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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검무-66화 (66/184)

066화 한 마디로 어마어마했다

산산이 부서져 허공으로 치솟았던 연단의 잔해와 먼지가 한참이나 후드드득 거리며 땅바닥에 순차적으로 떨어져 내렸다.

연단 주변의 허공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희뿌연 대기가 서서히 본래의 투명한 모습을 회복하자 장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처참했다.

폐허도 이런 폐허가 없었다.

사대화불이 서 있던 자리에는 그들의 것으로 보이는 피륙과 핏물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사대화불의 코에 걸려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따라 흔들리던 금빛의 고리 네 개만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은 채 선홍빛의 핏물 위에서 둥글게 반짝이고 있었다.

혈화제천은 쩍 갈라진 가슴과 어깨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자기 몸에서 분리된 왼팔을 오른손에 주워들었다.

그리 하고는 대웅전을 타고 넘어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그는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면서도 청운에게 연신 분노의 저주를 퍼부어 댔다.

“네놈과 네놈 집안은 누대에 걸쳐 재천의 분노가 집어삼키리라! 반드시! 기필코! 멸절 또 멸절 하리라.”

청운은 저만치 달아나는 혈화제천을 오늘 반드시 죽여야겠다는 생각에 묘묘보허를 전개하려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갑자기 가슴의 명문혈 한 곳이 꽉 막히면서 비릿한 뭔가가 목구멍까지 차올라 왔다.

청운은 그것을 벌컥 토해 냈다.

그것은 검붉은 핏덩이였다.

청운은 재천신교 무리의 잔학한 악행에 너무나 분노한 나머지 자신이 멸환을 극한으로 전개하면 몸에 엄청난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멸환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청운은 혈화제천이 발출한 혈화현음장의 장력에 실린 귀기를 완벽히 차단하지는 못했다.

혈화제천을 죽음 바로 직전까지 몰아붙이기는 했으나, 청운 역시 그의 괴이한 장력에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고 말았다.

그만큼 혈화제천의 음한지기는 음습하고 지독한 것이었다.

청운은 당장 운기조식을 해서 모공으로 침투한 음한지기를 몸 밖으로 배출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장내의 상황이 그리 녹록하지가 않았다.

청운은 이번 참에 혈화제천뿐 아니라 달아날 기회를 노리며 장내에서 은밀히 몸을 빼려고 하고 있는 팔대홍라도 반드시 제거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저들도 세상에 백해무익한 자들이라고 청운은 생각했다.

하루라도 저들을 더 살려 두면 그만큼 세상이 더 혼탁해질 게 뻔하다고 청운은 생각했다.

청운이 무영검을 들고 그들을 노려보자 팔대홍라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고양이를 보고 놀란 생쥐처럼 후다닥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도주를 목격한 청운이 막 신법을 전개해 그들의 도주로를 차단하려던 바로 그 순간.

난데없는 중후한 일성이 장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나는 섬서 진무사령 주호형이다. 지금 즉시 모두 동작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마라.”

그 묵직한 소리와 함께 수십여 명의 은색 무복을 입은 무사들이 속속 장내로 날아 내리고 있었다.

그들의 왼쪽 가슴 부위에는 황금색의 관館이란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들을 뒤따라 누더기를 입고 허리에 새끼줄을 두른 개방의 인물 셋도 장내에 나타났다.

진무사령과 진무사 무사들이 장내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격전을 치르며 눈치를 보고 있던 재천신교 무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진무사 무사들은 진무사령의 지휘를 받으며 달아나는 신교 무리를 체포하거나 극렬하게 저항하는 자들을 추살하고 있었다.

진무사 소속 무사들이 검법을 전개할 때마다 그들의 검에서 황금색 검광이 번뜩거렸다.

황궁에만 전해지는 금황검법이었다.

한동안 이곳저곳에서 비명과 아우성이 끊이지 않았다.

한 시진 정도가 지나자 혼란이 극에 달했던 장내가 대충 수습되었다.

무공이 고강한 몇몇 신교의 수뇌부 고수들은 대부분 달아나 버렸다.

무공이 약해 서둘러 몸을 빼내지 못한 수십의 신교 무리는 붉은 오랏줄에 묶인 채 장내 한쪽에 꿇어 앉혀져 있었다.

재천신교의 일반 신도들은 대웅전 앞에 임시로 설치된 천막 앞에서 긴 줄을 선 채 조사를 받고 있었다.

진무사 무사들이 도저히 개선의 여지가 없는 광신도와 그렇지 않은 신도를 선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전자는 관가로 즉각 연행하고 후자는 훈방하는 것 같았다.

빠르게 정리가 되어 가는 장내를 한차례 쓱 둘러본 진무사령이 자신의 수하들에게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나머지 진무사 무사들은 만불사 구석구석을 철저히 수색하라. 한 곳도 빠짐없이 세세히 살펴라. 전각 곳곳에 있을지 모를 지하실과 암실을 특히 주의해 수색하라.”

명령을 내린 진무사령이 다시 한 번 장내를 휘둘러보았다.

그가 청운을 한동안 예의 주시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자기 주변에 있던 개방의 인물들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그들을 대동한 채 청운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청운 앞에 우뚝 멈추어 선 진무사령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포권을 취했다.

