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화 저게 과연 인간의 무공이 맞기는 맞는가?
그 찰나의 순간, 곧바로 신형을 번개처럼 돌린 청운은 쾌—타—절—변의 연환 초식으로 혈불제천을 번갯불처럼 짓쳐 갔다.
분노한 청운의 무영검에서 발출된 투명한 자황색의 섬광이 혈화제천의 전신을 해일처럼 휩쓸어 갔다.
난데없는 청운의 등장과 엄청난 무위에 대경실색한 혈화제천은 자기 앞에 놓여 있던 온갖 제기들을 청운을 향해 던진 후 다급하게 연단의 바닥을 몇 바퀴나 나뒹굴었다.
혈화제천이 던진 제기들은 청운의 검기에 의해 순식간에 가루로 화해 밤하늘에 때 아닌 꽃잎처럼 흩날렸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치욕으로 여기는 나려타곤의 초식으로 연단의 바닥을 구르는 혈화제천을 향해 청운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재차 회—접—척의 초식을 연환해서 전개했다.
청운은 마치 고양이가 생쥐를 잡듯이 혈화제천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청운은 초식을 제대로 다 펼치지도 못하고 한순간 허공으로 솟구쳐오를 수밖에 없었다.
무영검에서 발출된 검기가 바닥을 나뒹구는 혈화제천의 전신을 막 찢어발기려는 순간.
청운이 자신의 등 뒤로 급습해 들어오는 천근의 바윗덩어리 같은 장력의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장력을 피하기 위해 청운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신형을 허공으로 띄울 수밖에 없었다.
거의 다 잡은 혈화제천을 도륙할 기회를 놓친 청운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청운은 자신의 등으로 그 장력을 맞으면서라도 혈화제천을 당장 쳐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청운 자신의 목숨 또한 내놓아야 하는 너무 위험한 도박이었다.
싸움도 바둑과 마찬가지로 아생연후살타였다.
상대를 죽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자신이 먼저 죽지 않아야 한다.
상대를 죽이는 것을 그다음의 일이다.
청운은 허공에 뜬 채로 줄에서 방금 놓여난 팽이처럼 신형을 빙글 돌리며 등 뒤에 자신을 공격한 자들에게 분노의 일 검을 내질렀다.
청운의 이번 일 검은 다급히 상대의 공격을 피하면서 펼쳐낸 것이기에 제대로 진력이 실리지 못한 것이었다.
이번 청운의 일 검은 초식의 묘용을 통해 상황을 파악할 순간을 벌 의도로 전개한 것이었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신형을 바로잡고 바닥에 내려선 청운이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길로 자신 배후를 급습한 자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모두 네 명이었다.
그들은 삼십 대 중반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그들 네 명 모두는 민머리에 팔대홍라보다 더 짙은 붉은 승포를 걸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네 명 다 코를 꿰뚫어 금색 고리를 걸고 있었다.
청운이 그들 하나하나를 찬찬히 노려보며 다시 무영검에 진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무영검이 부르르 떨며 청아한 검명을 토해 내더니 이장이 훨씬 넘는 자황색의 검기가 밤의 대기를 금방이라도 갈가리 찢을 듯이 일렁거렸다.
청운을 마주한 적의의 사내들이 청운의 무위에 잔뜩 긴장하는 것 같았다.
청운이 무영검을 다시 고쳐 잡았을 때 청운으로부터 난데없는 일격을 당해 연단 바닥을 나뒹굴었던 혈화제천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자세를 고쳐 잡는 모습이 청운의 눈에 들어왔다.
청운은 오늘 저자를 반드시 죽여야겠다고 작심했다.
오늘 저자를 살려 두면 얼마나 더 많은 악독한 짓거리를 저지를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청운이 그런 결심을 속으로 하며 막 무영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
혈화제천이 분노에 찬 일성을 터뜨렸다.
