하게 겪어야 할 것 같았다.

강호의 생리상 그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 이제 더 급한 쪽은 내가 아니라 바로 그들이다. 天이 자신들의 실체가 강호에 조금씩 누설되는 것을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견디지 못할 것이다.’

청운은 그렇게 생각에 잠겼다.

‘안달하는 쪽이 먼저 자신의 맨얼굴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나는 급하지 않게 그러나 하나도 놓치지 않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차례차례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틀림없이 그들이 먼저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찾아올 것이다. 이제부터 칼날은 그들이 잡고 칼자루는 내가 잡는다.’

청운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자신의 무위를 군웅들에게 뽐내고자 하는 공명심에서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걸 기회로 무림에서 명성을 얻고자 함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오로지 天과 그 추종자들이 왜곡하고 짓밟아 버린 강호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한 것이다.

청운은 성도의 악기점에 들러 악기를 좀 둘러보다가 형주의 하오문 분타에도 한 번 들러볼 생각이었다.

청운은 어쩌면 하오문에 자신이 모르는 天에 관한 정보가 더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재천신교와 장진도에 관한 것도 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친김에 청운은 얼마 전 목운서점의 황 노인에게 얻은 [악학천보]를 직접 악기를 통해 좀 더 연구해 볼 생각이었다.

이참에 아예 자신에게 어울리는 악기를 하나 장만해 취미로 삼을 생각이었다.

청운은 음악이라도 즐길 줄 알면 자신의 강호행이 좀 덜 삭막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청운은 먹던 음식과 술을 깨끗이 비우고는 곧바로 객점을 나섰다.

청운은 객점을 나오면서 점소이에게 은자 하나를 주었다.

그리고는 형주에서 가장 큰 악기점이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

점소이는 자신이 아는 곳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청운은 음식값을 치르고 남은 잔돈을 점소이에게 주었다.

그러자 점소이는 문밖까지 따라 나와 청운에게 악기점의 위치를 재차 가르쳐 주면서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연신 굽신거렸다.

두 식경 정도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구경하며 걸어가니 이백여 장 정도 앞에 성도의 거리가 나타났다.

청운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고 물어 형주에서 가장 비까번쩍한 <만악만기>라는 악기점에 들어갔다.

악기점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내부가 훨씬 화려했다.

악기점의 문을 방금 열었는지 서너 명의 사환들이 분주하게 이곳저곳을 정리하고 있었다.

청운이 문을 밀고 들어서자 한쪽 구석에서 총채로 진열대의 먼지를 털고 있던 사환이 청운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꾸벅 인사를 했다.

그 사환은 이제 겨우 십 대 중반 정도의 앳된 소년이었다.

“공자님, 저희 <만악만기>에는 이름 그대로 중원에 있는 모든 악기와 악보를 다 구비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게에 없는 것은 중원의 어느 악기점에도 없습니다.”

소년이 연신 청운에게 살살거리며 입안의 혀처럼 굴었다.

“어떤 종류의 악기를 찾으시는지요.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상세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 소년의 타고난 상술에 청운은 입가에 한 가닥 엷은 미소를 베어 물고는 말했다.

“먼저 피리를 좀 봤으면 합니다.”

소년이 아까보다 더 살갑게 굴며 말했다.

“공자님에게 잘 어울리는 피리를 제가 반드시 찾아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청운에게 말을 건네자마자 소년은 곧바로 몸을 돌려 왼쪽 가운데에 있는 진열장으로 청운을 이끌었다.

청운은 한껏 기대감을 안고서 소년의 뒤를 따랐다.

소년의 말대로 진열장에는 수백 종류의 피리가 구비되어 있었다.

소년은 이것저것 꺼내 보이며 청운에게 만져도 보고 불어도 보라고 했다.

청운은 그 어느 것도 마음에 쏙 들지 않았다.

자단목으로 만든 것도, 옥으로 만든 것도 모두 자신의 성에 차지 않았다.

전부 다 번쩍번쩍하기만 할 뿐 깊고 은은한 맛이 없었다.

가격과 재질에 상관없이 문자향 서권기를 풀풀 풍기는 그런 피리를 청운은 찾고 있었다.

청운은 이곳에 있는 피리로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칠현금을 비롯한 다른 악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청운은 무수한 세월을 견디며 여전히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명곡들이 수록된 악보집을 하나 샀다.

청운은 소년에게 이 지역에 다른 악기점은 없는지를 물었다.

소년은 금세 안색이 굳어지더니 <만악만기>에 없는 것은 다른 가게에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만악만기>가 이곳 형주에서 단연 제일 큰 악기점이라고 말했다.

청운은 소년에게 이 근처에 고악기를 파는 가게는 없는지를 재차 물었다.

소년은 두 눈을 뜨악하게 뜨고는 말했다.

“공자님, 골동품을 취급하는 곳이 몇 군데 있기는 합니다만, 그 가게들에서 파는 것은 대부분 진짜 같은 가품들뿐입니다.”

“그래도 알려줄 수 있소?”

“음… 자칫하면 바가지만 옴팡 덮어쓸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저희 가게에서 찬찬히 마음에 드시는 걸 찾아보시는 것이 더 낫습니다.”

청운이 그래도 그곳을 알려달라고 하자, 소년은 대충 위치를 알려 주고는 등을 돌리려고 했다.

청운이 막 돌아서려는 사환에게 고맙다고 은자를 하나 꺼내어 주며 잔돈은 필요 없다고 했다.

소년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얼굴에 반색을 띠며 <천기만전>에 가 보라고 했다.

아까와는 달리 가는 길도 상세히 알려 주었다.

그 골동품점이 그래도 이곳 형주에서는 가장 양심적이고 주인장의 안목도 상당하다고 소년이 말했다.

청운은 소년이 가르쳐 준 대로 몇 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골동품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곳을 간신히 찾았다.

<천기만전>이라는 골동품점은 여러 곳의 골동품 가게 중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청운이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밀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낡은 보료 조각으로 고색창연한 칠현금을 닦고 있던 노인네가 고개를 돌려 힐끔 청운을 쳐다봤다.

그 노인은 나이는 육십이 훨씬 넘은 것 같아 보였다.

얼굴 여기저기에 검버섯이 만발해 있었다.

청운의 얼굴과 차림새를 찬찬히 살펴보던 노인장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공자, 어떤 걸 찾으시오. 이리와 한 번 살펴보시오. 잘못 고르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잘만 하면 횡재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골동품이지요. 사실 나도 내 물건의 가치를 속속들이 다 알지는 못합니다.”

“네, 잘 살펴보겠습니다.”

“복불복입니다. 모든 것은 공자의 운과 일진에 달려 있습니다. 이쪽은 금, 저쪽은 편종과 비파. 그 옆은 피리 그리고 나머지는 그냥 고물들이지요.”

청운은 노인이 가르쳐 준 곳으로 다가가 이것저것 찬찬히 살펴보았다.

노인의 설명과는 달리 물건들은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다.

한참을 뒤적거리던 청운은 금과 비파가 마구 뒤섞여 있는 곳에서 짙은 적갈색의 낡은 피리를 하나 집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