그러자 개방의 인물들도 진무사령을 따라 청운에게 포권을 취했다.

청운도 포권을 취하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진무사령은 삼십 대 초반 정도의 나이로 기개가 헌앙했다.

특히 그의 잘 벼린 칼날 같은 형형한 안광과 풍기는 기도는 그의 무공 경지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말해 주고도 남았다.

개방의 인물들은 모두 셋이었다.

왼쪽에 있는 자는 사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그는 허리에 여섯 개의 매듭이 매어져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자는 삼십 대 중반 정도로 허리에는 네 개의 매듭이 매어져 있었다.

가운데 있는 자가 가장 특이했다.

그는 이십 대 후반의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여덟 개의 매듭이 허리에 매어져 있었다.

팔결은 바로 개방의 소방주을 상징하는 표식이었다.

포권을 풀고 난 진무사령이 청운에게 은근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을 일일이 손으로 가리키고는 소개했다.

“이분은 외당주 구천비운 종리무, 그리고 이쪽은 개방방주 천리신개 기 대협의 직전 제자 소방주 비류천보 혁소린, 마지막으로 저쪽이 개방 섬서분타주 세류비응 우서롱입니다.”

개방의 인물들은 진무사령에 의해 자신의 신분이 말해질 때마다 재차 청운에게 포권을 취했다.

청운 역시 그들의 포권에 거듭 포권으로 응대했다.

청운과 인사를 나누는 그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놀라움이 잔뜩 내비쳤다.

그들의 놀란 표정에서는 최근 강호에서 엄청난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는 무위검이라는 인물이 이렇게나 젊은 사람일 줄은 꿈에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는 불신감이 역력하게 묻어났다.

“소협, 저는 섬서의 진무사령 주모라고 합니다. 무위검 강 소협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신지요.”

청운도 간단하게 응답했다.

“강호에 위명이 혁혁한 진무사령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고 저의 안위를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크게 잘못된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무공이 워낙 사이하고 괴이해 약간의 내상을 입은 것 같습니다.”

진무사령이 곧바로 청운의 말을 받았다.

“중원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호하는 재천신교 무리의 무공이 워낙 요사하고 음험해 저희 진무사 무사들도 상대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두어 달 전 그들의 괴이한 무공에 당한 무사들 중 몇몇은 무공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온갖 치료라는 치료는 다 해보았으나 아직도 완전한 회복을 못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소협, 마지막에 펼친 초식의 이름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나는 여태껏 그 정도의 위력을 가진 검법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청운을 마주한 진무사령과 개방의 인물들도 궁금한 눈빛을 반짝이며 청운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청운은 이런 상황에서도 낯선 무공에 관해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에서 괜한 헛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무림인들의 무공에 대한 호기심은 도저히 어쩔 수 없구나 하고 청운은 생각했다.

하지만 청운은 지금 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청운은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마지막 초식은 ‘멸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대로 내려오는 가전의 양생법을 무공으로 다듬은 것입니다.”

진무무령과 개방의 인물들은 청운의 짧은 대답에 뭔가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소방주 비류천보 혁소린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다시 뭔가를 청운에게 막 물어보려는 찰나에 석가명과 초가보 총순찰이 청운 앞으로 달려와 포권을 취했다.

석가명과 총순찰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청운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강 소협, 정말 감사드립니다. 소협 덕분에 초서서 아가씨를 무사히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소협에게 크나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청운은 그들의 인사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 일은 어차피 제가 하려고 했던 일의 과정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너무 괘념치 마시지요.”

청운의 말이 끝나자 진무사령이 청운과 석가명과 총순찰을 쓱 훑어보더니 말했다.

“강 소협, 석 공자 그리고 총순찰께서는 조만간에 섬서 관아에 꼭 한 번 들려주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한 일은 아니고 이번 사건의 당사자와 목격자로서 윗전에 보고할 서류에 서명이 필요합니다. 그냥 관행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신의 말을 다 마친 진무사령이 장내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자 멀어지는 진무사령의 뒷모습을 흘끔 한 번 바라보던 석가명이 말했다.

“소협, 안색이 조금 안 좋아 보이십니다. 저희 석가장으로 가시지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다행히 저의 집에 천하제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탁월한 솜씨를 가진 의원들과 괜찮은 약재가 조금 있습니다. 소협의 내상을 치료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청운은 석가명의 초대에 오히려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석가장은 어차피 소림으로 가는 길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서 며칠만 정양하면 거뜬히 몸을 회복할 것 같았다.

청운은 석가명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며칠 귀장에 폐를 끼치겠습니다.”

* * *

한 마디로 어마어마했다.

석가장의 규모는 언술로 다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청운은 남궁세가의 고루거각을 보고서도 많이 놀랐지만 석가장의 규모는 아예 상상을 초월했다.

아직 황궁을 보지 못해서 뭐라고 예단할 수는 없었으나 황궁의 규모도 이 정도는 안 될 것 같았다.

담장의 길이만 해도 거의 수천 장이 넘을 것 같았고, 산 몇 개가 그대로 담장 안에 들어가 있었다.

전각의 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청운은 한 개인의 부가 이 정도로 방대해도 정말 괜찮은가 하는 불안감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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