“사대화불은 들어라. 오늘 이 거룩하고 신성한 제천 의식을 망치고 하늘의 점지를 받아 인간 세상을 구원하러 온 본 혈화제천을 모독한 저 무도한 자를 하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반드시 징계하라.”
혈화제천의 명령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청운을 사방에서 포위하고 있던 사대화불이 청운에게 거센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들은 청운을 향해 일제히 주먹을 쭉 뻗었다.
청운은 그들의 권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청운이 사대화불과 대치한 거리가 거의 삼 장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먹은 마치 늘어나는 생고무처럼 청운의 전신 요혈을 향해 죽죽 뻗어 나왔다.
마치 그들의 어깨에서 기다란 주먹 망치가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더 괴상망측한 것은 그 주먹 망치가 자유자재로 휘어지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청운은 몸을 팽이처럼 빙그르르 돌리며 쾌—절의 초식을 연환해 자신의 전신으로 폭사해 오는 사대화불의 팔들을 모조리 잘라 버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청운은 분명 그들의 팔을 잘랐다고 생각했는데 무영검에는 어떤 절단의 느낌도 전해지지 않았다.
마치 무영검이 하릴없이 허공을 베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무영검에 진력을 더 주입해 초식을 전개해도 마찬가지였다.
더 많은 초식을 연환해 펼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청운은 그들의 주먹에 일부 자신이 맞을 각오를 하고 그들의 몸통을 공격해야겠다고 작심했다.
생각과 동시에 청운은 회—접—척의 초식을 연환해서 동쪽과 남쪽의 방위를 밟고 있는 사대화불의 몸통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청운이 동쪽과 남쪽의 공격에 주력하는 바람에 청운의 등과 왼쪽은 자연히 허점이 생기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쪽의 방위로 다른 두 사대화불의 강맹한 주먹이 짓쳐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운은 자신이 목표로 삼은 사대화불 중 두 명을 향해 무영검을 벼락처럼 떨쳐냈다.
청운은 자신의 빈 약점을 집중적으로 노릴 것이 뻔한 다른 두 사대마불의 주먹에 대해서도 이미 나름 대비도 하고 있었다.
청운은 치우전륜공을 최대한 끌어올려 자신이 검으로 방비하지 못하는 두 방위를 호신강기로 최대한 보호했다.
청운은 동쪽과 남쪽의 두 사대화불의 가슴과 옆구리를 일 검으로 베어 버렸다.
그 때문에 청운도 자신의 등과 오른쪽 옆구리를 다른 사대화불의 권풍에 격타 당했다.
이번에는 동쪽과 남쪽에 있던 사대화불의 몸통이 갈라졌다는 느낌이 무영검에 확실하게 전해졌다.
청운은 무영검이 사대화불 중 두 명을 틀림없이 베었다고 확신하는 바로 그 순간.
자신의 등과 오른쪽 옆구리가 마치 쇠망치에 맞은 듯한 둔중한 통증을 느꼈다.
치우전륜공으로 그 두 곳을 철저히 방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운은 내장이 진탕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주먹질에는 마치 쇳덩이로 만든 망치로 때리는 것 같은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다.
그들의 주먹질에 강타당할 때 청운은 순간적으로 전신의 기혈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주먹질은 격산타우처럼 전문적으로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파괴하는 수법인 것 같았다.
하지만 청운은 엄청난 고통에도 불구하고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이유는 자신은 불과 몇 대의 주먹질에 당한 것에 비해 두 명의 사대화불을 거의 초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청운은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청운의 엄청난 착각이었다.
청운의 바로 눈앞에 보고도 믿지 못할 기괴한 광경이 펼쳐졌다.
청운의 무영검에 적중되어 쩍 갈라졌던 두 사대화불의 가슴과 옆구리가 마치 갈라진 물이 합쳐지듯 천천히 오므라들고 있었다.
뭐 저런 이상한 무공이 다 있는가, 하고 청운은 대경실색 했다.
그러다 문득 청운은 하오문의 비고에 소장되어 있던 [무림편람]에 기술되어 있던 괴상한 무공에 관해 읽었던 기억을 소환했다.
그랬다.
저 괴이한 무공은 바로 통비공과 합미륵공이었다.
어깨에서 주먹이 생고무처럼 뻗어 나오는 것이 통비공이고.
쩍 갈라진 상처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오므라드는 것이 바로 합미륵공이었다.
서장의 소뢰음사에서 유래된 무공이었다.
저 무공을 익힌 자는 몸이 산산이 부서지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멸환을 사용해야 한다.
안 그래도 상황을 재빨리 정리하기 위해서는 속전속결이 필요하다고 청운은 이미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전의 상황이 자신들 일행에게 전혀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다는 걸 청운은 한참 전부터 생생히 느끼고 있었다.
팔대홍라와 치열한 격전을 치르고 있는 초가보의 검사들은 무공이 고강한 총순찰을 제외하고는 확연히 열세에 처해 있었다.
석가장의 무사들은 초가보의 무사들보다 더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리고 사대화불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는 자신의 빈틈을 노리고 있는 혈화제천도 청운의 신경을 잔뜩 거슬리게 했다.
청운은 사대화불과 혈화제천을 무섭게 노려보면서 ‘멸환’을 펼치기 위해 무영검에 치우전륜공의 진기를 주입했다.
무영검이 돌연 우—우—우—웅 하는 중후한 검명을 토했다.
혈화재천과 사대화불도 청운의 자세와 표정에서 무슨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청운은 멸환 초식을 펼치기 위해 자신의 가슴 앞에 서서히 무영검을 들어 올렸다.
바로 그 순간 청운의 등 뒤에 잔뜩 기회를 노리고 있던 혈화제천이 벼락같이 쌍장을 떨쳐냈다.
혈화제천의 장심에서 보기에도 섬뜩한 푸르스럼한 귀면상이 현현했다.
그 귀면상에서 섬광처럼 쏘아진 짙푸른 귀기가 종이를 구기듯 장내의 대기를 이지러뜨렸다.
그 귀기는 마치 아득한 무저갱에서 솟아오르는 귀화처럼 혈화제천의 장심을 떠나자마자 급찰나에 청운의 면전에 들이닥쳤다.
사대화불의 무공은 이미 겪어본 것이었지만 혈화제천의 장력은 청운이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혈화제천의 장심에서는 청운이 생전 처음 맞닥뜨리는 요사하고 사이한 음한지기가 고장 난 분수처럼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 음한지기는 단순히 차갑기만 한 그런 음한지기와는 그 차원이 전혀 달랐다.
그 냉기는 처녀의 무수한 순음지기를 흡취해 쌓은 것이어서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사이하고 악독했다.
평범한 음한지기가 사람의 외부를 먼저 얼리는 반면에 혈화제천의 혈화현음장은 사람의 모공으로 순간적으로 침투해 속부터 망가뜨리는 것이었다.
혈화현음장과 통비권이 막 자신의 몸에 닿으려는 찰나.
청운은 자신의 몸을 마치 바람개비처럼 회전시키며 극한의 멸환을 전개했다.
청운이 떨쳐낸 일 검에선 성운이 일고 유성의 꼬리가 타오르는 것 같은 자황색의 섬광이 연이어 번쩍거렸다.
청운의 검기와 혈화제천의 혈화현음장과 사대화불의 통비권이 그들이 대치하고 있던 연단의 중앙에서 맞닥뜨리자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 충돌로 연단은 그대로 산산조각 무너져 내렸으며 사방 오 장 이내는 마치 엄청난 화탄이 터진 듯 모조리 폐허가 되고 말았다.
연단과 다소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치열한 격전을 벌이든 팔대홍라와 초가보의 무사들 그리고 석가장의 무사들도 그 격돌의 여파로 마치 아이가 던진 돌처럼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주섬주섬 일어나 자세를 가다듬은 그들은 장내의 상황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너무 놀란 초가보의 무사 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게 과연 인간의 무공이 맞기는 맞는가…….”